그리스도의 부활(고전 15:14)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말씀하신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인간의 불순종과 죄를 감당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비통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등에 의해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내려져 돌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삼일 후에 무덤을 찾아간 제자들과 여인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 슬픔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이미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가르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잊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입니다. 인간의 불순종과 죄는 죽음을 향한 고된 인생의 여정을 예고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에게 인간의 죄악을 담당시키시고, 하나님의 공의로 그의 아들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화목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선택적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불순종과 죄악을 담당하기 위한 선택의 그의 아들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의 죽음, 자신의 죽음을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해결하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에서 머물지 않으시고 부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의 비밀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역사 가운데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난 인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신비를 깨닫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매우 낯설고 어려운 일입니다.부활이 없다(12절)고 주장하는 일은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부활의 비밀을 깨닫고 전파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며, 그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우리가 믿고 전파하는 모든 것이 헛것(14절)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까지도 헛것으로 전락하는 불쌍한(19절) 인생의 여정만이 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건인 것처럼, 그의 부활 역시 역사적 사건이었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소망은 첫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합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필연적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독교 역사에서 드러난 육체적 고난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정신적, 경제적으로 위협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벧전 4:13)’는 성경의 초대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합니다. 죽음의 권세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망으로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를 위협하는 고난과 맞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실패 혹은 실수가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부활의 소망은 우리를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담대하게 참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의 소망은 둘째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관성의 법칙으로 우리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고통조차 일정하다면 거기에 머물려고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죽는다(31절)’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현재에 머물고자 하는 죄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믿음의 몸부림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관성적인 죄의 삶을 깨뜨리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삶을 소망하도록 미래를 준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됩니다(고후 5:17). 불순종과 죄악의 옛사람에서 벗어나서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바다교회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