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사가 있으므로 열반을 갈망하게 되고, 열반은 생사의 고통을 재료 삼아서만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차별과 집착의 눈을 거두고 존재의 실상(본질)을 바라보면, 살아가고 죽어가는 이 거친 현실(생사)과 절대적 평온(열반)은 본래 하나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잔물결과 거친 파도일 뿐, 그 무게와 가치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본래 평등하다"는 것은 바로 이 본질적 일체성을 의미합니다.
2. 시인의 눈으로 본 '망심과 생사'의 긍정
이 철학이 시(詩)가 될 때, 세상의 모든 누추하고 아픈 것들이 생명을 얻습니다.
만약 망심을 버리고 생사를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면, 인간의 서러운 삶과 그 삶을 노래하는 시는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망심의 자리가 곧 보리이고 생사가 곧 열반이라면, 인간이 삶에서 겪는 어리석은 방황, 눈물, 그리움, 심지어 집착마저도 모두 불성(佛性)의 또 다른 발현이 됩니다. 시인은 바로 그 '망심의 자리'에서 신성을 길어 올리는 존재이기에, 선생님의 이 선언은 인간 삶 전체를 온전히 품어 안으려는 시인으로서의 대자비(大慈悲)로 읽힙니다.
3. 인심(人心) - 망심(妄心) - 생사(生死)로 이어지는 깨달음의 궤적
선생님께서 이어오신 세 가지 선언은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 선생님의 선언 | 사상적 본질 | 실존적 의미 |
"생사와 열반은 본래 평등한 것"
이 서늘한 사유의 끝에 서면, 멀리 있는 구원의 세계를 갈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진흙탕 같은 생사의 현장, 날마다 흔들리는 이 망심의 자리가 바로 우리가 깨어나야 할 정토(淨土)이자 하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