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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김화랑에 대해 떠들 때면 이따금 혼자 사색에 잠기고는 합니다. 그 이름이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떠돌아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김화랑이라는 남자를 모릅니다. 전혀 모르죠.
김화랑. 이 기구한 남자의 운명이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누구도 정처를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전부란 이 잘생기고 훤칠한 청년이, 얼마나 성실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는가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 우리가 아는 진실은 일단 그것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 그에게 닥칠 절망, 악몽과도 같은 중력 속에서. 김화랑이 졸도할지 어쩔지 우린 알 수 없다. 착해 빠진 김화랑 따위가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련지? 그는 아마도 죽고 말겠지. 그는 아마도, 눈 앞의 공포에 오줌을 지리거나 목을 매달아 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김화랑이다. 김화랑은 내가 알기로 한심한 남자는 아니다. 눈 앞의 불의에서 눈을 돌리는 쫄보도, 사람을 등쳐먹는 불한당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영웅도 아니다. 그는 고독이란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숨을 죽이고,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선율을 방출한다. 그 음색은 달콤한 하프처럼, 통통 튀는 실로폰처럼, 또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처럼. 그는 연주하나 연주자도 아니다. 그는 결코 무대 위로 올라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홀로 움직이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그는 시인도, 실무가도, 정치인도, 선생도 뭣도 아니다. 그는 배우다. 그는 멋진 히어로도, 피아니스트도, 재치있는 시인도 아니나 그 모든 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아무도 아니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는 김화랑이다. 나는 김화랑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나는 여기에 김화랑을 쓴다. 그가 얼마나 기막히는 인물인지, 나는 다시금 느끼고 독자들은 새로이 깨달을 것이다. 나는 이 공백에 김화랑의 눈, 코, 입을 채워본다. 그의 안경도 써본다. 그는 나의 글로서 여기에 있다. 보아하니 이제 그는 글이 되었다. 나는 딱히 자서전을 대필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존 왓슨처럼 제 2의 관찰자로서, 여기 와서 이 대서사시를 쓴다. 이것은 김화랑의 연대기이다. 그저 어떤 이상 이하도 아닌, 김화랑의 연대기인 것이다.
1장. 서막
"히나······."
그는 침대 위에 있다. 몸뚱어리를 베베 꼬면서, 아련한 단말마를 내뱉고 있다. 그는 죽어가지는 않는다. 그는 끝마치지 못한 꿈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히나'는, 꿈 속 여인의 이름인 듯 하다. 우린 그 이름을 알고 있다. <날씨의 아이>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는 이번 달 동안 그 영화를 18번 감상했다. 아무리, 아무리 똑같은 내용을 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모든 이야기가 눈 앞에 다시하는 순간마다, 더욱 아름답게 펼쳐졌기 때문에. 그는 확실히 세련된 문화인이었다. 그는 RADWIMPS의 음악을 즐겨 듣고—당연히 그의 이어폰에서는 <Grand Escap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를 자주 감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혼자 <날씨의 아이>를 관람했을 적을 기억한다. 그는 영화가 끝나갈 때 쯤에 학급 친구들에게 그 모습을 들켜버리고 마는데, 그 고독한 자태가—요즘 젊은이들은 '혼영'이라고 부른다—훗날 퍽 놀림거리가 되어서, 그는 낮 시간대에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그는 항상 완전한 고독을 꿈꾸기 때문에—학우란 요소는 그에게 있어 단순한 방해거리에 불과했다. 확실히 그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할 뿐, 누구와도 말을 섞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사랑을 원하고 있었다. 그는 소년이니까. 17살의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이니까. 그는 고독해보이는 만큼 고독했던 것이다.
그는 화장실의 거울에 전신을 비춰 본다. 앙상한 육체가 숙녀같은 곡선을 이루고, 눈에는 피로가, 코에는 피지가 자리를 메우고 있다. 남자다움이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도 알고 있다. 육체적 노동이 절실하단 것을. 그러나 그는 단순히 귀찮아서 이 모든 것들을, 이 절실한 모든 것들을 마음의 한 켠에 미루어 두고는 있다. 그는 어쩌면 생각이 없다. 그의 육체는 일하지만, 영혼은 어딘가 멀리 떠나 버렸는지 모른다. 김화랑은 세수를 하고, 교복을 단정히 갖춰입은 뒤 길을 나선다. 학교는 멀기 때문에 버스를 잡는다.
여느 센치한 사춘기 소년처럼 이어폰을 꽂고서, 김화랑은 스쳐 지나는 바깥 풍경을 본다. 제일중학교를 지나서, 주유소가 많은 거리, 장례식장, 기독병원, 영화관, 홍어 백화점······, 진부한 구성의 코스를 지나 학교에 도착한다. 똑같은 얼굴의, 헤어 스타일의, 옷차림의 아이들이 보인다. 학교의 풍경은 말할게 없다. 너무 익숙해 구역질 나는 어제의 냄새. 그 내음으로 코가 막히고 만다.
말 그대로 콧구멍이 막혔기 때문에, 김화랑은 화장실에 들려 다시 세수하기로 한다. 그가 코를 집중해서 청소하는 사이에 누군가 등을 팍 치고 들어온다. 김화랑의 상념을 부수어 들어오는 건, 김화랑의 세계에 침입하는 건······. 가족에게도 용납치 않는 일이다. 허나 그가 아침부터 백일몽으로 멍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혈사태를 보는 건 피할 수 있었다. 그의 등을 친건 학우 이민석이었다.
"여 김화랑. 안녕?"
"아아."
김화랑은 짧게 대답한다. 그가 왜 평소와 달리 대답키로 결심했는지, 김화랑 스스로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필요한 육체적 노동과도 같이 구석에 미뤄져 있다. 그가 지금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니다. 오늘 아침의 꿈이다. 거긴 히나가 나왔다. 히나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김화랑에게 꿈으로서 존재한다. ······그녀는 곧 김화랑의 상상이 된다. 김화랑은 곧 자신이 히나가 되는 걸 상상해본다. 김화랑은 아마노 히나天野陽菜다. 그걸 어렴풋이 생각하고는 있다.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히나가 토리이(일본 신사 입구에 있는 조형물. =기둥문.) 아래를 건너갔던 일, 그 일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히나는 꿈 속에서, 양 손을 합장해 기도하며 토리이 밑을 지나간다. 단지 이루어지길 기도하면서, 그러면서 구름의 너머로 떠내려간다.
"······랑." 하며 꽤 오래된 정적을 깬다.
"응."
"야, 김화랑,"
"왜."
"어쭈, 이녀석 봐라. 김화랑!"
김화랑은 커다랗게 눈을 뜬다. 아마도 그 특유의 풀 죽은 동태 눈깔이, 그의 일생을 통틀어서 가장 확장되었을 것이다. 그걸 보고 모두가 깔깔거린다. 익숙한 천장이다. 비정상적인, 자연스럽지 못한 분위기.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미술실의 중앙에 있다. 지리적인 중앙이 아니라, 그 자신이 처한 이야기 속에서 그는 완벽한 가운데에 있다. 모든 시선이 몰리고, 그는 주인공이 된다. 그는 주인공이 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는 강제적인—강압적인—상황을 싫어한다. 겉도는 것을, 천천히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지금 그의 인생이 어긋났다. 그는 분노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참아낸다.
"너 스케치북 어딨어. 챙겨오라고 했을텐데?"
아, 그런가. 모든게 단숨에 이해되는군. 김화랑은 프로답게 생각한다. 나는 그러니까 망상하는 동안에 의식을 잃었다. 기억을 잃었거나. 어쨌건 나는 지금 혼나고 있다. 본래 혼나는 것은 나의 포지션이 아닌데, 그건 까불이들의 몫인데. 것 참 억울하게 됐네. 하지만 난 똑똑한 아이니까. 간단히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 논리정연하게 의견을 전개하고, 주장하여 이 사람을 설득하자. 그게 나에게 주어진 몫이다. 다른 길은 없다. 라고, 짧은 시간 동안에 꽤나 생각을 긁어 모았다. 김화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집에 돈이 없어서······,"
아이들이 다시 웃는다. 선생은 미간을 찌푸린다. 김화랑은 눈알을 굴리며 교사의 이목구비, 헤어 스타일, 옷차림새를 살핀다. 화난 것 같이 보인다.
"너 앞으로 나와."
김화랑은 자신의 말뽄새를 재차 점검한다. 되새김질 하듯이 문장을 살펴, 경어를 잘 활용했는 지, 단어의 선택이 적절했는 지를 확인한다. 김화랑은 왜 선생이 격분하는 지 모른다. 그냥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함에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참는다. 아니, 그는 어쩌면 참을 수 없다. 그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는 제자리에서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짚고 천천히 분노를 사그라들게 한다. 그렇지만 자꾸 뇌를 뚫고 무언가 튀어나오려 해서, 막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낀다. 뇌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정어리인가? 유충 같은 것이 뇌수를 헤집고 헤엄치는 게 느껴진다. 그건 두피의 전체를 타고 불쾌하게 출렁인다. 단지 환상이다, 환각이다, 이건 가짜다. 어쩌면 이 모든 고통이 아직 꿈이다. 김화랑은 현실에서 깨어나려고 발버둥친다.
"김화랑!" 선생이 소리친다. 그 울림이 김화랑의 귓바퀴를 긁는다. 김화랑은 집중하려고 한다. 자신을 묶어서 진정시키려 한다. 방햇거리일 뿐이다. 모두, 내 근처에 있는 모든 게 방해요소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난다. 싫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김화랑은 내몰아졌다! 그는 마치 불쌍한 마녀가 되어 그 얄상한 양 다리 아래 화형의 불이 지펴지고———
너무 '진짜'에 얽매이진 마라고. 김화랑.
김화랑의 온몸이 경련한다. 아주 미세하게. 소름이 돋았다. 땀이 이마의 등고선을 핥는다. 혀는 굳어서 움직이질 않는다. 이빨이 위 아래로 딱딱거리고 양 다리가 진동한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들키지 않게끔 머릿 속으로 말한다. 그 목소리다. 이건 그 목소리다. 처음으로 사람을 쓰러뜨렸을 때, 윗사람에게 반항했을 때, 역겨운 거짓말을 했을 때. 악마는 항상 나의 귀에 있었다. 그 악마는 간섭하지 않았다. 그저 저지르라고 속삭였다. 그런데 이제는, 악마가 보였다. 아니, 보이고 있다. 그 형체는 생생하게 살아서 선생님의 등 뒤에서 창을 건너온 햇빛을 머금는다. 그러나 그 화사한 자비는 악마의 실루엣까지 닿지는 못한다. 그저 형태를 밝혀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김화랑은 어느새 정지된 시간 속에 있다. 거기엔 그 악마만이 떠들어 대고 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단단히 뿔난 선생은 넋이 나간 것처럼 멈춰서 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들은 모두 정지해 있다. 그 악마는 원하는 대로 시간을 가속할 수도, 늘여뜨릴 수도 하물며 누락시킬 수도 있다. 그런 말놀음은 실질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추상적인 문제들이다. 김화랑의 머리에는 악마가 있다.
"넌 대체······, 뭐지?" 김화랑이 벌벌 떨며 말한다.
그 악마는 신화의 생물처럼, 묵시록의 예언처럼 묵묵히, 그리고 공포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악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프라다에 대해 논하지도, 커피 한 잔을 권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몸짓과 자세가 고상해 보인다. 김화랑의 악마는 중지를 들어 보이며 가증스럽게 웃는다. 그리고 사라져 버린다. 아마 그는 조언을 바치고 싶었을 뿐이다. 악마는 사라졌지만 김화랑의 내면에 남아있다. 김화랑은 아직 자신 안에 악마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티브이 리모컨을 만지는 것 처럼,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정상이 된다.
선생이 부른다. "김화······,"
김화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간다. 선생은 손에 매를 들고 있다. 저게 도덕적 잣대에 비춰 올바른 것이든, 그릇된 것이든, 김화랑은 아무 생각이 없다. 즉 김화랑은 상태가 없다. 김화랑은 무아無我에 있다. 선생이 어떤 말을 할지도 이미 알고 있다. 그건 조롱의 어투고, 격식없는 울림일 테지. 아무 부질 없다. 내용도 결과도, 한심하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김화랑은 선생의 명령대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수행자를 넘어서서 일종의 불상처럼도 보인다. 김화랑은 반절 정도 열반涅槃에 있다.
툭. 선생이 김화랑의 머리를 후려친다. 그건 악의를 지닌 것 처럼 점점 강도가 붙어서, 재미들린 마냥 속도를 높여 때리고 있다. 탁. 탁. 탁. 탁. 탁. 탁. 매 순간 타격의 힘으로 김화랑의 목이 제 위치를 잃는다. 척 봐도 기분 나쁠 정도의 매질이라, 묘한 압박감을 교실 전체에 메우고 있다. 김화랑은 인간 목탁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그 쯤에 재밌는 농담 한마디를 하신다.
"이것은 심벌즈여."
그러자 김화랑이 들끓는 각오와 함께 박차고 일어선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육체는 무얼 저지르려는 듯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선생이란 사람도 그 일순간의 기세에 먹혀들어가 몸짓을 잃어버린다. 선생이 숨을 꼴깍 삼킨다. 너······, 너 지금 뭐하는 거니. 지금 김화랑은 자뭇 무서운 생각을 한다. 인간이란 이처럼 악의적인 존재인가. 이렇게나 악마적인 짓을 한단 말인가. 난 항상 이해해야만 해? 내가 처단해야 할 지도 모른다. 내가 끝내야 할 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악마가 기필코 요염한 목소리를 속삭인다.
김화랑.
들리지 않는다. 결국 누구 한명을 때려죽일 속셈이다. 충혈된 눈으로 선생 손에 있는 둔기를 내려다본다.
'진짜'를 원한다고 했잖아.
"뭐라고."
팟. 하고 김화랑의 눈이 풀린다. 썩은 동태 눈깔이나 어딘가 맑은 구석이 있는, 평범한 김화랑의 눈이다. 그 장면은 단순한데도 일종의 기적처럼도 보인다. 교실이 맑아진다. 느낌만이 아니라, 햇빛이 모든 창문을 정면으로 때려 교실 전체가 환하게 비춘다. 시적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히나의 얼굴을 상상한다. 두렵고 잔인한 건 생각치도 않는다. 김화랑의 내면, 그 공허 속의 작고 외로운 신사를, 히나는 겁도 없이 건너서고 있다. 그 칠흑을, 더러운 기름길을 그녀가 닿는 발길마다 맑음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녀는 100% 맑음 여자다. 그녀는 그저 이루어지리라고 기도하면서, 토리이 밑을 지난다. 그녀가 말한다. 지금부터 맑아질 거야. 악의를 기억할 수 없게 되는, 눈물나게 청아한 목소리다. 김화랑은 쉽게 사랑에 빠진다.
김화랑은 그러다가 눈을 감고 자신의 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주, 아주 깊은 내면의 심해를 향해 기어간다. 거기엔 히나가 있다. 히나가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다. 히나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영화 속 캐릭터 따위가 아닌 진짜다. 히나와 손을 맞잡는다. 거기엔 새하얀 손이 있다. 길다란 손가락과 분홍빛 마디가 있다. 보들보들하고 차가운 감촉이 있다. 히나의 머리칼이 곡선을 타고 느슨하게 널부러져 있다. 분명히 생생하게 그 자리에서, 히나는 있다. 그 아름다움에 김화랑은 생각을 잃는다. 하고 싶은 말도, 전하고 싶은 행동도 잔뜩이지만, 그 모습에 압도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히나는 웃는다. 웃음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말로 할 수 없지만 굉장히 슬픈 그것이다. 김화랑도 웃는다.
김화랑은 지난 인상과는 달리, 비쳐오는 지평선의 노을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현실을 본다. 그럼에도 그 슬픔과 상실감에 조금 동안 움직일 수가 없다.
"어이, 김화랑······, 너······."
모든걸 지켜보던 이민석이 침묵을 깬다. 김화랑은 공허한 얼굴로 이민석을 본다. 모두가 놀랐다. 누구도 전까지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 그토록 조용히 울부짖는, 가엾은 소년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거기엔, 어느 성숙함이 있다. 기품이 있다. 엄청난 번뇌에서 헤어나온, 수행자의 얼굴이다. 그건 그 꼬마들이 겪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김화랑에게 진실된 경외심을 느낀다.
"············울고 있잖아?" 이민석이 말한다.
——————————————————김화랑은 울고 있다.
김화랑은 이어서 창문에 몸을 걸치더니, 앉은 상태로 선생에게 중지를 올려 세운다. 그 순간 내면의 악마와 일체감을, 영문을 모르겠는 친밀감을 느낀다.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다. 김화랑은 그대로 몸을 던져서, 바닥을 향해 떨궈진다. 그는 도중에 지면에 대한 묘한 신뢰감을 느낀다. 이후에 이 일로 그가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 어떤 만남을 가지고, 어떤 관계를 맺는지 그 장황한 서사시는 10년 후를 봐도 끝날 일이 없다. 김화랑이 죽으면 끝나겠지만, 그는 불사신이다. 나는 이렇게 김화랑의 첫 번째 이야기를 끝마친다.
2장 계속.
첫댓글 ??? 누구신가요???
밝히심이...
김화랑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네요. 이 글을 읽고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면 그사람의 악마가 나와서 응징당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습니다. 진짜 이 글을 읽고 너무나도 슬픈 화랑이의 마음을 이해하며 울면서 지나갑니다.
화랑아 그립다 ,,,
아니 너는.. 허무의사용자 루이즈???
수백년 이후까지 전해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톨스토이, 피카소,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처럼 세기에 한 획을 긋는 것들이 있다.그리고 <김화랑 연대기>가, 나-청춘의 한 가운데를 보네고 있는 피끓는 젊은 예술인- 에게 바로 그 마스터피스masterpiece였던 것이다. 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작품이 세상에 등장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세상이 뒤흔들렸다. 고작 몇 천자의 글자로 인해서. 단조롭고 일방적인 소통만 행해지던 장소에서 혜성과도 같이 등장한 한 편의 이야기-그것도 단지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는 모든 이들의 일상을 뒤집었다.그래, 그것은 거의 혁명과도 같이 작은 군중들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다.
순식간에 '김화랑 연대기'는 공간을 장악했다. 다른 것이 끼어들 틈조차 없이, 아주 순식간에. 그리고, 곧이어 작은 사회는 하나의 질문으로 가득찼다.
그 위대한 작품은 도대체 누가 썼는가?
주어진 것은 오직 몇 개의 단서뿐. 필명은 '김예슬'이며, 동시에 이야기의 주인공과 꽤 친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소한 글 속의 흔적들. 셀 수 없이 많은 추측들이 오고갔다.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 형성되기도 했으머, 동시에 그럴 듯한 가정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답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소문의 주인공이 직접 밝힌 것이다.
그렇게 궁금증이 해소된 젊은 비평가들은 뒤이어 수면 위로 올라온 날 것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다음 편은 언제 올라오는 것인가?
지루하고 고루한 일상 속에서 인간의 밑면-무의식-을 강하게 자극하는 소재를 마주친 자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던 것이었다.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욕구의 편린이 날카롭게 허기를 자극했다. 굶주린 돼지에게는 먹이를 준다. 그렇다면, 굶주린 비평가에게는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
이것이 내가 한 밤중 잠들기 직전에 일어나 키보드 앞에 앉은 이유이며, 동시에 하나의 혁명을 탄생시킨 당신에게 한 명의 비평가로서 경의敬意를 표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