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 조미숙
올 4월에 코로나를 앓았다. 격리 해지를 앞두고 보건소로 피시알(PCR) 검사를 받으러 다녀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7일 동안 좁은 방 안에 갇혀 누워만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나 보다. 하는 일도 없이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저녁 운동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쉬기 전까지 재미 붙여 하던 생활체조였다. 예전에 하던 곳이 아니라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기는 힘들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동작들이 있어 따라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그 순간은 모든 걸 잊게 만든다. 살이 빠졌다는 말에 힘을 얻어 더 열심히 한다. 무릎과 엉덩이 통증으로 팔짝팔짝 뛰는 것도, 왼쪽 어깨가 아파서 제대로 뻗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변 사람들이 “어휴 저 땀 좀 봐.”하면 열심히 한 흔적이라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제가 원래 땀이 많아요.”라며 흐뭇하게 웃는다.
생활체육교실은 4월에 시작하여 10월이면 끝난다. 야외이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지면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올해는 실내 수업을 한다고 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쉬었지만 겨울이면 회비를 내고 봄까지 해서 운동을 이어간단다. 한꺼번에 회비를 내야 해서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적은 돈으로 겨울에도 할 수 있으니 기꺼이 입금했다.
첫날 환한 실내에서 만나니 더 어색했다. 공원에선 앞자리에서 했는데 실내에선 맨 뒷자리로 갔다. 좁고 답답한 실내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기도 했고 환기가 잘 안 되는 앞보다 뒤에는 출입문이 있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동작이 틀려도 마음이 편했다. 가끔 얼굴을 마주 보며 하는 동작이 있는데 어색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활짝 웃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실내 운동이 더 힘들었다. 목포시 생활체육협회에서 강사료를 받고 하는 것보다 회원들에게 직접 돈을 받아서 그런가 싶게 심하게 운동을 시켰다. 살을 빼려면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고 몰아붙인다. 새로운 작품도 죄다 거친 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한 곡이 끝나면 벽을 잡고 잠시 숨을 고른다. 말랑말랑하던 배에 미세하게나마 근육이 만들어지는 것 같이 힘이 느껴진다. 건강한 몸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같이 일하는 동료끼리 버스를 빌려 단체 나들이를 갔는데 몇몇이 코로나에 걸렸다. 늘 붙어 다니는 언니도 확진 됐는데 그 와중에도 살아남았다고 강철이라는 말을 들었다. 땀 흘리며 운동한 덕분이 아닌가 싶었다.
오랫동안 거실에 방치해 두었던 퍼즐을 완성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인데 마지막 바탕은 미세한 차이점을 분간할 수가 없어 하루 하나 정도 채우거나 여러 날이 지나도록 쳐다보지도 않고 지내기도 했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눈이 빠지게 들여다 보다 우연하게도 하나를 메우니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그러다 또 막히자 이번에는 몇 개 안 남은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좌우로 돌려가며 대조해 맞췄다. 집에 퍼즐 액자가 몇 개 있는데 이번 것이 제일 오래 걸렸다.
글쓰기도 끝난다. 어느 해보다 많이 쓰긴 했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매년 고민이 되는 일이지만 어느덧 이 방을 떠나기 싫어 무엇에 홀리듯 다시 접수를 하고 만다. 다들 눈부시게 발전하고 책도 내는 일도 많은데 나만 그대로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아직까지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는 지적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며 그런 표현을 하나 그저 부럽다. 글 잘 쓰는 일이 그렇게 요원한 길인지 모르겠다. 빨간 글씨를 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음이 아프다.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들은 지 오래됐다. 천성이 게을러 가장 오래된 수강생이면서도 그 값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 한때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던 마음을 이제는 꽁꽁 숨겨 두고 싶다.
오전에 하던 유아 숲도 마무리 되었다. 내년에 또 입찰해서 사업을 따내야 일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는 숲 관련 수업도 모두 마쳤고 이젠 오후에 하는 교육청 일만 남았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곧 마무리될 것이다. 우리 같은 하루살이 직업은 동면기에 접어든다. 고용보험 받으며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작은 수입으로 버텨야 하는 계절이니만큼 삭풍에 몸이 시리는 기간이다.
동백꽃이 피었다. 한 겨울에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는 동박새가 유일한 친구이다. 나에게도 동박새가 되어줄 이가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눈 속에 핀 빨간 동백꽃은 예쁘지만 겨울은 추워서 싫다. 멀기만 한 봄을 벌써부터 기다린다.
첫댓글 정말 바쁘게 생활하시네요. 어느 분야에서나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돋보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앞 부분보다는 뒷 부분에 공감이 가는데요. 특히, 적은 수입으로 버텨야 하는 계절이라 삭풍에 몸이 시리다는 표현에서 마음이 읽혀지네요. 문우님의 얼굴 형상으로 보아 말년에 대박 운이 보여요.
하하! 말씀만으로도 부자가 된 것 같아 기분 좋네요.
글 잘 쓰는 사람, 맞습니다. 공감, 공감하고 갑니다.
아휴 아직 멀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해 마무리를 잘 하고 계시네요. 선생님도 입으로는 게으르다고 하시면서 좋아하는 일을 여러 가지 열심히 하시네요. 독자가 봤을 때 선생님 글 잘 써요. 재미있고 좋아요, 올 한 해 잘 사셨습니다.
격려 고맙습니다.
여럿이 하는 생활체육 교실 무척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생활이 가능한 도시의 삶을 늘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아득하네요.
꾸준히 하시기를 응원합니다. 마냥 부럽습니다.
조미숙 선생님 동박새 되어줄 친구 이곳에 많이 있잖아요? 글 쓰는 여자라고 말해도 되는데 뭘 꽁꽁 숨겨요? 그동안 쓴 그 모아서 23년에는 책 쓰기 도전해 보도록 하세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재목이잖아요.
조 박사님은 너무 겸손하시네요. 조 박사님 글 읽고 부러워하는 사람 많습니다. 저 포함해서요.
선생님 글은 읽으면 유괘하고 위트가 있습니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순천에도 동천이나 호수공원 주변에서 에어로빅 하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맨 앞 줄에서 용감하게 운동하는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어요.
여기서 만났군요.
동면의 시간이군요.
건강도 다지고, 새 계획도 수립하면서 알차게 보낼 게 눈에 보입니다.
'나 글 쓰는 여자야.' 당당한 그녀를 응원합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이 글을 쓰는데 연말이라 그런지 굉장히 우울했어요.
문우님들의 응원에 다시 힘을 내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