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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무왕릉비 (慶州 文武王陵碑)
소재지/출토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동부동 일대
연대
681년~2년(신문왕 1년~2년)
크기
상단부 : 높이 66㎝, 너비 40㎝ / 하단부: 최대높이 55cm, 너비 94cm
서체 및 재질
구양순 해서체
화강암
주제분류
통일신라(統一新羅)|문화>문화재>금석문>碑文|비문
집필자
김재홍
찬자 / 서자 / 각자
급찬 국학소경 김▨▨ / 대사 한눌유(韓訥儒) / 미상
(1) 발견 경위와 현황
정조 20년(1796)에 경주의 지역민이 2개의 파편을 발견하였고, 이를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홍양호(洪良浩, 1724~1802)가 자신의 문집 『이계집(耳溪集)』에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추사 김정희가 순조 17년(1817) 봄에 직접 경주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부근을 조사하여 2개의 비편 실물을 확인하였고, 청나라의 유희해(劉喜海)는 탁본을 입수하여 1832년에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수록하였다. 유희해는 탁본을 각각 제1~4석으로 호칭하여 4개의 비석 파편으로 파악하였지만 실제로는 2개 비편의 앞, 뒷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2개의 비석 실물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로 탁본만 전해졌다.
그러던 중에 1961년 5월 경주시 동부동의 주택에서 1796년에 발견되었던 비편 중 비신 하단부에 해당하는 비편 1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편은 2009년 9월 역시 동부동의 한 주택에서 재발견되면서 1796년에 발견된 두 개의 비편을 되찾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해동금석원』의 제1석과 제4석은 상단부 앞면과 뒷면에, 제2석과 제3석은 하단부 앞면과 뒷면에 해당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비석의 상단부 왼쪽 부분은 확인되지 않아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는 못하였다.
비석의 재질은 적갈색 화성암이다. 상단부 비편은 높이 66㎝, 너비 40㎝, 하단부는 최대높이 55㎝, 너비 94㎝이다. 문자는 가로 3.2㎝, 세로 3.3㎝로 구획된 네모칸 안에 지름 2cm 정도의 크기로 새겼다. 비문은 역사적인 사실을 위주로 기록한 신라 중고기의 비석과 달리 중국의 문장을 모방하고 미사어구를 나열하였다. 서체는 구양순(歐陽詢)의 해서체이며, 문장은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이다.
(2) 비문의 건립시기
본 비석의 건립연대는 문무왕이 훙거(薨去)한 681년 이후, 구체적으로는 681년이나 682년경으로 보는 편이 일반적이다. 비석의 탁본을 검토한 유희해는 신문왕 원년(681)으로 추정하여 처음으로 건립 연대를 추정하였다. 이어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비문에 보이는 ‘국학소경(國學少卿)’이라는 관직명과 『삼국사기』에 나오는 국학 설치 기사를 관련시켜 신문왕 2년(682) 6월 이후로 보았다. 그리고 김창호는 뒷면 22행의 ‘…입오일경진건비(卄五日景辰建碑)’란 구절에 주목하고, 여러 사료를 참조하여 건립 시기를 신문왕 2년(682) 7월 25일로 보았다.
(3) 성격
본 비석의 정확한 건립 지점은 분명치 않지만, 일반적으로 비편들이 발견된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세워졌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봉분을 쓰지 않고 화장하여 동해에 산골(散骨)하였다는 기사가 전하고 있어, 과연 본 비석을 '능비(陵碑)'로 정의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도 있다. 또한 죽은 이의 음덕을 기리고, 찬자와 서자가 기록되며, 명(銘)과 정간(井間) 등이 있는 점을 근거로 묘지(墓誌)로 보기도 한다.
「경주 문무왕릉비」는 비석이 파손된 채 발견되어 그 내용을 완전히 해독하기는 어렸다. 대체적으로 앞면에는 신라에 대한 찬미, 신라 왕실 김씨의 내력, 부왕인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문무왕의 사적, 그리고 그 업적인 백제를 평정한 사실 등을 적고 있다. 뒷면에는 문무왕이 내린 유언, 문무왕의 장례 의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명(碑銘)이 새겨져 있다.
내용 가운데 신라 왕실의 출자와 관련하여, 상단부 전면 5행의 “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秺侯祭天之胤, 傳七葉)”과 “15대조 성한왕(十五代祖星漢王)” 부분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투후는 한나라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던 흉노인(匈奴人) 김일제(金日磾)를 가리킨다. 김일제의 아버지 휴도왕(休屠王)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였으며, 그런 까닭에 무제로부터 김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김씨 왕실의 근원을 흉노인 김일제에서 찾고자 했던 당대 신라인의 관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의 시조로 비문에 기록된 ‘성한왕(星漢王)’은 문헌 사료에서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존재로, 그 실체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다.
[전면]
[01] … 국 신라 문무왕릉의 비이다. 급찬(及飱)註 001인 국학소경(國學少卿)註 002 김(金)▨▨가 임금의 교(敎)를 받들어 찬술하다.
[02] … 하늘과 짝하여 만물과 통하며, 땅을 나눠 주고 그 나라를 경영함에 덕을 쌓아 … 당대의 어려움을 구제하고, 신에 응하여 … 靈命을 …
[03] … 경진씨(鯨津氏)註 003를 파견하여 삼산(三山)註 004의 궐(闕)을 비추고, 동으로는 개오(開梧)의 지경을 막고, 남으로는 ▨계(▨桂)와 이웃하고, 〈북으로는〉 황룡(黃龍)을 맞아 주몽(朱蒙)을 태우고, … 백무(白武)를 이어 받아 …을 우러르며 …
[04] … 그 능한 바에 최선을 다하여 이름과 실제가 다 이루어지고, 덕과 지위가 겸하여 융성해진다. 〈그래서〉 땅은 팔방(八方) 먼 곳까지 걸쳐 있고,註 005 그 훈공은 삼한에 뛰어나, 그 넓고 높음을 다 일컬을 수가 없는 분이 우리 신라 …
[05]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火官)註 006의 후예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투후(秺侯)註 007의 후손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06] … 15대조 성한왕(星漢王)註 008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영혼이 선악(仙岳)에서 나와, …을 개창하고 다스리며, 옥란(玉欄)을 대하였다. 비로소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과 같고, 마치 석뉴(石紐)註 009를 보고 금수레에 앉아 … 하는 것 같았다. …
[07] … 대왕註 010은 생각하심이 깊고 멀었으며, 풍모가 뛰어났고, 도량은 바다와 하천과 같았으며 위엄은 우레와 같았다. … ▨은 바야흐로 자취를 거두고 봉화는 멎고 척후는 없어지니, 만 리의 맑은 기운은 부지런히 … 를 열었다. …
[08] … 간▨의 덕에 내외가 평화로워지고, 광대한 기풍에 원근이 편안하고 깨끗해지니, ▨공 성▨은 장래에 … 하고, 쌓이고 뭉친 순수함과 곧음은 후예들에게 넉넉함을 드리워 주었다. …
[09] … ▨▨사회(▨▨舍誨)는 이에 성철의 뛰어난 모습이라, 은혜로써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너그러움으로써 사물을 다스리니, … 한 자는 그 때를 알고, 덕을 이어받은 자는 모두 그 이웃을 알아보니, 그 명성이 한하(閒河)에까지 넘쳤다. …
[10] … ▨봉을 ▨하여 ▨간하고, 5백 년을 기약하여 큰 명을 내려주니, 머무르면 모두 … 함을 얻었고, … 비추는 것은 단부(丹府)에 거의 가까웠다. 의에 부합하고 성정이 흥하고, 깊은 정은 … 을 살펴 …
[11] … 바탕을 돕고, 정의 근원은 맑디맑아, 삼키어 받아들임은 금▨(襟▨)에 ▨하였다. … 하시는 말씀은 규범을 이루고, 용모와 행동은 가히 볼 만하였으며, 학문은 고금을 두루 통하였다. …
[12] … 시(詩)와 예(禮)의 가르침에 …, 주나라는 교재(橋梓)註 011의 ▨에 경의를 표하였다. … 당나라 태종문무성황제(太宗文武聖皇帝)註 012가 사▨(社▨)의 ▨에 응하여 …
[13] … 임금이 돌아가시고註 013 풍악은 멎었다. 재진(在辰) 이후에 …
[14] … 순 임금은 바다와 같이 덕을 내려도 절현(截懸)이 있었고, 요 임금은 해와 같이 밝게 비추어도 은▨(垠▨)이 없었다. …
[15] … 빛나고, 구열(九列)은 천부(天府)를 관장하여 …
[16] … 천사도 감통시켜 그 재앙을 그치게 하니, 편안하고 쉽게 건너 …
[17] …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어기고註 014 자주 이쪽저쪽으로 붙으려 하면서, 겉으로는 …을 믿는 척하니 …
[18] … 〈소정방을〉 웅진도행군대총관(熊津道行軍大總管)으로 삼고, 군왕을 …
[19] … 황산(黃山)에 군진을 펼치니,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어註 015 〈진군을〉 가로막고자 하였다. …
[20] … 적의 수도에 이르자 그 우두머리가 군문註 016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고,註 017 그 신하들도 …
[21] … 3년이었다. 용삭 원년(661년, 문무왕 즉위)에 이르러 …
[22] … 보배로 여기는 바는 오직 어진 사람이니, 선을 행함을 가장 즐거워하고, 인을 ▨함을 …
[23] … 조정과 백성이 모두 즐거워하니, 굳이 애써 행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
[24] … 진백(秦伯)의 터전을 다시 일으켰다. …
[25] … 교화가 북으로 읍루(挹婁)註 018에까지 접하니, 벌떼처럼 …
[26] … 군왕에게 조서를 내려, 사지절(使持節) … 으로 봉하였다. …
[27] … 군대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니, 깃발이 …
[28] … 꾀는 손을 뒤집는 일처럼 쉽게 나왔는데, 절묘하기가 …
[후면]
[01] … 환산(丸山)에 공적을 기록한 장수가 있어 …
[02] … 곧바로註 019 9주를 바르게 다스려 바로 잡고, 동서로 정벌하여 …
[03] … 궁 침실에서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는 56세였다. …
[04] …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래 부르고, 여우가 그 옆에 굴을 뚫을 것이니 …
[05] … 화장을 하라 하니, 그 달 초열흘에 화장하여 …
[06] … 천황대제(天皇大帝)註 020께서 …
[07] … 왕의 예절에 맞았다. 군왕은 도량이 …
[08] … 나라를 … 하는 방법에 〈부합하였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심은 팔정(八政)註 021의 ▨과 같았다. …
[09] … 돌아가시니, 참으로 백대의 현명한 왕이시요, 실로 천(千) …
[10] … 맑고 아름답기 선비 같으시고, 삼언(三言)을 빌지 않아도 준▨(駿▨)을 알았다. …
[11] … 못을 여니 호량(濠梁)註 022을 방불하였고, 비단과 돌을 펼쳐 …
[12] … 손님이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안개처럼 모여 드니, 이를 말하여 아침에 많고 …
[13] … 묘(昴)에 들어가서는 돌아감을 잊으시고, 곰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 태자 계(雞) …
[14] … 단청은 기린각(麒麟閣)註 023에 흡족하고, 서책은 운대(芸臺)註 024에서 닳고 헤어졌다.
[15] … 삼가 절을 드리고, 이만 그치며 명(銘)을 쓴다.
[16] … 천 갈래의 가지가 되어, 삼산(三山)에까지 뻗어 비치네. 아름답고 성한 덕은 멀리 …에 전해져 …
[17] … 진실로 용맹하시고 진실로 큰 덕이 있으시고, 재능이 많으셨네. 아랫사람을 생각하여 거머리마저 삼키시고,註 025 …
[18] … 아홉 번 정벌하고, 친히 삼군(三軍)을 통솔하시어 … 위엄과 은혜는 혁혁히 빛나, 저 아득히 먼 옥저(沃沮)와 예(穢)까지 찾아와 군역(軍役)을 청하였네. 잠동하던 …
[19] … 풍교(風敎)를 흠모하여, 단증(丹甑)註 026이 여러 번 나오고, 황▨(黃▨)이 하늘을 진호하였도다. … 적오(赤烏)註 027가 재앙을 나타내고, 황웅(黃熊)註 028이 우러름을 표시하니, 갑자기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홀연히 …
[20] …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 도는 귀하게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는 화장을 하니 … 경진(鯨津)에 뼛가루를 날리셨네. 대를 이은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효성과 우애가 …
[21] … 크나큰 이름, 하늘과 더불어 길고 땅과 더불어 오래리 …
[22] … 25일註 029에 비석을 세우다. 대사(大舍) 신(臣) 한눌유(韓訥儒)註 030가 임금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쓰다.
교감판독문
[前面]
[01] ×國新羅文武王陵之碑⎵⎵⎵及飱國學少卿臣金▨▨奉⎵敎撰×
[02] ×通三▨兵殊▨▨▨匡▨配天通物畵野經邦註 001積德 … 匡時濟難應神⎵⎵⎵⎵⎵靈命×
[03] ×派鯨津氏映三山之闕註 002東拒開梧之境南隣▨桂之 … 接黃龍駕朱蒙⎵⎵⎵承白武仰×
[04] ×問盡善其能名實兩濟德位兼隆地跨八夤勳超三 … 巍註 003蕩蕩不可得而稱者⎵⎵⎵⎵我新×
[05]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 枝載生英異秺註 004侯祭天之胤傳七葉以×
[06] ×焉⎵⎵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 … 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07] ×大王思術深長風姿英拔量同江海威若雷霆▨地 … 方卷跡停烽罷候萬里澄氣克勤開×
[08] ×簡▨之德內平外成光大之風邇安遠肅▨功盛 … 於將來疊粹凝貞垂裕於後裔⎵⎵×
[09] ×▨▨舍誨乃聖哲之奇容恩以憮人寬以御物 … 知其際承德者咸識其隣聲溢閒河×
[10] ×▨▨▨峯而▨幹契半千而誕命居得一以 … 照惟幾於丹府義符性興洞精鑒×
[11] ×恬▨輔質情源湛湛呑納▨於襟▨ … 握話言成範容止加觀學綜古×
[12] ×詩禮之訓姬室拜橋梓之 … 大唐太宗文武聖皇帝應鴻社×
[13] ×宮車晏駕遏密在辰以×
[14]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註 005燭無垠註 006×
[15] ×著▨▨▨而光九列掌天府以×
[16] ×感通天使息其眚蘋安然利涉×
[17] ×▨違隣好頻行首鼠之謀外信×
[18] ×熊津道行軍大總管以⎵君王×
[19] ×列陣黃山蝟聚鴟張欲申註 007距×
[20] ×至賊都元惡泥首轅門佐吏×
[21] ×三年而已至龍朔元年×
[22] ×所寶惟賢爲善最樂▨仁×
[23] ×朝野懽娛縱以無爲▨×
[24] ×貺更興秦伯之基德×
[25] ×之風北接挹婁蜂▨×
[26] ×詔君王使持節×
[27] ×軍落於天上旌×
[28] ×之謀出如反手巧×
[後面]
[01] ×丸山有紀功之將以×
[02] ×直九合一匡東征西×
[03] ×▨宮前寢時年五十六×
[04] ×牧哥其上狐兎穴其傍×
[05] ×燒葬卽以其月十日火×
[06] ×妣⎵⎵⎵天皇大帝×
[07] ×王禮也⎵君王局量×
[08] ×國之方勤恤同於八政×
[09] ×實歸乃百代之賢王寔千×
[10] ×淸徽如士不假三言識駿×
[11] ×而開沼髣髴濠梁延錦石以×
[12] ×之賓聆嘉聲而霧集爲是朝多註 008×
[13] ×卽入昴忘歸射熊莫返太子雞×
[14] ×丹靑洽於麟閣竹帛毁於芸臺×
[15] ×餘下拜之碣迺爲銘曰
[16] ×侍星精 … 域千枝延照三山表色盛德遙傳 ×
[17] ×道德像棲梧 … 允武允文多才多藝憂人註 009呑蛭尊 …
[18] ×九伐親命三軍 … ▨威恩赫奕茫茫沮穢聿來充役蠶 ×
[19] ×欽風丹甑屢出黃▨鎭空 … 雄赤烏呈灾黃熊表崇俄隨風燭忽 ×
[20] ×命凝眞貴道賊身欽味釋典葬以積薪 … 滅粉骨鯨津嗣王允恭因心孝友▨註 010 ×
[21] ×鴻名與天長兮地久×
[22] ×卄五日景辰建碑 … 大舍臣韓訥儒奉
표점문
[전면]
[01] … 國, 新羅文武王陵之碑. 及飱國學少卿臣金▨▨奉敎撰.
[02] … 通三▨兵殊▨▨▨匡▨, 配天通物, 畵野經邦, 積德 … 匡時濟難, 應神靈命 …
[03] … 派鯨津氏, 映三山之闕, 東拒開梧之境, 南隣▨桂之, … 接黃龍駕朱蒙, 承白武, 武仰 …
[04] … 問盡善其能, 名實兩濟, 德位兼隆, 地跨八夤, 勳超三 … 巍蕩蕩不可得而稱者, 我新 …
[05] … 君靈源自敻, 繼昌基於火官之后, 峻構方隆, 由是克 … 枝載生英異, 秺侯祭天之胤, 傳七葉以 …
[06] … 焉. 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 誕靈仙岳, 肇臨 … 以對玉欄, 始蔭祥林如, 觀石紐, 坐金輿而 …
[07] … 大王思術深長, 風姿英拔, 量同江海, 威若雷霆, ▨地 … 方卷跡, 停烽罷候, 萬里澄氣克勤, 開 …
[08] … 簡▨之德, 內平外成, 光大之風邇安遠肅, ▨功盛 … 於將來疊粹凝貞, 垂裕於後裔 …
[09] … ▨▨舍誨, 乃聖哲之奇容, 恩以憮人, 寬以御物 … 知其際承德者, 咸識其隣, 聲溢閒河 …
[10] … ▨▨▨峯而▨幹, 契半千而誕命, 居得一以 … 照惟幾於丹府, 義符性興, 洞精鑒 …
[11] … 恬▨輔, 質情源湛湛, 呑納▨於襟▨ … 握話言成範, 容止加觀, 學綜古 …
[12] … 詩禮之訓, 姬室拜橋梓之, … 大唐 太宗文武聖皇帝, 應鴻社 …
[13] … 宮車晏駕遏 密在辰以 …
[14] … 舜海而霑有截懸, 堯景以燭無垠 …
[15] … 著▨▨▨而光, 九列掌天府以 …
[16] … 感通天使, 息其眚蘋, 安然利涉 …
[17] … ▨違隣好, 頻行首鼠之謀, 外信 …
[18] … 熊津道行軍大總管以君王 …
[19] … 列陣黃山, 蝟聚鴟張欲申距 …
[20] … 至賊都, 元惡泥首轅門, 佐吏 …
[21] … 三年, 而已至龍朔元年 …
[22] … 所寶惟賢, 爲善最樂, ▨仁 …
[23] … 朝野懽娛, 縱以無爲▨ …
[24] … 貺更興秦伯之基, 德 …
[25] … 之風, 北接挹婁, 蜂▨ …
[26] … 詔君王, 使持節 …
[27] … 軍落於天上, 旌 …
[28] … 之謀, 出如反手, 巧 …
[후면]
[01] … 丸山有紀功之將, 以 …
[02] … 直九合一匡, 東征西 …
[03] … ▨宮前寢, 時年五十六 …
[04] … 牧哥其上, 狐兎穴其傍 …
[05] … 燒葬, 卽以其月十日火 …
[06] … 妣天皇大帝 …
[07] … 王禮也. 君王局量 …
[08] … 國之方勤, 恤同於八政 …
[09] … 實歸, 乃百代之賢王, 寔千
[10] … 淸徽如士, 不假三言識駿 …
[11] … 而開沼, 髣髴濠梁, 延錦石以 …
[12] … 之賓聆嘉聲, 而霧集, 爲是朝多 …
[13] … 卽入昴, 忘歸, 射熊莫返, 太子雞 …
[14] … 丹靑洽於麟閣, 竹帛毁於芸臺
[15] … 餘下拜之碣, 迺爲銘曰
[16] … 侍星精 … 域千枝, 延照三山, 表色盛德遙傳 …
[17] … 道德像棲梧 … 允武允文, 多才多藝. 憂人呑蛭尊 …
[18] … 九伐, 親命三軍 … ▨威恩赫奕, 茫茫沮穢, 聿來充役, 蠶 …
[19] … 欽風, 丹甑屢出, 黃▨鎭空, … 雄赤烏呈灾, 黃熊表崇, 俄隨風燭, 忽 …
[20] … 命凝眞, 貴道賊身, 欽味釋典, 葬以積薪, … 滅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
[21] … 鴻名, 與天長兮, 地久 …
[22] … 卄五日, 景辰, 建碑. 大舍臣韓訥儒奉.
註) 001
급찬(及飱) : 신라 17관등 가운데 제9관등이며, 급별찬(級伐飡), 급간(級干), 급복간(及伏干) 등으로 표기하였다.바로가기
註) 002
국학소경(國學少卿) : 국학에는 장관급인 경(卿) 1인을 두었는데, 이 ‘소경’은 그 아래에 있었던 관직으로 추정된다..바로가기
註) 003
경진씨(鯨津氏) : ‘경진(鯨津)’은 '고래나루', 즉 바다에 임한 큰 나루라는 뜻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경진씨’는 의미를 알 수 없다.바로가기
註) 004
삼산(三山) : 중국 전설 상의 삼신상, 즉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 보이는 대사(大祀)의 대상이 되는 나력(奈歷), 골화(骨火), 혈례(穴禮) 등 삼산(三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바로가기
註) 005
팔방(八方) 먼 곳까지 걸쳐 있고 : 원문 ‘八夤’은 팔방(八方)의 끝을 의미한다.바로가기
註) 006
화관(火官) : 화정(火正) 또는 축융(祝融)이라고도 하며, 대화성(大火星)에 제사를 지내고 불을 담당하는 관리이다.바로가기
註) 007
투후(秺侯) : 중국 한나라의 무제에게 총애를 받았던 김일제(金日磾, B.C. 134~86)를 말한다. 흉노(匈奴)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였지만 곽거병(霍去病)이 흉노를 토벌할 때에 포로가 되어 귀순하였다. 그 뒤에 한나라에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망하라(莽何羅)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 무제를 구한 공으로 투후에 봉해졌다. 그는 무제로부터 부왕인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고사에 따라 김씨(金氏) 성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바로가기
註) 008
성한왕(星漢王) : 신라의 시조로 등장하는 인물로 김알지(金閼智), 알지의 아들인 세한(勢漢), 알지의 7세손으로 김씨 중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으로 보는 견해,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등 견해가 다양하다. 그 해석에 따라 신라 왕실의 근원과 계통이 달라진다.바로가기
註) 009
석뉴(石紐) : 중국 쓰촨성[四川省] 원촨현[汶川县] 서북쪽에 있는 하나라를 세운 우왕(禹王)의 탄생지이다. 여기서는 임금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바로가기
註) 010
대왕 : 문무왕을 지칭하는 듯하며, 태종무열왕으로 보기도 한다.바로가기
註) 011
교재(橋梓) : 부자지간을 의미한다.바로가기
註) 012
태종문무성황제(太宗文武聖皇帝) :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시호이며, 674년~749년까지 사용하였다.바로가기
註) 013
임금이 돌아가시고 : 원문 “宮車晏駕”는 일반적으로 천자가 돌아가신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당 태종이 승하한 것을 가리킨다.바로가기
註) 014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어기고 : 백제 의자왕이 처음에 신라의 국경을 자주 침략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바로가기
註) 015
황산(黃山)에 군진을 펼치니,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어 : 원문은 “列陣黃山 蝟聚鴟張”으로 황산벌에서 김유신의 신라군과 계백의 백제군이 전투하는 장면을 표현하였다.바로가기
註) 016
군문 : 원문의 ‘원문(轅門)’은 군문을 의미하며, 진영의 문이라는 뜻이다.바로가기
註) 017
그 우두머리가 군문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고 : 원문 “元惡泥首轅門”은 적의 우두머리가 군문에서 머리를 더럽혔다는 뜻으로, 백제의 의자왕이 항복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바로가기
註) 018
읍루(挹婁) : 『삼국지』 등에서 읍루로 불리는 종족은 부여나 옥저의 북쪽에 있었다. 선진(先秦)시대에는 숙신(肅愼)으로, 남복조시대에는 물길(勿吉)로, 수당시대에는 말갈(靺鞨)로 불렸다. 후에 여진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바로가기
註) 019
이하의 내용은 『삼국사기』에 실린 문무왕의 유조(遺詔)와 관련 있다.바로가기
註) 020
천황대제(天皇大帝) : 당 고종(재위 649~683년)이 674년(상원上元 원년)에 황제의 칭호를 천황(天皇)으로 고친 사실로 미루어볼 때, 고종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천황대제는 자미궁에 속한 별의 이름이기도 하다.바로가기
註) 021
팔정(八政) : 중국 하나라 우왕의 홍범구주(洪範九疇)의 하나이며,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8가지 정사를 지칭한다.바로가기
註) 022
호량(濠梁) :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펑양현[鳳陽縣] 동북쪽의 호수에 있던 다리 이름이며, 일반적으로 못의 제방을 말한다. 여기서는 문무왕 14년(674) 2월에 수축한 월지(안압지)를 가리키는 듯하다.바로가기
註) 023
기린각(麒麟閣) : 중국 한나라 무제(武帝)가 상스러운 동물인 기린을 얻어 세운 누각이며, 공신 11인의 상을 그려서 건물 안에 걸었다 한다.바로가기
註) 024
운대(芸臺) : 중국 한나라의 비서감(秘書監)이며, ‘운서(芸暑)’, ‘운각(芸閣)’ 등으로 불렸다.바로가기
註) 025
거머리마저 삼키시고 : 원문은 탄‘질(呑蛭)’로,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한저(寒葅)를 먹을 때 그 속에서 지렁이가 발견하었으나 요리사가 벌을 받을 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삼켰다는 고사를 말한다. 이는 왕의 신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고사이다.바로가기
註) 026
단증(丹甑) : 단증: 풍년에 나타나는 성스러운 물건이다.바로가기
註) 027
적오(赤烏) : 제후들이 면복(冕服)에 신는 붉은 신발이다.바로가기
註) 028
황웅(黃熊) :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아버지인 계(啓)의 영혼이 변화한 것이며, 여기에 제사를 지내면 흉한 것이 길한 것으로 전환된다고 한다.바로가기
註) 029
25일 : 본 비의 건립 시기로 추정되는 신문왕 2년(682) 7월 25일이다.바로가기
註) 030
한눌유(韓訥儒) : 통일신라시대 금석문에서 한씨(韓氏)가 처음 나타난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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