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비안면 자락길 292 해망산 중턱에 위치한 석불사. 자연 동굴 안에 부처님을 모신 절집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 조계사 말사.
1971년에 창건된 석불사(石佛寺)는 대개의 사찰 법당과 다른 모습의 석굴법당(법당굴) 안에 부처님을 봉안하고 있는 특별한 절집이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동굴 주변에는 두 개의 동굴이 더 있어, 모두 3개의 자연 석굴이 조성되어 있다는데, 석굴법당, 산신각(승당굴) 이외에 한 개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왔다.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석불사는 비구니 사찰
석불사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래에 세워졌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있다
산신각과 석굴법당.
승당굴은 산신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과거에는 디딜방앗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나한굴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굴 앞에는 2층의 현대식 요사채가 있으며, 3층 석탑과 석등이 조성되어 있다.
산신각에는 왼손에 금륜(金輪)을 든 치성광(熾盛光)여래(좌)와 호랑이를 탄 산신(우)이 봉안되어 있다. 원래 칠성신앙은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별이 지배한다는 도교의 믿음에서 유래한 신으로 민간에 널리 신앙되었던 토속신이다. 중국에서 형성된 다음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명 장수신으로 불교에 수용되었다. 칠성각은 조선중기 이후에 민간에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 중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북극성이다. 바로 우리가 말하는 치성광이란 북극성을 가르키며, 칠여래의 화현인 칠원성군(칠성)이란 북두칠성을 가르킨다. 특히 도교에서는 북극성을 하늘의 상제로서 자미대제라 하여 모신다. 이러한 자미대제가는 옥황상제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에 들어와서 치성광여래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전각이다. 실제 알고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6호 비안면 자락동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는 석굴법당은 약 40여 평에 달하는 규모로 가장 크다. 자연 동굴 입구에는 목조건물을 세워 벽을 만들어 화강암으로 마무리하였고, 아치형의 출입구 위에 “石窟法堂(석굴법당)”이라 이름을 새겨놓았다.
석조여래좌상이 앉아 있는 장방형의 연화대좌는 3개의 안상(眼象)을 새겼고, 그 윗면에는 연꽃을 아래로 엎어 놓은 모양인 복련(覆蓮)을 표현하였으며, 복련 위에 한 단의 고임을 각출하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하였다.
어깨는 좁아서 움추린 듯하며, 무릎은 높으면서 폭이 좁고, 허리가 길게 표현되어 불안정한 자세를 보여 준다.(부조란 형상이나 무늬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긴 것을 말하며, 돌출된 정도에 따라 고부조, 반부조, 저부조로 나뉜다.)
석불의 발은 옷 속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과 왼쪽 무릎 일부가 손상된 것을 석회로 보수한 상태지만, 그 외에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각이 뚜렷하다. 좌대를 포함한 총 높이는 150㎝, 불상의 높이는 124㎝, 불두 높이는 36㎝이다.
손 모양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을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의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을 결하고 있으나, 저부조(低浮彫)로 느슨하게 새겨져 있어 전체적으로 긴장감과 탄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법의는 양 어깨를 덮으며 수직으로 내려온 통견(通肩)으로 옷깃이 하복부에서 U자형으로 주름을 지으면서 흘러내려 양 무릎을 덮고 있다. 어깨를 감싸며 양팔로 흘러내린 옷 주름은 같은 간격의 주름선을 이루며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가슴 중앙에는 군의(裙衣)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 부분의 훼손으로 상호는 불분명하나 대체적인 얼굴형은 길쭉하면서도 풍만한 장방형을 이룬다. 머리카락은 굵은 소라 모양을 붙여 놓은 듯 나발이 큼직하고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인 육계가 두툼하고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귀는 길게 늘어져 두툼한 귓불이 어깨에 닿는다.
전반적으로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어깨는 동그스름하게 움츠려져 있으며, 무릎은 높이가 높아 균형감이 떨어지는 등 불신과 대좌의 형태 등을 살펴볼 때, 고려시대 초기 불상으로 판단되어, 고려시대 불교문화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석굴법당에 석조여래좌상과 함께 모셔져 있는 석조지장보살입상. 지장보살은 부처님 입멸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일체중생을 제도하도록 부촉(咐囑)받은 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때 진표율사에 의해서 지장보살이 신앙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이르러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석굴법당에 모신 석조여래좌상 뒤쪽으로 펼쳐진 자연 동굴.-석굴법당 대한불교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역임하신 혜암 스님의 필적이다. 혜암 스님은 출가 이후 줄곧 장좌불와와 참선정진을 하셨고, 하루 한끼의 공양을 하시며, 초인적인 수행력을 보여주었던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