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4: 10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미 4: 10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찌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
그러나 그들은 고통 중에도 소망이 있다. 이스라엘 나라의 고통은 여인의 해산 고통과 같다.
산모는 출산 직전에 큰 고통을 겪지만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기다리던 아기를 볼 때 위로를 얻는다.
미가 당시엔 바벨론은 약한 나라였고 앗수르가 강국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생각이라면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가는 이사야와 같이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한다.
* 사 39: 1-6 - 1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2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 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이르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하니라. 4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창고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보물이 하나도 없나이다. 하니라. 5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이 어찌 사람의 생각이겠는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지만 구원을 얻게 된다.
여기서의 구원은 탈취물을 얻는 것 같이 순간적으로 얻는 것을 말하는데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뜻밖에 한순간에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
"거기서"(샴)란 바벨론의 포로지, 거기엔 왕도, 모사도, 자녀도, 가족도 없고, 성전도, 제사도 없고 유다를 보호할 성곽도 없는 허허벌판, 인간적으론 절망밖에 없는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유다의 미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호세아 선지자는 "거기서" 비로서 포도원을 주고, "거기서"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리라 했다.
* 호 2: 14-15 -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거기서" 하나님은 그들의 성전이 되시며 "거기서" 그들은 새 언약의 자녀가 된다.
* 렘 31: 32-34 -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와 같이,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는 얼마 후 메시아를 볼 것이다.
그들의 멸망은 절망적이지만, 메시아 곧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며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1) 딸
하나님이 사람에 대하여 부르는 호칭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표현이다.
(2) 해산
여자가 겪게 되는 고난 가운데 가장 참혹한 고통을 의미한다.
2]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미가 선지자는 본 구절에서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한 후에야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포로가 된 과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성읍에서 나가서'이다.
'나가서'는 이스라엘 성읍이 원수들의 손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뜻한다.
둘째는 '들에 거하며'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원수들의 포로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셋째는 '바벨론까지 이르러'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벨론'이다.
혹자는 미가가 예언할 당시에는 앗수르의 위협이 있었을 뿐이며 바벨론은 단지 앗수르의 속국에 불과했기 때문에 '바벨론'이란 언급은 후대의 삽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석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 바벨론은 하나님이 없는 세계 권력의 중심지이다(Lange).
바벨론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적대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이방 국가 전체를 뜻한다.
* 창 10: 10 -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 창 11: 4-9 -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킨 역사적 바벨론 국가이다(Von Orelli).
더욱이 다음에 나타난 '원수들'과 '많은 이방'(11절)이 모두 복수라는 사실은 본 절의 바벨론이 역사적인 바벨론 국가일 가능성을 훨씬 증폭시켜 준다(McComiskey).
(1) 바벨론까지 이르러
'바벨론까지 이르러'는 당시 앗수르의 속국에 불과했던 바벨론이 강대해져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선포한 미가의 예언적 계시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국가의 권력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 당하며 포로 생활을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 거기서
10절에 ‘거기서’(2번)라는 말은 ‘그 절망의 땅 바벨론에서’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읍에서 쫓겨나가서 들판에 거했고 또 먼 바벨론까지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구원의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구원의 능력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3]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1) 원수들의 손
'원수들의 손'은 앞서 언급된 '바벨론'을 가리킨다.
미가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속량'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2) 속량(贖良)
'속량'은 팔았던 것을 값을 주고 다시 사는 것을 뜻한다(Lange).
* 시 78: 55 -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이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 생활이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지 않는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신다.
백성들이 연약하여지고 비참해져서 다시 하나님을 찾을 때 구원하시고 강대한 나라로 만드신다(6, 7절).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가 좋다는 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닫힌 문틈으로 달빛이 흘러들 정도의 좋은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가깝다는 건 언제 볼 수 있으려나 하고 목 빼고 기다릴 정도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관계라고 하더라도 볼 수 있고 알 수 있어
상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 하는 게 필요합니다.
끝으로 날씨가 많이 춥네요. 건강 관리 잘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