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고두현의 아침 시편』2024.01.26.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
고래의 꿈 / 송찬호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한다 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 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 봐, 화분에서 분수가 벌써 이만큼 자랐는걸…… 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 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겠다 저 아래 물밑을 쏜살같이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해협을 달려봐야겠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오랜 꿈이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고 했죠? 시인은 작은 화분 하나를 키우며 심해의 고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래는 대양의 커다란 꿈, 즉 희망을 가리키지요. 사람들이 고래는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희망의 이야기에 주파수를 맞춥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고래의 이야기를 그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는 밤마다 자신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하며 길고 아름다운 고래의 허밍에 귀를 기울이지요. 그러면서 희망을 위해 5마력의 동력을 배에 더 얹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어린 고래, 곧 희망을 꿈꾸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을 계속 꾸면서 말이죠.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의 모습과 고래가 등에서 뿜어내는 물줄기가 닮았다는 대목도 재미있습니다. 화분에서 물이 뿜어져 오르면 오를수록 시인의 방은 바다가 되지요. 그때 화분은 고래방송국의 안테나입니다. 심해에 잠긴 시인은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면서 그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방송이 들리지 않을 때는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적극적인 희망을 노래하지요. 이 시를 영국 시인 존 메이스필드의 ‘바다를 향한 열정(Sea Fever)’과 함께 읽으면 더 좋겠습니다. 동서양의 시적 감흥이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하면서 말입니다. ‘바다를 향한 열정’의 한 부분을 여기에 옮깁니다. 나는 다시 바다로 나가야만 하리, 저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내가 원하는 것은 커다란 배 한 척과 그 배를 인도할 별 하나뿐, 그리고 파도를 차는 키와 바람 소리 펄럭이는 흰 돛, 바다 위의 뽀얀 안개와 먼동 트는 새벽뿐.
〈고두현 /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난 고양이로소이다 - 예스24
‘만년필’의 시인 송찬호 시인의 두 번째 신작 디카시집 『난 고양이로소이다』가 도서출판 작가의 한국디카시 대표시선 9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59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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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디카시집 〈난 고양이로소이다〉 작가 | 2023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고두현 기자, 문화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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