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
눈이 내린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를 알 수 있고,
일이 어려워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 허당록
일전에 온 가족이 스스로 이 세상을 하직했다. 30대 부부, 2살, 4살, 아기가 함께 숨을 거두었다. 남편이 실직을 당했고, 동시에 부인도 실직이 되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다가 이들에게 7천만 원의 빚이 있었다고 한다. 빚 때문에 당사자들이 헤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동반자살을 한 것이다. 태어난 지 몇 년도 안 된 아기들은 무슨 죄로 죽어야 하나?!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이 앞선다. 또한 ‘오죽했으면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어야 했나?’라고 동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게 보인다. 부부가 아직 젊으니까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 빚을 갚을 수 있는데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또한 빚을 탕감할 수 있는 장치도 찾아보면 있었을 것이다. 우선 자신들보다 ‘자식들을 위해 한번쯤 사회에 손을 뻗어보는 노력을 왜 하지 않았는가?’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길 떠나는 주인이 세 명의 하인들에게 똑같이 노잣돈을 주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똑같이 오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하인들이 주인을 찾아왔다. (편의상 번호를 붙인다. ① 하인은 그 돈을 몇 배로 불렸고, ② 하인은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실패해 오히려 빚을 졌으며, ③ 하인은 그 돈을 땅에 파묻었다가 다시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주인이 ①② 두 사람에게는 칭찬을 해주고, ③하인에게는 ‘게으르고 바보같은 사람’이라며 꾸짖었다. 곧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는 삶이 인생에서 가장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어느 누구도 일으켜 주지 않는다.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라도 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된장이 숙성되기 위해서는 옆 가장자리에 곰팡이가 생기고 큼큼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 고통과 역경의 경계들이 있어야 된장이 잘 발효된다.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에게는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사람과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건강상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왕후장상일지라도 고난은 다 있는 법이다. 설령 자신에게 발생하지 않으면 자식에게 생길 수 있고, 부모에게서 발생할 수도 있다.
그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은 언제 일어난다고 예고하지 않는다.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경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한다. 힘든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극단의 선택을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불교에서는 이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한다. 한문으로 보면, ‘감인세계’라는 뜻인데,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 그 푸르름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여름의 천둥과 겨울의 눈보라를 견디었기 때문이다. 그런 역경의 시간과 고난의 경계를 감내했기 때문에 늘 푸르게 자신만의 고고함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괴로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참고 견디며, 개척하려는 정신으로 극복할 때 비로소 인간의 참된 가치가 드러난다.
옛 사람들은 “고통과 괴로움이 그대를 옥으로 만든다.”라고하면서 역경계를 잘 견뎌내라고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빈부와 귀천을 떠나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 그대만이 겪는 고통이 절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비바람에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출처 : 정운 스님 / 살다보면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