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1~4 / 죄와 용서를 말씀하신 예수님
(눅 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눅 17: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눅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상처를 받지 말고 실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실족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실족은 발을 헛디디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받고 불신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만약에 실족하였으면 책망하고 책망을 받으면 회개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회개한 사람은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 실족시키는 죄는 매우 큽니다(1~2).
우리가 살아갈 때 상처 주고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실족의 어원은 스캔들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실족케 하는 것은 상처를 주어 불신에 빠뜨려 하나님을 떠나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죄를 짓게 할 수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작은 자를 실족케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실족케 한 그 사람을 연자 맷돌에 매어서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당시 이것은 수리아의 사형법으로 실족시키는 죄는 사형을 시켜야 할 정도로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뜨거운 불이 끓는 지옥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우상의 제물인 고기를 먹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실족시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양들을 실족케 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합니다(3).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 실족시키는 일들이 없을 수 없습니다. 부모나 지도자나 선배들이 본을 보이지 못하면 사람들이 따라서 죄를 짓다가 실족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들 간에 문제가 있어도 실족합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죄에 대해서 심하게 경고하였습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 손 발을 자르고 눈을 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하여 상대방을 무시하고 인격에 상처를 주면 실족합니다. 믿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 없는 데서 타인을 험담해서도 안 됩니다. 부부가 싸우면 자녀들이 실족합니다.
또 교회가 싸워서 상처받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둘째, 물질적 탐욕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들끼리 돈 문제가 깨끗하지 못해서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가능한 한 돈거래를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꼭 필요할 때는 그냥 주는 맘으로 꾸어주어야 합니다. 꾼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갚아야 합니다. 교회에 물질 문제로 실족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교만과 음란과 물질 문제의 죄를 짓지 않으려면 성숙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하고 거룩해야 하고 물질적인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해야 합니다(4).
만약 성도가 실족하여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책망(경고)해야 합니다. 실족시킨 사람도 책망(경고)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죄를 범하면 죄를 책망해야 합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다만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책망해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책망해야 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나 다 그런 잘못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너에게 실망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너만 할 때 너보다 더 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책망하고 다시 그렇게 하지 말도록 해야지, 정죄하고 판단하고 죽이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정죄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사람을 책망하기 전에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죄를 지었을 때 18년을 기도하였습니다. 한번은 회개한다고 하고 나서 한 시간 전에 도망을 갔습니다. 암부르스 주교가 눈물로 기도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다시 기도하였습니다. 모니카의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어거스틴이 중세기 천년에 영향을 미치는 성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둘째, 책망을 받은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죄는 책망을 통해서 발견되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실족을 시킨 사람도 회개해야 하고 실족을 당한 사람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회개해야 할까요?
하루에 일곱 번씩이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은 회개하고도 무한히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하루에 일곱 번씩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아십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얼마든지 용서해 주십니다.
셋째, 회개한 사람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회개하면 회개한 사람이 죄사함의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과거를 잊고 다시 그 일을 거론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고 그 사람과 관계성이 회복됩니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무한정 용서를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신앙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입니다.
용서해야 나도 자유롭고 그 사람도 자유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와 용서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돈 교만 음란 문제로 실족시키지 말고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고 용서받는 일을 반복할 때 우리는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가운데 성숙하여 상처를 주지도 않고 상처를 받지도 않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