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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심판 (The Tokyo Trial, 2006) | |
중국 | 드라마 | 111 분 | 개봉 2007.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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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없었던... 그래서 우리는 모르고 있던 역사 1946년 <동경심판>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투항 선포로 전쟁이 종결되고, 미국, 중국, 영국을 비롯한 11개국을 대표하는 11명의 법관이 동경에 모여 패전국 일본의 A급 전범 28명에 대한 전세계의 심판을 벌인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열거할 수 없이 수많은 대량 학살, 강간, 방화, 강탈 등의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일본이 숨겨왔던 역사의 순간들이 <동경심판>을 통해 공개되면서 전세계는 분노한다. 그러나 역사의 순간에 한국은 없었다. 당시 열강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한국은 11명의 법관에 포함되지 못하고 설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던 것. 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그 어떤 나라보다 큰 피해 당사국임에도 당시의 처참했던 기억과 기록들은 일본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전세계를 분노하게 만든 일본의 죄행에 대한 심판, <동경심판>을 통해 우리가 모르고 있던 역사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대국 일본의 감춰진 역사를 고발한다! 세계 최고의 예의와 매너를 가진 나라이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 대국 일본. 일본은 고속 경제 성장과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 양식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강국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현재까지도 전범들이 묻혀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왜곡 교과서 등을 통해서 당시의 역사를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동경심판>은 당시 피해국들을 대변하는 세계의 목소리를 통해서 현재의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사라진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 최대 피해국임에도 동경심판의 법정 속에서 일본을 심판할 기회조차 없었던 우리에게 <동경심판>은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할 것이다. 중국 대륙을 사로잡은 <동경심판>의 흥행 신화! <동경심판>은 중국 전역에서 "중국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개봉 일주일 만에 천만 위안(한화 약 12억원)이 넘는 놀라운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중국 대륙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오랜 시간 동안 역사 속에 묻혀졌던 일본의 극악한 만행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당시 처절한 역사의 피해자였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당시 사형당한 일본 전범들이 묻혀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 문제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일본 국회의원 10명중 6명이 당시 판결은 부당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역사상 최대의 국제 심판, <동경심판>을 통해서 관객들은 직접 일본을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난징 대학살! 피로 얼룩진 도살장의 감춰진 진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만행 중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약 6주 동안 일본군이 중국 난징 지역에서 벌인 사상 최대의 무차별 대학살이다. 1937년 12월 13일,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군과 민간인을 상대로 6주에 걸친 잔혹한 살육행위를 시작했다. 쯔진산(紫金山)과 양쯔강(揚子江)으로 막히고, 중국 정부마저 포기해 버린 난징의 시민들은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 만명의 중국인들은 기관총 세례를 받거나 목이 베인 후 강에 던져졌고, 산채로 태워졌다. 또 가축처럼 묶인 채 일본군 총검술의 연습물이 되고, 100명 목 베기 경쟁 중에 희생됐다. 여성은 노소를 막론하고 강간 후 무참하게 죽임 당했다. 40여일간 인구의 절반이 넘는 30여만이 학살당한 난징은 말 그대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도살'장이었다. 살아있는 지옥이라 불리는 역사상 최대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은 전세계 사람들을 분노케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일본은 기억하기를 거부하며 그 진실과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 감춰진 역사이다. 과연 일본은 당시 무슨 짓을 한 것이며 그에 대한 응당한 대가는 치뤄진 것인가. <동경심판>은 이에 대한 관객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을 심판한 11명의 국제 법관 중 한 명의 중국인... 끔찍한 대학살에서 국민 30만 명을 잃은 그의 떨리는 목소리! '극동 국제 군사 법정 헌법'규정에 따라 각국에서 임명한 11명의 법관 중에는 당시 최대의 피해국인 중국측 법관 메이가 있었다. 24살에 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미국 유학과 유럽 여행을 통해 전세계 법률계에서 정통한 이론과 설득력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고국 중국으로 돌아온 후 10년간 법학 및 정치학 개론을 강의하였다. 42살이라는 갓 중년에 들어선 나이에 전세계 국제 심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극동 국제 군사 법관에 임명된 그는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대표해서 일본을 심판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난징 대학살에서 최소 30만명 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국민을 처참하게 잃고 양쯔강으로 버려진 시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아픔을 지닌 메이는 법관으로서의 냉정함과 피끓는 분노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10개국의 법관들 앞에서 일본 전범들의 극악한 범죄에 대한 사형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전세계를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Behind the scene 전세계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수치들 군 위안부 여성들, 하루 평균 10명의 일본군 상대 일본은 전쟁 기간 동안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점령 국가의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해 군 위안부를 만들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군 위안부 여성들을 동원하였다. 적게는 5만에서 30만 정도로 추정되는 군 위안부 여성들은 위안소에 수용되어 삼엄한 감시 속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평균 10명 이상의 일본군을 상대해야만 했고, 군인들에게 맞거나 가혹한 행위를 당해도 탈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100인의 목 베기 경쟁'을 벌인 잔인한 일본군 장교들 사형 선고 1937년 난징에서는 일본군 장교 무카이 토시아키와 노다 타케시가 중국인을 상대로 전대미문의 살인게임을 진행하였다. 이른바 '100인 목 베기 경쟁'으로 당시 일본의 신문들은 '무카이 106, 노다 105'라는 제목으로 이 야만적인 사건을 자랑스럽게 다루었는데, 종전 후 이 기사들이 증거로 작용해 두 병사는 1948년 중국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했다. 731부대의 극악한 생체 실험 중국 하얼빈에 있던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인 731 부대는 살아있는 사람을 '마루타(통나무)'라는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해 악명을 떨쳤다. 1936년에서 1945년 여름까지 전쟁포로 및 기타 구속된 사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실험과 약물실험 등을 자행했고, 1940년 이후 해마다 600명의 마루타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되어 최소한 3,000여 명의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난징 대학살 인명 피해 수치 300,000명 이상 집계, 지상 최대의 홀로코스트! 1937년 12월 중국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6주 동안 무고한 주민과 저항 능력이 없는 중국 군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일삼았다.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무차별 사격, 생매장 또는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는 등 그 수단의 잔인함과 야만적인 행위는 세계인들을 분노케 하였다. 한편 난징 대학살로 희생된 시체의 수는 300,000구 이상으로 오늘날 제주시의 총 인구수와 같은 수치이고, 이때 흘린 피의 양은 서울 평균 1인 물 소비량(1인 500ml 소비)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악무도한 죄행 일삼았던 난징 대학살 일화에 모두가 할말 잃어... 동경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죄행과 관련된 일화들이 하나 둘 밝혀졌다. 1937년 12월 난징으로 진군하던 일본군들 중 10 여 명의 무리가 중국인 여성 1명을 강간했다. 그러던 중 중국인 스님들과 마주친 일본군들은 중국인 스님들을 총, 칼로 위협하며 중국인 여자를 강간하도록 강제로 시켰고,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자 스님들의 생식기를 절단하는 충격적인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방대한 양의 자료 조사 작업, 참혹한 역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 1946년 5월 3일부터 1948년 11월 12일까지 약 2년 6개월 동안 지속된 동경심판은 그 기간과 방대한 양의 자료만으로도 철저한 고증이 반드시 필요했다. 고증을 위해 수집된 자료를 보면 동경심판 양측에 제공된 증인의 수만 1194명에 달하고, 그 중 419명이 법정에 출두하여 직접 증언하였으며, 총 818회 개정하는 동안 일본의 죄행에 대한 판결문은 총 1200페이지에 달한다. 또한 검사 측과 변호사 측에서 총 4336건의 증거를 제시하였고, 법정 기록은 48000페이지, 중국 재판관이 쓴 법정 판결문은 총 10만여 구, 그리고 이 모든 재판과정에 총 750만 달러의 자금이 소요되는 등 충격적인 관련 수치들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제작진은 전범 일본에 대한 전세계 관객들의 객관적인 심판을 위해서 오랜 기간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당시의 재판을 완벽하게 재연하였다. 실제 역사 속 인물의 모습, 행동 약식, 의상까지 스크린에 그대로! 제작진은 무엇보다도 전세계 관객들의 객관적인 심판을 위해서 극적 사실성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였다. 전세계 국가들이 모인 세계의 심판 재연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다양한 외국어 구사력이 요구되었기에 영어, 일어, 중국어 등 다양한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전세계 각지 배우들이 캐스팅 되었다. <무간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홍콩 배우 증지위, 대만 최고의 인기그룹 F4의 꽃미남 배우 주효천 등 이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캐스팅되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또한 실제 심판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인물들과 거의 흡사한 외모의 배우가 출연하여 관객들에게 실제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방대한 역사 자료 조사를 통해서 당시 인물들의 생김새, 의상, 행동 양식까지 영화에 반영하여 역사의 대심판에 대한 객관성과 사실성을 높였다. 특히 11명의 법관 중 한 명인 중국 법관 메이를 연기한 중국 배우 류송인의 경우는 실존 인물 메이를 화면에 되살려놓았다는 평가를 들으며 이미 중국 전역에 화제를 일으켰다. |
일본판 '뉘른베르크'라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삼일절을 맞아 다음주에 개봉합니다!!!
첫댓글 으음, 카페 차원에서 단체 관람 추진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움움.. 제대로 한 번 보고 싶군요. NHK다큐에서는 일본에게 유리한 내용만 나오고, 한국 다큐에서는 내용을 ...................... '안' 보여주니...
도죠의 너무나 당당한 모습을 트레일러에서 봤습니다.ㅋ
그건 '당당'한 게 아니라 '뻔뻔스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