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9월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 정각에 서울 정토회관 방송실에 마련된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2천여 명의 정토불교대학 학생들 모두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이 환경 실천 활동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그동안 수업에 참여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입학 후 지난 6주 동안 ‘실천적 불교사상’ 교과를 4회차까지 배우고, ‘나누기 수련’, ‘불교와 환경’ 수업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세 명이 그동안의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환경 실천을 해보는 것이 참 좋았는데, 그때부터 남이 버리는 쓰레기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면 된다’ 하고 말씀하셔서 꼬인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예민하고 극단적인 사람이었는데 점점 편안하게 마음의 중심을 찾아가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랜 직장생활에 권태를 느껴서 정토불교대학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진행자와 돕는이가 모두 자원 봉사자라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고, 사회가 온전하게 돌아가는 것은 곳곳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깨닫고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아는 사실만을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성질대로 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는 스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고 생활비도 가져다 주지 않는 남편을 보면 속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정토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나서 ‘남편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 해도 참 감사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잔소리를 줄여보겠다고 수행 과제를 정해 실천해 보니 정말로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살피며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나를 알아가며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학생들의 소감을 잘 들었습니다. 이어서 다 함께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6주 동안 공부 잘하셨습니까? 입학식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요. 소감 나누기에서 6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괴로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조금 늘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토불교대학이 잘 진행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6주 동안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그때그때 법사님들께 질문해서 답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는 점들에 대해 얘기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어서 지난 9일에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에 지진 피해로 무너진 학교를 새로 준공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방금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시리아는 10년이 넘는 전쟁으로 350만 명의 난민들이 발생하여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진 피해까지 입어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JTS에서는 현지에서 신뢰받는 단체인 화이트헬멧과 협력하여 4천 명이 다니는 학교를 새로 지었습니다.
이처럼 전쟁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전쟁 피해 지역에 직접 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도 전쟁의 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기 전에는 ‘전쟁이 날 수도 있지. 우리가 이기면 되잖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전쟁이 나면 이기고 지고를 떠나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한반도는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으며, 남북 양 진영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게다가 남한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고, 북한은 두 번째 군사 강국인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맺고 있으며, 주위에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경제 대국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전쟁이 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북한에는 핵무기가 있고 남한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만약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기라도 한다면 핵폭탄이 떨어진 것과 다름없는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사회·정치적 갈등이 심할 때는 항상 강경 세력이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온건한 발언은 유약하게 보이기 때문에 강경한 발언을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국민들이 좀 더 현명해져서 ‘절대로 전쟁은 안 된다’ 하는 관점을 분명히 가질 때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마침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어서 세계적으로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위험은 조금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수 산업체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 기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불러오는 전쟁을 멈추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 일단 휴전을 통해서 전쟁을 멈추는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 정부는 이미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했고, 남한 정부는 무기를 팔거나 북한처럼 파병까지 할 것처럼 발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는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굉장히 잘못된 정책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천 년 역사 동안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평화를 사랑해 왔다고 자랑해 왔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남한은 대량 살상 무기가 세계에 수출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외국에 파병까지 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이러한 국방 외교 정책은 우리나라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길 위험이 있습니다. 진보, 보수, 여야, 기독교, 불교를 떠나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은 지금 불교의 근본 교리에 해당하는 실천적 불교 사상 과목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다섯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상에서 화를 알아차려도 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알아차림이라는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화를 알아차려도 화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죠?
“정토불교대학 수업에서 스님께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알아차리면 화를 참지 않아도 그냥 지나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알아차림만으로도 모든 마음이 풀리나요? 저는 화를 알아차려도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화가 사라지지 않는데 화가 사라진다고 하시니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상대에게 표현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가볍게 넘기라는 말씀이신가요?”
“알아차림이란 있는 그대로 알 뿐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가 넘어졌으면 ‘내가 넘어졌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넘어져서 앉아 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넘어졌으니까 다시 일어나는 사람도 있겠죠. 넘어졌을 때 넘어졌다는 걸 안다고 해서 반드시 일어나지는 건 아닙니다. 넘어졌으면 넘어졌다고 사실대로 알아차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넘어진 줄도 모르면 그 사람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넘어진 줄 알면 본인의 의지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뭘 하겠다고 자꾸 결심을 하면 못 하는 경우가 생길 때 ‘나는 안 돼’ 하고 자신을 학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자기를 못 믿게 됩니다. 그런데 알아차림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그냥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화를 냈으면 ‘내가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화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항상 ‘화를 안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데 화를 안 내겠다고 다짐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질문자는 이제 막 마음 공부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도 벅찬데 벌써 자신을 변화시키겠다는 건 너무 앞서가는 것입니다. 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벌써 날려고 설치는 형국이에요. 넘어졌으면 그냥 ‘넘어졌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구나’, 욕심이 많으면 ‘욕심이 많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욕심을 내지 말아야지’ 하는 건 의지입니다. 의지를 가지면 의지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의지대로 되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구나’ 하고 알 뿐인 상태에서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화를 내야 된다’, ‘화를 안 내야 된다’, ‘욕심이 있어야 된다’, ‘욕심이 없어야 된다’ 이런 분별을 안 하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난 상태다’, ‘나는 욕심이 많은 상태다’ 하고 자기를 아는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처럼 자기 상태를 아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된다는 생각은 그 다음에 고려해 봐야 할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결과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상태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화를 자주 내면서도 다른 사람이 ‘너 왜 화내니?’ 하면 ‘내가 언제 화냈냐!’ 하고 반발을 합니다. 아니면 ‘너는 화 안 내냐?’ 이렇게 상대와 책임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 내가 화난 상태라는 걸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데, 내가 화난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남의 문제에만 집착을 합니다.
수행이란 먼저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화가 나면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내가 화를 냈으면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남이 뭐라고 해서 기분이 나쁘면 ‘지금 기분이 나쁘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화를 알아차리면 화가 없어진다’, ‘화를 알아차려도 화가 안 없어진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상태를 모릅니다. 그래서 노래 가사 중에 ‘세상에 온갖 것 다 안다는 박사도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구나. 멍텅구리!’ 하는 것도 있잖아요.
자기를 아는 게 첫 번째 공부 과제입니다. 그냥 다만 알아차릴 뿐이에요. 화가 나면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래도 화가 계속 나면 ‘화가 지금도 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화를 냈으면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릅니다. 화가 났을 때 ‘화를 안 내야지’ 하고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자기도 모르게 폭발적으로 화를 내게 됩니다. 화를 내면 과보가 따릅니다. 상대와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또 화를 참게 되죠. 화를 참았다가 냈다가, 다시 화를 참았다가 냈다가,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화를 세 번밖에 못 참는다고 하죠.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 중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하면서 세 번째에 화가 터집니다.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는 안 참는 것보다 좋지만, 모았다가 한꺼번에 터지게 되면 피해가 더 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참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예요. 수행은 윤리가 아닙니다. 수행은 내가 화가 나면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화를 냈으면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래서 과보가 따르면 ‘화를 냈더니 이런 과보가 지금 나한테 돌아오는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이렇게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다 보면, 자신의 성질대로 행동할 때 손실이 따른다는 것을 점점 인식하게 됩니다. 점차 무의식에서 손실을 줄이려고 저절로 화가 덜 일어나든지, 화가 일어나더라도 밖으로 안 내든지, 자연스레 화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각오를 하고, 결심을 해야 변하는 게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알아차림’입니다.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알아차린 이후에 어떻게 되느냐는 지금 논하지 말고 다만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알아차리면 화가 없어지나?’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화가 나면 ‘내가 지금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화를 내면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화를 내서 손해가 따르면 ‘손해가 따르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