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 제주에 갔었다.
다른 가족들에 비해 꽤 자주 간 편이었다.
2009년 연말에도 비행기에 탑승했다.
'2009 연말, 2010 연시'를 제주에서 보내고 싶었다.
당시 딸은 고1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였고, 아들은 중 3을 앞두고 있었다.
살면서 제주도는 많이 가보았지만 그때처럼 거센 눈보라를 경험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1코스를 출발하여 '제주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2007년부터 제주 올레길을 개척하기 시작했으니 2009년 연말이면 막 태동기였다.
당시엔 전 구간이 개통된 것도 아니었다.
눈보라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씩씩하게 올레길을 따라 트레킹을 이어갔다.
우리들에겐 일상이었다.
그때 눈보라 치는 길에서 한 중년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우리 반대편에서 홀로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웠다.
서로 인사를 나눴다.
2009년 연말 오후였다.
어둡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센 눈보라 때문에 춥고 음산했다.
그런 일기 탓에 올레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트레커가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날씨는 완전 '꽝'이었다.
그 중년여인은 우리 가족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런 일기에 올레길 트레킹이라니요. 대단한 가족이네요. 특히 자녀들이 더 대견하고 예쁩니다"
"저희들에겐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지요. 혹한이나 혹서나 날씨에 상관없이 짬이 나면 산행과 트레킹을 많이 했거든요"
"너희들은 몇 학년이니?"
"저는 고2로 올라가고, 동생은 내년에 중3이 됩니다"
"학생들이 정말로 대단하네요. 이런 날씨에"
그러면서 그 중년여성은 배낭에서 사탕과 초콜릿, 귤 등 간식을 꺼내 내 자녀들에게 건네주었다.
"아이고 간식까지 주시다니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이런 일기에 혼자 걸으시다니요. 리스펙입니다"
"저는 지금 올레길 점검및 보완사항을 체크하기 위해 가는 중이었어요."
"그러세요? 그럼 혹시 '서명숙 선생님' 아니신가요?"
"아니, 그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어떻게 알다니요. 저도 올레길에 관심이 많아서 올레길과 '서명숙 선생님'에 대한 스크랩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지요. 진짜로 존경하는 분을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오오 그래요? 맞아요. 제가 '서명숙'입니다."
나도 깜짝 놀랬다.
더더욱 반가웠고 기뻤다.
사진도 함께 찍었다.
눈보라 속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먹거리도 주고받았으며 안전한 트레킹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서명숙 님'은 1957년 10월에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제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에 '고려대'에 입학했다.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정치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언론계 최초로 '시사저널'에서 '여성 편집장'을 역임했고, '오마이뉴스'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녀의 경력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다.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완전한 번아웃 상태에서 사표를 내고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를 걸으며 지나온 삶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영국여성'의 조언 한 마디에 '서명숙 님'의 인생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맞게 되었다.
"당신도 이 길에서 많은 감동과 영감을 경험한 만큼, 귀국하면 당신의 나라에 '사색과 힐링의 길'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는가?"
이 한 문장이 그녀의 운명을 뒤엎었다.
그녀는 돌아와서 고향인 제주로 갔다.
지팡이 하나, 지도 한 장, 낫 한 자루를 들고 가시덤불을 헤쳤고 쉼 없이 기록했으며 마을과 마을, 자연과 사람을 이어 나갔다.
그때가 2007년도였다.
그녀에 의해, 그렇게 '제주 올레길'이 하나씩 하나씩 뚫렸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시작했으나 훗날엔 여러 사람들이 협력했고, 지자체와 각 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종국엔 '사단법인 제주올레'로 성장했고 '일본', '몽골'까지 올레길이 전파되고 조성되었다.
한 사람의 푸른 꿈과 한없는 헌신이 무수한 사람들에게 힐링과 휴식, 재충전과 건강, 사색과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26년 4월 7일.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내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서명숙 이사장님'이 하늘의 별이 되셨다.
57년 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치면 '칠순'이었다.
하지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향년 68세'였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올레의 정신', '올레의 사랑'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스며들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시길, 슬픈 부고를 접하며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법이다.
'생자필멸'이 삼라만상의 철칙이니까.
얼마 전에 동갑인 친구 아내가 취침 중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지난 20여 년 간 '부부모임'을 함께 했던 사람이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요즘 '백세시대'라고 한다.
'평균수명'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 평균 수명이 남성은 약 81세, 여성은 약 87세 정도다.
나는 성격적으로 '극단의 수치'나 '예외적인 통계'를 잘 믿지 않는다.
또한 그런 숫자를 인용하지도, 내 삶에 적용하지도 않는다.
'평균치'를 신봉하며 그 통계를 기준 삼아 내 삶을 설계하고 계획할 뿐이다.
내 삶도 최대치로 계산하여 대략 20여 년 남았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니 시간을 낭비하거나 허투루 보내는 건 생명을 허락하신 신에 대한 '심각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간다.
번개처럼 간다.
모레면 4월도 벌써 중순으로 접어든다.
하루하루 예쁜 자연을 마음껏 찬미해 보자.
주변을 향해 환한 미소를 건네고 소리 없이 배려를 전하며 살자.
자신이 세운 '버킷리스트'에 따라 늘 최선을 다하며 살자.
소유한 만큼이 아니라 사랑한 만큼, 헌신한 만큼, 감사한 만큼, 딱 그만큼이 '각자의 행복'이고 '각자의 인생'임을 믿는다.
'서명숙 이사장님'의 명복을 빈다.
우리 시대에 소중한 배움과 치유의 힘을 주셨던 그 분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편히 영면하시길.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서명숙 님'이 남긴 어록 중에,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문구가 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내 자신을 만나는 가장 정직한 시간이다"
바로 이 문장이다.
나도 트레킹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이 한 문장의 의미와 힘을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걷기는 정직이다.
또한 자신의 깊은 내면과 가장 솔직하게 대면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금년 여름, 다시 제주에 갈 예정이다.
올레길 트레킹을 100% 완료하기 위해서다.
약 3일 정도의 거리가 남아 있다.
이미 작년 연말에 항공권도 부킹해 두었다.
현재 진행 중인 'DMZ 평화의길' 트레킹 520K도 7월 초면 끝난다.
7월 내로 제주 올레길 437K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해외 트레킹을 제외하고 국내 트레킹만 열거해도 그간 적잖게 걸었다.
지리산 둘레길 285K, 서울 둘레길 156K, 치악산 둘레길 139K, 해파랑길 770K, DMZ 평화의길 520K, 제주 올레길 437K 그리고 대한민국 100대 명산 완등까지 차근차근 하나씩 진행했었다.
나에게 트레킹은 기도였고 찬양이었다.
또한 수행이었고 추억이었다.
놀멍, 쉬멍, 걸으멍의 철학을 가르쳐 준 서명숙 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