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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역장을 결심하기까지 |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저는 오늘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노역장을 선택합니다. 이 글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오늘’을 준비하면서 미리 써 두는 것입니다. 2008년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여권 갱신을 신청했습니다. 구청 전산신원조회 결과 미회보로 통보되어 경찰에 문의하라고 안내받았습니다. 출국 날짜가 별로 남지 않아 다급하게 알아봤더니 ‘지명통보자’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집회에서 사진채증되어 경찰이 몇 번 출석요구서를 보냈는데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사건은 2007년 7월 27일 홈에버 월드컵몰점 근처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비정규노동자 대량해고 이랜드·뉴코아 규탄 총력결의대회’였습니다. 출국하려면 일단 경찰 조사를 마치고 사건이 송치된 후 검찰에서 신원조회 관련 통보를 해야 합니다. 출국 여부가 담당 경찰의 성의에 달려 있으니 기꺼이 조사에 응해서 경찰이 원하는 모든 사실관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8월 집시법 위반과 업무방해죄 위반으로 15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습니다. 벌금이나 좀 줄여보자는 마음으로 정식재판을 청구했습니다.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니 변론요지서는 탄원서 형식으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벌금도 150만원이니 변호인을 선임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했다는 집시법 부분은 제쳐두더라도 업무방해죄 부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랜드노동조합의 조합원은 아니었지만 그 취지에 공감해서 연대했고, 해당 집회는 사측의 부당해고를 저지하려는 쟁의행위였습니다.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314조 제1항)는 업무방해죄로 헌법이 기본권으로 선언한 쟁의행위에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서울서부지법의 1심 판결은 이런 물음에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당시 시위대가 매장점거를 계속 시도하면서 경찰과 충돌함으로써 손님들의 출입이 현저하게 곤란하게 되어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 “정당한 목적을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문 어디에도 당시 쟁의행위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를 따지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쟁의행위가 사측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바로 그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하는 것인데 왜 그것을 형사처벌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 항소심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고 기각당한 후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노동자의 쟁의행위에는 예외 없이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지만 사측의 직장폐쇄나 일방적인 휴업조치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사례는 (제가 과문한 탓인지) 본 적이 없습니다. 사측의 ‘업무’만 보호받아야 할 업무이고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라는 ‘업무’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업무입니까?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위력’이고 사측이 가진 인사권과 경영권은 ‘위력’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업무방해죄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사측의 재산권이란 실은 그동안 노동자들이 땀 흘린 ‘업무’의 결과가 아닙니까? 이런 질문이야말로 업무방해죄가 보호하는 법익의 실체가 가치중립적인 ‘업무’가 아니라 사용자의 ‘영업의 자유’, 즉 재산권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업무방해죄는 일본 형법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전쟁에 저항했던 자국 노동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일체를 형사처벌의 구성요건으로 포함시키려 만든 죄입니다. 한국의 형법이 ‘업무’ 개념의 모호함을 유지하려는 이유 또한 노동조합을 탄압함으로써 사측의 재산권을 편파적으로 보호하려는 것이겠지요. 기소권을 가진 국가 권력이 사측의 업무방해는 처벌하지 않고 노동자의 업무방해는 처벌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가 ‘업무’ 개념의 모호함에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국가보안법의 ‘반국가활동’이나 ‘이적’과 같은 모호한 개념과 비슷합니다. 권력이 처벌하고자 하는 사람을 빼놓지 않고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국가보안법 자체가 사상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듯이, 업무방해죄는 87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2010년 4월 29일이었습니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놨습니다. “모든 쟁의행위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며, 헌법에서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취지에 적합한 쟁의행위만이 면책된다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며 “목적이나 방법 및 절차상 한계를 넘어 업무방해의 결과를 야기시키는 쟁의행위는 정당한 단체행동권의 행사가 아니므로…(업무방해죄의 적용이)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단에 대한 평가를 진지하게 하면 사실 시간이 아깝습니다. 다만, 그 ‘내재적인 한계’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아니 드러나면 얼굴이 붉어질 어떤 흔한 논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노동자의 파업권이 사측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그 논리, 해고라는 사측의 폭력에 대항할 때 노동자는 절대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사측의 재산권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바로 그 논리. 이런 잣대로 보면 당시 이랜드노동조합의 쟁의행위란, 해고자도 아닌 계약해지 된 자들이 마트를 점거하여 ‘손님들’이 물건을 사지 못하게 해 사측의 ‘재산권’을 해쳤고 점거농성이라는 폭력까지 행사했으니 헌법의 보호 범위 바깥에 있겠습니다. 당시 투쟁은 교섭 요구와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 찬반투표라는 강요된 냉각기간과 파업돌입 선언까지 다 거친 ‘합법’ 파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거듭 거절하며 수백 명을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해고했습니다. 용역경비를 고용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파업 중에도 영업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사측이 낸 가처분을 받아들여 매장 주변에서 현수막이나 피켓 게시, 유인물을 배포하는 행위마저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한 번이라도 위반하면 노동자의 한달 월급보다 많은 돈을 회사에 물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서 노동자들이 선택한 매장 점거마저 법의 이름으로 ‘범죄’로 규정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제가 재판에 매달렸던 이유입니다. 다섯 번의 재판을 거쳤습니다.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2011년 10월 대법원은 집시법 해산명령불응죄 부분에 직권파기 사유가 있다며 파기환송했습니다. 어떤 사유로 해산명령을 받았는지, 실제 집회가 어떤 점에서 집회신고 범위를 뚜렷이 벗어났는지가 공소장에 기재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2012년 4월 서울서부지법의 네 번째 재판에서 집시법 위반 부분이 공소기각되고 업무방해죄는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이 70만원으로 깎였습니다. 6월에는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10월 31일에는 검찰이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습니다. “벌금미납으로 지명수배 되었습니다.” 이즈음부터 벌금을 낼지 말지 갈등했습니다. 너 하나 벌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까? 차라리 70만원 내고 감옥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나? 이랜드 투쟁이, 안타깝지만 어쨌든, 마무리된 것도 4년이나 지났는데, 이랜드 조합원도 아닌 네가 왜 이런 고민을 하나? 법이 허용하는 울타리 안에서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벌금도 거기서 책임지겠다는데……. 돌아보면, 벌금에 대한 고민은 비슷했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불복종을 도모하다가도 각자 사정이 다름을 확인합니다. 살아가는 일이 두부 자르듯 단순하지는 않다보니 벌금을 거부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수시로 생기기 마련입니다. 형이 확정되는 시기도 같지 않습니다. 결국 소수로는 집단만이 만들 수 있는 열기를 만끽하기 어려움을 절감하고 좌절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의 몫만 남습니다. 벌금의 원인이 된 각자의 투쟁은 여러 법원을 거쳐 벌금이 확정될 무렵에는 이기든 지든 결판이 나 있기 마련입니다. 벌금을 거부한다고 해서 벌금의 원인이 된 그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도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벌금을 내기만 하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사라진다는 바로 그 점이 벌금대응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저런 사건과 고민을 거치다가 벌써 두 번의 벌금을 자진해서 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저는 벌금을 내는 것이 유죄 판결에 굴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판결이 노리는 것은 피고인이 다음에 다른 투쟁에 나서지 않도록 겁을 주는 것일 텐데, 겁만 먹지 않는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집회-채증-수사-기소-재판-벌금-모금’이라는 공식이 어느 틈에 일반화 되면서 모두가 무뎌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체포와 구속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채증에 이은 불구속 수사와 벌금은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어차피 유죄판결이 뻔하다고 느끼면 그냥 죄를 인정하는 게 벌금을 깎는 데 더 도움이 됩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겁을 먹지는 않더라도) 무척이나 귀찮은데다가 경제적인 부담도 있습니다. 이런 부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공안당국은 효과 만점이라고 느낄 겁니다. 이 새로운 저강도 탄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노역장 유치를 선택했습니다. 변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한 사람이 벌금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누군가 제게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기쁘게 벌금을 거부하겠느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벌금을 자꾸 내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난생 처음 지하철을 타 본 스무 살짜리 아이 하나가 서울에 있는 어느 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피신조서를 꾸미는 데 협조하지 않았다고 형사 네 명이 그 애의 옷을 벗겼습니다. 아니, 둘러싸고 벗으라고 지시했고 아이는 자발적으로 벗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요. 그러고 나니 완벽한 피신조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악의가 없어보였습니다. 먹고 사는 일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애가 뒤늦게 배운 게 하나 있다면, 형사사법절차의 위력은 법조문이나 판결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에 자발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협력하는 모두로부터, 특히 ‘피의자’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17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노역장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한 문장을 쓰고 나서야 주변에서 늘 숨 쉬고 있던 어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어떤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14일입니다. 그동안 벌금 불복종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벌금을 낼 작정입니다. 그러니 혹시 도와주시려는 분이 있다면, 사양합니다. 이 모든 아쉬움과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2년 12월 13일
※사건 경과 ■ 2007년 7월 27일 : 비정규노동자 대량해고 이랜드·뉴코아 규탄 총력결의대회 ■ 2008년 8월 19일 : 약식명령(형법 업무방해 및 집시법 위반, 벌금 150만원) ■ 2008년 9월 26일 : 정식재판 청구 ■ 2008년 11월 7일 :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판사 김선희) 유죄 판결 ■ 2009년 6월 9일 :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형법 업무방해죄) ■ 2009년 6월 11일 :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정학) 항소 기각, ■ 2009년 7월 23일 : 헌법소원심판 청구 (2) 과잉금지원칙 위배 (3) 단체행동권 침해 ■ 2010년 4월 29일 :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기각 ■ 2011년 10월 13일 : 대법원 제2부(주심 전수안), 파기환송 판결 2. 이 사건 공소장에 기재된 집시법 위반의 점에 관한 위 공소사실 및 적용법조에 나타난 사항들을 종합하더라도 이 사건 해산 명령의 근거 사유가 제1심 및 원심이 판단한 취지와 같이 특정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위 공소사실에는 집시법 제16조 제4항 제3호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항, 즉 이 사건 집회에 관하여 신고한 목적, 일시, 장소, 방법이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이 사건 집회가 어떠한 점에서 신고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것인지 등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이러한 이유에서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이 특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러한 점을 간과한 채 이 사건 집시법 위반의 공소사실이 적법하게 특정되었다고 전제하여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공소사실의 특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 2012년 4월 10일 :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서경환), 유죄 판결 ■ 2012년 6월 8일 : 대법원 제3부(주심 신영철), 상고 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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