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읍의 치과에 관한 일 연구: <성심치과>를 중심으로(2)
학기가 끝났고 이제 어느 정도 한가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이 여자 이야기를 쓰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여자 이야기 말고도, 쓰려고 했다가 미루어 놓은 이야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책>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아는가? <반성폭력(反性暴力)>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아는가? 그러나 그녀의 응접실에 이런 잡지들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 내가 오늘 그녀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이 스타티드 어 조크’라는 팝송은 알겠지? 비지스의 큰 형 -- 얼마 전에 죽었다는 것 같던데 -- 이 부른 노래 말이야. ‘메사추세츠’라는 노래도 알겠지? 나는 편안하게 드러누워 그녀가 틀어주는 이런 노래들을 들었을 뿐 아니라, 그런 상태에서 그녀의 손가락을 깨물기까지 했는데, 그것이 오늘 그녀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루트 카날(root canal)이라는 게 신경치료인가요?” 내가 이렇게 묻자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녀가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도 물론 내가 오늘 그녀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벌써 3년 전 일이지만, 마이클은 20년 묵은 컨버터블 쿠페에 나를 태우고 자기의 고교 동창인 닥터 브라운에게 달려갔다. 닥터 브라운은 다른 의사에게 나를 보내 루트 카날의 시술을 받게 하였다. 문제가 된 치아는 오른 쪽 송곳니였다. 그 시술이 끝난 후 나는 다시 닥터 브라운에게 가서 뒤처리를 받았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분업적으로 일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전문적이고 신사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술을 받은 그 치아가 몇 달 뒤 부러져버렸다. 나는 다시 마이클의 동창인 닥터 브라운을 찾았다. 더 이상 마이클을 대동할 필요가 없어서 나는 혼자 병원에 갔다. 닥터 브라운은 부러진 치아를 접합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약하게 되었으니 조만간 다시 부러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역시 몇 주도 가지 못하고 다시 부러졌으며 나는 다시 닥터 브라운을 찾아갔다. 그러나 닥터 브라운은 접합시켜주기를 거부하였다. 다시 접합시켜준다고 해도 금새 부러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이번에도 제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거부하였다. 그리고 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방문한 나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내 송곳니는 정말로 접합시킬 수 없는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수소문하여 다른 치과를 찾아갔다. 이 치과는 ‘올리브 가든’이라는 이태리식당 근처에 있었는데, 지금 의사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대단히 뚱뚱하여 식식거리고 다녔지만 그 만큼 친절했다. 닥터 브라운은 가는 철사를 사용하여 부러진 치아를 연결하였었지만, 이 양반은 팽이처럼 가운데 부분이 불룩하게 나온 굵은 금속을 사용하여 연결하였다. 기공소에서 찾아 온 정교한 금속 덩어리를 자랑스레 들어 보이면서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영태, 이 방법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발명한 거요. 미이라에서 발견되거든.” 고대 이집트 사람들 덕분에, 아니 이 양반 덕분에 내 송곳니는 살아났다.
좋은 의사도 있고, 나쁜 의사도 있는 법인 모양이다. 그 뒤에 보험회사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닥터 브라운의 치과는 내 보험회사에 진료비를 과다청구하였다. 하지도 않은 시술을 한 것으로 꾸몄던 것이다. 나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치과에 항의를 하였다. 겸사겸사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화가 나니까 영어가 잘되었다. 미국 생활 1년 동안에 영어로 화를 내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귀국한지 1년 반 만에, 그러니까 올 초에 그 송곳니에 다시 말썽이 생겼다. 이번에는 부러진 것이 아니고 접착제가 녹았는지 빠져버렸다. 나는 단골로 다니는 안양의 김치과에 갔다. 이 사람은 접착시켜주기를 거부하였다. 금새 또 빠질 거라는 거였다. 이 사람,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20년 넘게 거래를 했으니까. 나는 근처의 연세 치과에 가서 접착했다. 몇 주 뒤에 빠져서 다시 연세 치과에 갔다. 의사는 다시 접착을 해주면서 얼마 못 갈 거라고 경고하였다.
내 송곳니는 정말로 가망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역시 얼마 못 가서 빠졌는데, 삼례에 있을 때였다. 갑자기 성심치과가 생각났다. 성심치과의 여의사는 다른 의사와 달랐다. 접착해주기를 거부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마지못해 건성으로 접착해준 것도 아니었다. “아, 할 수 있겠어요. 이런 식으로 접착하면 처음 하셨을 때처럼 튼튼하게 만들 수 있겠어요.” 자기 치아라도 되는 듯 기뻐하면서 그녀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나쁜 의사도 있고, 보통 의사도 있고, 좋은 의사도 있는 법인 모양이다. 마지막에 만난 의사가 좋은 의사니, 얼마나 다행인가? <작은책>이니, <반성폭력(反性暴力)>이니 하는 잡지 이야기는 했지? <작은책>은 노동자들을 위한 월간지인 듯했다. 그 잡지들 이외에 <좋은 이웃>, <열린 전북>, <참여 사회> 등등의 잡지들도 놓여있었다. 환자를 누여놓는 진료 의자에는 노무현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이 여의사는 사회 현실에 관심이 많고 특히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린 간호조무사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할 뿐 아니라 “김선생님”, “이선생님“ 하면서 존칭을 사용하였다.
어느 날, 최소한 30분 이상은 걸린 치료를 받고 카운터 앞에 서자 회계를 담당하는 직원이 말했다. “오늘 진료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항목이예요.” 나는, 최소한 몇 만원, 어쩌면 10만원 가까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3천원입니다.” 이 여의사는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기도 하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했어야 했는데. 설마 하고 그냥 했더니 이렇게 되었네요.” 몇 해 전에 썼던 “삼례읍의 치과에 관한 일 연구: <성심치과>를 중심으로”를 찾아 읽어 보았더니, 거기에는 이 여의사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진료를 하는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녀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녀는 ‘신연세치과’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종래에 환자에게 알려져 있지 않던 여러 가지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단다. 치과 진료에 관한 비밀이라고 할까, 치과 진료에 관한 궁금증이라고 할 만한 것을, 환자 입장에서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그 블로그 이름은 ‘달려라 꼴찌’라고 한다. 우리 과 교수님들에게 이 치과 의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여교수 한 분이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였다. (삼례는 좁은 곳이거든.) 이 치과 의사 남편은 원광대 교수였는데, 학교를 사직하고 절집 같은 데를 찾아다니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닌가?
30분 이상 걸린 바로 그 날 있었던 일 같다. 그녀는 얇은 종이 — ‘교합지’라고 했던가? --를 내 치아 사이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깨물어 보세요.” “아~ 하세요”라고 말하기를 계속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종이를 깨물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해도 끝나지 않아 나는 약간 지루해졌고 긴장을 풀게 되었다. 그 때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코 손가락이야.” 내 평생 여자 손가락 깨무는 경험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첫댓글 우리 나이면 자주 가는 곳이 치과인데, 그곳에서의 에피소드 참 잼나게 읽었습니다. 나도 담엔 그리 깨믈어 볼까나?
막 치과 다녀와서 이 글을 읽으니 실감이 나네...
^^
참나..아무리 긴장이 풀려도 그렇지 여자 손가락을 깨물어??..빨면 몰라도~
ㅋㅋ 그렇다면 다음 번에 갈 때에는...... 노무현이 갑자기 텔레비젼에 많이 나오네.
노무현??....아하 NLL 땜시.. 교수님 부디 송곳니 치료나 잘 하셔..장마 끝나면 다 끝날텐데~ㅎ
이제 완벽하게 나아지셨나? 교합지와 손가락 깨물러 또 가야되는 거 아닌가?
내 은퇴 후 서천에 살게되면 나도 그 치과 다닐까? ㅎ 십만원과 삼천원...세상물정 잘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그리운 시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