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중생에게는 먼저 먹을 것을 주고, 자식이 죽어 고통 받는 이가 있다면 손을 잡고 함께 울어 줘야 한다.
또한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소연을 들어 주고 맞장구를 쳐 주며,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줘야 한다.
바로 이렇게 감정을 공유하는 진정성이 진리요, 다르마요, 법문이다.
이성적인 냉정함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공감과 소통이 진정성 있는 중생제도라고 본다. 이것이 함께 슬퍼해 준다는 비무량심(悲無量心)이다.
신라 시대 원효 스님과 더불어 민중불교를 이끈 대안大安 스님이란 분이 있다.
옷차림을 하고 항상 저잣거리에서 구리 밥그릇을 두드리며 “대안, 대안” 하고 다닌 데서 스님을 ‘대안’이라 하였다.
어느 날 원효가 대안을 만나기 위해 굴로 찾아갔다.
그런데 대안은 없고 너구리 한 마리가 죽어 있었는데 새끼 너구리가 죽은 어미 곁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원효는 죽은 너구리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아미타경」을 염하였다.
이때 대안이 들어와 원효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원효가 죽은 너구리에게 염불을 해 주고 있다고 하자, 대안이 이렇게 말했다.
“이 새끼 너구리가 경을 알아듣겠소!”
그리고 동냥해서 얻어온 젖을 너구리에게 먹이며, 원효에게 말했다.
“이것이 너구리가 알아듣는 「아미타경」입니다.”
출처 ; 정운 스님 / 너무 멀리서 찾지 마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