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은 미복잠행(微服潛行)으로도 유명한 군주였다. 밤이면 편복으로 갈아입고 어두운 한양 장안을 돌아다녔다. 중신들은 만류했으나 성종은 듣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성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운종가(雲從街·지금의 종로)로 나섰다. 광통교 위를 지나는데 다리 아래에 한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 남짓 돼 보이는데 행색이 매우 초라한 시골 사람이었다.
성종이 가까이 가서 누구냐고 부드럽게 묻자 그는 몹시 반가운듯 바싹 다가오며
“예, 저는 경상도 흥해 땅에 사는 김희동이올시다. 마흔이 넘도록 어진 임금님이 계신다는 한양 구경을 못했지요. 오래 벼르기만 하다가 간신히 노자를 구해 가지고 나섰는데 수십 일 만에 겨우 당도하여 누구에게 물으니까 예가 서울이라 하잖은가요. 이제 막 저녁은 사먹었지만 잠 잘 만한 탄막을 찾지못해 여기서 밤새기를 기다리는 중이오."
서울 장안에도 숯 굽는 움짐이 있는 줄 알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댁은 뉘시기에 이 밤중에 나다니시오. 보아하니 생김새도 얌전해 보이시는데 혹시 임금님이 계신 집을 아시거든 좀 가르쳐 주구려”
성종은 속으로 웃으며 사실 어질고 착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를 찾아온 시골 백성이라 생각하고, 그의 소박함과 순진함에 감동했다.
성종은 시치미를 뚝 떼고 “나는 동관에 사는 이 첨지라는 사람이오. 임금이 있는 곳을 알기는 하오만, 만일 알려주면 임금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하오?”라고 물었다.
시골사람 김희동은 히죽이 웃으며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소? 우리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님이 백성을 사랑하셔서 우리가 걱정 없이 잘 산다지 않소. 내 기왕 올라왔으니 임금님이나 한번 뵈옵고 돌아가자는 거지요. 빈손으로 뵙긴 뭣할 것 같아 우리 고장에서 나는 전복과 해삼 말린 것을 좀 짊어지고 왔지요. 임금님께 이것을 드려 한끼 반찬이나 합시사 하고. 그래 댁이 어디 임금님을 좀 뵙게 해주시구려”
그때 멀리서 무예별감들이 달려왔다. 성종은 그들에게 귀띔하고는 “이 사람들을 따라가면 임금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줄 터이니 안심하고 가시오”라고 했다.
김희동은 "서울 양반은 참 인심도 좋구만!" 하며 무감의 뒤를 따랐다.
이튿날 성종은 편복 차림으로 무감의 집에 들렀다. 그러자 희동은 몹시 반가워하며
“이 첨지는 참말 무던한 사람이외다. 처음보는 시골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 그런데 임금님을 뵐 수 있는건가요?"
옆의 무감들은 희동의 언행을 타박하려 했으나 성종이 눈짓으로 말리고는
“당신의 지성은 돈독하오만 벼슬이 없는 사람은 임금을 대할 수 없게 돼 있소. 내가 뵐 수 있도록 주선해볼 테니, 그렇게 꼭 임금을 뵈려 한다면 무슨 벼슬 하나를 청해보시오. 내가 힘써서 되도록 해보겠소”라고 했다.
김희동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벼슬을 말하라니 난처했으나
“우리 마을에 충의(忠義) 벼슬하는 박충의라는 굉장한 양반이 있지요. 그 충의란 벼슬 좋습디다만, 댁이 무슨 수로 내게 그런 벼슬을 시켜주겠소. 아무래도 임금님을 뵈올 수 없다면 그냥 돌아갈 수밖에요. 그리고 이왕 온 길이니 임금님께 길이 닿으면 이것이나 전해주시지요” 하고는 해삼, 전복을 싼 보퉁이를 내놓았다.
성종은 웃음보가 터지는 것을 겨우 참으며
“내가 힘써볼 테니 하룻밤만 더 묵고 계시오. 혹시 벼슬이 되면 당신이 직접 갖다 바쳐도 좋지 않겠소”
하고는 입궐(入闕) 후 이조판서에게 명해 그를 충의초사(忠義初仕)로 임명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희동은 영문모를 사모와 관복, 나막신을 받아들였다.
"그래 이 첨지는 어디로 갔는지요?"
무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를 대궐로 대려갔다. 희동의 손에는 어김없이 해삼과 전복 짐이 들려있었다. 희동은 전도관(前導官)이 시키는 대로 임금께 세 번 절하고 엎드렸다.
그때 용상에서
“내가 임금이다. 네가 짐을 보러 수백리 길을 왔다지. 겁내지 말고 쳐다보아라”라는 윤음(綸音)이 들렸다.
희동이 머리를 겨우 들고 용틀임하는 붉은 용상에 높이 앉은 임금을 쳐다보니 바로 이틀이나 마주앉아 대하던 이 첨지가 아닌가. 그래서 희동은
“이 첨지가 어떻게 여기 와 있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모든 신하의 매서운 눈초리가 법도를 모르는 희동에게 쏠렸다.
그제야 희동은 이 첨지가 바로 임금임을 깨달았다. 그는 황공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벌벌 떨었다. 영문을 모르는 승사 각원들은 엄형을 주장했으나 성종은 희동을 만나게 된 전후 이야기를 해주었다. 희동은 당황한 나머지 가지고 온 해삼과 전복보따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성종은 자비가 가득한 눈으로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그것을 주우라고 말한 뒤
“저 해삼과 전복은 희동이 나를 위해 먼 길을 걸어 갖고 온 것이니 내 고맙게 먹지 않을 수 없다.”고 어명을 내렸다.
그리고 성종은 희동에게 후한 상금을 내려 금의환향하게 하였다. 그 후 희동은 충의벼슬로 걸어서 올라올 때와는 달리 말을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첫댓글 ㅜㅠㅠㅠㅠ푸ㅠㅡㅠㅠ 너무 귀엽고 훈훈한 이야기야ㅠㅠ
힐링으로 바꿨다 ㅋㅋㅋ 그치 ㅠ 넘 훈훈해
@oyenalaiu 다행이다~! ㅋ 수정 고마워
@토니 스타크 여샤 내가 쩌리에 끌올을 넘 마니해서 댓글 알람 꺼놨다가 이제 봤어 ㅜ 알려줘서 고마워~
충의가 어느정도 벼슬일까? 왕 인품이 보이는 일화야 넘 귀엽다ㅋㅋㅋㅋ
이 글은 항상 정독이야ㅠㅠ 힐링돼
재밌다ㅋㅋㅋㅋㅋㅋ 성종이 장난기가 많았나봐
충의벼슬 찾아봣는데 정5품으로 현대에서는 4급공무원이나 소령 급이라는데...!?
완전흥미돋 진짜 재밌다
마음따땃해져5ㅜㅜ
재밌다 전복말린거 나두주세요 맛있겠당 ㅠ
ㅠㅠㅠ저 순박함이 진짜 감동이야...충의 줄만하다
글고 역시..세상은 아방수가 승리한다 아방방
ㅠㅠㅠㅠ너무 귀여운 일화다ㅜㅜㅠㅠ
재밌고 따뜻한 일화네 ㅠㅠ
야 재밌다... .. 야사에서 나온거겠지?ㅋㅋ 부럽다는 생각이나하는 난 찌들었나봐..
나도 저 시대 가서 왕 만나보고 싶다....부럽부럽
따흑ㅜㅜㅜ 정말 따뜻한 얘기ㅜㅜ 뭔가 뭉클해져서 눈물 살짝 고임ㅜㅠ
오늘도 인류애 충전했다
근데 이거 진짤까?? 북한도 이거랑 똑같은 썰 있잖아 밤에 동상 닦고 있던 사람이 김정일을 만나서 평양으로 이사갔다는 썰때메 그거 믿는 어린이들이 더 열심히 충성한다는 얘기
나도오ㅑㄹ케 의심가지 ㅋㅋ 넘나 손색없는 미담 ㅋㅋㅋㅋ
세상에나 ㅠㅠㅠㅠㅠ
이 부분 특히 귀여워ㅠㅠㅠ얼마나 놀라셨으면 ㅠㅠㅠ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한데 임금님 덕분이니 맛있는 걸 드리고 싶어< 이 순박함이 포인트ㅠ
귀여워....근데 해삼 전복.. 안 상했을까 가는 내내..?
말린 거라니까 괜찮았울듯!!
삭제된 댓글 입니다.
헉 넘 늦게봤다 일단 수정했어 부털 넣었으면 어쩔 수 없지 ㅜㅜ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5.13 18:54
이거읽을때마다 너무 귀여워서 함박웃음
진짜 전래동화같아 ㅋㅋ
우연히 만난게 임금이라니 운빨쥑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