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절 성 안의 유적
1. 건물터
1) 건물터의 분포 상태
성안에는 건물터들이 적지 않게 있다. 건물터들은 내성과 외성안의 분지와 골짜기의 대지, 성문과 성벽 부근에 모두 80여채 분포 되여 있다. 그 가운데는 건축군을 이룬 것도 있고 개별적인 건물터들도 있다.
그리고 그 규모와 형태도 각이하다. 성안의 건물터들 가운데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외성 안의 건물터들이다. 외성 안에는 넓은 면적에 걸쳐 많은 건물터들이 분포되여 있다. 외성 안의 남쪽 골짜기인 삼치골과 우물골의 밋밋한 산 경사면들에는 수십채의 건물터들이 밀집된 두 개의 큰 건축물이 있으며 못재 등과 룡소골, 동문 부근에도 개별적인 건물터들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터는 삼치골에 40여채, 우물골에 10여채가 모여 각각 건축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삼치골 건축군은 1호건축군, 우물골 건축군은 2호 건축군이라고 한다.
삼치골과 우물골 건축군은 건물터의 규모와 구조형식 드러난 유물들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내성 안의 건물터들은 백운동 분지와 남문, 서문, 북문 부근에 개별적으로 혹은 몇 애씩 분포되여 있다. 내성안의 분지 중심에는 약 800㎡의 면적을 차지한 여러 개의 건물터들이 있다. 외성과 내성안의 건물터들에서는 여러 가지 기와 쪼각들이 많이 드러났는데 고구려의 붉은 기와만이 드러난 곳도 있고 붉은 기와와 회색, 흑회색기와가 드러난 곳도 있다.
발굴된 건물터는 외성1호 건축군에서 두개 (1호, 2호 건물터), 2호 건축군과(3호 건물터), 내성 남문 부근에서 각각 하나씩이다.
2) 건물터의 구조형식
(1) 발굴한 건물터
① 1호 건물터
1호 건물터는 삼치골 동북쪽 산등선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북쪽의 못재들에서 좌우로 뻗어내린 산등선이 병풍처럼 막혀있어 성안에서 가장 아늑하고 해가 잘드는 곳이다. 1호 건물터 주변에는 수많은 건물터들과 시설물의 일부가 배치 되여 있다. 건물터의 아래와 서쪽으로 건물터들이 전개되여 있으며 가까이에는 파수터와 우물이 잇다. 건물터의 남쪽 250m 지점에는 외성 남문터가 있고 서남쪽 약 300m 지점에는 중앙 장대터가 자리잡고 있다.
건물터는 뒤의 산경사면을 깍아내고 동서로 긴 장방형의 축대를 쌓아 터를 마련한 다음 건물의 기둥기초 시설을 하였다. 건물의 방향은 동쪽으로 기울어진 남향으로 놓였다. 건물의 축대는 남쪽에만 잘 남아있었고 동, 서, 북쪽에서는 그 흔적인 돌줄기만 드러났다. 축대는 성벽에 쓰인 것과 같은 돌로 성벽 쌓듯이 면과 선을 기본적으로 맞추고 서로 어긋물림하면서 안으로 약간 경사지게 쌓아졌다. 축대에 쓰인 돌의 크기는 대체로 너비 0.3m, 높이 0.2m, 길이 0.3m 정도이다.
축대의 높이는 3.2m, 동서길이는 35m이다. 축대의 남북너비는 13m이다. 건물의 기둥기초시설은 표토로부터 0.35m 밑에서 드러났다. 즉 표토층 0.2m, 그 아래 0.1-0.5m 두께로 깔려있는 붉은 기와와 회색 벽돌층 밑에서 주추자리돌의 일부가 드러났다. 주춧돌은 이미 없어졌다.
주추자리돌들은 축대 구획 안에서 동서로 길게 5줄 드러났는데 그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그 가운데서 비교적 잘 남아있는 것은 둘째 줄이다. 둘째 줄의 주추자리돌들은 모두 7개인데 그 중심사이 거리는 서쪽에서부터 첫째와 둘째사이가 1.5m, 둘째로부터 다섯째까지 사이는 각각 4.2m, 다섯째와 여섯째사이는 8.4m, 여섯째와 일곱째 사이는 1.5m이다.
다섯째와 여섯째 주추자리돌 사이에는 돌이 하나 더 있었던 것으로 인정된다. 주추자리돌이 제일 많이 남아있는 둘째 돌을 기준으로 첫째와 셋째, 넷째, 다섯째줄의 상태를 보면 둘째 줄의 주추자리돌 중심으로부터 첫째줄은 남쪽으로 1.5ㅡ 떨어져서 2개, 셋째줄은 북쪽으로 3.5m 떨어져서 1개, 넷째줄은 8.5m 거리에 2개 놓여있으며 4줄이 모두 둘째줄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주추자리돌들의 총 배열범위는 동서 길이 25m, 남북 너비 11m 이다. 매개 주추자리돌들은 땅을 원형으로 파고 길쭉길쭉한 막돌들을 다져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직경 1.2-1.6m, 깊이 0.6m이다.
주추자리돌이 드러난 상태를 통하여 건물의 평면을 보면 건물은 정면 5간(21m), 옆면 2간(7m)으로 되였고 그 둘레에 놓인 주추자리돌 간격과 배렬상태로 보아 회랑시설을 갖추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회랑의 너비는 1.5m이다.
건물의 가운데는 기둥을 두 개나 세우지 않은 통방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회랑까지 포함한 건물의 동서길이는 24m, 남북너비는 10m이다. (그림 10)
건물터에서 드러난 유물은 기와와 벽돌이다. 기와는 모두 붉은기와로서 바탕흙에 약간의 모래를 섞어 구워낸 것이다. 기와에 따라 굵은 모래를 섞은 것도 있고 가는 모래를 섞은 것도 있다. 기와의 대부분은 암키와이고 수키와와 수키와막새도 일부 있다. 건물터에서 드러난 벽돌은 바탕흙이 보드라운 것으로 구어진 것이며 색은 회색이다. 건물터에서 드러난 유물에 대하여서는 다음절에서 구체적으로 보려고 한다.
② 2호 건물터
건물터는 1호 건물터의 동남쪽 25m 지점에 동서로 길게 놓여있다. 건물터는 먼저 남쪽으로 밋밋한 산 경사면을 깎아내고 정면에 높이 0.6m의 돌축대를 마련한 다음 그 우에 건물을 세웠다. 건물터의 동서길이는 17m, 남북너비는 3.2m이다. 건물터 바닥에는 전면에 크고 작은 돌이 깔려있었다. 건물의 기초시설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건물터 바닥과 주변에는 붉은 색, 회색 기와 쪼각들이 널려져 있었다. 건물터는 폭이 좁고 긴 것이 특징이다.
③ 3호 건물터
3호 건물터는 우물골 건축군의 중심에 동쪽으로 완만하게 이루어진 산 경사면에 남북으로 길게 돌축대를 마련하고 그 우에 건물을 세웠다. 건물터의 크기는 남북길이 21m, 동서너비 8m, 남북으로 길게 쌓아진 돌축대의 높이는 0.5m이다.
건물의 기초시설은 이미 없어지고 바닥에서 붉은색, 회색, 흑회색기와쪼각이 드러났다. 건물터 앞에는 10㎡ 정도의 평지를 마련하였다. 3호 건물터 주변의 건물터들은 모두 면적이 100㎡이상 되는데 일정한 높이로 축대를 마련하였다. 건물터들에서는 붉은색, 회색, 흑회색 기와쪼각들이 많이 드러났다.
④ 내성 남문 부근 건물터
내성 남문의 서쪽에는 두 개의 건물터가 있는데 그 중 남문 서쪽 10m 지점에 있는 건물터는 내성 남벽을 축대로 삼고 그 우에 건물을 세웠다. 그 크기는 동서길이 35m, 남북너비 2m이다. 방향은 남향이다. 건물의 기초시설은 없어지고 바닥에서는 붉은 기와와 함께 회색기와 쪼각이 뒤섞여 드러났다. 이 건물터에서는 남문아래 골짜기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인다. 이 건물터는 문터와 관련된 건물이 자리 잡았던 것으로 인정된다.
(2) 그 밖의 건물터
성안에는 발굴된 건물터 외에도 많은 건물터가 있다. 외성안의 못재등 북쪽 쌍둥이못 근처에는 깊이 30m, 너비 4m 되는 장방형 건물터가 여러개 줄지어 있는데 병영터로 짐작된다. 외성 동문 부근에도 길이가 15m, 너비 3m인 건물터가 있다. 내성의 중심에는 면적이 약 800㎡되는 건물터가 있는데 창고터로 전해오고 있다. 내성서문 부근의 장방형 못자리 옆에도 길이 20m, 너비 3m 정도되는 건물터들이 여러개 있는데 이러한 건물터는 내성 북문부근에도 있다. 성문 부근에 있는 건물터들은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의 병실터들로 인정된다. 성안의 건물터들에서는 회색, 흑회색기와 쪼각들과 함께 붉은 기와쪼각들이 드러났다.
2. 쇠부리터
장수산성에는 다른 산성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생산시설물인 쇠부리터가 여러개 있다. 외성 안에는 룡소골 안에 4개소, 동문터 위턱에 1개소, 내성에는 남문터 부근에 1개소 있다. 이 가운데서 비교적 구조형식을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4개이다. 성안의 쇠부리터 가운데서 룡소골의 것을 외성 1호, 2호 쇠부리터, 동문터 부근의 것을 외성동문쇠부리터, 내성남문 부근의 것을 내성남문 쇠부리터로 명명하고 그 구조형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 구조형식은 일반적으로 같은데 제일 규모가 큰 외성 1호 쇠부리터를 보면 큼직큼직한 막돌과 진흙으로 모가 죽은 장방형의 쇠랑을 쌓고 쇠랑을 중심으로 하여 역시 큼직큼직한 막돌을 빙 돌려 쌓았는데 앞뒤에는 쇠랑벽을 두껍게 하고 좌우로는 점차 낮추면서 길게 쌓았다. 돌과 돌 사이는 진흙을 이겨놓고 안벽은 진흙을 3-4cm 이상 두껍게 발랐다.
그 생김새는 우에서 내려다보면 ≪⊚≫형으로 생겼고, 길게 자름면을 보면 ≪ꁒ≫형이다. 그리고 쇠부리터를 겉으로 보면 ≪∩≫형으로 보인다.
쇠부리터들은 쇠랑의 크기와 무지의 크기가 서로 다를 뿐 구조형식은 모두 비슷하다. 쇠랑벽에는 지금도 쇠물찌꺼기가 구워진 흙에 그대로 붙어있으며 쇠부리터 주위에는 슬라크들이 수북히 쌓여져 있다.
내성 남문 쇠부리터에는 쇠물이 흘러내리도록 하는데 벽돌이 리용되였다. 벽돌은 산성 아래 평지성 건축지의 고구려 문화층에서 드러난 벽돌과 꼭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