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화가 피다
소한대한 사이 겨울다운 매서운 추위가 물러간 일월 하순 넷째 일요일이다. 겨울방학에 들면서 정년퇴직으로 이어지기에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새벽녘 잠을 깨어 몇 줄 글을 읽고 쓰느라 날이 밝아온 줄을 몰랐다. 이른 시간에 찬밥을 데워 아침밥을 들고 때가 되어 국수를 끓여 점심까지 해결했다. 이후 날이 그다지 춥지 않아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나섰다.
연일 산천을 누벼서 그런지 두 다리의 무릎이 불편해 온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은 언감생심이고 낮은 산자락이나 강둑으로 걷는 정도인데도 관절에 무리가 오는 듯하다. 이럴 때는 정형외과를 찾아가기보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한결 나은데 코로나로 대중탕에 들기가 머뭇거려진다. 마금산 온천장은 물론 본포에서 걸어서 부곡으로 가 온천수에 몸을 담갔던 날들이 그립기만 하다.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려니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경우가 늘어간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창원천 천변 볕바른 자리는 인근 주택에서 나온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일광욕을 즐겼다. 나는 사림동 주택지에서 사격장으로 올랐다. 약수터에는 차를 몰아와 샘물을 받아가는 이들이 드나들었다. 가정용으로도 쓰지만 업소용으로 정수기나 시판 생수를 대신할 샘물이었다.
사격장 천연 잔디밭 바깥 트랙을 따라 걸었다. 시든 잔디는 양탄자를 넓게 펼쳐 놓은 듯했다. 운동장 가장자리 겨울을 나는 고목 벚나무는 가지마다 점지된 꽃눈이 봄을 기다렸다. 운동장 바깥 트랙을 몇 바퀴 걸어도 알맞은 산책이 되는 셈이었다. 소목고개로 올라 창원대학 뒤 숲속 나들이 길을 걸어보려다가 방향을 바꾸어 예전 인재개발원이 떠난 경남대표도서관 앞으로 내려섰다.
경남대표도서관과 이웃한 장애인종합복지관을 거쳐 내가 지난날 근무했던 학교가 나왔다. 단독 주택지에 위치한 학교를 지나 봉림산으로 향해 올랐다. 정병산의 옛 이름은 전단산으로도 불리고, 그 앞에 낮은 봉우리를 봉림산이라 이른다.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봉림산문의 봉림사가 있어서였다. 산중턱 옛 봉림사는 폐사되었고 남향 기슭에 새로운 절인 봉림사가 들어섰다.
청소년수련관과 함께 들어선 봉림사엔 법회인지,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인지 승용차들이 여러 대 드나들었다. 나는 법당 안으로 들지 않고 비탈진 등산로를 따가 올랐다. 봉림산 정상에 이르면 체력 단련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곳까지 가질 않았다. 산허리에서 봉림사지로 가는 길로 들었다. 전에 없던 대숲이 번져가는 언덕을 내려간 약수터에서 샘물을 한 바가지 받아 마셨다.
약수터에서 폐사지로 내려가 봤다. 예전에 텃밭으로도 개간했던 적이 있던 절터였다. 보물인 진경국사탑비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가고 삼층석탑을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시내 상북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다. 절터를 알리는 안내문엔 구전하는 폐사의 유래가 적혀 있었다. 밀양의 양반가에서 명당을 탐내어 절에다 무덤을 쓰려고 헛상여로 스님들을 유인한 뒤 묻었단다.
절터에서 대숲을 지나 골짜기로 내려가니 텃밭을 일군 농막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목으로 불을 때는 연기를 드물게 볼 수 있었다. 단감나무 전정을 마친 뜰에는 가지런히 쌓인 장작더미가 보였다. 텃밭 경작지를 지나니 분재원에 조경수들이 가득했다. 분재원 울타리에 자라는 영춘화는, 그 이름에 걸맞게 한겨울에도 꽃잎을 펼친 꽃송이가 보였다. 봄을 맞이한다는 꽃이 아니던가.
분재원 바깥은 예전 안담마을에 들어선 토지주택공사 아파트단지가 나왔다. 창원컨트리클럽 입구 조성된 한들공원에는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온 이들이 다수였다. 공원에서 주택지를 빠져나가 사림동 손대패 고깃집으로 향했다.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친구와 예전 근무지 퇴직 선배와 함께 잔을 기울이는 자리였다. 대패 삼겹살과 막창구이로 잔을 채워 비웠더니 날이 어두워왔다. 2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