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숲속에는 집이 있었다
겨울은 하얀 블라인드로 끊임없이 기억을 재생하는 집
깨끗한 눈송이가 사선을 그으며 내릴 때
집주인의 손에서 영사기는 돌아가고
이후 끝없이 되풀이될 에필로그가 된다
쏟아지는 눈발
기억은
발을 뒤덮고
하루가 지나
무릎까지 덮은 후
한 달이 흘러
어느덧 가슴까지 차고 오른다
한치 앞을 걷지 못하게 붙들어두는 차가운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온다
무언가 떠오를 때에는
발끝에서부터 양말이 젖곤 하였다
깨끗한 창문 밖 깨끗한 눈발이 만드는 프로젝터에서
흘러내리듯 상영되는 영화는 누구의 잠 속에 있던 꿈일까
몸에 닿으면 녹아내리는 이불을 덮고
방의 스위치를 내리면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반사되며 흩어지는 기억들
고산지대에도 집을 지을 수 있습니까?
평원은 매일 떨어지는 꿈을 꾸며 고산지대를 닮아 가고
웃자라며 흰색을 버리는 눈들
쌓인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면 발목이 점점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끝없이 자라는 눈발과 녹지 않고 쌓이는 눈
창밖으로 내려온 만년설
마음속에서 끝없이 재생되는 장면은
시간을 모른다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처럼,
어머니의 새 가방에서 소지품이 와락 쏟아지던 장면처럼.
기억은 저만의 달력을 따로 가지고 있다
하얀 내면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