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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절 유 물
성안에서 드러난 유물은 기와와 벽돌이다. 기와는 성안의 건물터들과 문터를 비롯한 성 시설물들에서 드러났으며 벽돌은 외성 1호 건물터와 내성 남문 부근 쇠부리터 등 성안의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1. 기와
기와의 종류는 비교적 다양하다. 성안에서는 색깔, 재질, 굳기, 무늬 등 형식과 내용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기와가 드러났는데 그 가운데서 성의 축조년대와 성격을 해명하는데서 대표적인 기와는 붉은색 기와와 회색기와이다. 그러므로 붉은색기와와 회색기와에 대하여 보려고 한다.
1) 붉은색 기와
붉은기와는 산성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기와가운데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그 종류에서도 암키와 수키와 암키와막새, 수키와막새 등 비교적 다양하다. 특히 암키와막새와 수키와막새는 다른 고구려산성들에서는 드물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주목되는 유물이다. 붉은기와의 재질은 모두 바탕흙에 약간의 석면과 모래를 섞은 것도 있고 가는 모래를 섞은 것도 있는데 다른 고구려 유적들에서 흔히 드러나는 기와의 질과 꼭같은 전형적인 고구려 기와질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1) 암키와
암키와는 1호 건물터는 비롯하여 산성 안의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산성에서 드러난 붉은 기와의 대부분은 암키와이다. 암키와는 거의나 쪼각상태로 드러났는데 두께는 대체로 1-1.5cm이다. 암키와의 앞면에는 모두 베천무늬가 찍혀졌는데 이것은 기와를 만들 때 기와의 돌에 베천을 깔고 기와를 찍어낸 것과 관련된다. 기와의 뒷면은 기와를 찍을 때 다지는데 쓴 도구가 다양한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무늬형식도 다양하다. 기본은 노끈무늬, 격자무늬, 그물무늬, 평행선무늬 등 여러 가지 기하무늬와 이깔잎무늬 등 고구려 기와무늬의 고유한 특징들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암키와를 뒤면에 돋힌 무늬형식에 따라 여러 가지로 갈라볼 수 있다.
① 노끈무늬 기와
노끈무늬기와에는 가는 노끈무늬기와와 굵은 노끈무늬기와가 있다. 가는 노끈무늬는 기와의 전면에 아래 우로 길게 촘촘히 찍혀졌는데 무늬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굵은 노끈무늬는 무늬의 선이 굵고 무늬가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② 격자무늬기와
격자무늬에는 직선의 간격이 넓은 것과 좁은 것, 선의 굵기가 가는 것과 굵은 것이 있다. 선의 간격이 넓은 것은 8-10㎜이고, 좁은 것은 3-5㎜이다. 선의 굵기가 얇고 굵은 것은 무늬가 찍혀진 후 그 우에 판자 같은 것으로 덧눌리우거나 눌리우지 않은 것과 관계되는 것으로 덧눌리우게 되면 무늬의 구획이 작아지게 된다.
③ 그물무늬기와
그물무늬는 선을 사선으로 그엇다는 점에서 다를 뿐 그 형식은 격자무늬에서와 같이 선과 선의 간격이 넓은 것과 좁은 것, 선이 굵은 것과 가는 것으로 갈라볼 수 있다. 격자무늬에서는 선 안의 구획의 생김새가 방형을 나태고 그물무늬에서는 릉형을 나타낸다.
성안에서 드러난 암키와 가운데는 그물무늬기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물무늬가 돋혀진 암키와 쪼각을 한개 복원해보면 생김새는 가로 자름면이 완만한 호형을 이루었고 아래 부분은 점차로 밋밋하게 얇아졌다. 크기는 길이 49cm, 너비 32cm, 두께 1.5cm이다.
④ 평행선무늬기와
평행선무늬는 일정한 간격으로 굵은 지선의 평행선을 내리 돋히거나 사선으로 내려돋힌 형식이다. 또한 직선의 평행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내리 돋히고 5-6개의 묶음으로 된 평행사선을 드문드문 돋힌 것도 있다.
⑤ 이깔나무잎무늬기와
기와의 뒤면에 길게 이깔나무잎무늬를 여러 번 돋힌 것이다.
⑥ 결합무늬기와
결합무늬로는 하나의 기와에 노끈무늬와 격자무늬가 결합된 것 격자무늬와 사선격자무늬, 평행사선무늬가 결합된 것, 격자무늬와 이깔나무잎무늬가 결합된 것. 이깔나무잎무늬와 릉형무늬가 결합된 것. 2-3겹으로 된 릉형무늬, 멍석무늬와 서로 교차된 평행사선무늬가 결합된 것 등 여러 가지이다.
암키와의 무늬가 이렇게 다양한 것은 기와를 지붕에 이었을 때 기와가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기와 제조 시에 여러 가지 무늬를 돋힌 다짐도구를 리용한 것과 관련되여 있다. 기와에 돋쳐진 여러 가지 무늬들에는 기와제조 당시 문화의 특징들이 일정하게 반영되게 된다.
(2) 수키와
수키와쪼각은 1호건물터에서 적지않게 드러났다. 수키와는 안쪽면에 베천무늬가 찍혀있고 반대쪽에는 거의나 무늬가 없다. 수키와 쪼각을 한개 복원해보면 생김새가 앞면은 넓고 뒤면은 좁다. 크기는 대체로 길이 47-50cm,앞면너비17-18cm, 높이 10cm, 뒤면 너비 13-14cm, 높이 7cm, 두께 1.5-2cm이다.
(3) 수키와 막새
성안에서는 고구려의 고유한 련꽃무늬 수기와 막새가 여러 점 드러났다. 수키와 막새는 최근 산성1호 건물터발굴과정에 건물터바닥에서 한개 드러났고 1960년대 산성조사과정에 두개 수집 되였다.
* ≪고고민속≫ 1966년 1호 45-48페지.
1호 건물터에서 드러난 수키와 막새는 직경 18cm, 두께 2.3cm, 막새테두리 너비 1.3cm이다.
무늬를 보면 막새를 중심에 4개에 4개의 련꽃잎과 감꼭지모양으로 생긴 4개의 나뭇잎을 서로 엇바꾸어 배치했다. 그리고 꽃잎의 좌우에 삼각형에 꼬리가 달린 모양으로 된 2개의 꽃실을 각각 배치했는데 모두 8개이다. 이와 꼭같은 무늬형식으로 된 수기와 막새는 이미 전에 외성 북문터 부근에서도 드러났는데 직경이 17cm, 두께는 2.3cm이다. 또한 산성 아래 아양리 소재지부근의 평지성과 월당리지역의 건물터들에서도 여러 개 드러났다. 이미 전에 남문터 부근에서 드러난 수키와 막새를 복원해보면 직경 16.5cm, 두께 3.3cm이고 무늬는 막새의 가운데 반구형의 꼭지를 마련하고 그 사이에 꽃잎을 한 개 씩 배치했다. 이 막새는 조각선이 굵고 음양의 차이가 심한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고구려 기와의 특징이다. 장수산성에서 드러난 련꽃무늬 수키와막새는 대성산일대의 고구려 유적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평양지방에서 이른 시기 고구려기와 무늬막새와 같은 것이다.
(4) 암키와막새
암키와막새는 성안의 남문부근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원래의 위치가 아니라 더 올라가 있던 것이 물에 밀려 내려온 것 임이 틀림없다.
* ≪고고민속≫1966년 1호 45-48페지
구체적으로 1호 건물터의 것이 밀려 내려온것이라고 인정된다. 완전한 것은 아니라 큰 쪼각이므로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쪼각의 길이는 12cm, 너비 6cm, 두께 2.5cm이다. 이 막새는 붉은 점토로 구은 점에서 산성안에서 드러난 암키와 수키와 수키와막새와 꼭 같은 질이며 무늬는 대성산 안학궁터에서 나온 암키와 막새와 꼭 같은 넝클무늬이다.
* 우와 같은 책 47페지. 그림 참조.
지금까지 고구려의 암막새기와는 왕궁터인 안학궁을 내놓고는 나온 례가 없다. 이런 사실과 비추어 볼 때 암키와 막새는 산성의 성격, 특히 1호 건물터의 성격을 해명하는데 중요한 물질자료로 된다.
2) 회색 기와
회색기와는 성안의 여러 건물터들과 문터, 성 시설물들에서 드러났다. 진회색과 연회색이 있는데 모두 보드라운 점토로 구워졌는데 바탕흙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것이 많고 간혹 모레를 섞은 것이 더러 보인다. 대부분 암키와이며 수키와는 드물게 보인다.
1) 암키와
모두 쪼각이므로 크기는 잘 알 수 없다. 두께는 2-2.5cm이다. 기와의 무늬는 여러 가지인데 앞면에는 모두 베천무늬가 돋혀 있고 뒤면에는 물결무늬, 평행선무늬등 여러 가지 기하무늬들과 결합무늬들이 돋혀 있다.
① 물결무늬기와
기와의 뒤면에 ≪ⅣⅥ≫형의 물결무늬를 가로 전면에 촘촘히 돋힌 것이다.
② 평행선무늬기와
기와의 아래 우로 길게 여러 개의 선을 그어 공간을 마련하고 선과 선 사이 공간드레는 짧은 평행사선무늬를 돋혔다.
③ 격자무늬와 이깔나무잎무늬가 결합된 기와
기와의 뒤면 량쪽에 가로세로 직선으로 그은 격자무늬가 있고 가운데 가로 이깔나무 잎무늬를 돋힌 것과 반대로 가운데 격자무늬가 있고 량쪽에 이깔나무잎무늬를 돋힌 것이 있다. 격자무늬의 공간은 정방형, 또는 장방형을 나타낸다. 격자선의 간격은 3㎜ 정도이다.
④ 평행사선무늬와 이깔나무잎무늬가 결합된 무늬기와
기와의 한쪽에 길게 평행사선을 내리긋고 그 옆에 이깔나무 잎무늬를 돋힌 것이다. 이밖에도 회색암키와에는 앞뒤로 길게 여러 줄의 평행선을 긋고 그 사이에 이깔나무잎 무늬와 격자무늬를 새긴 것도 있다. 산성 안에서 나온 이상의 무늬돋힌 암기와는 안학궁을 비롯한 고구려 건축터들에서 드러난 기와와 비슷하다.
(2) 수키와
수키와도 역시 심히 깨여진 쪼각이므로 그의 형태와 크기에 대하여서는 자세 히 알 수 없다. 두께는 1.5-2cm이다. 기와는 안에 모두 베천무늬가 찍히고 겉에는 대체로 무늬를 돋히지 않았는데 간혹무늬를 돋힌 것도 더러 보인다. 외성 안엔느 드러난 수키와 쪼각의 무늬를 보면 겉면에 앞뒤로 길게 3줄을 한조로 평행사선무늬를 돋혔다. 또한 이깔나무잎무늬만을 돋힌 것도 있다.
2. 벽돌
벽돌은 바탕흙이 보드라운 점토로 구워진 것이며 색은 회색이다. 크기는 큰 것은 길이 30cm, 너비 15cm, 두께 5cm이고 작은 것은 길이 25cm, 너비 14cm, 두께 4.5cm이다. 벽돌에는 글자를 새긴 것과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긴 것이 있다.
1) 글자가 새겨진 벽돌
글자 새겨진 벽돌은 두 개이다. 하나는 1호 건물터의 붉은 기와만이 깔려있는 목에서 드러났는데 글자는 벽돌의 짧은 측면을 두 구획으로 나누고 한 구획에 한자씩 ≪侯夭≫(후요)라는 글자를 돋음새김하였다. 글자의 뜻은 잘 알 수 없으나 년호는 아니고 벽돌을 만든 사람, 또는 벽도제작소의 이름인 것으로 짐작된다. 벽돌의 긴 측면에는 그물무늬를 돋히였다. 글자가 새겨진 벽돌의 다른 하나는 내성 남문부근 건물터에서 드러났다. 글자는 벽돌의 긴 옆면의 한쪽에 돋혔는데 글자가 잘 찍혀지지 않아서 무슨 글자인지 명백치 않다. 알 수 있는 것은 ≪口溒三王口…≫이다. 그 반대쪽 면에는 무늬를 형상하였는데 그것도 잘 찍혀지지 않아 무늬의 형태를 잘 알 수 없다.
산성안에서 드러난 글자 돋힌 벽돌은 글씨체에서나 글자를 돋음새김한 형식에서 산성아래 평지성안의 고구려 붉은 기와층에서 드러난 ≪영가7년≫이라고 새겨진 기년명 벽돌과 같다.
2)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진 벽돌
무늬는 일반적으로 넙적한 면에는 없고 짧은 측면과 긴 측면의 어느 한족에만 돋히고 그 반대편에는 돋히지 않았다. 무늬는 여러 가지 기하무늬와 식물무늬이다.
① 릉형무늬 벽돌
내성 남문부근 쇠부리 시설물에 리용된 벽돌가운데는 릉형무늬만을 돋힌 벽돌이 있다. 무늬는 벽돌의 짧은 측면에만 돋혔는데 짧은 측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장방형의 테두리를 빙 돌리고 두 개의 구획으로 나눈 다음 량쪽에 꼭맡은 릉형무늬를 돋혔다. 릉형무늬 안에는 각각 동그라미를 돋히고 릉형의 바깥쪽에는 2중으로 선을 돌렸다. 이외에도 릉형무늬의 구체적인 형태에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운데 석줄을 내리그어 두 구획으로 나누고 구획 안에 세겹으로 된 릉형무늬를 돋히고 그 안에 점을 찍은 형식과 두 구획중의 한 구획 안에는 외줄로 된 릉형무늬를, 다른 구획안에는 두겹으로 된 릉형무늬를 돋힌 것 등 릉형무늬 종류는 다양하다.
② 격자무늬 벽돌
격자무늬는 두 종류이다. 하나는 벽돌의 짧은 한 측면에 한 줄로 테두리를 빙 돌리고 그 안에 작은 격자무늬를 전면에 돋힌 것이며 다른 하나는 벽돌의 측면을 두 구획으로 나누고 매 구획에 가가가 사선격자무늬를 돋힌 것이다.
③ 릉형무늬와 여러 가지 형태의 무늬가 결합된 무늬의 벽돌
이런 형태의 무늬에는 궁형무늬와 고사리무늬가 결합된 것도 있고 릉형무늬와 넝쿨무늬가 결합된 것도 있으며 또한 사선무늬와 결합된 것도 있다.
④ 여러 가지 형식의 결합무늬벽돌
무늬는 벽돌의 짧은 측면 한쪽에만 돋혔는데 장방형의 구획을 두개 만들고 그 안에 반달무늬를 그리고 그 좌우에 정삼각형 무늬를 돋힌 것. 벽돌의 긴 측면에 격자무늬를 돋히고 짧은 측면에는 릉형무늬를 돋힌 것이 있다.
성안에서 드러난 회색벽돌은 모두 산성아래 평지성안의 고구려 붉은 기와층에서 드러난 기년명이 있는 벽돌과 그 질과 형태가 같다. 이것은 장수산성의 축조 년대를 밝히는데서 중요한 자료의 하나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