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⑪] 여름 보양식 추어탕
어릴 적 벼가 노랗게 익어갈 무렵, 아이들은 논으로 들어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미꾸라지를 잡곤 했다. 한여름과 초가을 지친 몸을 달래주는 보양식, 추어탕. 하지만 지역마다 요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추어탕은 크게 남도식과 서울(경기)식, 그리고 강원도(원주)식으로 나뉜다. 남도식은 다시 경상도식과 전라도식으로 나뉘는데 전라도식과 경상도식, 강원도식 추어탕을 소개한다.
[전북 남원]
미꾸라지 통째로 삶아 체에 걸러 큰 뼈만 제거…잔뼈 씹히고 걸쭉
된장 육수에 들깨즙 넣어 ‘눈길’ 시래기 가득 들어 있어 부드러워
전라도식 추어탕
전라도에서는 미꾸라지 잔뼈가 씹히는 진하고 걸쭉한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전라도식 추어탕을 맛보려면 추어탕의 고장 전북 남원을 찾으면 된다. 남원은 섬진강의 지류인 소하천이나 지리산 골짜기 개울에서 자란 민물고기를 활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특히 이곳 미꾸라지는 해감이 적어서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품질을 자랑한다.
광한루원 주변에는 50여곳의 추어탕 식당이 모여 있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향토전통음식점으로 지정된 ‘새집추어탕’은 1959년 문을 열어 60년간 전통을 지키며 전라도식 추어탕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삶아 체에 걸러 큰 뼈만 제거한다. 자잘한 미꾸라지 살점과 잔뼈가 들어간 국물은 농도가 진하다. 서정심 새집추어탕 대표(60)는 “과거에는 미꾸리(토종 미꾸라지)를 많이 썼지만 더딘 성장 속도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요즘에는 양식이 가능한 미꾸라지로 대체했다”며 “대신 미꾸라지는 크기도 크고 ‘뮤신(Mucin)’이 많아 건강에 좋다”고 설명했다. 뮤신은 미꾸라지 몸통에서 나오는 점액으로, 단백질 흡수를 촉진하고 위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된장을 푼 육수에 들깨즙을 넣는 것 역시 전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들깨를 갈아 체에 걸러주면 뿌연 쌀뜨물 같은 즙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육수에 넣으면 국물이 걸쭉해지고 고소한 맛이 난다. 또 시래기도 가득 들어 있어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서 대표는 “미꾸라지는 가을에 살이 오르는데, 이에 맞춰 가을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래기를 넣던 전통이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라도식 추어탕의 또 다른 특징은 향신료인 초피(제피·젠피)가루를 넣는다는 것이다. 시큼한 초피향이 미꾸라지의 비린 맛을 잡아준다. 다른 지역에서 넣는 산초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둘은 작물 자체가 다르다. 초피는 아래로 굽은 가시가 잎자루 밑에 한쌍씩 달리고, 열매의 껍질만 갈아서 향신료로 쓴다. 산초는 작은 잎에 잔 톱니가 있으며, 열매를 초절임하거나 기름을 짜서 먹는다. 전라도식 추어탕엔 향이 제일 강하다고 알려진 지리산 부근의 초피가 들어간다.
남원=서지민 기자 west@nongmin.com 사진=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경북 청도]
미꾸라지보다 다른 민물고기 더 들어가 삶아서 수차례 걸러 국물 맑게 끓여내
잎 얇고 아삭한 단배추 넣어 맛 은은 간장·소금·고춧가루로만 적당히 간해
경상도식 추어탕
국물이 묽어 뚝배기 속 된장국처럼 보이는 게 경상도식 추어탕이다. 민물고기를 통째로 삶아 거른 것은 전라도식과 같으나, 국물을 몇번이나 체에 걸러내 맑게 끓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상도식 추어탕을 선보이는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경북 청도가 있다. 청도역 주변의 ‘청도 추어탕 거리’엔 반백년도 훨씬 넘게 추어탕을 끓였다는 집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알토랑 추어탕’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 그리고 그 아들이 3대째 맛을 이어가는 집이다.
3대 사장인 조재광 대표는 “경상도식 추어탕은 국물이 맑고 잡내가 없다”며 “배추의 은은한 맛이 추어탕의 맛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특히 청도식 추어탕엔 ‘단배추’가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청도에선 얼갈이배추를 단배추라 부르는데, 잎이 얇고 아삭한 식감이 나는 싱싱한 단배추라야 경상도식 추어탕 국물의 깨끗한 맛과 제대로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무청 시래기나 두툼한 청방배추 등을 넣는 다른 지역의 추어탕과는 차이가 있다.
맑은 국물의 맛은 간장·소금·고춧가루로만 낸다. 된장이나 고추장 등 전분이 들어간 양념으로 간을 하면 국물이 탁해져서다. 얼핏 보기엔 국물이 된장을 푼 것처럼 노랗다. 조 대표는 “고춧가루를 적당히만 넣으면 딱 이런 색이 나온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따로 삶는다는 단배추와 국물을 함께 맛보면 아릿한 냄새는 사라지고 배추의 단맛만 남아 부드럽게 훌훌 넘어간다. 국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기가 실 가닥처럼 얇게 풀려 있다. 국물을 들이켜면 미꾸라지 뼈는커녕 깔끄러운 식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또 집마다 다르지만 처음부터 초피가루를 넣고 같이 끓여 맑은 국물에 향을 더하기도 한다. 참고로, 경남 마산과 부산 일부 지역에서는 추어탕에 방아 등의 향신료를 넣어 먹기도 한다.
청도식 추어탕의 독특한 점은 또 있다. 추어탕이지만 정작 미꾸라지보다 여타 민물고기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고기 열마리가 들어간다면 미꾸라지는 그중 한마리 정도고, 나머지는 메기·동사리·꺽지·모래무지·잉어·붕어 등이다. 내장을 제거해 국물이 더욱 맑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청도=이연경 기자 world@nongmin.com 사진=이희철 기자 photolee@nongmin.com
[강원 원주]
미꾸라지 갈지 않고 통째로 요리 형태 그대로 다 보여 호불호 강해
큰 멸치같이 뼈 씹는 재미 ‘쏠쏠’ 고추장 넣어…매운탕에 더 가까워
강원도식 추어탕
강원도식 추어탕은 좀 특이하다. 보통은 미꾸라지를 갈아 체에 걸러 끓이지만 서울식과 강원도식은 갈지 않고 미꾸라지를 통으로 요리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추어탕이라기보다 매운탕에 더 가깝다. 거기에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고추장을 쓴다는 것이다. 강원도식은 부추·미나리·파·느타리버섯 등을 넣고 된장 대신 보리로 만든 고추장을 풀어 칼칼한 맛을 낸다. 수제비용 밀가루 반죽을 넣기도 하고 감자를 썰어넣기도 한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통으로 쓰지만 된장을 기본으로 하면서 소 내장과 양지머리로 낸 육수에 유부·버섯·호박 등을 넣고 끓인다.
원주시 단구동의 ‘김가네 원주 추어탕’을 찾았다. 오전 11시30분이 넘어가자 테이블의 반이 이미 가득 찼다. 서울에서도 통추어탕을 하는 곳은 많다. 통추어탕은 미꾸라지 형태가 그대로 다 보여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강원도식 추어탕집에는 미꾸라지를 통으로 쓰는 ‘통추’와 갈아서 만드는 ‘갈추’를 함께 내놓는다. 서울식 추어탕으로 유명한 서울 중구 다동의 ‘용금옥’의 경우 예전에는 ‘통추’와 ‘갈추’ 주문 비율이 엇비슷했지만 요즘에는 ‘통추’ 주문량이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테이블에 ‘통추’가 올라와 있었다.
추어탕에 먼저 초피가루를 취향에 맞게 넣어 고루 젓는다. 들깨가루를 조금 넣어도 좋다. 한술 뜨면 초피향이 먼저 코를 자극하고 고추장의 맵싸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미꾸라지는 큰 멸치를 씹는 느낌이며 끝 맛은 약간 쌉싸래하다. 살은 부드럽고, 뼈가 있어 씹는 재미가 있다. 두어숟갈 국물과 미꾸라지 맛을 봤다면 밥을 서너숟갈 정도 말아보자. 탄수화물의 단맛이 국물에 배어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추어탕’과 ‘추탕’이라는 이름이 함께 쓰였는데 최근에는 대부분 ‘추어탕’이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이 둘은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아 체에 곱게 내린 후, 그 물에 된장을 풀어 우거지 따위와 함께 끓인 국’으로 설명돼 있고, ‘추탕’은 ‘고추장을 푼 육수에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두부·유부·호박·고추·양지머리 따위와 함께 끓인 국’이라 나온다. 그러니 서울식이나 강원도식은 ‘추어탕’이 아니라 ‘추탕’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원주=글·사진 김도웅 기자
첫댓글 여름추어탕 좋지요
저는 추어탕 먹은지 얼마 안됐어요. 갈아서 만든 추어탕을 먹었는데 구수하니 괜찮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