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을 볼 때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투 능력과 한계 투구가 가장 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아직 다시 나오지 않고 있는
96년 투수 4관왕에 빛나는 구대성을 기억한다.
방어율, 다승, 구원, 승률...
탈삼진 또한 이닝당 1.3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예년 같으면 탈삼진왕에 올랐을 183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놀라운 시즌을 보냈다.
(다승,구원 동시 석권은 송진우와 구대성만이 유일하게 해낸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철저한 분업화와 구원랭킹이 세이브제로 바뀌었기 때문 )
96년 그의 경기를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6회이후 팀이 동점이거나 근소하게 리드하고 있을 때
승부처다 싶으면 감독이 곧바로 구대성을 올린다.
그가 96년 한해 동안 당한 패배가 3패..
그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히 했다..
무리를 했는지 공을 던지다가 허리가 아프다고
마운드에서 잠시 주저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는 140Km대의 강속구를 뿌린다..
너무 아프다고 하는 날은 절묘한 변화구로 마무리 짓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듯 마운드에 올라와 씽씽 공을 뿌린다.
물론 프로야구 초창기 때 장명부와 같은 철인이 있긴 했지만
프로야구가 발전한 96년도에 그가 보인 모습은 정말 놀랍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아프다고 하면서도 곧장 빠른 볼을 던질까??
99년도에는 한국시리즈 내내 등판해서 연투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그 결과 한국시리즈 MVP에 등극하였다.
구대성이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마무리 투수로 뛰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대성의 한계 투구 능력을 감상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간혹 뛰는 경기에서 그는 엄청나게 많은 공을 던지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마무리 투수로 뛰는 선수들은
갑자기 선발로 돌아설시 볼배합도 문제가 생기지만
무엇보다도 투구수에서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시즌 중에 마무리 투수가 선발로 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고
팀의 사정상 뛴다 하더라도 한계투구수가 높지 않다.
최고 투수로 뛰던 96년 시절
구대성은 시즌 막바지 거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
다승왕을 굳히기 위해서 갑자기 선발등판을 했다.
아마 두산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이 마무리 투수인데 선발로 돌아선 것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
9이닝동안 1실점을 하며 마무리 지었다..
구대성의 위력이 전세계에 드러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구대성은 일본과의 3,4위전 경기에 마운드에 올라가
9이닝 1실점으로 완투를 하며 한국을 동메달로 이끌었다.
그때 투구수가 무려 160개...
당시 국내에서도 뛸 때 구대성의 보직은 마무리였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구대성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공을 씽씽 던지는 매일 공을 던지는 연투 능력과
선발투수로 그가 보여준 한계 투구 능력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초창기 프로야구를 보지 않았지만
초창기 프로야구에서도 구대성과 같은 선수들이 좀 있었던 것같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선수 생명이 짧았다.
구대성?? 올해 35살 나이이다.
여전히 잘 던진다..
얼마전 일본에서 구대성이 던진 163개의 공..(완투승)
이것으로 우리는 구대성이 "여전하다"는 것과 함께
그 나이에도 그렇게 던질 수 있다는 것에
다시 경이감을 갖게 만들었다.
구대성이 어떤 선수인가?
구대성에 대해서 알려고 한다면
그의 한화시절 성적으로 그를 보는 것으로 부족하다.
그는 아마 시절 최고 투수 였다.
가는 곳마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는 최고 투수상을 휩쓸었다.
동기에서 이상훈(전SK)이 더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지만
동년배에서 최고 투수는 구대성이었다.
15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직구와 날카로운 변화구, 그리고
상대를 더욱 혼란 스럽게 만드는 릴리스하는 손이 잘 보이게 던지는
스리쿼터 투구폼은 투구에 관해서는 역대 어떤 선수에도 꿀릴 것이 없다.
한화에서 뛴 선수 중에 가장 화려한 아마 시절을 보낸 선수를 꼽는다면
송진우 못지 않게 구대성을 꼽을 것이다.
(누가 더 우위인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구대성의 아마시절은 화려했다)
80년대 아마 최고투수는 불행히도 어느 정도의 혹사를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구대성도 대학시절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프로에 와서도 초반에 그 부상의 여파로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 이후 구대성은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했고
지금은 일본에 가서 뛰고 있다.
그렇게 던지고도 팔에 이상이 없단 말인가??
정말 신기하다....
엄청난 강골이다.
구대성에게 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은 그의 마운드에서 보이는 태도이다.
잘 던진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투구를 한다.
하위 타순에서 슬렁 슬렁 공을 던지거나
(그래도 잘 잡긴 한다.)
뚜렷한 목표가 주어지지 않은 경기에서는 일부러
대충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일본으로 가기전 2000년..
마무리에서 별다른 재미를 못 본 대신
방어율이 낮아서 방어율 타이틀을 차지할 기회가 왔다.
그래서 규정이닝을 채우기 위해 선발로 올라갔다.
그런데 여기서 희안한 상황이 벌어졌다.
구대성은 방어율 2위와 격차가 많았기 때문에
정말 규정이닝을 채우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5이닝 10실점을 하고 만 것이다.
방어율 2.5도 안 되는 투수가 10실점이라....
이것 외에도 동기 부여가 안되는 경기에서
그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한국에서 남긴 성적은
그의 실력에 비해서 뛰어난 것이 아니다.
확실하게 동기부여가 되는 경기에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투수였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국제대회에 나가면
뛰어난 투구를 선보이며 국제용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나는 구대성과 한 시대를 살았고
야구장에서 구대성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자랑스럽다..
야구장에서 구대성 보는 날은 어찌나 기분 좋던지..
메이저리그에서 샌디 쿠팩스가 뛰어난 통산 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화려함으로 당시 팬들의 환호를 받았듯이 말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한 시대가 지났을때
구대성을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것같다는 것..
그가 남긴 그저 그런 기록 때문에 말이다.
(그의 실력에 비해서..^^)
어쩌면 몇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화려함이
더 깊게 기억에 남을라나...
한번이라도 좋으니
구대성이 한국에서 뛰는 모습 다시 보고 싶다.
한화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좋겠지만
친선 경기여도 좋다.
구대성의 화려한 투구가 머리 속에 지금도 멤돈다...
첫댓글 1970년생이라....몇년간 던질 수 있을지...
구대성 선수 69년 생 아닌가요? 69년 8월로 알고 있는데...
저도 구대성을 최고투수라고 생각하는데... ^^ 마지막으로 한화에서 뛰는 모습을 보속싶어요~ ^^
구대성은 최고의투수임에 분명합니다...정말 다시 구대성 선수가 한화에서 뛰는 그날을 생각하며... 열심히 한화을 응원합시다. 한화 화이팅!! LG전 3연승합시다..
구대성 선수, 69년생 맞아용, 저랑 띠동갑이시거등요~^^: 이글스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 다시 보고 싶네요!
1993년에 입단해서 1970년생 아닌가요?
구대성 선수 소위 말해서 2년 꿇었어요~동기인 이상훈, 이종범 선수보다 2살 위거든요
구대성 아마 일본서 은퇴할듯...한국 프로출신 일본 최장 시즌 기록,한국국적 선수 일본 잔류기간 역대 2위
우와 감동적이네요 .. 저두 어서빨리 구대성 선수가 빨간 7부 유니폼을 입게되길 바랍니다^^
감동이네요.. 천재윤대협? 그래도 이렇게 많이 던지는건 걱정되는데...ㅡ.ㅜ
외계인 안닐까요? ^^;;;;
와...좋은글이네요
전 기억 할껀데용!!!
일본 애들 또 구대성 선수 혹사 시키는건 아닌지.. 어제 164개 던지면서 완투했다죠. 조성민선수도 일본에서 130개 140개는 기본으로 던지다가 결국엔 탈나더니.. 쩝.. 구대성 선수 보고 싶어지네요..^^;;
구대성 선수... 진짜 고무팔입니다... 어제 투구하는거 보면서 투구수가 많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 끝내는 완투하셨네요....;;
구대성 선수68년생입니다.이상훈71년생 이종범70년생 양준혁69년생..나이는 제각기인데 93년도 동기생들입니다.구대성 한양대.이종범건국대.이상훈고려대.양준혁영남댄가?(상무)로입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