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 장 장수산성의 축조년대
장수산성의 축조년대를 밝히는 것은 장수산성의 성격은 물론 그 부근 유적유물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왜냐하면 산성의 년대고증을 정확히 하여야 그에 기초하여 산성의 성격을 해명할 수 있으며 산성부근의 도시유적과 고구려 무덤떼의 성격도 명백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장수산성의 년대를 바로 해명하는 것은 또한 고구려의 장수산 일대에로의 진출시기와 목적 이 일대 고구려 산성들의 축조시기를 밝힘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장수산성과 그 부근의 유적유물, 그리고 이미 편년된 다른 고구려유적 유물을 통하여 산성의 축조년대를 밝히려고 한다.
제 1 절 편년기준
장수산성은 그의 축조 년대를 밝힌 기록이 없다. 또한 성안에서도 성의 축조 년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나온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산성의 년대 고증을 위해서는 성안에서 드러난 고고학적 자료들과 함께 산성과 밀접한 련관이 있는 유적유물자료들에 의거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장수산성의 편년기준으로 될 수 있는 것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하는 것부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장수산성의 편년기준으로는 산성과 련관되여 있는 유적유물자료들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것으로는 우선 산성 안에서 드러난 유물인 기와와 벽돌이 있다. 성안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은 산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유물이다. 기와와 벽돌은 건축물에 쓰이는 건축부재로서 그것은 건축물을 이루고 있는 중요 구성요소로 된다. 따라서 건축물과 건축부재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시기의 건축유적들에서 많이 드러나는 기와와 벽돌들에는 당시의 생산과 기술문화의 발전수준이 일정하게 반영 되여 있으므로 해당 유적의 성격과 시기성을 론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리용될 수 있다.
장수산성의 시설물들인 성문터와 성안의 건물터, 쇠부리터 등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은 성 건축에 직접 리용된 건축부재로서 산성의 축ㅈ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유물이다.
다음으로 장수산성의 편년기준으로는 성밖의 도시유적과 무덤이 될 수 있다. 성밖의 도시유적과 무덤은 장수산성남쪽의 구릉지대와 재령강 량안의 평지대에 있는 아량리토성, 아양리, 월당리, 건축지 1000여기의 고구려 돌칸흙무덤떼이다.
이 유적들은 모두 산성을 포함하여 사방 10리 남짓한 범위안에 있으며 유물갖춤새에서 공통점이 많다. 이것은 성밖의 도시유적과 무덤이 산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유적이라는 것을 의미해준다. 그러므로 산성에서 드러난 기와, 벽돌과 함께 성밖의 도시유적과 무덤도 산성의 편년에서 참작해야 하며 편년기준으로 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시해야 될 것은 기와와 벽돌이다. 그것은 성안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이 성의 축조와 가장 밀접하게 련관된 유물로서 년대 추정의 징표가 뚜렷하고 년대 측정이 가장 가능한 유물로 되기 때문이다.
어떤 유적의 년대를 밝힘에 있어서 기년명이 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해당유적의 년대를 고증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기준자료로 된다. 이러한 자료가 장수산성안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았지만 산성에서 나온 것과 꼭같은 유물인 벽돌가운데 기년명이 새겨져 있는 것이 산성부근 유적에서 드러났다. 이것은 성의 년대를 밝히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된다. 또한 산성 안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기와가 산성부근의 넓은 지역에 분포된 여러 유적들에서도 모두 드러나는 가장 보편적인 유물인 것으로 하여 성의 년대 추정을 보다 가능하게 한다.
때문에 기와의 변천과정을 주변유적과의 호상련관 속에서 고찰할 수 있으며 산성안 기와의 년대를 밝힌데 기초하여 산성의 년대를 밝힐 수 있게 한다. 이에 대하여서는 기와를 통한 산성의 년대 고증을 위하여 좀 구체적으로 보려고 한다. 우선 산성 안에서 나타난 자료를 가지고 년대를 직접 밝힐 수 없는 조건에서 산성부근에 배치된 유적과 거기에서 볼 수 있는 기와 분포상태를 비롯한 산성 밖의 기와부터 검토하기로 한다.
장수산성부근의 유적을 보면 아량리토성 건축지와 무덤이다. 이 유적들은 산성남부에 동서남북 사방 10리 남짓한 범위에 배치 되여 있다. 기와는 이 유적들이 배치된 장수산성 동남부, 재령강 동서 량안의 평지와 구릉지에 분포되여 있다.
재령강의 동쪽은 신원군 월당리이고 서쪽은 아양리지역이다. 두 지역의 자연 지리적 조건과 기와분포상태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량리 지역과 월당리 지역의 기와분포정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양리 지역은 장수산과 직접 잇닿아있는 지역으로서 여기에는 토성을 비롯하여 건축터와 무덤의 일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의 북쪽에는 장수산이 높이 솟아있고 동쪽은 재령강, 서쪽은 장수산의 하니봉 밑에서 남으로 뻗은 긴재등에 의해 사방이 막혀 있는 매우 아늑한 지대이다. 남쪽으로는 멀리 남지산이 곧추 바라보인다.
아양리 지역의 강 건너 대안은 월당리 지역이다. 서쪽의 긴재등을 넘어서면 신원읍(구 하성)에 닿고 남으로는 신 하성과 잇닿았다. 이 지역의 기와분포 범위는 강기슭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1.5km, 강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약 3.5km에 달한다.
아양리지역은 기와의 분포상태에 따라 성현지구, 동산지구, 상동지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성현지구는 산성에서 남쪽으로 약 1.7km 떨어진 신원군 아양리 성현동 벌판을 빙 둘러 막은 토성지구이다. 이 지구는 현재 논밭으로 정리 되여 있다. 이 지구는 전반적으로 평탄한데 거의 전 지역에 기와가 산포되어 있다. 특히 아양리토성 안의 중심에 위치한 건물터구역에서 많은 기와 쪼각들이 드러났다. 기와는 청회색기와, 붉은색 기와, 회색기와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곳에서 기와를 기본 내용으로 한 문화층의 층위가 명백하게 드러났으며 거기에서 또한 년대가 새겨진 유물도 나온 것이다.
동산지구는 산성남쪽 기슭을 차지하고 잇는 아양리의 감천동, 도마동, 동산동, 사직동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산성남쪽기슭은 산 밑에서부터 밋밋하게 남쪽으로 경사를 이루면서 평평해졌으며 평지의 남단은 사직골 안에서 동으로 흐르는 개울에 의하여 잘리웠다. 동산지구의 남쪽은 성현지구이다. 이 지구의 동쪽은 재령강, 서쪽은 긴재등, 북쪽은 장수산, 남쪽은 성현지구와 접하고 있다. 이 지구의 지층을 보면 지표면에 막돌이 전반적으로 덮여있고 그 밑에는 강자갈층이 있다. 동산지구에는 전반적 지역에 기와가 분포 되여 있다. 기와는 회색기와가 대부분이고 붉은색 기와도 더러 있다. 붉은기와는 재령강기슭과 도마동 앞 벌판의 세 지점에서 드러났다. 이 지구에서는 청회색 기와도 보이는데 그 수는 매우 적다. 청회색 기와는 도마동 앞 벌판에서 드러났다.
상동지구는 도성지구의 남단 아양리 지역의 최남부 지역이다. 이 지구는 동으로 재령강 서쪽으로는 하성, 북으로는 성현지구와 각각 면하고 있으며 서남쪽에는 남지산이 솟아있다. 이 지구는 밋밋한 구릉지대로 되여 있으며 지층은 도성지구와 같다. 상동지구는 기와가 조밀하게 분포되여 있는 성현지구, 동산지구와는 달리 매우 드물게 분포 되여 있으며 그것도 어느 한 곳에 집중 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분포 되여 있다. 기와의 대부분은 회색, 흑회색기와이고 붉은 기와는 드물게 드러났다.
월당리지역은 재령강의 동쪽 기슭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넓은 벌판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지층은 전반적으로 모래가 2.5m 이상 쌓인 모래층이다. 기와는 강 동쪽기슭의 벌판인 반송동으로부터 강의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서 상월동 룡호동 지역까지 분포 되여 있다. 기와의 분포범위는 동서로 약 1.2km, 남북으로 약 4.5km에 달한다.
기와의 분포상태는 편의상 반송동지구, 상우러동지구, 룡호동 지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반송동지구는 월당리 지역의 맨 북쪽지역이다. 이 지구는 아양리 동산지구의 강건너 대안으로서 북쪽은 운양리와 남쪽은 하월동, 서쪽은 재령강, 동쪽은 정방산 줄기와 잇닿아 있는 구릉지대와 면하고 있다. 기와는 반송동 부락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약 400m, 동쪽으로 300m 범위에 분포되여 있다. 기와는 모두 붉은 기와이다.
상월동지구는 북쪽은 하월동, 남쪽은 룡호동과 접하고 있다. 기와는 상월동과 하월동이 잇닿는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약 400m, 남북으로 약 500m 범위에서 드러났다. 기와가 드러난 지점은 강 건너 아양리 토성과 동서로 대칭되여 있는 곳이다. 기와는 모두 붉은 기와이다.
룡호동 지구는 상월동 지구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룡호동 지구의 뒤에는 룡산이 동서로 길게 놓여있고 앞에는 강건너 신원군 장금리가 자리 잡고 있다. 기와는 강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룡호동 부락으로부터 강의 상류를 따라 약 500m 내려와서 룡산 남쪽 기슭에 집중적으로 분포 되여 있다. 그 범위는 동서로 약 120m, 남북으로 약 80m에 달한다. 기와는 모두 붉은 기와이다.
이와 같이 기와는 산성부근의 넓은 지역, 여러 유적들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하여 산성의 년대를 부근 유적유물과의 호상 통일적인 련관 속에서 고찰할 수 있게 한다. 기와는 또한 산성부근의 넓은 지역에서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유물 가운데서 그 수와 종류가 제일 다종다양하다. 장수산성과 그 부근유적에서 드러난 유물과 기와, 벽돌, 질그릇류, 철기류, 봉석, 청동구슬, 가락바퀴 등이다. 그 가운데서 제일 수가 많은 것은 기와이다.
이 일대에서 드러난 기와는 종류와 형식도 다양하다. 기와는 암기와 수기와 암키와막새, 수기와 막새, 마루기와 등 여러 가지이며 색깔과 재질, 무늬형식돠 비교적 다양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와를 색깔에 따라 크게 갈라보면 청회색기와, 붉은색기와, 회색기와(흑회색기와 포함) 등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청회색, 붉은색, 회색 등 세 종류의 기와들은 질과 무늬형식, 출토지역과 드러난 상태에서 서로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 종류의 기와들 가운데서 산성과 도성 건축지, 무덤 등이 일대의 모든 유적들에서 드러나는 것은 붉은 기외이다. 붉은 기와는 그 종류도 제일 다양하다. 붉은 기와에는 암키와 수키와, 암키와막새, 수키와막새, 마루기와 등이 있다. 이러한 기와들은 모두 색깔과 재질, 무늬형식에서 차이가 없다.
산성남부의 아양리토성과 아양리지역의 건축지들에서 드러난 회색기와도 산성 안에서 드러난 기와와 공통하다.
붉은 기와와 회색기와의 구체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이미 산성안의 유물을 취급하면서 서술하였다.
청회색기와는 산성 안에서 드러난 기와 가운데서는 볼 수 없는 유물이다. 그러나 청회색기와는 장수산성과 관련이 있는 부근 유저에서 붉은색, 회색기와와 함께 드러난 것으로 하여 기와의 년대를 측정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청회색기와는 아양리지역의 성현동토성안에서 드러난 것이 대부분이다. 청회색기와에는 암키와, 수키와, 마루기와가 있다. 그 가운데서 대부분은 암키와이고 수키와와 마루기와는 매우 적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재질은 보드라운 바탕흙에 아무것도 섞지 않았으며 굳기가 연하다. 기와는 모두 심하게 깨여져 그의 크기에 대하여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암키와의 형태를 보면 가로 자름면이 완만한 호형을 이루었는데 아랫단은 밋밋하게 얇아지다가 뚝 끊기고 위쪽은 직각으로 잘리웠다.
기와의 두께는 대체로 2-2.5cm이다. 암키와에는 여러 가지 무늬가 돋쳐있는데 앞에는 모두 베천무늬가 돋혀있고 뒤에는 여러 가지 기하무늬가 있다. 뒤면에 새겨진 무늬에 따라 노끈무늬, 격자무늬, 이낄나무잎무늬, 이깔나무잎무늬에 격자무늬와 그물무늬가 결합된 무늬, 평행사선무늬, 릉형무늬, 꽃무늬기와로 갈라볼 수 있다.
노끈무늬는 기와의 아래 우로 길게 돋치였는데 1-3세기 서북조선문화에서 볼 수 있는 노끈무늬보다 대체로 깊고 둑한 것이 특이이다. 격자무늬는 전면에 돋치였는데 비교적 규칙적으로 배치되였다. 이깔나무잎무늬는 기와의 전면에 아래 우로 길게 돋치였는데 마치 살가죽을 벗겨놓은 민물고기 등뼈에 가시가 붙은 것과 같다. 무늬는 비교적 섬세하다.
이깔나무잎무늬에 격자무늬와 그물무늬가 결합된 무늬는 기와의 아래 우로 길게 여러개의 구획으로 나누고 매구획의 한면에 그물무늬와 지그지그형의 평행사선무늬를 돋치였다.
격자무늬는 매개 구획에 다하지 않고 한 구획에만 하였다. 평행사선무늬는 기와의 전면에 사선으로 평행선을 그었다. 릉형무늬는 세겹으로 된 릉형무늬를 세로 련속 돋치고 릉형과 릉형사이 공간에는 고사리 무늬를 돋치였다.
꽃무늬는 일정한 크기의 구획을 아래 우로 길게 장방형으로 마련하고 그 안에 꽃잎을 형상한 것이다. 수키와는 가로 자름면이 급한 호형을 이루고 있는데 한쪽에는 밋밋하게 얇아졌다. 그 질은 암기와와 같다. 두께는 1.2cm이다. 청회색기와 가운데는 마루기와 쪼각도 있다. 그의 질과 굳기는 암키와와 같은데 다만 두께가 좀 얇고 무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 두께는 1cm 안팎이다. 이와 같은 장수산성과 그 부근 유적에서 드러난 기와의 모습이 다종다양한 것은 거기에 반영된 생산력 발전수준이 각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기와의 변천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기왕의 년대 고증을 기초로 산성의 년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의 하나로 된다.
이 밖에도 장수산성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노근무늬 격자무늬, 그물무늬를 돋힌 고구려 고유의 붉은 기와와 련꽃무늬 수키와 막새는 이미 고구려의 수도 건물이었던 중국 길림성 집안일대와 평양일대의 고구려 유적들에서도 많이 드러나 편년된 것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장수산 일대에서 드러난 기와는 이미 편년된 기와도 대비하여 년대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와와 벽돌은 산성의 편년기준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자료로 된다. 그러나 주변유적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산성과 성밖의 유적은 서로 밀접히 련관 되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성이 성밖의 도시유적을 보위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며 무덤떼는 산성과 도시 유적을 쓰던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서 불가분리적으로 련관 되여 있는 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년기준으로 되는 모든 것의 년대를 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