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대폿집 애창곡 ‘오동동 타령’의
‘오동추’는 누구일까?
‘신고산 타령’ 흥얼거리다
뒤늦게 알게 된 노래 사연
< 일러스트=한상엽 >
집안 대소사에 대한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 괜한 꼬투리에 짜증까지 더해 종종 무던한
마나님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천성이 까칠하고 소심한 탓인지, 아니면
남자가 나이가 들면 너 나 할 것 없이 밴댕이
소갈머리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찮은 일에 집착하고 사소한 문제에도
큰 탈 난 사람인 양 끌탕을 한다.
햇살 좋은 가을날에 바람이나 쐬려고
전남 여수에 다녀왔다.
여천공단의 엄청난 규모에 놀랐고, 금호도
비렁길을 숨이 차도록 오르내리며 탁 트인
바다에 가슴까지 시원했다.
맛깔스러운 남도 음식도 입에 맞았다.
어스름해서 숙소를 찾아가는데 이정표에
‘오동도’가 눈에 띈다.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문득 ‘오동동 타령’이
떠올랐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옛 청진동 허름한 대폿집에서 젓가락으로
죄 없는 술상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이던
애창곡이다.
----오동동 타령 =노래.황정자----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의 막걸리를 맛도
모르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낙지는 가뭄에 콩 나기라 차라리 매운
채소 볶음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낙지볶음이
단골 안주였다.
‘오동동 타령’ 속 ‘오동동’의 유래가 혹시
여수 오동도가 아닐까 하는 상상과 함께
새삼 ‘오동추’가 누군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태껏 그저 권주가라 여기며 무턱대고
앵무새처럼 입을 놀렸을 뿐, 뜻을 조목조목
따져 보지 않았다.
옆의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라는
노래 알지?
‘오동동’이 오동도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그리고 ‘오동추’는 또 누구야?”
근거 없이 ‘오동추’가 오씨 성(姓)을 가진
사람이고 ‘야’는 손아랫사람을 부르는 조사로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는 엉뚱한 물음에 눈만 깜빡이다가
“글쎄, ‘오동동’은 잘 모르겠는데 ‘오동추야’의
‘추야(秋夜)’는 가을밤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했다.
뜻밖의 답변이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오동동 타령’은 1950년대 황정자가 불러
히트한 노래다.
이미 ‘오동동’을 오동도와 연관 지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황정자의 증언으로
‘오동동’은 마산의 먹자골목 동네로 밝혀졌다
. ‘오동추야’는 아내 추측대로 오동잎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밤의 묘사였다
.
‘어랑 타령’이라면 고개를 갸웃해
도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 차 떠나는 소리에’
하는 장단에 어르신들은 금방 어깨를
들썩인다.
함경도 지방 민요로 개화기 무렵에 등장했다고
추정하는데 작곡·작사자는 모르고
가사 앞머리를 따라 ‘신고산 타령’이라 부르기
도 한다.
숱하게 ‘신고산 타령’을 흥얼흥얼하면서도
‘신고산’이 설악산이나 금강산처럼 동해안
어딘가의 높은 산(山)인 줄 알았다.
함흥으로 향하는 기차의 우렁찬 기적 소리가
산을 무너트릴 지경이라는 뜻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신고산’이 정확하게 어느 지방에 있고
또 얼마나 높은 산인지 알고 싶어졌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신고산’이 산이 아니고 고을 이름이었다.
누구에게 들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식이 통통 튀겨 얼굴이 화끈했다.
일제강점기에 함경남도 원산 부근의
‘고산’이란 마을로 경원선이 지나게 됐다.
마을 외곽에 역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신시가는 신(新)고산으로, 원래 마을은
구{舊)고산으로 고쳐 불렀다.
경원선이 함흥까지 연결되고,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철마를 보며 시골 처녀가
대처에 대한 동경에 가슴이 설렜다는 노래다.
내용을 알고 나니
둘째 소절 ‘구고산의 큰애기
빈 봇짐만 싸누나’에 이미 답이 있었다.
개화기에 급변하는 사회상을 가사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학생 시절부터 꽤 즐겨 부르는 곡이 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동무 생각’이다.
대구에서 활동하던 이은상과 박태준이
작사·작곡한 동요풍으로 1920년대 노래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노랫말이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청라언덕이 어디인지는 무심히 지나쳤다.
돌이켜 보니 음악 시간에 노래를 배우면서
발음도 쉽지 않은, 참 이상한 이름의 언덕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무료한 주말 오후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애꿎은 TV 리모컨만 못살게 굴고 있었다.
대구의 볼 만한 명소를 소개하는
여행 프로에서 3·1 만세 운동 길 청라언덕을
설명하는 진행자의 멘트에 귀가 쫑긋했다.
대구 동쪽 얕은 동산에 서양 선교사 집의
담벼락을 담쟁이가 덮고 있어서 청라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옥편을 찾아보고 ‘나(蘿)’가 ‘쑥 라’라는 사실을
알았고 결국 청라는 푸른 담쟁이라는 뜻이었다.
평소 상식깨나 있다고 주름을 잡았는데
그만 스타일을 구기고 말았다
‘오동추’와 ‘신고산’이 사람, 산이 아니고
‘청라언덕’의 유래를 모르면 어떠냐.
‘전국 노래자랑’이나 ‘미스터 트롯’에 출전할
처지도 아닌데 혼자서 중얼거리는 노래가
저 좋으면 그만이지 미주알고주알 따질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교단에 있을 때 무엇이든 미심쩍은
내용은 꼭 책을 찾아서 확인하라고 후학을
호되게 다그쳤는데 정작 스스로는 실천에
옮기지 못했으니 낯이 뜨겁다.
모르는 것을 찾아보지 않고,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지낸 것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도 즐겨 부르던 노래의 정확한 내용을
흰머리의 좁쌀영감이 돼서야 터득한 속사정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동방삭
아래 시조와 같은 악처를 만나지 않고,
그 정도 잔소리하는 마나님 만난 것은 복이라
생각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정수기 3행시조 2 ;;;
정수기탓 남편구속 임박이라 울어대자 //
수표받아 남편죽인 양수기가 쬐려봤다 //
기죽어 워메기죽어 악처에도 졌구나
참고인
겸손하고 재미있게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디치텐첼로 브이에
은퇴한 남자의 한가로운 일상..
저명인사급이라 대표적 일간지에 글도 올리고..
나같은 '장삼이사'는 은근슬쩍 부럽기도..
Zstellar
재미있는 글이군요. 오동추야 노래에 ?g힌
애궂은 사연 한가지...
옛날 나 어릴적에 우리집 아랫 편에 무뚝뚝한
남편과 아주 얌전하고 정숙한 아내가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남편의 이름이
'동춘'이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그의 아내가 평소에는 전혀
그런 적이 없었는데 또래 아주머니들과 계모임을
하고 친구들의 짓궂은 권유에 못이겨 한계를
한참 넘는 술을 마시는 실수를 하였지요.
물론 시부모님을 모시기에 평소에는 술을 마실
것을 엄두도 못내었지요.
그리고 한잔 거나하게 한 기분으로 집에
돌어와서는 자고 있는 남편앞에서 '오동춘아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하고 한곡 불러
재꼈는데 남편이 기가막혀,
뭐? 오동춘아?
이 정신 나간 예편네를 봤나 하며 대판 싸우니
그제서야 술이 번쩍 깬 아내는 정신이 들어
남편을 피해 윗집인 우리집으로 피신해 오니
우리 어머님이 그의 남편을 사정 사정 말려
부부싸움을 마무리했던 일을 어린 내가
직도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
오동추야'입니다.
Uonbong
여태까지 여수 오동도가 젊었을 때에 뜻도 모르고
즐겨 불렀던 그 노래의 진원지 인줄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尙德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이 이렇게 뜻과
의미가 있다니 놀랍습니다.
56년전 중2때 상업담당 선생님이 매시간 다음에
배울 교과 단원에서 모르는 단어 50여개씩
국어사전에서 찾아적는 숙제를 내셨지요.
그 때는 상업시간에 왜 그런 숙제를 내는지
짜증이 났었는데, 그 습관이 이어내려왔다면,
이런 일을 웃고 지나칠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글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栗菴
오동동은 마산을 대표하는 먹자골목입니다.
아직도 그명맥을 유지하며 마산의 대표적인
아귀찜 골목도 있지요.
maclaud
과거 마산 오동동에 자그막 하지만 멋진
다리가 하나 있었고 그 밑으로 무학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의 맑은 물과 바닷물이 만나면서
다리위에서 보는 달빛 광경이 멋진 곳이었는데
지금은 완전 복개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
stranger1
ㅎㅎ 매우 재밌는 글입니다.
근데 청라언덕이 대구에 있는 사립명문교인
계성학교로 올라가는 나즈막한 언덕 계단
길이라 하더군요.
지금은 학교가 옮겨졌지만 옛날 서문시장 뒤편의
청라언덕을 걸어서 등교하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구름에 달이
오동주야 오동동은 마산 오동동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있는 것인데 기자가 잘 몰랐구만
Babbinocar****
좁쌀이 아니십니다.
그런 뜻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신고산은 마음속에, 오동추는 오동나무, 청라는
그냥 아름다운 언덕인줄만 알았는데 알고나니
노래도 좋아집니다.
Brian N.Y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라언덕은 알고 잇었지만 신고산 오동추는
처음 알았습니다.
브렌델
간만에 즐거운 글 잘 읽었습니다.
주말에 어울리는 글이고, 공감도 많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