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란장날 김장 고추를 사러갔는데.. 청초 이용분
오늘은 모란 장날이다.
남편과 함께 올 겨울 김장에 쓸 고추를 사기 위해 가벼운
손수레를 끌고전철 모란 역에 내려서 시장 쪽으로 가는 에
스카레이타를 타고올라갔다.벌써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잔
뜩 사가지고. 돌아가는 이,우리처럼 시장을 향해서 가는이,
무언가를 사라고 아우성치는사람,길가에 앉아 좋은 자리를
더 차지하기위해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좀 더 비키라 자리
다툼을 하는 장삿꾼. 보드불럭 바닥에 천원짜리 지전을 쫙
붙여놓고 `수재의연금을 냅시다`하고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소리치는 사람들.나는 왜 돈을 땅바닥에 붙여 놨는지 이유
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하고 이런 걸 이렇게 내라는 뜻
이겠지? 제가끔 자기의 물건을 팔려고,또 사려고 분주한게
당장에 혼이 쏙빠진다.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남편은 꽃구
경도 아주 좋아하지만 같이 온 나와는 아무상관 없는 사람
처럼 무엇이든구경하기를 무척 좋아한다.호기심 충만이다.
오늘만은 어서 원래의 목적을 잘 합시다"하면서 반 강제
로 팔을 잡아끌고는 김장용 고추를 사기위해 고추전으로갔
다.항상 여기오면 그는 어영부영 꽃구경 삼매에 빠져서 자기
와는 별 상관이 없는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 장터는 고추
가 그리 싸지는않지만 달기도하면서 맵기도 알맞은 좋은걸
골라 살 수 있다.고추는 매운맛뿐만 아니라 김치를 아주 맛
있게 하는 성분도 있다.분당으로 이사 온 후로는 좋은 고추
를 골라 사기위해 꼭 이곳에서 사곤 한다.고추를 파는 장터
엔 수도없이 세워놓은 샛빨간색의 파라솔 아래에서는 제가
끔 흥정들이 한창이다.빨간색 파라솔을 씌우는 이유는 고추
가 빨갛게 잘익고 잘 말려 좋은 것처럼 보이라고 그렇게 한
단다. (마치 육고간의 빨간 조명이 진열된 소고기가 신선해
보이라고 그러는 것처럼.)올해의고추는 느닷없는 늦장마와
많은 비 피해로 잘 마르지도않고 상품(上品)이 없어 보인다.
일 년간 먹을 만큼 많은 양을 사야 되니까 아무래도 좀 나은
걸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가 잠시 발을 멈추고
우연히 어떤 아주머니가 파는 근처에 서서 초점 없이 무심히
고추를 쳐다보면서 골라서 살일이 난감하여,"올 해에는 좋은
고추가 정말 없네 " 나 혼자 낮은 소리로 혼잣말을 하였는데
어느새 알아듣고는 그아주머니는 갑자기 자기가 파는 고추를
대여섯 개 집어 들더니 길 바닥에 윷가락 던지듯 내던지면서
"아니 이렇게 좋은 고추를 안좋다하면 어떤 고추를 살려고하
슈?"하고 다분히 시비조로 덤빈다.(고추가 영 안팔리는 모양
이다..) 사나우니 사나워서 살려다가도 못 사겠다.`속 마음으
로 생각하고는 나는 아연 실색을 하고 그 자리를 얼른피했다.
한참을 더돌아 다니다가 다른 한곳에 들러 좀 순해 보이고,말
씨도 좀 어늘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의 물건이 좀 잘 마르기도
했고 가격도 그냥 적당하다, 자기가 옥상에서 직접 말렸다 나
어쨌대나. 햇볕에 말린 고추라는 뜻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물건이 그냥 괜찮기도 하지만 아주머니도 순해 보여 흥정이
잘 되어서 사기로 마음을 먹고"그럼 이 걸로 담아 주세요."하
고 말했더니 어디론가 향해 누구인가를 부른다.그 녀의 남편
인듯한 사람이 나타나 우리는 쳐다보지도않고 바람개비처럼
기계적으로 잽싸게 고추를 자루에 주워담더니 담은 자루의피
(皮) 무게만큼도 더 안 주려고.(원래 자루 무게만큼은 더주게
되어있고 고추는 가벼워서 제법 그 양이 많다) (순한 그 아주
머니를 보고 샀더니만...) 불시에 안면을 바꾸고 어찌 사나움
을 떨던지 갑자기 놀란 가슴. 유해보이는 자기 마누라를 앞세
우고는 뒤엔 또 저런 사나운 복병이 숨어있다니( 미인계구나)
(허기사 저렇게 짝이 맞아야 험한 세상 살아 나갈 수 있겠지)
생각을 하면서도 난 씁쓰름해진 입맛을다시며 얼른 고추값을
치르고 돌아왔다. 돈을 잘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세상을 잘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더욱 쉬운 일은 아니고 참
힘든 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