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공 휘 무(始祖公 諱 茂) 자료제공 : 첨사공파 중 삼척공파의 이구영님. lee-290@hanmail.net 시조공 휘 무(始祖公 諱 茂) 1. 삼국통일과정에서 시조의 업적은 무엇인가? 우리 시조의 성은 이씨요 휘는 무 자 이시고 작위는 신라 연안후이시다. 시조께서는 신라 태종무열왕 7년 즉 서기 660년 당고종 현경 5년 경신 3월에 당나라 중랑장으로서 소정방과 함께 신라의 원군으로 오시어 삼국통일의 대과업을 이룩하려는 전쟁터에 종군하시고 큰 공훈을 세우신 분이다. 소정방이 백제전의 승세를 몰아 신라까지를 정복하려고 밀계를 모의하는지라, 이때 시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라정벌이란 당황제의 본의가 아니시거니와 신라 장병들의 용력이 또한 막강한데 함부로 도전을 하였다가 혹 불리하게 된다면 이는 장군에게도 명예스럽지 못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백제를 정벌한 공로마저도 허사가 될까 염려되니, 먼저 양국군의 무예시합을 해본 연후에 결정짓자는 건의하였다. 이로써 마침내 소정방을 경계하고 만류하여 반정의사를 번복시켰으며, 그 결과 곧 두 나라가 서로 화합할 수 있는 바탕인 동시에 신라 중흥의 기반이 되었으니 우리 시조의 그 공적은 이토록 위대하셨다. 2. 우리 시조는 중국인이라는데? 준비중 3. 중국의 연안? 황해도 연안? 우리가 본관을 연안으로 삼고 있는 이유는 시조께서 계시던 농서현이 당의 연안부에 소속된 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음홀이니 염주니 하며 불리던 땅을 식읍으로 받았고, 작위도 농서가 속한 연안을 본따 연안백(공·후·백·자·남의 세 번째, 나중에 한 단계 위인 후로 추봉됨)이라 한 것이다. 고려 제 26대 충선왕 때에 이르러 이곳의 지명을 바꾸면서 우리의 시조 작위를 따서 연안이라 칭한 것이다. 곧 중국의 연안은 우리 시조의 뿌리가 있는 곳이요, 우리나라 황해도 연안은 시조께서 조선조의 영광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토대를 이룬 땅인 것이다. 4. 시조의 묘소는 진짜인가?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시조의 옛 묘소가 황해도 연안지방에 계셨다고 하나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조 순조 21년 신사 6월 즉 서기 1821년에 이르러 연안읍 서쪽 비봉산(飛峰山; 主山名은 鳳勢山) 옥녀봉(玉女峰) 아래 은일동(隱逸洞) 고총에서 지금의 충청남도 괴산군 감물면 백양향리에 거주하시던 종장 휘 문우 호 월계공이 시조 묘소의 묘지석을 찾아 그 때의 기록문(誌石尋得過程의 일기문)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자택에 모셔 오던 중, 월계공의 5대손인 동훈 현종이 이 지석을 우리 대종중에 헌납해 줌으로써, 현재의 제2국립묘지 역내인 대전시 유성구 갑동 신좌을향의 시조묘소로 이봉하고, 이같은 사실을 비문으로써 명표하였다. 시조의 묘소는 가묘이며, 지석 또한 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금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장군 3동에 제동서원이 있는데 그곳 숭무전에는 삼현을 모시고 해마다 향사를 드린다. 첫째는 순충 장렬 흥무왕으로 김유신이요, 둘째는 대총관 소공으로 소정방이요, 셋째 연안후 이공으로 곧 우리의 시조이시니 이를 일러 군위장군동에 삼장군사라 하며 현재 시조의 위패를 모신 유일한 서원이다. 매년 10월 9일(한글날)에 제향을 하였으나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빠지면서 10월 3일로 옮겨 11시에 제향된다. 5. 연안이씨의 파는 몇이나 되는가? 시조 직후로 오백여 세대가 중세보에도 전해짐이 없이 여러 대의 세계를 잃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고려조에 이르러 후손에 태자첨사공이 계셨으니 휘는 습홍으로 연원부원군인 휘 광정(호 해고)의 선대요, 판소부감공이 계셨으니 휘는 현려로 연성부원군인 휘 석형(호 저헌)의 선대요, 또한 후손에 통례문부사공이 계셨으니, 휘는 지로 연릉부원군인 휘 호민(호 오봉)의 선대요 또 후손에 대장군공 휘 송이 계셨다. 그 외 6개파가 더 있어 각기 분파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분대수는 구별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름이 전해져오는 6파는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영광군사공파(靈光郡事公派), 예부상서공파(禮部尙書公派), 이부시랑공파(吏部侍郞公派), 전법판서공파(典法判書公派), 판도정랑공파(版圖正郞公派)인데, 아직 명확한 파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에서 추원도를 그려 각 파의 선후관계를 짐작하고 있으며, 그에 따르면 태자첨사공파가 가장 맏집이고, 판소부감공이 그 다음이요, 판소부감공의 손자항렬에 통례문부사공이, 마지막으로 막내 집안에 해당하는 곳이 대장군공파계이다. 2001년 10월18일 등록 - 2002년 1월23일 업데이트 [출처] 연안이씨 시조 휘 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