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색
색상은 건반이고
영혼은 피아노
그러면 빨강은 `도'
파랑은 `레'
초록은 `미' 라고 했던
그 어디에도 없는
칸딘스키의 푸른 색
이 모든 푸른 색
그 모든 푸른 색
내가 죽어도
남아 있을
저 이유 없는 행복.
사진 〈Bing Image〉
만파식적萬波息笛
김 승 희
더블어 살면서도
아닌것 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블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에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 동물들처럼
서로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블어 살면서도
아닌 것 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 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블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사진 〈Bing Image〉
솟구쳐 오르기 2
김 승 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사진 〈Bing Image〉
근심을 주신 하느님께
김 승 희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이토록 많은 근심을 주셔서
하늘은 넓고 갈 길은 막막한데
이토록 자잘한 근심들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아침을 시작하여
무엇으로 밤을 마감할 수 있을까요
근심이야말로 분명한 행선지
삶의 공허 앞에 비석처럼 세워진
확실하고도 고마운 하나씩의 이정표
세상은 광막하고 시대는 혼란스러온데
나에겐 자잘한 근심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취직걱정 건강걱정 자식걱정에 반찬걱정
주택부금 상호부금 월부책값에 세금걱정
연탄가스 주의보와 동파된 하수구 걱정,
시어머님 생활비와 친정아버지의 병원비와
이 조그만 근심들이 있어서
난 우주가 막막하게 텅빈 낯선 것이 아니고
쌀독처럼 친숙한 것이며,
밑도 끝도 없는 적막강산이 아니라
한없이 체온으로 정든
내 헌옷 샅은 생각이 들어요,
근심이야말로 정다운 여인숙
그것조차 없다면 삶은 정말 매달릴
것이 없는 백골산의 단애와 같아요
작고 미소한 근심들이여
너는 위대합니다,
너야말로 나를 삶에 꼭 매달리게 하는
지푸라기며,
허무의 양손이 우리 상처의 아가리를 끔찍하고도 냉혹하게
옆으로 찢어벌려
그 속으로 죽음 같은 극약을 부어넣으려고 할 때
넌 작지만 완강한 손끝으로
상처의 벌어진 틈을 재빨리 오무려주는
전천후의 자동단추와도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린 잽싸게 그 싶은 허무 속의
막막한 무서움을 잊어버리고
일심으로 근심에만 집착하면서
다시 살 길을 재촉합니다,
25시도 지난 지금
우리는 갈 곳도 없는데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토록 많은 근심을 주셔서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그 시간을 잊어버리도록
더 많고 자잘한 근심들을 주소서,
길 없는 길을 가기 위하여
문 없는 문을 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