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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 45. 어두움이 임하여 - 마 27: 46.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6. 영혼이 떠나시다 ( 27: 45-56. 막 15: 33-41. 눅 23: 44-49. 요 19: 28-30 )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 27: 45. 어두움이 임하여 -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
제6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하였다. 이것은 유대인의 시간으로 말한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시간으로는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
요한복음 19: 14는 제6시(그것은 로마 시간 곧 오늘 우리의 시간과 같다고 본다) 즉 오전 6시에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았다고 말하고, 마가복음 15: 25는 제3시 즉 오전 9시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한 것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가장 악한 죄를 범하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심히 노하심을 잘 나타낸다.
1] 제육시로부터 ...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본문의 '제 6시', '제 9시'는 유대인의 시간 단위로 오늘날의 시간과 6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제 6시'는 정오(낮 12시)를, '제 9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오전 9시경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막 15: 25) 오후 3시까지 6시간여 동안 찢어지는 듯 한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어둠보다 더 짙은 영적, 정신적 고뇌(46절)를 맛보시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당신의 죽음을 온몸으로 확인하고 계셨다.
2]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는 제6시에서 제9시까지 약 3시간 동안의 '어두움'으로 마치 애굽에서 첫 유월절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재앙에 나타났던 3일 동안의 어두움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한 것은 심판 또는 비극을 알리는 표적이었음이 분명하다.
* 출 10: 21-23 –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 암 8: 9-10 – 9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이때의 어두움이 '온 땅에' 임했다고 하는데 그 '온 땅'이란 의미가 어디까지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D. A. Carson은 '온 땅에'를 뜻하는 헬라어 '에피 파산 텐 겐'(*)이 온 지구(the earth) 전체를 뜻하기보다는 국한된 지역으로서의 모든 '땅'(the land)을 의미한다고 보아 '유대 지경 전체'라는 제한적 의미로 이해하였다.
이 같은 견해는 매우 타당하다. 그 이유는 당시 유대 땅에 임한 어두움은 예수의 죽음과 유대 민족에게만 관계된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본문과 연관을 지닌 출 10: 22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던 하나님의 심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었다.'
결국 이 기록은 본문의 '온 땅'을 제한적인 의미로 이해하는데 간접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이때의 어두움에 대하여 사막의 열풍에 의한 천기 조건의 이상으로 발생한 우연 발생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 아니면 '일식' 현상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설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날은 음력 보름이 다 된 시간이었으므로 천문학적 상식으로 월식이 될 가능성은 있으나 일식(日蝕)은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연법칙상의 현상이라기보다는 찬송가의 시구처럼 영혼의 신령한 태양되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물질세계의 태양이 밝은 빛을 잃어서 캄캄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눅 23: 44 -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이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상징적 의미들도 도출할 수 있다.
(1)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준엄함.
* 마 26: 24 -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 사 5: 30 -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2) 인류의 무거운 죄 짐을 대신 지신 예수의 십자가 수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지를 보임.
(3) 전우주적 통치자의 고뇌에 찬 죽음에 대한 자연계의 순응
* 롬 8: 22 -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등의 뜻으로 볼 수 있다.
마 27: 46.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 제구시 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제9시 즉 오후 3시 즈음에 예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며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그것은 육신적인 고통의 부르짖음이며 또 택자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영의 고통이었다. 갈라디아서 3: 13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건져내시려고 자기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 지우셨다. 사람들의 죄의 용서는 이처럼 큰 대가를 지불하였다. 택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나타났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모든 죄를 멀리해야 한다.
1] 제 구시 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기름이 동난 등불이 자기 심지를 태우며 희뿌연 연기와 불꽃을 일으키듯, 예수께서는 항거할 수 없는 죽음에의 기운과 영적인 고독 앞에서 마지막 기운을 돋우어 성부 하나님께 절규하고 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히브리어와 아람어 음역에 따른 시 22: 1의 인용으로 십자가상의 가상 칠언 중 네 번째 말씀에 해당하며, 마태와 마가만이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육신의 고통의 부르짖음이었고 또 택자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영의 고통이었다.
* 시 22: 1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마태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인 히브리어 '엘리'(*)를 음역하여 '엘리(*)' 엘레이(*)로 기록하였는데 비해, 마가는 '나의 하나님'(*, 엘로히)라는 아람어 음역에 근거하여 '엘로이'(*)로 표기하고 있다.
* 막 15: 34 -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어지는 '라마 사박다니'는 순수 아람어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 말씀하셨기 때문에 '엘'라는 말이 쉽게 사람들에게 '엘리야'를 부르는 듯이 잘못 들려질 수 있었다. '엘리'가 '헬리'로 잘못 들려졌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윗이 예언적으로 노래한 시 22: 1의 말씀이 당신의 찢어지는 듯 한 영적 절망감을 예언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으로 인정하시고 이 구절을 인용하신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부르짖음은 가장 필요한 시간에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데 대한 절대 고독감과 심각한 위기적 심경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가 당할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고 무거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절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1)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셨다.
* 고후 1: 5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2) 하나님의 본체시나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셨다.
* 빌 2: 6-8 –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 죄를 향한 하나님의 증오와 보응이 얼마나 엄격하고도 무서운 것인가.
(4) 성부로서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았지만 죄악을 징벌하시는 심판주로서의 하나님은 예수가 죄인의 자리에서 영, 육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이상 그를 철저히 포기하고 그에게 무간섭 하셔야 했다.
* 눅 23: 46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5) 하나님께 버림받은 최악의 상황을 맞아 대속적 죽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인간 구원을 소망하신 예수의 지극한 사랑 등이다.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데무)
신약에서 유일하게 본문에만 나타나는 표현이다.
비록 '하나님'이 예수 자신에게서 떠나가셨다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않으시고 그분을 '나의' 하나님으로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인성(仁性)으로 인류의 죄를 모두 담당하시는 대속의 제물이 되셨으며 그 인성은 신성(神性)의 절대적 후원을 받고 있기에 예수는 '나의 아버지'가 아닌 '나의 하나님'이라 호소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Lenski).
3] 어찌하여(*, 히나티)
직역하면 '어떤 목적을 두시고'가 된다. 예수께서는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목적에 대해서 묻고 계신다.
이는 분명 신성으로서의 예수가 지적(知的)결함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와의 직임상의 차이를 보여 주는 동시에 성부께 대한 성자의 절대 겸손과 완전한 순종의 진리를 암시해 주고 있다.
* 마 24: 36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4]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를 그의 원수들의 손에 버려두셨다는 뜻을 내포하는(Hendriksen)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류 죄악을 위해 마련해 두신 '잔'(진노와 심판)을 그에게 마시우게 하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수의 이 같은 절규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충만한 대가를 자신의 온몸으로 친히 치르고 계신 예수의 뜨거운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갈라디아서 3: 13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했다.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자기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지우셨다. 인간의 죄의 용서는 이처럼 큰 대가(代價)를 지불하였다.
택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나타났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죄를 멀리할 것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최후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 밖에도 여섯 마디의 말씀을 더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 사 복음서를 통한 가상 칠언
①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 눅 23: 34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② '나와 함께 낙원 있으리라'
* 눅 23: 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③ '아들이니 이다'
* 요 19: 26 -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④ 본문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 15: 34 -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⑤ 본문 '내가 목마르다'
* 요 19: 28 -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⑥ '다 이루었다'
* 요 19: 30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⑦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 눅 23: 46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은 아직도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채 달려 계셨다. 그의 고통은 날로 더 심화되어 가고 그런 고통 중에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해롭게 한 무리들을 바라보시며 아버지께 자비의 기도를 드리셨다.
주님은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까지 많은 일을 하셔야 했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그 어두움이 걷힐 시간이 이르게 되었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입에서 하늘이 찢어질 듯한 비통한 부르짖음이 모든 사람의 가슴을 찔렀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주님의 고통의 외치심이었다.
① 세상에 임한 어두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은 제삼시였다. (막 15: 25). 이 시간은 현재 시간으로 오전 9시를 가리킨다. 그리고 세 시간이 지난 후인 제육시(12시)에 이 세상에 어두움이 임한 것이다.
이 어두움은 세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제9시에 걷히게 되었고(3시경) 그 때 주님이 운명하셨다.
이 어두움은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향하여 무섭게 진노하셨다. 이 하나님의 진노는 곧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겨냥하여 죄인들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퍼부으셨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온 인류의 죄의 대표자로서 이 진노를 당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이 같은 진노의 심판을 그 아들에게 부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 같은 죄인의 심판을 대신 받으시는 것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 예수님은 이 어둠을 견디시기 어려우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시는 순간이요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셔야 할 고통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②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제6시부터 제9시까지 계속된 어두움이 가실 즈음인 그 시간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질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다. 이 말씀의 뜻이 곧 풀이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주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또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말씀으로 들려 주셨다.
* 마 3: 17 -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하나님은 그의 아들과 항상 함께 계셨다.
주님은 태초에도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다.
* 요 1: 2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중 제자들에게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시는 말씀을 가끔 들려 주셨다.
* 요 6: 26-29 –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요 16: 32 –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내신 자이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를 버리실 수는 없으셨다.
ⓒ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버리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는 그의 아들을 버리신 것인가? 그것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 아들을 아들로 보신 것이 아니라 제물로 보셨기 때문이다. 비록 순간적이지만 하나님은 이 때 예수를 아들로 보시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할 죄인으로 보셨다.
실로 예수는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죄인으로서의 심판을 받았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 요 3: 18 -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롬 6: 6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님이 이 때 버리심을 당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주님의 이 외치심은 그의 고통 속에서 부르짖은 소리였다.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말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당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이 어두움 속에서 그런 고통을 당하셨다. 주님의 외침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버리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버리심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성경은 이 일에 대하여 이처럼 증언하고 있다.
* 롬 8: 1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처럼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 죄에 대한 완벽한 형벌(그의 피 흘리심과 사망의 고통)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만 이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가 사유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후사가 되는 것이다.
③ 결 론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벌하셨으며, 우리가 받아야 할 죄 값을 다 치르게 하셨다.
아무 죄도 없으신 우리 주님은 다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그 모진 고통과 하나님의 버리심을 감당하신 것이다.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 위의 고통은 모든 죄인이 자기의 죄 값으로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당해야 할 고통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 값으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예수님의 사랑을 거역한 죄 값으로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