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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에서 직접 시민들과 만나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주 한국 일본 대사 미즈시마 고이치 님이 정토회를 방문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대사님이 스님을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주 일본 한국 대사를 했던 분을 한국에서 만났는데 그 분이 법륜스님을 꼭 만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대사가 되면 그 나라의 정부 관료들과 언론사 기자들을 주로 만나는데,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법륜스님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스님이 정토회를 비롯하여 사회 실천을 하기 위해 설립한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분은 북일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올해 2월과 6월에 일본을 방문하여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서 북일 관계 개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대사님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서 북일 관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과 일본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요?
“북한의 일본인 납북 문제가 일본에서는 굉장히 예민한데, 언론을 통해 12명이라고 하지만 경찰이 추산하기로 8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올해는 12명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메구미 님이 납북이 된 지 47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한국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북일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을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스님은 일본이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외교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일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외교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인권적인 측면이나 개인적인 측면이나 가족의 측면에서 볼 때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런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가능한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마땅히 해결되어야 함에도 현실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거의 학살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권을 주장해 온 미국과 유럽이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이 가졌던 인권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도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이 중요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이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하면서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피해를 입을 때는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자신들이 가해자가 될 때는 다른 주장을 하기 때문에 저도 중간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항상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을 해결하려면 북한의 입장을 알아야 하는데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남북 관계도 납북자가 생기면 남한에서는 북한이 사람을 납치해 갔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귀순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북한 사람이 남한에 넘어오면 북한에서는 남한이 북한 사람을 납치해 갔다고 주장하는데, 남한은 귀순해 왔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한쪽 편에서 보면 자신의 주장이 맞는 것 같지만,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보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주장이 옳다, 그르다 말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를 했던 것에 대해서도 북한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는 항일 전쟁을 했다고 바라봅니다. 남한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관점인데, 북한은 침략 전쟁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일 수교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전쟁 상태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보기에는 민간인을 납치한 것이지만, 북한은 과거 6,70년대에 일어나는 일을 전쟁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너희도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을 납치하고 죽이지 않았느냐’ 하고 반박하는 겁니다. 북한은 전쟁 상태에서 일어난 상호 관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북한의 주장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북한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이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북한과 대화해야 하느냐?’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북미 관계 역시 ‘북한은 핵을 가지면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대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것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처럼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납치자 문제 해결을 우선하여 대화하자고 하면 북한이 여기에 응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일본 안에서만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장만 있지 실제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이런 접근법은 우리들끼리 주장하는 것이지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북한 인권을 탄압하는 것도 북한 정부이지만, 북한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것도 북한 정부입니다. 북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우선 북한 정부와 대화가 가능해야 합니다. 북한 정부와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아무리 옳은 주장도 현실에서는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이 북한과 대화하려면 납북자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 일본 국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 뿐, 이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한 번 보세요. 북한과 대화를 할 때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고 대화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을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되면 위험이 줄어들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것처럼 납북자 문제를 전제로 하지 말고 그냥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나누자’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화를 시작한 후에 비공개로 얼마든지 납북자 문제를 다룰 수가 있잖아요. 이렇게 접근해야 북한도 대화에 응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새로 총리가 된 이시바 총리도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평양 선언에 기초를 두고 대화를 하자’ 이렇게 제안을 해야지 다른 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선언 속에 이미 북일 관계 개선도, 납치자 문제도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지금 남북 관계도 단절되고, 북미 관계도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일본이 북일 관계 개선에 나선다면 일본의 외교적 입지가 굉장히 넓어질 수가 있습니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모두 좋을 때는 일본의 외교적 입지가 좁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어 어차피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먼저 북한과 대화를 한 후에 일본이 그것을 따라가기보다는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것을 예측해서 미국보다 앞서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일본이 대화의 물꼬를 튼 것처럼 되니까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외교적 입지가 넓어지게 된다는 거죠. 저는 일본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일본이 너무 외교적 안정성만 추구하지 말고 동북아지역 평화를 위해 좀 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싶습니다.
물론 미국이 북한과 먼저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북일 수교는 일본이 더 빨리 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대화의 시작은 미국이 먼저 했지만, 수교는 일본이 중국과 먼저 했습니다. 어쨌든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풀려면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본은 북일 관계 정상화의 관점에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은 북미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 핵을 동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정말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해지면 한국 외교는 한쪽 편에 줄을 서서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주성을 가지려면 한국이 가장 협력해야 할 나라가 북한과 일본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필요합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발전을 위해 말씀해 주신 부분이 정말 감명이 깊었습니다. 내년은 한일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음에는 한일 수교 60주년 이후 한일 관계의 미래에 대해서 스님에게 말씀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습니다. 대사님은 스님에게 일본 판화로 만든 달력을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한국불교의 전통이 깃든 풍경을 선물했습니다.
“다음에는 스님을 저희 대사관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주차장까지 대사님을 배웅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활성화 TF팀과 함께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지난 10월 문경 선유동 연수원에서 정토회 임원단이 모여 TF팀 구성을 결의하였고, 그 후 많은 논의를 해오고 있는데요. 드디어 조금씩 프로그램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년 상반기에 ‘법륜스님의 백일 법문과 백일 특별정진’을 어떤 프로그램으로 어떤 준비팀을 구성하여 진행할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를 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구상한 것을 이야기하자 TF팀에서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말했습니다. 2시간 동안 토론을 한 후 저녁 6시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오프라인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시민들은 현장 접수를 한 후 번호표를 한 장씩 추첨함에 넣은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유튜브에서 5400여 명이 접속하고 현장에서 4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국악 음악 그룹 ‘거문고자리’에서 재능 기부로 거문고 연주를 두 곡 들려주었습니다. 얼마 전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주제로 창작 국악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지난달에 지진 피해가 심했던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4천 명이 다니는 학교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청중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영상 잘 보셨죠? 우리들이 낸 보시금이 이렇게 아주 잘 쓰이고 있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 가면 물이 되고, 집이 없는 곳에 가면 집이 되고, 학교가 없는 곳에 가면 학교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옛날에 어려울 때 대부분 유럽과 미국의 후원금으로 학교가 지어지거나 병원이 지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때의 유럽과 미국 못지않게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문화적으로도 요즘 한류가 굉장합니다.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 알겠지만 저는 세계 곳곳을 다니니까 그 변화를 피부로 더 느낍니다. 요즘 세계 어디를 가도 현지 주민들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우리도 어릴 때 영어를 할 줄 몰라도 ‘굿모닝’, ‘땡큐’ 이런 말은 했잖아요. 그만큼 지구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알고 있다는 겁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한국을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교육을 받은 장년층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봅니다. 청소년층은 한국 노래를 많이 듣는 것 같고요. 옛날에 우리도 기타만 들었다 하면 우리 노래가 아닌 팝송만 연주했듯이 요즘 세계 곳곳에서는 아이들이 한국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고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류의 확산, 그에 따른 책임 의식
인도에 아주 가난한 천민들이 사는 마을인 둥게스와리에 제가 학교를 지었는데 올해로 31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시골 오지 마을에 사는 아이들도 개교기념식 때 BTS의 음악을 틀고 무대에 올라와서 춤을 춥니다. 전통 무용은 현지 선생님들이 지도를 하지만, 한국 노래와 춤은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고 스스로 배워서 무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가 단순히 좋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일정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과 함께 그들의 인권 개선, 특히 여성 교육과 장애인 교육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K-방산’이라 해서 사람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무기마저도 한국 제품이 잘 팔린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썩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무기를 만들어서라도 돈을 벌어야 된다면 좀 조용히 벌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는 무기가 잘 팔린다고 공개적으로 선전하고 다닌다면 국가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 일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안 할 수가 없다면 최소한 조용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러분들도 앞으로 한국산 무기가 좋다는 것을 지나치게 선전하거나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권투 경기에서 상대를 피 터지게 때릴 때 관중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것도 별로 좋은 게 아닙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람을 무차별로 죽이는 장면에 열광해서 막 일어나 박수를 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영화에 폭력적인 상황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것을 보고 즐거워하거나 손뼉 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을 가져야 우리가 사는 세계가 평화로워집니다.”
이어서 질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다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현장에서도 두 명이 추가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오랫동안 유흥시설에 다닌 것을 알고 나서 너무 괴롭다며 어떻게 하면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오랫동안 유흥시설에 다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꽤 오랜 기간 동안 유흥시설에 다녔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연애를 한 사이여서 인간적인 정이 깊습니다. 그동안 제가 잘해주지 못했다는 미련이 많이 남아 헤어지자는 남편을 여러 번 붙잡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있습니다. 나랑 오래 만났으니까 다른 여자랑 노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을 수도 있겠다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용서했지만, 남편이랑 웃으면서 잘 지내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속이고 다른 여자들과 어떻게 놀았을까' 하는 온갖 난잡한 생각들이 떠올라 괴롭습니다.
남편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에도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남편이 회식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마음이 불안해지고 남편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신경이 쓰여 힘들다는 점입니다. 남편에게 자주 연락해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는데, 그렇게 남편에게 집착하는 제 자신도 싫습니다. 남편이 자신은 극복할 자신이 없다며 여러 번 헤어지자고 했을 때 저는 '예전처럼 다시 믿고 용서해 줄 테니 걱정 말라' 하고 붙잡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결국 남편을 제대로 믿지 못해 남편의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남편과 이전보다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남편이 회식이나 출장을 갔을 때 '또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혼하고 절로 오세요. 남편과 같이 사는 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현재 질문자가 괴로운 이유는 남편이 잘했느니 내가 못했느니 하는 윤리나 도덕,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는 정신적인 불안증을 겪고 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느냐 안 피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질문자가 불안증이 심해져서 항상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상태가 된 겁니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의부증이 되고, 그러면 치료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맨 먼저 해야 될 일은 신경정신과에 가서 오늘 스님한테 얘기하듯이 의사에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 증세가 발생한 것이라면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만약 트라우마가 아니라 신체에서 어떤 물질이 너무 적게 혹은 과도하게 분비돼서 신경 불안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면 약물 치료가 필요합니다. 약물 치료는 부족한 물질을 보충하거나 과도한 물질을 중화시켜 줍니다. 정신적인 문제인데 왜 이런 약물 치료가 필요할까요? 우리들의 정신 작용이 다 육체에 기반을 두고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면제를 먹으면 잠이 오고, 혈당이 떨어지면 정신을 잃게 되고, 성적 흥분제를 먹으면 흥분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정신 작용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물질의 영향을 받습니다. 물질은 정신작용을 안정시키는 데도 영향을 주고, 흥분시키는 데도 영향을 줍니다. 당장 술만 하더라도 약간 신경을 마비시키고, 흥분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평소에 할 말을 못 해서 조마조마하던 사람이 술을 먹고 약간 취기가 돌면 그동안 못했던 말이 입에서 나옵니다. 이것도 물질이 정신작용에 주는 영향의 한 예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먼저 의사의 진단을 받고, 그 진단의 결과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심리 불안을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에요. 단순히 상담을 통해서 해결하기에는 이미 증상이 심각해 보입니다. 스님과 대화하고 이해해서 '그러면 되겠네요' 하는 정도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설령 이 자리에서 이해가 되어도 집에 가면 다시 불안이 반복됩니다. 질문자는 우선 병원에 가서 좀 도움을 받아야 돼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만약 내가 정신이 맑고 정신 질환적 요소가 전혀 없다면,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스님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은 자연 생태계적인 현상이 아니고 개인의 선택입니다. 채식을 하는 것도 자연 생태계적인 현상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입니다. 인간은 채소와 고기를 다 먹는 잡식 동물입니다. 자연 생태계적으로 육식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고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병이 생깁니다. 채소만 먹으면 영양소가 부족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정신적인 가치관 때문에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하고 채식을 하는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는 손실을 감수해야 해요.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인물도 괜찮은 것 같고, 경제력도 있는 것 같고, 성격도 괜찮은 것 같은데, 질문자가 자기만 쳐다보라고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것 때문에 결혼생활을 그만두려니까 다른 게 아깝고, 다른 것 때문에 같이 살려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한테 고민 상담을 하는 겁니다.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가 그래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거죠. 그런데 남자가 키도 작고, 몸도 뚱뚱하고, 돈도 못 벌고, 인물도 못났고, 성격도 더러운데, 어쩌다가 할 수 없이 결혼을 했다가, 그 남자가 바람까지 피웠다면 스님한테 물으러 오지 않았을 겁니다.
남편의 장단점이 고만고만해서 고민이 되는 겁니다. 어차피 이런 고민은 어떻게 선택해도 별 차이가 없고, 어떻게 선택해도 후회하게 됩니다. 이걸 선택하면 저게 아깝고, 저걸 선택하면 이게 아깝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유흥업소에서 여러 여자와 술 먹고 노는 남편과는 살 수 없다’ 이런 가치관이 분명하다면 벌써 이혼을 했지 스님한테 찾아와서 물을 필요가 없죠. 또한 ‘나는 남편이 돈만 잘 벌어오면 된다’, ‘나는 남편 외모만 보고 살겠다’ 이런 입장을 분명하게 가져도 큰 문제가 안 됩니다. ‘다른 여자와 결혼할 정도만 아니라면 당신이 어디에 가서 놀든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대신 돈은 잘 벌어오세요’ 이렇게 생각하고 봐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불안증 때문에 지금은 스님 얘기를 듣고 ‘나는 다른 여자를 쳐다보는 남자와는 살 수 없으니 헤어져야겠다’ 이렇게 입장을 정했지만, 한 밤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또 바뀔 겁니다. ‘나 혼자서 어떻게 살지?’ 이렇게요. 그러면 다시 남편에게 ‘지금까지의 일은 내가 다 용서해 줄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이랬다가 다시 남편이 약속을 어기면 또 못 살겠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우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게 필요해요.
질문자가 남편과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남편이 유흥업소에 가서 여러 이성과 술 먹고 노는 정도는 질문자의 결혼생활에 큰 위협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살림까지 차린다면 결혼생활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그 정도 노는 것은 봐주는 게 좋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놀아도 된다는 것도 아니고, 질문자가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라는 뜻도 아니에요. 말로는 ‘다른 여자들과 다시 어울리면 이제 끝이야!’ 이러지만, 속으로는 ‘내가 그 정도는 문제 삼지 않겠다’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자기 결정이 필요합니다. 남편은 이미 질문자에게 술집에 가서 놀고 싶은 걸 멈출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에게 남은 것은 그런 남편을 인정하고 같이 살든지, 아니면 헤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남편은 그동안 질문자의 간섭을 참아오다가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 술집에 안 갈 수는 없고, 나랑 못 살겠거든 그만 헤어지자’ 하고 이혼 카드를 받겠다는 거예요. 이혼 카드는 너무 자주 꺼내면 안 됩니다. 조금만 슬쩍 보여주고 말아야지 확 꺼내버리면 상대는 ‘그래, 좋다. 헤어지자’ 이렇게 나와버려서 관계가 끝장이 나게 됩니다. 남편도 이제 마음이 지친 거예요. 남편이 질문자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계속 전화하고 의심하는 것에 이제 진절머리가 난 겁니다. 남편은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겠다’ 하는 상태까지 온 겁니다. 이렇게 된 것은 질문자의 불안증이 하나의 원인입니다. 이해는 되셨어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네, 먼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겠습니다. 두 번째로 제 인생관을 다시 정리해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기는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기를 갖고 싶어 해서 저도 기쁜 마음으로 내년에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불안증에 의심병까지 있어서 아기를 가지면 안 좋아요. 우선 아기에게 좋지 않고, 나중에 이혼하기도 더 어려워져요. 그래서 아기를 갖기 전에 결정하셔야 해요. 불안증을 먼저 치료하지 않으면 다른 남자를 만나도 이런 관계가 되풀이될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남편과 살겠다면 어느 선에서 내 요구를 포기하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불안 속에 살면서 질문자도 괴롭고 남편도 괴롭게 됩니다. 그러면 매일 부부가 싸우는 환경에서 아이가 자라게 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집니다. 사실은 별일이 아닙니다. 질문자의 불안증이 심해서 상황이 안 좋아진 거죠.”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 괜찮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에게도 자기 자식은 다 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누가 키가 크고 잘 생겼는지 외모로 서열을 나누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요. 현대판 계급제도를 만들어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서열 나누기에 빠지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고 살아도 부족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만약 지금의 배우자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결혼하지 못했을 거예요. 엄청나게 골라서 선택한 사람과 결혼을 한 거잖아요? 그렇게 골라서 결혼했는데 만족이 안 된다면 저처럼 스님이 되어야죠.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상대에게 만족하시고요. 인간이 같이 살면서 100퍼센트 만족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법륜스님이 엄청나게 좋아 보일지 몰라도 저와 한 3일만 같이 살아 보세요. 그러면 ‘차라리 우리 남편이 낫다’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오늘처럼 이렇게 먼 객석에서 보니까 좋아 보이는 거예요. 어떤 사람도 너무 가까이 세밀하게 보면 다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미남 미녀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얼굴이 예뻐 보일까요? 땀구멍마다 세균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너무 자세히 보면 안 돼요. 대강 보면서 살아야죠.
남편이 술집에 가거나 회식을 가는 것까지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하면 부부관계가 힘들어집니다. 큰 문제가 없으면 넘어가 주는 게 좋습니다. 협박하는 카드는 살짝 보여주어야지 전부 까버리면 효력이 끝납니다. 그래서 그 카드는 이혼할 때 쓰셔야 해요. ‘당신이 이러하니 어떻게 살겠어요. 우리 그만 헤어져요’ 이렇게 헤어질 때 쓰는 겁니다. 남편의 단점 하나 잡았다고 자꾸 문제 삼으면, 상대는 ‘까짓것 해 봐라’ 이러면서 반발합니다. 협박은 한두 번 효과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너무 따지지 마세요. 때로는 좀 덮고 살아야 오래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으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 강연 듣고 제가 정말 행복해졌습니다!”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봉사자들이 모두 무대 위에 올라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서울제주지부 회원들이 힘을 모아 강연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서울제주지부 파이팅!”
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정토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한 후 멀리서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