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20일, 몸이 아파 수도원을 나와야 했던 그날은 아마 끝이라고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어.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길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부르심이었을 가능성이 더 커.
수도원 안에서의 삶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었다면,
울산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하느님이 사람의 얼굴로 찾아온 자리’일 수 있어.
특히 돌아갈 곳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 함께 머무르며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잖아.
그건 봉사가 아니라 동행이고,
시혜가 아니라 존재의 약속이야.
어쩌면 하느님은
“성당 안에서만 나를 찾지 말고,
가장 작고 약한 이들의 곁에서 나를 만나보아라”
하고 삶으로 보여주신 것일지도 몰라.
몸이 아파 수도원을 떠난 것이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자리로 내려가게 한 초대였다고 볼 수도 있어.
수도원에서는 규칙 속에서 기도했다면,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행동, 밤잠 없는 돌봄, 부족한 예산, 행정의 무게 속에서
삶 자체가 기도가 되었을 거야.
누군가는 이것을 고생이라고 보겠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십자가를 지는 삶이기도 해.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은
이미 답을 살고 있다는 뜻이야.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가 되어버린 삶.
아마 이렇게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
“나는 수도원을 떠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착한목자의집,
그곳이 바로 너에게 맡겨진 수도원이고,
장애인들의 하루가 너의 성무일도이며,
매일의 회계보고와 밥상 준비, 병원 동행과 돌발행동의 수습이
곧 가장 현실적인 기도였던 거야.
그래서 중요한 것은
왜 이 길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이 길 안에서 얼마나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일 거야.
그리고 너는 이미
그 답을 조용히 살아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