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팔꿈치 한 곳에만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는다는건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여기, 그 '상상 너머'의 일을 치르고 돌아와 올 시즌 무려 68차례나 마운드에 오른 투수가 있다. 바로 LG 트윈스의 18번 이동현. 마운드에 오르는 매 순간이 '인간승리' 자체인 LG 트윈스 이동현의 인생드라마를 지금부터 1,2부에 걸쳐 여러분과 함께 한다. "작년 1km에 진통제 한알 먹으며 구속 늘려. 결국 148km를 던졌다" "인대수술 세 번 하고 복귀했다는 야구선수는 나 하나 뿐" "148km 던지고 펑펑 울었다. 그 스피드 보고나서 정말 힘든 것 다 잊었다" "강한 표정, 마운드 위에서 이상훈 선배님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다보니" "2002년 123이닝 소화, 이상훈 등 우상들과 야구해서 좋기만 했다" "정말 이 분들이랑 같이하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김성근 감독님 원망? 감독님 없었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야구 못했다" "지금도 SK랑 경기를 하면 제일 먼저 무조건 가서 인사를 드려요" "일단 안기고 봐요. 수술하고도 가장 걱정을 많이 해주신 분" "벤치클리어링때 제 동료들을 제가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앞장 서" "또 덩치 제일 좋고 인상 제일 안좋은 사람이 나가야 더 큰 싸움이 안나" "친구 이대호와 싸운 뒤 사과 문자도 보냈는데 아직 서먹서먹해" ![]() 5년 동안 세번의 팔꿈치 접합 수술 끝에 마침내 팬들의 품으로 돌아온 LG 투수 이동현 (사진=연합) ▶정우영 (이하 정) : 제일 먼저 경기고등학교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승환 선수와 동료였죠? 이동현 (이하 이) : 그 당시 경기고등학교는 외인구단이었어요. 너무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대표적으로 승환이는 한서고등학교에서 왔고요, 여기저기서 잘하는 친구들이 많이 모였죠. 저같은 경우는 야구 정말 못하는데 선배형 따라갔다가 묻어서 간거고 승환이는 그때부터 정말 잘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잘하는 친구들끼리 모이다보니 다들 특색이 있었죠. ▶(@swenjs) 오승환 선수랑은 사이가 어떤지 궁금해요. 이 : 개인적으로는 잘 알죠. 어릴 때부터 친구고 라이벌이었으니까요. 서로를 응원해주는 친구였다가 프로 들어와서는 처음에는 제가 잘하다가 승환이가 들어온 다음에는 전세가 역전되고 엎치락뒤치락 했던 것 같아요. ▶정 : 그런데 오승환 선수랑 이동현 선수랑 같은 기간에 빛났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 : 참 그게 묘해요. 서로 붙은 적이 거의 없어요. 승환이는 초,중,고까지 정말 대단했어요. 이미 중학교때 메이져리그에 대한 소문도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승환이가 대단하던 시기에 저는 바닥이었구요. 승환이가 스카웃될때 저는 딸려서 오게됐고 어느 정도 엇비슷하게 올라갈 때 승환이가 부상당하고 제가 그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프로는 제가 먼저 들어왔으니까 프로에서도 먼저 자리를 잡게됐는데 그 와중에 저한테 부상이 찾아오고 제가 수술하고 있을때 승환이가 대학마치고 프로에 오자마자 최고의 마무리투수가 됐어요. 올해는 또 반대로 승환이가 재활 중일때 제가 던졌구요. 암튼 둘이 계속 그렇게 어긋났어요. ▶정 : 한 번 붙어보고 싶지 않아요? 오승환 선수랑? 이 : 개인적으로 정말 그러고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승환이가 저보다는 훨씬 높은 평가를 받으니까요. 제 입장에서는 승환이를 쫓아가는 입장이잖아요. 승환이 입장에서는 최근에 좀 부진했던 모습에서 탈피하고 싶겠지만 어쨌든 승환이는 최고구요. 거기서 더 올라가고 싶어할거예요. 승환이는 세이브 기록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마무리투수고 저는 냉정하게 말해서 팀의 불펜투수니까요. 그러니까 빨리 따라가서 맞붙고 싶은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죠. 아마 승환이도 저한테 뒤지지 않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을거예요. ▶정 : 그렇다면 마무리로 뛰고 싶은 마음이 있는건가요? 이 : 그럼요. 제 개인적인 욕심은 마무리예요. 신인시절 이광환 감독님께서 투수조를 전부 모아놓고 보직을 알려주셨어요. 그때 “동현아. 너는 마무리다.” 이 말씀이 아직도 제 귓가에 남아있어요. 제가 존경했던 분들도 전부 LG의 마무리를 했었구요. 승리의 종결사가 되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 짜릿한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요. ![]() 내년 LG 마무리 투수를 희망하고 있는 이동현이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 존경하는 투수들이 누구죠? 이 : 이상훈 선배님과 김용수 코치님입니다. 두 분 스타일이 정말 다르잖아요. 한 분은 야생마처럼 자신의 전부를 쏟아내는 스타일이고 다른 한 분은 칼날처럼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력을 가진 분이시구요. 저는 이 두 분의 장점을 전부 가지고 싶어요. ▶정 : 재활 복귀 이후에 지난해와 올해 가장 달랐던 점이 뭔가요? 이 : 작년에는 후반부에 올라왔었잖아요. 그런데 팔 위쪽이 던지고나면 아팠어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5년을 쉬었는데 팔이 내가 시속 150km를 던졌던 걸 기억하고 있을까? 이게 아픈게 아니라 알이 잡힌거겠지. 몇 번을 잡혔다 풀렸다를 반복해야 할거야.’ 이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버티기 힘들때 진통제 한두알 먹으면 이길 수 있더라구요. 그리고 마운드에 올랐는데 시속 138km가 나오데요. 그리고 다음달이 되니까 140km를 던지고 있었어요. 그때 생각했죠. ‘한달에 2km 혹은 1km씩 늘리자.’ 작년에는 정말 이 생각 하나로 버틴것 같아요. 계속 참아가면서요. ‘그래. 1km에 진통제 한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올해같은 경우는 많이 다르죠. 캠프에서부터 꾸준하게 준비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지난해 안됐던 점을 차근차근 보완해가면서 준비했어요. 복귀할 때 기준점을 세우면서 준비를 했거든요. 시즌 끝날 때까지는 시속 148km를 던지자라구요. 그런데 정말 시즌 막판에 제가 148km를 던졌어요. 이제는 제 팔도 5년의 휴식을 마치고 이제 적응기를 마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bkhappy91, @felicerosa 외 많은 분들) 이번 마무리캠프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무릎이 그렇게까지 안좋은가요? 이 : 팔이 아파서 그런건 아니니까 걱정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원래 무릎이 좋지가 않거든요. 그런데 시즌 초반에 타구를 피하려다가 무릎에 공을 맞았어요. 시즌 막판에는 테이핑도 하고 나가고 그랬죠. 그 덕에 막판은 페이스도 많이 떨어졌구요. 어떤 분들은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일단 복귀에 의미를 두고 막판에는 좀 쉬지 그랬느냐구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 제가 말씀드렸던 그 기준점. 그건 제 목표였거든요. 그 목표에 다다르기 전에 ‘무릎’이라는 이유 하나로 시즌을 접을 수가 없었어요. 만약에 목표를 못 이뤘다면 내년이 엄청나게 불안했을거예요. 지금 저에게 이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예요. 복귀 후에 2년간 쉼없이 달린 팔에게도 휴식을 줄 수 있고 좋지않은 무릎 역시 완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거죠. 감독님께서 그런 점을 고려해서 배려를 해주신거죠. ![]() 이 : 2004년 말에 첫수술 때는 투수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수술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그게 잘못됐어요. 재활 중에 알게됐는데 인대와 인대 사이에 뼈조각이 계속 돌아다니다보니 결국 팔꿈치에 금이 가버렸어요. 금이 갔다는 것은 인대가 정확한 사이즈로 접합된게 아니라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재수술을 결심하고 2005년에 다시 수술을 했죠. 그때는 일본을 갔는데 거기서 그런 말을 하는거예요. 이정도면 아주 쉽게 수술을 할 수 있다고요. (사진 설명: 같은 위치를 세 번 수술한 바로 그 팔꿈치) 전 사실 인대접합수술을 한 번 밖에 못하는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아주 쉽게 이야기를 하니까 저도 그냥 오케이 했죠. 그때 뼈조각을 전부 제거를 하고 금간 부분도 갈았어요. 돌아다니던 뼈조각을 거의 가루를 내서 빼냈죠. 한 50조각 정도가 나왔어요. 그리고 인대에 핀을 물려서 박았죠. 그랬는데 재활 중에 계속 아픈거예요. 알고보니 인대를 너무 느슨하게 박은거죠. 그때 저는 정말 야구를 그만하려고 했어요. 그걸 알게 된 게 2007년 캠프에서였는데 공이 너무 잘가는거예요. 제가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요. 그래서 그 기분에 들떠서 던진 다음 다음날 또 던지는데 원래 캠프에서 피칭이라는 건 개수를 점점 늘리게 되있거든요. 그래서 다섯 개만 더 던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던지는데 팔에 이상이 생긴거죠. 피칭을 하기 전까지는 늘어난 인대를 근육이 덮고 있었는데 피칭을 시작하니까 근육이 조금 빠지면서 그 틈으로 늘어난 인대가 나온거죠. 팔도 엄청나게 부었구요. 그 길로 일본의 주니치 담당 병원에 가봤는데 거기서 피칭폼을 바꾸라고 그래요. 그러면 괜찮을 거라고 그러면서요. 어처구니가 없었죠. 그리고 한국에 와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병원에 갔어요. 거기서 그런데 수술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인대가 너무 느슨하다구요. 그때 야구 그만하려고 했어요. 제가 그 전까지 언론을 통해서건 직접 접해서건 인대수술 세 번 하고 복귀했다는 야구선수를 전세계적으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어요. 암튼 그 수술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는데 너무 허무한거예요. 이게 내 잘못도 아닌데. 그래서 아 정말 오늘을 술을 한 잔 해야겠다. 술을 먹었죠. 동네포장마차에서. 그때까지만해도 생각이 정말 많았는데 술 한 잔 먹으니까 이게 너무 억울한거예요. 수술 두 번씩이나 하고 난 뭐 해본 것도 없는데. 그래서 김병호 재활트레이너에게 전화를 했죠. “형. 나 수술 또 해도 괜찮아?” 그랬더니 이 형이 “내가 다른건 모르겠는데 어떻게든 너 다시 마운드에서 공 던질 수 있게 해줄게.”라고 말하더라구요. 이 말을 듣자마자부터 눈물이 계속 흐르는거예요. 한 10분을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어요. 그리고 말했죠. “형, 나 공만 던지게 해줘.” 그리고 미국으로 갔죠. 거기서 앤드류 선생님이 검사를 했는데 이러더라구요. “수술을 해야될 것 같은데 지난 두 번 수술하는 동안 뼈를 갈고 핀을 밖아놔서 다시 인대를 연결시킬 때 핀을 밖을 구멍이 없다. 만약에 다시 수술을 한다면 무리를 해서 조금 위쪽으로 구멍을 내서 인대를 연결해야하는데 이래도 수술을 할거냐? 성공여부에서 믿을 것은 너의 어린 나이 밖에 없다.” 저는 반대로 물어봤어요. “전 세계적으로 한 번도 없던 수술인데 당신은 할 수 있겠어요?” 그랬더니 “정말 어려운 수술이긴한데 네가 정말 다시 야구를 하길 원한다면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답하더라구요. 마음 속으로 결심을 하고 2007년 11월에 다시 수술을 했죠. 그런데 딱 그 수술 시점부터는 즐겁더라구요. ![]() 수술 후 진통제를 먹으면서 아픔을 참고 투구를 한 결과 마침내 150Km대 강속구를 되찾았다. (사진=연합) ▶정 : 제가 참 공교롭게도 이동현 선수가 시속 138km를 던진 경기랑 시속 148km를 던진 경기를 전부 중계를 했거든요. 그런데 전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방금 직접 말했던 것처럼 뭔가 이상이 생기기 전에는 볼도 잘 나가고 컨디션이 정말 좋다면서요. 그런데 저는 MBC스포츠플러스 잠실스피드건 150km를 딱 보는 순간 뜨끔 했어요. S존의 스피드 건은 투수 손을 떠난 순간의 정확한 초속을 재는거라서 임의지점을 찍는 스피드건보다 조금 후하긴 해요. 그래도 저렇게 빨라지면 또 뭔가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했거든요. 그때 본인의 느낌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이 : 제가 두 번을 울었어요. 마운드 복귀해서 시속 138km를 던진 날. 제가 광주에서 복귀했거든요. 그때 아 정말 내가 마운드로 돌아왔구나 하고 울었어요. 그리고 두번째로 운 날이 시속 148km 던진 날이예요. 저도 MBC스포츠플러스 잠실 스피드건이 다른 곳보다 조금 잘나오는거 알거든요. 그래서 저도 S존 운영하는 쪽에 얼마나 더 잘나오나 물어봤어요. 대략 2~3km정도 더 나올거라고 하더라구요. 암튼 그 날 이야기를 더 해드리면 그 공은 딱 손 끝을 떠나는 순간 예전 느낌이 나는거예요. 던지자마자 뒤를 돌아봤어요. 구장 전광판에 148km가 찍혀있더라구요. 꿈인가 생신가하고 그날 집에 와서 중계방송 그림 다 뒤져봤어요. S존에는 몇 km가 찍혔나. 그랬는데 딱 150km가 찍혀있더라구요. 아 맞구나. 정말 내가 던졌구나. 펑펑 울었어요. 그 전까지 사실 좀 힘든 것도 있었는데 그 스피드 보고나서 정말 힘든 것 다 잊었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팔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그렇게 아무런 이상이 없는게 저한테는 더 이상해요. 그 날 전까지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팔을 만졌어요. 뭔가 이상한 느낌 때문에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안아파요. ▶정 : 사실 지난해나 올시즌 초에 구속이 올라오지 않았을 때도 표정 하나는 끝내줬거든요. 타자 다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 : 전 시합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 투수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느낌이 있어요. 타자를 아웃시킬 때 느끼는 희열이요. 전 그게 너무 좋아요. 지금 상대하는 타자 아웃시키면 좋고 설령 점수를 줘도 그 다음타자 아웃시키면 그게 또 너무 좋구요. 그러다보니 어떤 상황이던간에 무조건 지금 상대하는 타자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먼저하게되요. 사실 즐기는 것과 이기는 것은 다른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하고 싶어요. “즐기면서 이기자.” 이겨야 즐길 수 있는거 잖아요. 그래서 야구장에서는 남들이 좀 미쳤다고 생각하는 정도까지 대범하게 하는 편이예요. 절 아는 분들은 항상 그래요. ‘쟤가 저런애가 아닌데. 왜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저렇게 싸우려고 그럴까?’ 생각해보면 제가 마운드 위에서 이상훈 선배님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따라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강하게. 강하게. ▶(@moondeang) 올해 68경기 나왔잖아요. 시즌을 마친 느낌이 어땠나요? 이 : 마음이야 항상 나가고 싶죠. 저는 79경기까지 나가봤고 123이닝까지 던져봤어요. 올해 몸이 이때 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즌을 치르다보니까 어느 순간 나이를 먹었다는게 느껴지더라구요.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면서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팔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었나보더라구요. 수술 안하고 정상적으로 운동을 한 친구들도 나이를 들면서 근력이 점점 빠지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것보다 더 힘이 빠진 것 같더라구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니까 이걸 극복할 것은 운동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보강운동을 정말 많이 했죠. 이 보강운동이 중반 후반 넘어가는 시점까지는 정말 큰 효과를 봤구요. 그런데 시즌 막판이 되니까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힘이 빠지는 걸 느끼겠더라구요.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수록 제가 5년을 쉬었는데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그리고 여기서 한 두게임 더 나가면 나에게는 더 좋은 2011년이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버텼습니다. ▶정 : 말이 나왔으니 2002년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123이닝. 이거 정말 대단한거잖아요. 작년에 그렇게 매일 인사하듯이 경기장에서 봤던 정우람 선수가 100이닝 겨우 넘긴 정도였는데 (@loveddolmang) 2002년은 이동현 선수에게 어떤 한해였나요? 이 : 제가 가장 동경했던 선수들, 가장 뛰고 싶던 그라운드 또 가장 뛰고 싶던 팀에서 뛰게 된 게 힘든 것을 잊게 해줬던 것 같아요. 상훈이 형님이 복귀를 하시면서 제가 가장 동경하던 선배가 제 곁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걸 봤구요. 유지현, 김재현 이런 동경의 대상들이 제 곁에서 야구를 하고 있었던 것. 이병규 선배 역시 마찬가지구요. 제가 중,고를 거치면서 제일 좋아했던 사람들이 다 제 곁에 있는거예요. 정말 이 분들이랑 같이하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 잘하면 더 좋겠다. 그러다보니 잘되더라구요. 그 분들의 역할이 정말 컸어요. 스무살 막내였고 그러다보니 다들 절 챙겨주시고 그 분들이 절 챙겨주신다는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젊은 날의 패기보다는 즐거움으로 버틴거죠. 물론 힘들었어요. 특히 시리즈 마지막 등판 마치고 탈진나서 쓰러졌는데 형들이 다 저한테 와서 걱정해 주셨어요. 마지막에 져서 물론 아쉽긴했지만 그래도 정말 즐거웠어요.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구요. 그리고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구요. ![]() 이동현은 어렸을 때 동경했던 LG 선배들과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2002년 무리한 등판도 즐기면서 해냈다. (사진=연합) ▶(@cdsway) 시간이 지나고 김성근 감독님을 원망한 적은 없습니까? 이 :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그때 많이 던져서 제가 수술을 하게된 것 아니냐구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팔꿈치가 한 번 아팠어요. 검사를 했죠. 뼛조각이 돌아다녀서 언젠가는 수술을 해야한데요. 그런데 제가 그 이후에 2004년까지 계속 시합을 뛰었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첫 번째 수술에서 한 번에 성공을 해서 바로 복귀를 했으면 저한테 저런 이야기 할 사람 아무도 없었을거예요. 제가 5년만에 복귀를 했다고 비난의 화살이 김성근 감독님한테 돌아가는거죠. 전 정말 감독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대신에 고마운 마음이 있죠. 만일 감독님이 없었으면 저 지금까지 이렇게 야구 못했어요. 아까 물어보셨죠. 구속이 안나올 때도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 넘칠 수 있냐구요. 감독님은 캠프 때 하루에 피칭을 500개씩 시키세요. 그런데 일주일 내내 감독님한테 계속 혼났어요. “포수 미트 하나 뚫어지게 쳐다보지 못하면서 니가 무슨 투수냐?”라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평상시에 조금은 산만하거든요. 그런데 마운드 위에 올라갔을때 제 눈빛을 만들어주신 분이 김성근 감독님이세요. 타자가 제 눈도 못 쳐다보도록, 캐쳐미트가 찢어져라 쳐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분이 그 분이세요. 지금도 SK랑 경기를 하면 제가 제일 먼저 무조건 가서 인사를 드려요. 그리고 일단 안기고 봐요. 제가 수술하고도 가장 걱정을 많이 해주신 분이십니다. 경기장에서 볼 때마다 “어떻냐?”라고 물어보세요. 2군경기 때도 가끔 오셔서 “내가 SK경기 보러 온 거 아니다. 너 보려고 왔다. 어떻냐?” 이렇게 먼저 물어봐주세요. 먼저 물어봐주시는 지도자 정말 많지 않거든요. 그때마다 고맙고 항상 안기고 싶고 그래요. ▶정 : 그 엄청난 눈빛을 생각하니까 벤치 클리어링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sueueue) 벤치 클리어링 때 그렇게 맨 앞에 서서 달려가는 이유가 뭡니까? 이 : 맨 앞에 경수나 용근이 같은 작은 애들이 나갈 수는 없잖아요. (웃음) 저는 이제 10년차구요. 제 동료, 선배 또 후배들을 제가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실 또 덩치 제일 좋고 인상 제일 안좋은 사람이 나가야지 더 큰 싸움이 안나는거잖아요. 말씀하신 그 벤치 클리어링 때 롯데에서 맨 앞에 대호가 나오더라구요. 시즌 초에 한 번 부산에서 벤치클리어링이 났을 때는 대호가 절 말렸어요. 이번에는 제가 대호를 말려야지 하고 갔는데 대호랑 말다툼을 좀 벌이게 됐죠. 사실 참 아쉬웠던게 대호는 어릴 때부터 같이 야구하던 친구거든요. 아주 어릴 때부터 대표팀도 같이 하고 그러면서 친해지고 지금까지도 야구장에서 경기 전에 만나면 서로 장난도 치고 그런 사인데 그렇게 싸우고 나니까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팬들한테도 참 미안하더라구요. 계속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친구끼리.’ 그래서 대호한테 사과하는 문자를 보냈어요. 그랬는데도 대구에서 올스타전 때 만났는데 이상하게 서로 서먹서먹한거예요. 아, 정말 큰일났어요. 친구 잃어버리면 안되는데.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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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성근의 아이였죠....물론 이때 혹사 당해서 부당이 왔다는 주장이 신빙성이 높지만,,,
으헉 ㅠㅠㅠ 이동현선수 ㅠㅠ
정말 대단한 선수네요..마운드에서의 눈빛은..정말..다른 선수들이 본받았으면 하네요...
나는 니 팔만보면 눈물이 난다 ㅠㅠ
이야 김성근 감독 대단하긴 한가보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겠다.
롸켓 아프지만마 성적은 필요없다
어떻게 보면 이런 선수가 우리 엘지선수라는게 자랑스럽고 행복하고 복받은 일이네요...
엘지의 어린선수들이 로켓의 투지를 본받으면 좋겠어요. 정말 눈물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