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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gallāna 목갈라나 존자
세존의 여러 제자들 중에서 아주 수승하신 두 분의 상수제자가 계셨답니다.
한분은 사리뿟따 존자이시고 다른 한분은 목갈라나 존자라고 합니다.
두 분은 세존 문하에 들어오기 전에도 친구 사이였고 함께 동문수학하신 분들이시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두 분은 여러 측면에서 비교가 되시는 분들이신 것 같습니다.
사리불존자는 혜해탈자고 목건련존자는 심해탈자 혹은 양면해탈자라고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경문에 의하면
사리불존자는
'樂을 통한 도닦음'(paṭipadā sukhā khippābhiññā)으로 해탈하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시고
목건련존자는
'苦를 통한 도닦음'(paṭipadā dukkhā khippābhiññā)으로 해탈하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苦를 통한 도닦음'이란 다른 경문에 의하면
“katamā ca, bhikkhave, duk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idha, bhikkhave, ekacco
pakatiyāpi tibbarāgajātiko hoti, abhikkhaṇaṃ rāgaj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pakatiyāpi tibbadosajātiko hoti, abhikkhaṇaṃ dosaj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pakatiyāpi tibbamohajātiko hoti, abhikkhaṇaṃ mohaj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tassimāni pañcindriyāni adhimattāni pātubhavanti —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so imesaṃ pañcannaṃ indriyānaṃ adhimattattā khippaṃ ānantariyaṃ pāpuṇāti āsavānaṃ khayāya.
ayaṃ vuccati, bhikkhave, duk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서 …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
'樂을 통한 도닦음'은 그 상대적인 경우입니다.
“katamā ca, bhikkhave, su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idha, bhikkhave, ekacco
pakatiyāpi na tibbarāgajātiko hoti, nābhikkhaṇaṃ rāgaj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pakatiyāpi na tibbadosajātiko hoti, nābhikkhaṇaṃ dosaj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pakatiyāpi na tibbamohajātiko hoti, nābhikkhaṇaṃ mohaj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tassimāni pañcindriyāni adhimattāni pātubhavanti —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
so imesaṃ pañcannaṃ indriyānaṃ adhimattattā khippaṃ ānantariyaṃ pāpuṇāti āsavānaṃ khayāya.
ayaṃ vuccati, bhikkhave, su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imā kho, bhikkhave, catasso paṭipadā”ti.
태어날 때부터 근기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katamā ca, bhikkhave, duk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idha, bhikkhave, bhikkhu asubhānupassī kāye viharati, āhāre paṭikūlasaññī,
sabbaloke anabhiratisaññī, sabbasaṅkhāresu aniccānupassī;
maraṇasaññā kho panassa ajjhattaṃ sūpaṭṭhitā hoti.
so imāni pañca sekhabalāni upanissāya viharati — saddhābalaṃ ... pe ... paññābalaṃ.
tassimāni pañcindriyāni adhimattāni pātubhavanti — saddhindriyaṃ ... pe ... paññindriyaṃ.
so imesaṃ pañcannaṃ indriyānaṃ adhimattattā khippaṃ ānantariyaṃ pāpuṇāti āsavānaṃ khayāya.
ayaṃ vuccati, bhikkhave, duk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
반면에
“katamā ca, bhikkhave, su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 pe ... dutiyaṃ jhānaṃ ... pe ... tatiyaṃ jhānaṃ ... pe ...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imāni pañca sekhabalāni upanissāya viharati —
saddhābalaṃ, hiribalaṃ, ottappabalaṃ, vīriyabalaṃ, paññābalaṃ.
tassimāni pañcindriyāni adhimattāni pātubhavanti —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so imesaṃ pañcannaṃ indriyānaṃ adhimattattā khippaṃ ānantariyaṃ pāpuṇāti āsavānaṃ khayāya.
ayaṃ vuccati, bhikkhave, su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imā kho, bhikkhave, catasso paṭipadā”ti.
tatra, bhikkhave, yāyaṃ paṭipadā sukhā khippābhiññā,
ayaṃ, bhikkhave, paṭipadā ubhayeneva paṇītā akkhāyati.
yampāyaṃ paṭipadā sukhā, imināpāyaṃ paṇītā akkhāyati;
yampāyaṃ paṭipadā khippā, imināpāyaṃ paṇītā akkhāyati.
ayaṃ, bhikkhave, paṭipadā ubhayeneva paṇītā akkhāyati.
imā kho, bhikkhave, catasso paṭipadā”ti.
5.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이러한 도닦음은
양쪽 모두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즉 도닦음이 쉬운 것도 수승하다고 일컬어지고
최상의 지혜가 빠른 도닦음도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도닦음은 양쪽 모두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여기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과거 누겁의) 業障이 두꺼운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
바른 삼매에 쉽고 빠르게 드셔서 금생에 해탈하시는 분도 있고(asaṅkhāraparinibbāyī)
욕계 세상에 대해서 하나 하나 격파해 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고통스럽게 고통스럽게 바른 삼매에 드셔서
금생에 해탈하시는 분도(sasaṅkhāraparinibbāyī) 계시는 것 같습니다.
{so kho ahaṃ, pāpima, bahūni vassāni bahūni vassasatāni bahūni vassasahassāni
tasmiṃ mahāniraye apacciṃ.
dasavassasahassāni tasseva mahānirayassa ussade apacciṃ vuṭṭhānimaṃ nāma
vedanaṃ vediyamāno.
tassa mayhaṃ, pāpima, evarūpo kāyo hoti, seyyathāpi manussassa.
evarūpaṃ sīsaṃ hoti, seyyathāpi macchassa.
23. “사악한 자여, 그런 나는430) 수년, 수백 년, 수천 년을 그 대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만 년을 그 대지옥의 보조 지옥에서 과보로 나타난 최종의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고통을 받았다.
사악한 자여, 그런 나의 몸은 마치 인간의 몸과 같았지만
머리는 마치 물고기의 머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430) '그런 나는(so kho ahaṃ)'이라는 어법으로 이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바로 두시 마라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상과 같은 가설이 맞다면
바른 삼매에 쉽게 들어서 행복한 도닦음이 되시는 분들은
M111의 사리불존자처럼 위빳사나를 하시면 되지 싶습니다.
그러나 업장이 두꺼워 색계 선에 들어가기 어려우신 분들은
목건련존자처럼 '졸고 있으면' 세존께서 신통으로 '졸음에 대한 대처를 지시' 받고,
'초선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면' 세존께서 신통으로 '삼매에 들어라는 지도'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현재 본인에게서 일어나는(自燈明)
욕계에 법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격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욕계에 법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6내외處, 18界, 5蘊(界), 등등.... 이른바 66法]입니다.
이와 같이 바른 삼매(색계 선)에 쉽게 들어서, 행복한 도닦음이 되지 않으면
(찰나 삼매가 되었든지 욕계 삼매 상태에서든지)
어렵게 괴롭게 현재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법들에 대해 주시(지켜봄)에 의해서
하나 하나 해결해야 하지 싶습니다.
만약 이런 [6내외處, 18界, 5蘊(界), 등등.... 이른바 66法]을 보시는 분을 예류자라고 한답니다.
{S25
… 마노는 무상하고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yo, bhikkhave, ime dhamme evaṃ saddahati adhimuccati — ayaṃ vuccati saddhānusārī,
okkanto sammattaniyāmaṃ, sappurisabhūmiṃ okkanto, vītivatto puthujjanabhūmiṃ;
abhabbo taṃ kammaṃ kātuṃ, yaṃ kammaṃ katvā
nirayaṃ vā tiracchānayoniṃ vā pettivisayaṃ vā upapajjeyya;
abhabbo ca tāva kālaṃ kātuṃ yāva na sotāpattiphalaṃ sacchikaroti”.
비구들이여, 이러한 법들에 대해서 이와 같이 믿고 이와 같이 확신을 가지는 자를 일러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한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
참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임종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S27
… 마노에 대한 욕탐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imesu chasu ṭhānesu cetaso upakkileso pahīno hoti,
nekkhammaninnañcassa cittaṃ hoti.
nekkhammaparibhāvitaṃ cittaṃ kammaniyaṃ khāyati,
abhiññā sacchikaraṇīyesu dhammesū”ti.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들 여섯 가지 경우에 대한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하면
그의 마음은 출리(出離)로 기울고,
출리를 철저히 닦은 마음은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해야 하는 법들에 적합하게 된다.”}
*nekkhamma(出離): kāmānametaṃ nissaraṇaṃ yadidaṃ nekkhammaṃ
이하 참고 자료입니다.
mayhaṃ, bhikkhave, etarahi sāriputtamoggallānaṃ nāma sāvakayugaṃ ahosi aggaṃ bhaddayugaṃ.
지금의 나에게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다.
esā, bhikkhave, tulā etaṃ pamāṇaṃ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yadidaṃ sāriputtamoggallānā”ti.
비구들이여, 이들은 내 비구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니 다름 아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이다.
dukkhā paṭipadā dandhābhiññā, duk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sukhā paṭipadā dandhābhiññā, sukhā paṭipadā khippābhiññā.
imā kho, āvuso, catasso paṭipadā .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imāsaṃ, āvuso, catunnaṃ paṭipadānaṃ yāyaṃ paṭipadā dukkhā khippābhiññā,
imaṃ me paṭipadaṃ āgamm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ttan”ti.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 가운데
나<*목갈라나>는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도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imāsaṃ, āvuso, catunnaṃ paṭipadānaṃ yāyaṃ paṭipadā sukhā khippābhiññā,
imaṃ me paṭipadaṃ āgamm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ttan”ti.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 가운데
나<*사리뿟따>는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도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69. “cattārome, bhikkhave,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katame cattār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diṭṭheva dhamme s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kāyassa bhedā s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diṭṭheva dhamme 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idha pana, bhikkhave, ekacco puggalo kāyassa bhedā 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44)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45)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44)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은 순수 위빳사나 행자[乾觀者, sukkha-vipassaka]인데 정력적인 노력으로(sasaṅkhārena sappayoga) 상카라의 표상(aṅkhāra-nimitta)을 확립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사람은 위빳사나의 기능들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 [금생에서] 오염원을 완전히 멸진하여(kilesa-parinibbāna) 완전한 열반을 실현한다. 두 번째 사람은 기능들이 약하기 때문에 여기 [금생에는] 불가능하고 다음 생의 몸(attabhāva)을 받아 거기서 근본 명상주제(mūla-kammaṭṭhāna)를 얻어 정력적인 노력으로 상카라의 표상을 확립한 뒤 오염원을 완전히 멸진하여 완전한 열반을 실현한다.” (AA.iii.142)
345)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사마타 행자이다. 한 사람은 정력적인 노력 없이도 기능들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 [금생에서] 오염원들을 제거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네 번째)은 기능들이 약하기 때문에 다음 생의 몸을 받아 거기서 근본 명상주제를 얻어 자극이 없고 수단이 없이 오염원들을 제거한다.”(Ibid)
“kathañca, bhikkhave, puggalo diṭṭheva dhamme s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idha, bhikkhave, bhikkhu asubhānupassī kāye viharati, āhāre paṭikūlasaññī,
sabbaloke anabhiratisaññī, sabbasaṅkhāresu aniccānupassī.
maraṇasaññā kho panassa ajjhattaṃ sūpaṭṭhitā hoti.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의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so imāni pañca sekhabalāni upanissāya viharati —
saddhābalaṃ, hiribalaṃ, ottappabalaṃ, vīriyabalaṃ, paññābalaṃ .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tassimāni pañcindriyāni adhimattāni pātubhavanti —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so imesaṃ pañcannaṃ indriyānaṃ adhimattattā diṭṭheva dhamme s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evaṃ kho, bhikkhave, puggalo diṭṭheva dhamme s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kathañca, bhikkhave, puggalo diṭṭheva dhamme 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 pe ... paṭhamaṃ jhānaṃ ... pe ... dutiyaṃ jhānaṃ ... pe ...
tatiyaṃ jhānaṃ ... pe ...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imāni pañca sekhabalāni upanissāya viharati — saddhābalaṃ ... pe ... paññābalaṃ.
tassimāni pañcindriyāni adhimattāni pātubhavanti — saddhindriyaṃ ... pe ... paññindriyaṃ.
so imesaṃ pañcannaṃ indriyānaṃ adhimattattā diṭṭheva dhamme 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evaṃ kho, bhikkhave, puggalo diṭṭheva dhamme 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iddhimantānaṃ yadidaṃ mahāmoggallāno.
1-3. “신통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마하목갈라나(대목련)80)가 으뜸이다.”
80) 마하목갈라나(Mahā-Moggallāna) 존자는 라자가하의 꼴리따 마을(Kolitagāma)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마을 이름을 따서 꼴리따라 불리었다. 어머니의 이름이 목갈리(Moggalī 혹은 Moggalinī)였기 때문에 목갈라나로 불리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사리뿟따와 절친한 친구였으며 같이 산자야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agga sāvaka yuga)로 불린다. 북방에서도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신통제일이라 불린다.
그는 세존을 뵙기 위해서 사왓티로 왔으며 사리뿟따 존자가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한 것이 그 유명한 『맛지마 니까야』의 「역마차 경」(M24)이다. 이 경에서 그는 부처님 가르침을 일곱 가지 청정으로 요약 설명하여 사리뿟따 존자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으며 이것은 『청정도론』등에서 상좌부 수행의 핵심으로 정착이 되었다.(칠청정은 『아비담마 길라잡이』 9장 §22 이하를 참조할 것)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그를 법을 설하는 자(dhamma-kath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맛지마 니까야』의 「교계 뿐나 경」(M145)에 나타나는 뿐나 존자는 만따니의 아들 뿐나 존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그는 수나빠란따(Sunāparanta, 지금의 마하라쉬뜨라 주)의 숩빠라까(Suppāraka)에서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사업차 사왓티에 왔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다. 「교계 뿐나 경」에는 그가 세존의 허락을 받고 고향인 수나빠란따로 전법을 떠나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수나빠란따 지방에서 크게 전법활동을 하다가 순교하였다. 북방에서는 이 뿐나 존자를 설법제일로 여기는 듯하다.
사리뿟따의 위빳사나를 통한 통찰지의 눈과 같고 목갈라나의 삼매를 통한 통찰지의 눈과 같은 것이다.” (AA.i.117)
2.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도 … 마하깟사빠 존자도 … 아누룻다 존자도 …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도 …
우빨리 존자461)도 … 아난다 존자도 …
데와닷따462)도 많은 비구들과 함께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passatha no tumhe, bhikkhave, sāriputtaṃ sambahulehi bhikkhūhi saddhiṃ caṅkamantan”ti?
“evaṃ, bhante”.
“sabbe kho ete, bhikkhave, bhikkhū mahāpaññā.
3.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사리뿟따가 많은 비구들과 함께 포행하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저 비구들은 모두 큰 통찰지를 가졌다.”
passatha no tumhe, bhikkhave, moggallānaṃ sambahulehi bhikkhūhi saddhiṃ caṅkamantan”ti?
“evaṃ, bhante”.
“sabbe kho ete, bhikkhave, bhikkhū mahiddhikā.
4.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목갈라나가 많은 비구들과 함께 포행하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저 비구들은 모두 큰 신통을 가졌다.” …
passatha no tumhe, bhikkhave, puṇṇaṃ mantāniputtaṃ
sambahulehi bhikkhūhi saddhiṃ caṅkamantan”ti?
“evaṃ, bhante”.
“sabbe kho ete, bhikkhave, bhikkhū dhammakathikā.
7.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뿐나 만따니뿟따가 많은 비구들과 함께 포행하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저 비구들은 모두 법을 설하는 자들이다.”
“dhātusova, bhikkhave, sattā saṃsandanti samenti.
hīnādhimuttikā hīnādhimuttikehi saddhiṃ saṃsandanti samenti;
kalyāṇādhimuttikā kalyāṇādhimuttikehi saddhiṃ saṃsandanti samenti.
11.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요소에 따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저열한 의향을 가진 중생들은 저열한 의향을 가진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리고,
좋은 의향을 가진 중생들은 좋은 의향을 가진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idha, bhikkhave, moggallāno bhikkhu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vīriyasamādhi ... pe ... cittasamādhi ... pe ...
vīmaṃsā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
‘iti me vīmaṃsā na ca atilīnā bhavissati, na ca atippaggahitā bhavissati;
na ca ajjhattaṃ saṃkhittā bhavissati, na ca bahiddhā vikkhittā bhavissati’.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imesaṃ kho, bhikkhave, catunnaṃ iddhipād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moggallāno bhikkhu evaṃmahiddhiko evaṃmahānubhāvo.
비구들이여, 목갈라나 비구는 '이처럼 나의 열의는 … 정진은 … 마음은 …
검증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열의를 … 정진을 … 마음을 …
검증을 [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行]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그는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
밤에처럼 낮에도 낮에처럼 밤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어 머문다.
그는 이와 같이 열려 있는 마음과 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마음을 밝게 만든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 지었기 때문에
목갈라나 비구에게 이러한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이러한 크나큰 위력이 있다.”
so khvāhaṃ, āvu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tassa mayhaṃ, āvuso, iminā vihārena viharato kāmasahagatā saññāmanasikārā samudācaranti.
도반들이여, 그래서 나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머물고 있었을 때
감각적 욕망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에 잡도리함이 몰려들었습니다.” 419)
419) “'감각적 욕망이 함께한(kāma-sahagatā)'이란 다섯 가지 장애[五蓋]와 함께한(pañca-nīvaraṇa-sahagatā)이라는 뜻이다. 초선에서 출정한 자에게 다섯 가지 장애가 계속해서(santata) 생기기 때문이다.”(SA.iii.89)
“atha kho maṃ, āvuso, bhagavā iddhiy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
‘moggallāna, moggallāna! mā, brāhmaṇa,
paṭhamaṃ jhānaṃ pamādo, paṭhame jhāne cittaṃ saṇṭhapehi,
paṭhame jhāne cittaṃ ekodiṃ karohi , paṭhame jhāne cittaṃ samādahā’ti.
5. “도반들이여, 그때 세존께서 신통으로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초선에 대해서 방일하지 말라. 바라문이여, 초선에 마음을 안주시켜라.
초선에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라. 초선에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하라.'
assa mayhaṃ āvuso, etadahosi —
‘idha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vuccati ariyo tuṇhībhāvo’ti.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이것을 성스러운 침묵이라 한다.'
so khvāhaṃ, āvuso,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iṃ.
tassa mayhaṃ, āvuso, iminā vihārena viharato vitakkasahagatā saññā manasikārā samudācaranti”.
도반들이여, 그런 나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머물 때
일으킨 생각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에 잡도리함이 일어났습니다.”
♦ “atha kho maṃ, āvuso, bhagavā iddhiy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
‘moggallāna, moggallāna, mā, brāhmaṇa, ariyaṃ tuṇhībhāvaṃ pamādo,
ariye tuṇhībhāve cittaṃ saṇṭhapehi, ariye tuṇhībhāve cittaṃ ekodibhāvaṃ karohi,
ariye tuṇhībhāve cittaṃ samādahā’ti.
5. “도반들이여, 그때 세존께서 신통으로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성스러운 침묵에 대해서 방일하지 말라.
바라문이여, 성스러운 침묵에 마음을 안주시켜라. 성스러운 침묵에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라.
성스러운 침묵에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하라.'
tassa mayhaṃ, āvuso, iminā vihārena viharato nimittānusāri viññāṇaṃ hoti.
도반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머물고 있었을 때 표상을 기억하는 알음알이가 생겼습니다.”
“atha kho maṃ, āvuso, bhagavā iddhiy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 ‘moggallāna, moggallāna!
mā, brāhmaṇa, animittaṃ cetosamādhiṃ pamādo, animitte cetosamādhismiṃ cittaṃ saṇṭhapehi,
animitte cetosamādhismiṃ cittaṃ ekodiṃ karohi, animitte cetosamādhismiṃ cittaṃ samādahā’ti.
so khvāhaṃ, āvuso, aparena samayena sabbanimittānaṃ
amanasikārā animittaṃ cetosamādhiṃ upasampajja vihāsiṃ.
5. “도반들이여, 그때 세존께서 신통으로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해서 방일하지 말라.
바라문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마음을 안주시켜라.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라.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하라.'
도반들이여, 그래서 그 뒤에 다시 나는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물렀습니다.”
yañhi taṃ, āvuso, sammā vadamāno vadeyya — ‘satthārānuggahito sāvako mahābhiññataṃ patto’ti,
mamaṃ taṃ sammā vadamāno vadeyya — ‘satthārānuggahito sāvako mahābhiññataṃ patto’”ti.
6.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그는 스승의 보호를 받아서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이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addasā kho bhagavā āyasmantaṃ mahāmoggallānaṃ avidūre nisinnaṃ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kāyagatāya satiyā ajjhattaṃ sūpaṭṭhitāya.
세존께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여 앉아있는 것을 보셨다.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
2.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sati kāyagatā upaṭṭhitā,
chasu phassāyatanesu saṃvuto.
satataṃ bhikkhu samāhito,
jaññā nibbānamattano”ti.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감각장소를 잘 제어하여
언제나 삼매에 든 비구는
자신의 열반을 알고 있도다.”
첫댓글
목견련 존자는 불환자 상태에서 아라한 과를 증득하는데 7일 걸렸다는 글을 본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사리불 존자는 M111을 기준으로 보면 15일 걸린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목견련 존자는 불환과에 도달하기 까지 어렵게 어렵게 욕계(66법)를 벗어나셨지만 아라한과를 얻기까지는 적은 시간이
반면에
사리불 존자는 불환과에 도달하기 까지는 어렵지 않게 쉽게 벗어나셨지만 색계의 법들과 무색계의 법들을 세밀하게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더 걸린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 80) 에 나오는 역마차 경과 관련된 주석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부루나 존자에 대한 설명이지 싶습니다.
참고로 본문의
assa mayhaṃ, āvuso, iminā vihārena viharato nimittānusāri viññāṇaṃ hoti.
도반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머물고 있었을 때 표상을 기억하는 알음알이가 생겼습니다.”
...에서
nimittānusāri의 anusāri의 -sāri는 念이 아니라 流이지 싶습니다.
본 카페에 예전에 이미 의견을 드렸든 내용입니다.
(제 댓글은 본문과는 관계가 없는데, 테라와다 불자이신 어떤 분께서 :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의 의미
에 대해 정리하신 것이 있어서 링크를 올려 봅니다.)
(회원님들께서 다 아시는 내용일 텐데,
주석서의 설명이 빠알리로도 조금 나와 있고,
또, 그 글 저 아래에는
해당 주석서와 복주석서의 원문인 듯한 내용이 링크 걸려 있어서
빠알리를 아시는 분들께는 조금 참고가 될까 싶어
이렇게 소개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k3a3n3g3/223147799589
(링크가 안 되면 : 네이버 블로그인)
한 걸음, 더 가서 넘어지는 방법
S35:87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과 S35:65, M112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유보하면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에서
viññātabbā은 가능수동분사(Potential Passive Participle) 혹은 미래수동분사(fut.p.p.)
또는 '의무분사' 형인 'tabba/ya/anīya(īya)'의 복수형(-ā)으로 보입니다.
[manasmiṃ, dhamme, manoviññāṇe,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에서
<意에 대해서(단수/처격), 法에 대해서(단수/처격), 意識에 대해서(단수/처격),
의식에 의해서 식될 법들에 대해서(복수/처격)> -
모두 처격이고 마지막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만 복수 처격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먼저 viññātabbā dhammā에 대한 번역은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 <의무분사>로 번역하는 방법과
'눈의 알음알이로 알음알이 하게 될 법들' <미래수동분사>로 번역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봄봄
<의무분사>로 번역하면 생겨나는 복수/처격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알아야 하는> 의무처럼 보이지만
<미래수동분사>로 번역하면 일련의 진행되는 과정<~하게 될 사건/법들>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봄봄은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안식에 의해서 식되어질 법들(복수형)
…
설식에 의해서 식되어질 법들(복수형)
…
의식에 의해서 식되어질 법들(복수형)
[jivhāya, rase, jivhāviññāṇe]에 대해서
[jivhā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에 대해서
설식에 의해서 식되어질 법들(복수형)은 욕계가 아니면 생겨날 법들이 아니지 싶습니다.
그러면 [일련의 진행되게 될 사건/법들] 복수형, 이런 저런 것들이란?
그 법들이란 이미 본문에 의견을 올려 두었습니다.
'마라'의 눈을 멀게 하려면....
예, 말씀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는 테라와다 불자이신 그분의 글을 읽고,
오늘은 봄봄님의 글을 읽고,
'아, 교학은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구나.' 하고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해 저의 경우는,
경문을 이해하하려고 생각하고 추측한 것이
엉성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또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atthi cakkhu, atthi rūpā, atthi cakkhuviññāṇaṃ, atthi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
atthi tattha māro vā mārapaññatti vā.
눈이 있고, 형색이 있고<*통상 '안식 되어질 색들'로 표현됨> , 눈의 알음알이가 있고,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안식으로 식 되어질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