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웅동에서
지난주 연말정산 관계로 거제 근무지에 다녀왔다. 그날 이웃 학교 카풀 지기와 동행해 근무지에 들려 연말정산을 마무리 짓고 마음 편히 거가대교를 건너왔다. 설을 쇠고 나면 닷새간 출근이 예정되는데 카풀 지기와 개학일이 달라 하루는 대중교통으로 다녀야 한다. 진해 용원으로 나가 경제자유구역청 앞에서 부산 하단과 거제 연초로 오가는 2000번 좌석버스를 이용할 생각이다.
방학 중에도 간간히 교직원 단톡방에 업무 관련 공지사항이 날아왔다. 주로 담임과 관련된 일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사항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제는 교감이 설을 전후한 복무 점검 대비와 코로나 감염 예방 수칙을 준수해주십사는 당부였다. 이런 내용을 접하면서 아직 내가 현직에 몸담고 있음을 실감했다. 일월 넷째 목요일은 개학 후 동선이 될 진해 용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봤다.
이른 아침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진해 용원으로 가는 757번 좌석버스를 탔다. 진해 용원까지 소요될 시간을 가늠해 보고 근처 물색해둔 웅동 산길을 한 번 올라보고 싶어서였다. 버스는 날이 덜 밝아온 여명에 시내를 관통해 남산터미널을 거쳐 안민터널을 지나니 진해였다. 진해구청에서 K조선소 앞을 거쳐 웅천에서 진해 남문지구 아파트단지를 둘러 나왔다.
웅동에 이러니 걸린 시간이 1시간이었으니 그 이후 구간은 20여분 더 걸릴 것으로 가늠되었다. 웅동은 신항만 배후도시 용원이 개발되기 이전 동진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조국 사태 변죽을 울리기도 했던 웅동학원의 사립 중학교도 근처에 있었다. 근래 굴암산과 천자봉 밑으로 두 개 터널이 개통되면서 도로망이 달라졌다. 굴암산 기슭에는 천년 고찰 성흥사와 용추폭포가 있다.
웅동농협 앞에서 마을 안길을 걸어 다리목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던 한 노인을 만났다. 저편 산기슭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어디 가는지 여쭈니 군부대 사격장이 나온다고 했다. 카풀 지기와 2호선 대체 국도를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봤던 그 산길은 군부대 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궁금해 포장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위병 초소는 군복을 입은 초병이 경계 근무를 했다.
아마 해군에 입대하는 신병들이 기초군사교육을 받는 곳인 듯했다. 해군도 사격훈련은 해야 하는지라 총소리 민원 발생을 없애기 위해 산중에다 병영을 설치한 모양이었다. 군부대 바리게이트 앞에서 발길을 돌려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오른쪽으로 드니 부암마을이 나왔다. 마을 뒤는 장유로 통하는 터널이 보였다. 터널 곁 골짜기로 가니 거대한 암반지대의 용추폭포가 나왔다.
폭포는 갈수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약했다. 폭포 앞에서 발길을 돌려 대장동으로 향했다. 오래전 중앙 정계와 법조계에서 두각을 보인 배 씨 가문 두 형제의 출생지다. 마을에서 이슥한 골짜기로 드니 신라 하대 부처님 원력으로 왜구를 물리치려고 불사를 일으킨 무염국사가 창건한 성흥사가 나왔다. 창원 일대 성주사와 우곡사를 비롯해 칠원 장춘사도 무염국사가 세운 절이다.
사천왕문을 지난 법당 뜰에서 잠시 손을 모은 뒤 돌계단을 올라 경내를 둘러봤다. 불자 부부 한 쌍이 법당으로 들었으나 나는 발길을 돌려 절간을 나왔다. 절 앞의 개울에는 한 사내가 어디서 캤는지 모를 칡뿌리를 씻는데 열중했다. 대장마을은 굴암산터널과 진해터널이 빠져나오면서 주거 환경이 예전과 달라졌다. 대장마을 동구에서 신설된 차도의 갓길을 따라 소사마을로 향했다.
소사마을엔 해방 전후 우리 문단과 불교계에 알려진 김달진의 생가가 있었다. 초가로 된 생가를 복원하고 그 앞에는 김달진 문학관이 들어서 있었다. 해마다 지역 문단에서는 김달진 문학제가 열리고 문학상이 제정되어 수상자를 내고 있다. 화분을 돌보는 관리인과 인사를 나누니 상근하는 학예사는 잠시 외출 중이라고 했다. 비상근 문학관장은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평론가였다. 2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