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한국민이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저는 고 3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참 대단했어요.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갈 거라고 누가 생각 했을까요. 정말 그때의 환희와 감동은 대단했죠. 그런데 전 그때보다 LG와 삼성의 한국시리즈가 더 기억에 남아요.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그 해 LG가 한국시리즈에 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규 시즌 성적표는 4위, 그저 가을에 야구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했던 시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마치 마법처럼 김성근 감독님은 강팀이 아니었던 LG를 한국시리즈로 이끌었어요. 흥분과 열광이었죠. ![]() 이상훈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으나 결국 6차전에서 이승엽에게 동점 홈런을 맞고 말았다. (사진=연합) 다시 말하지만, 하필 그때 저는 대입 시험을 앞둔 고 3 이었어요. 그리고 모두가 수능 마무리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저는 야구를 볼 수밖에 없었어요. 공부를 하기 위해 펜을 잡아도 경기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고, 보지 못한다면 일생을 두고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요.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리는 그 날, 저는 아침 일찍 수험장으로 향했어요. 수험장에 들어서 눈으로는 헷갈리는 수학 공식을 다시 외우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경기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참.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 날 경기는 생각납니다. LG는 삼성 배영수에게 막혀 완봉패를 당했어요. LG팬이라면 2002년 11월 10일, 대구에서의 한국시리즈 6차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3승 1패로 몰리고 있다 5차전, 배영수를 무너뜨리며 시리즈는 6차전으로 향했으니까요. 그리고 6차전은 우승을 가늠하는 최후의 한판이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살아오면서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 때 기적을 믿었어요. 아니, 투혼을 발휘해온 LG 선수들을 믿었어요. 그리고 6차전을 이길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어요.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니, 우리는 오히려 기적의 희생양이 되었어요. 9회 말 터진 이승엽과 마해영의 백투백 홈런이 터졌을 때 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일 수밖에 없었어요. 패배의 슬픔이 아니었어요. 억울한 것도 아니었어요. 지금은 SK의 선수로 은퇴하지만 저는 아직도 LG의 김재현을 생각납니다. 고관절 부상으로 구단에게 은퇴압박을 받고, 모든 이들이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말할 때 저는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6차전, 경기 중반 대타로 나온 김재현은 좌중간을 통타하는 적시타를 쳤어요. 적시타의 기쁨과 동시에 1루를 향해 절뚝절뚝 뛰어가는 김재현을 보며 저는 울컥하더라구요. 그리고 김재현의 이기고자 하는 의지, 그것만으로 좋았고요. 9회말. LG의 마무리는 야생마 이상훈이었어요. 비록 준 플레이오프 때부터 계속된 투구에 이상훈은 지쳐있었지만, 저는 믿었어요. 갈기 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를 향해 뛰어오는 이상훈의 늠름한 모습을 믿었어요.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LG편이 아니었어요. 승리에 대한 무게가 무거웠나 봐요. 아니, 선수들은 마지막 힘까지 쏟아냈었나 봐요. 이상훈이 이승엽에게 맞은 동점 쓰리런이, 최원호가 마해영에게 맞은 역전 홈런의 작은 공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애꿎게도 대구 구장 외야에 꽂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고, 우리의 가을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었어요. 6차전, 김성근 감독님은 이상훈에게 "던질 수 있겠냐"라고 물었다고, 그리고 이상훈은 "던질 수 있겠냐고 묻지 마시고, 나가라고 명령해 주십시오."라 대답했다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과 동시에 나의 우상 이상훈에 대한 자부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어요. ![]() LG팬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선수 김재현. 고관절 부상 후 우여곡절 끝에 SK로 이적,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사진=연합) LG팬이라면 1994년을 잊을 수가 없을 거예요. 1994년,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버지의 손을 따라 야구장을 갔을 때 LG의 야구를 보고 저는 팬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신인 삼총사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저의 우상이며, 저에게 최고의 좌완투수인 이상훈. 언제나 LG의 끝을 책임지는 김용수. 그리고 모든 LG 선수들. 그때의 기억은 어린 초등학생에겐 황홀했었고, 쉽게 버릴 수 없는 모태신앙과 같았어요. 그리고 지금, 솔직하게 말할게요. 올해까지 8년째 가을잔치에 못 갔어요. 한국 신기록이라 하더라고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었어요. '도대체 LG는 왜 야구를 못 하는 거야'라고 외쳐봐도 누구하나 제대로 답을 제시하지 못하더라고요. 혹자는 그러더라고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의 저주. 쳇,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요. LG 팬들은 매년 이맘때만 되면 행복한 상상을 해요. 내년 시즌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함께 '내년에는 잘할 거야'라 생각하죠. 비록 몇 년째, 한 순간의 공상에 불과하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있죠. 내년에는 잘할 거라고, LG의 재밌는 야구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친구들은 저에게 말해요. “LG팬 왜 하냐고" 그럴 때마다 저는 말해요. "나는 아직도 1994년 LG 때만큼이나 재밌고, 2002년 때만큼이나 극적인 야구를 하는 팀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미 저에게는 첫사랑과 마찬가지인 LG를 버릴 수는 없어요. 저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저와 항상 함께해온 야구팀은 LG 트윈스니까요. 그리고 저는 믿어요. 명가는 언제고 재건된다, 다시 예전의 신바람나는 LG의 야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LG 트윈스, 그리고 내년에도 파이팅! 추신 : 그런데 왜 박병호는 안터지나요? [더 많은 이야기를 www.inning.co.kr 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 오감도는 이닝 (www.inning.co.kr)에서 팬들이 남긴 훌륭한 글을 모아 보내는 이름입니다. 이 글은 본 이닝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사뭇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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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신이 중요하군요 ㅋㅋ
이글의 뽀인트는 추신이구요 ㅋㅋㅋㅋ
ㅠㅠ
사람들이 너는 왜 엘지팬이니 물어볼 때, 야구계에 한 획을 그은 팀이 엘지다!! 라고 말해줍니다. ㅎ ㅎ
가슴 찡한 편지에 추신에서 빵 터뜨려주시는 센스...역시 엘팬님은 센스쟁이...ㅋㅋ
저도 94년때 부터 엘지팬 했는데~박병호는 곧 터져요~ㅋㅋㅋ 빠르면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 꼭 터짐~
반드시!!
절대공감... 90.94.2002 만큼 재밌고 극적인 경기 한 팀있으면 나와보라고해!!!
2002년 대구에서 홈런맞을대 관중석에 잇엇던 사람입니다...그 게임 후 몸살을 앓았다는...그 시합이 아직까지 마지막 포스트 시즌 일줄이야....
사실 저에게 누가 왜 엘지팬을 하냐고 물으면.... 솔직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렇게 못하고 죽쑤는 팀인데도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진심 공감...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