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에서 산행을 마치고 오랫동안 이런저런 일로 오랫동안 가지 못하고 김천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참으로 오랜만에 가는 산행이었습니다. 김정우 회장님께서 자주 연락을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천이란 도시가 너무나 작은 도시여서 오니까 마음이 편안하기도
했습니다. 도착하고 나서도 마지막에 종웅 형이 가방을 두고 내렸다고 좀 갖다 달라고 해서 문화센터에
다시 가서 가방을 건네 주고 나서 오려는데 형이 술을 먹어서 형 차를 운전해서 신음동에 내려다 주고
집으로 오려는데 이마트 앞에서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택시를 하는 아는 형이
서 있길래 "형, 나 좀 집에까지 태워 줘요" 하고 그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서울 같으면 아는 사람 만나는게
같은 동네 아니면 지나면서 만나는 게 거의 없는 일인데 김천이라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 게 참 편한 곳이
김천이라 참 좋습니다. 김천에서는 두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라고들 하대요.
죄송하게도 아침에 8시 20분까지 나오라 하셨는데 나오는데 보니까 뭘 하나 빠뜨려서 엘리베이터 다시
한 번 다녀온 게 몇 분 늦었습니다. 하늘같은 선배님들과 어르신들과 첫 대면하는 일인데 제가 늦어서
말이지요. 그래서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기사님이 얼굴이 참 낯설지 않다 했는데 내릴 때 보니 친구 형
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좀 뒤로 미루겠습니다. 또 국민학교 동기인 종순이의 오빠 되는 선배 종웅이형이
낯설지 않은 얼굴입니다. 김정우 회장님과는 전화통화를 그 전에 몇 차례 했던 터이고 사진으로는 이미
얼굴을 뵜고 1년 전에 원주 치악산 때도 아마 뵜을텐데 그 때는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었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알고 보니 제가 거의 막내더군요. 회장님의 인사말씀과 또 산행대장
님의 몇 가지 당부말씀에 이어 한 사람씩 소개를 하는데 송구하게도 그 때 대학 때 은사님의 전화가 와서
끊지도 못하고 통화를 하다가 제 소개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제 잘못인데 '저 안했습니다'하기도 뭣해서
그냥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김정우 회장님과 임원들, 그리고 송설동문님들과 황금동교회의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대부분이고 섹스폰
연주팀들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비교하기는 좀 뭣하지만 서울에서는 대개 10여 명 정도가 가서 전철에서
만나서 가고 차 안에서의 여정은 대개 배제되는데 이번에는 차 안에서도 멋진 라이브 기타의 연주에 멋진
70,80노래들로 대략 3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손가락 아프다고 시작하다가 만
기타를 악보도 없이 몇 곡이든 연주해 내시는 윤익종님은 이름도 전에 해바라기 멤버 중의 한 분의 이름과
비슷했습니다. 그 분은 유익종과 이주호라는 분인데 기타 연주뿐 아니라(not~ but also) 노래도 송창식의
'우리는' 명곡을 부르시는데 악보를 송창식보다 먼저 접하셨으면 먼저 앨범을 내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할 만큼
노래를 잘 부르셨습니다. 대개 노래는 아무리 잘 불러도 본래 가수보다 더 잘 부르기 어려운데 이 분은 정말
송창식씨보다 더 잘 부르셔서 앵콜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 전에는 문성중학교에서 음악선생님으로 계신
여미숙 선생님의 노래도 있었는데 이 분 때문에 음악선생님의 노래도 묻혀 버렸습니다. 음악선생님도 노사연
의 만남을 부르셨는데 남궁옥분 같은 음색이어서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건 상행선에서 대둔산 자락에 도착
하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여기서는 노래 부르면 망신만 당하겠구나' 하고 하행선에서
저보고 노래 곡명을 받아서 예약도 하고 하라시는데 아예 저는 안 불렀습니다. 대둔산에서 김천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은 한 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제가 낄 자리가 아니라 여겨서이기도 했습니다.
종웅이 형도 한 곡 부르려고 예약은 했는데 김천에 다가오다 보니 '이제 그만하라'고 하셔서 예약된 곡이
있었지만 그만했습니다. 아! 가수들이 노래 잘해서 된 사람들인건 분명하지만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하는데 한국에서 가수가 된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생각이 됩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내릴 때에야 운전 기사님이 어릴 때 한 동네에서 같이 다니던 친구 형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친구도 경주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큰 형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집에 와서 친구에게 이만저만하고 저만이만한 일이 있었다고 얘기를 해줬습니다.우리 버스에
함께 탄 사람들 중에서는 제가 존경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TV 드라마에 야인시대에 나오는 김두한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함께 온 분 중에 이름이 똑같은 분이 계셔서 좀 놀랐습니다. 아마도 가족이 함께 오신 듯했
습니다.
20년 전에 왔던 산을 다시 타는데 대둔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 서 있는데 저는 나이만 스무 개를
얹어 가지고 왔습니다. 어느 스님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하면서 모두가 아는 명제를 가지고 이야기 해서
유명하게 되었지만 곧바로 돌아가셨는데 저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시조가 생각이 났습니다. 제게 꼭 필요한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시편도 생각이 났지만 그건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모세가 산에서 십계명 받던 장면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997년부터 태백
산자락에 있는 예수원이라는 수도원에 살면서 제가 받은 신명이 바로 '모세'이거든요. 물론 저는 그에 비견할
만한 사람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양이 300마리 정도 있어서 거기서 양을 치기도 했던 일이 있습
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저는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산에 오르면 몸에 땀이 나서 내 안에 있는
노폐물을 배출해 내듯이 정신적으로도, 생각으로 지었던 죄들도 내 머릿속에서 다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지는 것을 매번 체험하게 됩니다.
저는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가방을 챙겨와서 밥도 못 싸가지고 왔는데 고기며 떡이며 이것저것
많이들 챙겨 오시고 해서 정상에서 식사를 할 때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산
정상에서 먹었던 밥 중에서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는 세란 누님이 싸가지고 오셨던 과메기가 정말
맛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산 정상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거기서 '송설산악회'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쳤더니 지나가던 사람 중에서 한 명이 와서 인사를 하는데 고등학교 후배였습니다. '송설'이란 이름이 참
좋은 이름으로 여겨집니다. 운전할 때는 급하게 운전하는 사람들도 대개 산에서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습
니다. '양보'란 정말 아름다운 언어인데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그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산에서만
이라도 조금씩 양보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저는 올라갈 때 가방에 넣어 두었던
배가 많이 무거웠는데 정상에서 그걸 깎아서 나누어 먹으니 더 없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산행을 기뻐하시는지 날씨는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였습니다. 처음 출발하면서 희영
형님(기사님)은 우리가 정상 다녀올 안 뭘 하며 시간을 보내실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선두로 가시고
몇몇이서 작은 팀을 이루어서 삼삼오오 올라가는데 저는 언제나 그렇듯이 산행을 하면 항상 맨 후미에서 같이
올라가는 편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번 더 성경을 언급해서 죄송하지만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형과 전쟁할 뻔했던 장면에서 전날 야곱이 얍복강에서 기도를 한 후 화해를 하면서 장자권을 빼
앗은 동생을 죽이겠다고 왔던 형이 '내가 너를 보호해 줄테니 같이 가자'하니까 야곱이 '형님 먼저 가십시오.
저는 부녀자도 있고 어린 아이들도 있고 아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들(약자)의 속도에 맞추어서 천천히
갈 것입니다'라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항상 산행을 할 때 맨 후미에서 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과연 어떤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일까를 많이 생각해 봤는데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내려올 때는 저는 대부분 뒤로 걸어서 왔습니다. 제 경험상 하산할 때는 뒤로 걷는게 다리에 무리도 덜 가고
나중에 알도 배기지 않고 여러모로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지에서도 혼자 걸을 때면 뒤로 걷기를 잘 합니다.
때로는 뒤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연습을 해서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혹 넘어진다 해도 학교
에서 유도를 전교생이 다 배워서 다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축구하다가 넘어져도 저는 거의 다친 적이 없습
니다. 제 자랑인 듯 썼네요. 용서하소서!
단풍이 예년보다는 좀 못하다는 말씀들을 하셨는데 그래도 나무 한 그루, 그 나무의 한 잎 한 잎들이 모여서
세상에서 가장 큰, 가장 아름다운 수채화를 이루고 있는 절경이란 TV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가 없는 일이지요.
다음 달에는 어느 산엘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대둔산에 가셨던 분들 한 분도 빠짐없이
그래도 다음 산행에서도 뵜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제가 처음 참석한지라 아직 함께 가셨던 분들 얼굴과
성함이 다 매치가 되질 않네요. 그렇다면 좀 더 자세하게 쓸 수 있을텐데요. 하산하고 나서 돼지고기도 참
맛있었구요. 교수님도 오시고, 번역하시는 선배님도 계시고, 다양한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 함께 산을 타면서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경험과 삶들을 나누는 게 참 아름다운 모임이라 생각했습니다. Life is wonderful!
첫댓글 좋은글 주셨네요.나이 스무개 세어 얹을때가 부러워요. 무엇보다도 황금동교회팀들 박대형님을 넘 좋아하더이다. 눈 딱 감구 걍-Please come & see...다음산행지 요청 왔어요. 난 그날 영광의 상처를 동생들의 체온으로 회복되었다오. 암튼 자주 만나요. 다음 준비모임엔 대전 조수헌동문도 와요. 그때 만나요. 당크 쉔. 대형님의 성경 글 맘에 와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너무 종교적인 글을 올려서 뺄까 생각했다가 괜찮다 하시니 그냥 두겠습니다. 상처 빨리 아물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어느종교도 환영합니다. 사실 모두 이슷합니다. 저도 결혼전엔 불자(어머님도 절에 모심) 입니다. 사랑하는 동생일부는 천주교이구요. 무한공간서 다양종교 대화 넘 좋아요.
대형아! 반갑구나! 본부산악회는 대형이 네가 동기들 및 후배들게 많이 홍보하여 활성화 시켜주기 바란다.
네 선배님!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틈나는대로 동기들과 아는 동문들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선배님은 나중에 합동산행 때나 뵙게 되겠네요. 답글 감사합니다.
담엔 꼭 함께 하겠습니다.
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준환경위 인사(안부)는 대충 내가 했어요.
대형형제님^^산행후기 넘 잘쓰셨네요. 전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때문에 계단이 겁나는데ㅎㅎ혹여 낙오될까 후미에서 끝까지 도와주신 종웅님과 대형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세심한 배려가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목회자 되셔야 해요. 감사했어요^*^
혹시 문성중학교 선생님이신가요? 누구신지 모르겠네요. 네 좋은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신대원도 가야 하고 그보다 제가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아서 난망합니다.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죠.
네 맞아요. 요즘 고입원서철이라 쬐끔 바빠 이제 답 드려요. 시간 되시면 저희 교회에 오셔서 같이 예배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아! 네 그러면 한 번 가겠습니다. 계속 가기는 그렇지만 가게 되면 미리 연락 드리고 수요일이나 금요일이나 한 번 가겠습니다.
후기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대둔산을 생각했습니다~
좋은분들과의산행 그리고 ...대형님의 배려까지~올가을 추억으로 접어두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자들에게 부유해지는 비법을?많이 전수해주시길 ...생각날때마다 기도하겠습니다~
ㅋㅋㅋ심령(마음)이 가난한 자 복 있다자너유......
저는 버스 안 콘서트를 듣는 줄 알았습니다. 기타 연주와 노래, 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