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실패자의 착각
엄청난 경쟁률 뻔히 보고도 삼성전자·공무원에 몰려 분산지원은 왜 생각않나
불안감이 만든 병리현상
구조조정… 길어진 노후… 청년들도 불확실성 겁내 철밥통·안전 추구하지만 20년후…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교수
이런 현실은 대부분 현재 한국의 구직난과 청년 실업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런 청년들이 얼마나 불쌍한지에 초점이 맞춰져서 거론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지난 60년 동안은 취업이 쉬웠던가, 과거에는 이런 현상이 왜 없었을까를 고민해 보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취업 상황 차이 때문인가? 아니면 과거와 현재의 구직 청년 차이 때문인가?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당연히 사람인 구직 청년 요인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과거에도 인기 있는 직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몰리지는 않았다. 더구나 과거에 더 좋은 직장이 다양하게 많아서 삼성이나 공무원과 같은 직장에 몰리지 않았던 것도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과거에는 지금의 청년들이 취업하려고 생각도 안 하는 직장들에 그 청년들의 부모들은 알아서 분산해 취업했다. 몇 천 명밖에 채용하지 않는 직장에 몇 십 만명이 취업해야 한다고 믿고, 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착각이 적었던 거다. 물론 이런 '자기 고양적 착각(self-serving illusions)'은 인간의 기본적 본성에 해당해서,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래도 인간의 착각은 어느 정도 현실적 근거를 반영하게 된다.
즉 오히려 과거에 비해 현재 우리 사회가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학생들에게 지나친 착각 여지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연간 사교육비 18조원, 대학 진학률 80%란 수치가 잘 보여주듯, 모든 학부모가 자녀의 획일적 교육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 바로, 지나치게 많은 청년으로 하여금 모두 비슷한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 자신이 뛰어나고, 능력이 있고, 취업할 수 있고, 당연히 취업해야 한다는 착각이 최고 직장에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청년이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은 이렇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삼성전자와 공무원에 몰릴까?
하지만 이렇게 이질적인 두 직장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불안이 지배하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안전'해 보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금 너무나도 잘나가고 있다. 1년도 아닌 분기에만 매출 53조원, 8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고, 보유 자금이 55조원인 삼성전자를 볼 때, 머릿속에는 자연히 '안전'이라는 생각이 만들어진다. 흔히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그것도 하위직 공무원을 보면 정년 보장, 공무원 연금이라는 '안전'만 떠오른다. 지난 15년여 동안 수많은 기업의 구조조정, 길어진 노후, 불확실성이라는 태풍에 휩쓸린 청년들이 안전을 좇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삼성과 공무원이 미래에도 안전할 것이냐는 의문이다. 1992년 매출액 기준 재계 순위는 1위 삼성물산, 2위 현대종합상사, 3위 대우 순이었다. 삼성전자는 7위였으며, 1위인 삼성물산의 절반 정도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3년 기준으로 1위는 삼성전자이다. 그냥 1위가 아니라 압도적이다. 매출액에서 2위인 SK에너지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언제까지 1위를 유지할까? 지난 22년 동안 일어났던 변화만큼 앞으로 22년 동안에도 변할 수 있다. 1992년에 1위였던 삼성물산은 현재 20위권 밖이고, 3위였던 대우는 사실상 해체됐다. 이런 일이 삼성전자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최근 공무원의 철밥통도 위협받고 있다. 평가, 재교육, 퇴출이라는 단어들이 공무원 사회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얼마 전 국가 채무가 급격히 늘었다는 발표를 하며, 그 원인으로 공무원연금을 들었다. 결국 연금도 손보게 될 거다. 지금 삼성전자 직원과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50~60대 직장인들은 안전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사례들을 보면 20~30년 후 이 직장들이 안전할 것이란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 안전해 보이지만 앞으로 위험해질 수밖에 없는 곳을 찾아가면 나중에 배신만 당한다. 나중에 안전해질 수 있는, 지금 위험해 보이는 곳을 찾아가도 어차피 평생 감수해야 할 위험은 동일하다. 다만 언제 위험을 감수하느냐 하는 차이만 있지, 이 세상에 더 안전한 선택은 없다.
첫댓글 정보 감사 합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