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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마을에 쌓아올린 동심의 산성
-정재분 제3동심시집 『산성마을 아이들』
박 일
1.
‘아는 것이 힘이다.’
몸소 겪었다. 수년 전이다. 해마다 지역 순회를 하면서 전국 동기회(진주교대 제3기)를 개최하는데 산성마을에서 하자고 결정하였다. 낯선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 것은 정재분 선생이 계셨기 때문이다.
정재분 선생!
산성마을(금정구 금성동)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아동학을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까지 얻었으니 그와 함께 지내는 어린이는 정말 행복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0년 『한맥문학』 동시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한다. 문단활동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다. 부산여성문학인회 회장, 부산 가톨릭 문인협회 회장, 금정문인협회 회장 그리고 부산문인협회 감사를 역임했고, 계간지 『여기』와 『부산가톨릭 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여성문학회 부설 ‘물소리’ 시극단원으로 시극 『장산국』 『윤선도』 『훈민정음과 신미대사』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깜짝 놀랄만한 재능이 또 있다. 합창의 지도와 지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대학에 지휘과를 따로 두는 것은 지휘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한 때 부산문인협회에서 문인 합창단을 운영했다. 그 때 수석 지휘자가 정재분이었다. 발표회를 감상하면서 그의 능력에 감탄을 했지만 아동문학가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라서 우쭐거리고 싶게 했다.
동시집은 『이야기 주머니』(2012), 『둘이어서 다행이다』(2015) 그리고 『산성마을 아이들』(세종출판사. 2017) 등이 있다. 그러나 동시집이라 하지 않고, 동심시집이라 명명했다. 선용 선생의 영향을 받았나 보다.
수상은 ‘부산가톨릭문학상’, ‘한국시낭송상’, ‘한국동서문학작품상’ ‘전국꽃문화축제우수상’ 그리고 ‘부산여성문학상’ 등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에 썩 만족스럽게 생각하진 않지만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을 소개할 일이 있으면,
“저는 정품의 밀가루입니다. 싸다고 불량품 쓰지 마시고 저를 꼭 찾아주세요.” 라고 한다고 한다. 그게 정재분이다.
2.
2015년 ‘한국동서문학작품상’으로 수상한 「돌담」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큰 돌만 있다고
예쁜 돌담이 되겠니
그렇다고
작은 돌만 있다고
튼튼한 돌담이 되겠니
큰 돌 작은 돌
손을 잡아 섞여야
바람도 들어오지 못하지
어쩌다 담쟁이 넝쿨이
안아주면 좋고
거기다
나팔꽃도 한 송이 피어 있으면
더 좋겠지
혼자서
혼자서는 안돼
함께
함께라야
힘이 되는 거지.
-「돌담」 전문
『한국동서문학』(2015. 가을)에 실린 작품이다.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 하나를 골라 해마다 작품상을 수여하는데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를 한 선용 선생은 ‘동시“돌담”은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돌 하나하나가 모여 돌담이 되듯 큰 힘이 되는 모습과 사물의 고향인 동심이 바탕에 깔려 있는 수작이다’라고 했다. 함께라야 힘이 되는 돌담의 에너지가 안아주기(holding)처럼 따뜻하게 느껴진다. 제2동시집 『둘이어서 다행이다』에 실려 있다.
‘이온겸의 문학기행’은 유튜브 방송인데 문인과 그 작품들을 소개한다. 정재분 선생이 2020년 5월 6일에 출연한다. 문학행사에 사회를 많이 볼 정도로 달변인데다 낭송도 잘하니까 아나운서 못지않았다. 동시를 쓰게 된 이유를 물으니 “길게 쓸 자신이 없어서”라고 솔직담백하게 대답한다. 초등학교 때 시조시인이신 담임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지만 정진채, 선용 선생의 지도가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영감을 많이 얻지만, 작품성이 부족한 것 같아 늘 부끄러움이 크고 한다. 그러나 시낭송대회에서 자신의 동시가 낭송될 때의 보람은 컸다고 얘기한다.
제3동시집 『산성마을 아이들』은 제25회 부산여성문학상 수상작품집이기도 하다. 이 때 소개한 작품이 「최고의 처방전」이다.
우리 동네는
그 흔한
통닭집도
피자가게도 없다
간식이 생각날 땐
고구마 쪄먹고
전을 부쳐 먹지만
병원도 약국도 없는
우리 동네 아이들
모두가 건강하다
맑은 공기와
건강한 먹거리
이것이 약이지
자연 약을 먹고
날마다
쑥쑥 자라는 아이들
의사 선생님 약사 아줌마
미안해서 어쩌죠
-「최고의 처방전」 전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니까 병원이나 약국의 신세를 질 이유가 없다. 자연이 힐링의 공간 아닌가. 건강한 아이들처럼 그의 동시도 밝고 건강하다.
3.
제3동시집 『산성마을 아이들』이 출간되고 <국제신문>(2017년 8월 30일)에 다음과 같이 실렸었다.
‘정재분 동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 산성마을 아이들(세종출판사)이 출간됐다. 정 동시인은 어린이 교육 전문가이자 문인이다. 그는 대구가톨릭대학 대학원에서 아동학을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5년부터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다. 2000년 한맥문학에 동시가 실리며 등단해 동시집 『이야기 주머니』 『둘이어서 다행이다』 등을 펴냈다.
산성마을 아이들은 정 동시인이 살고 있는 금정산성 산성마을의 아이들과 그곳의 정겨운 풍경을 동시로 옮겼다. 1999년부터 산성마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 동시인은 그곳 아이들의 순박한 모습을 둥글둥글하고 생생한 시어로 그려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그들의 어여쁜 모습이 눈에 들어와 동시가 되었다”고 말했다.
책에 수록된 동시는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에 관한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정 시인과 김용배 사진가가 찍은 아이들의 밝은 얼굴 사진도 함께 실려 책에는 활기찬 기운이 가득하다.’라고.
이 동시집의 책머리에 해발 450m 부산의 동래 금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네 개의 성문 안에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앉은 산성마을 주민들의 생활모습이 현대 문명과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저는 산성마을 아이들의 남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동심을 그대로 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산성마을의 환경과 생활풍습, 아이들의 모습은 조용한 시골, 푸근한 고향집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 메말라가는 현대 핵가족 시대의 어른들에게 휴식처가 되어 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라고 했다.
그 휴식처는 산성마을에 쌓아올린 『산성마을 아이들』이라는 동심의 산성이 아닐까?
멀리서 달려오는
옆집 아저씨의 막대기
담장 따라 걷는 사람들도
하나 둘 벽화 속으로
들어간다.
-「벽화가 있는 골목」 후반부
선풍기가 없어도 시원한
산성마을
소나무 숲
흑염소 불고기
산성 막걸리로
전국으로 소문난
산성마을
-「웰컴 투 산성」 제4,5연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돌멩이와 바위들
응원의 박수소리 끊이지 않는
금정산 산성
-「바람아 너는 알고 있니?」 마지막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에 손자까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금정산성」 마지막연
역사와 문화재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자연경관이나 환경도 남다르다. 숲, 골짜기, 산과 길이 모두 놀이터이며, 장난감이며, 자연학교 교실이니까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나무 사이로
밧줄 타고
칼싸움하는
남자 아이들
특별한 장난감 없어도
심심하지 않은
산성마을 놀이터
-「숲 놀이터」 제4,5연
머루 다래 따 먹고
언덕에서 미끄럼 타며
꼬불꼬불
산 아래 마을까지
학교 가는 길이 즐겁기만 했던
아이들
-「꼬부랑 산길」 제2연
진달래꽃 따서
화전 부치고
나뭇가지 왕관 만들어
연극도 하는
숲 교실
-「우리들 교실」 제1연
부족한 것이 넉넉해서 좋다. 문화 시설이나 의료시설이 부족해도 자연이 있고, 인구가 적어도 이웃 모두가 사촌이 되니까 얼마나 넉넉한가.
우리 마을이 생기고
처음으로
약국이 생겼다
유리창엔
‘약’이란 빨간 글자
크게 써 놓았지만
찾는 사람 없다
-「약국」 제1,2연
고향생각 나면
찾아오라는
커다란 간판들
진주집 창녕집
마산집 충무집
옹기종기 앉아
구수한 사투리로
손님을 반긴다
-「우리 동네」 제3,4,5연
파전을 이웃과 나누었더니
커다란 접시에 도토리묵이 돌아오는 걸 보면
작은 마음이 큰 선물이 되는
우리 동네
-「마음이 만드는 선물」 제4,5연
-고당봉 이겨라!
-파리봉 이겨라!
청군도 백군도 없이
고당봉 팀과 파리봉 팀이
서로 대결하는
산성마을 운동회
-「금성 가족 한마당」 제4,5연
비상을 꿈꿀 수밖에 없게 한다. 자연보다 훌륭한 과외선생이나 학원이 있을까? 그렇게 큰 공부를 하니까 큰 꿈을 꿀 수밖에 없다.
삼나무 높은 가지에
그네를 매고
힘껏 하늘로 뛰어들어 보세요
한 마리 날개 푸른
새가 되어
날아갈 거예요.
-「숲 마을로 오세요」 제6,7연
고사리 작은 손까지
고운 물이 들어
화들짝 웃는
산성 체험 촌에는
언제나 무지개 꽃이
피어 있다
-「산성 체험 촌」 제4,5연
이 외에도 누룩 할머니, 산성, 사대문, 역사문화축제, 국청사, 금정산성, 영세불망비, 애기소, 산성 막걸리, 금샘 그리고 일품 국수집 등 누룩 빚듯 다양한 체험을 동시로 빚었다. 이게 달짝지근한 동시의 뒷맛이고, 발효가 될수록 더 은은한 맛을 풍기리라.
그의 동시는 화려한 장식이나 가식을 하지 않는다. 비유나 상징보다 주로 동화(assimilation)에 의존한다. 동화란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이른바 세계의 자아화 아닌가.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링 같아 구수하고 잘 읽혀진다.
4.
금정산은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금빛 우물(금샘)에서 놀았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주봉은 고당봉(801.5m)이다. 산성이 조성된 것은 1703년 숙종 때라고 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은 후 국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쌓았다고 하는데, 길이 17,371m, 성내면적 251만 2천 평, 성벽 높이 1.5m~3m 정도이며 국내 산성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산성마을은 금정산성이 축조된 이후에 형성됐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동시인 정재분은 이곳 산성마을에서 ‘금성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의 언행이 동시인데, 당신이 수십 년 살고 있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 『산성마을 아이들』을 담았으니 편편마다 간절함과 절실함이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환상적이거나, 기교를 부리거나 통통 튀는 기발함은 없지만 성벽을 쌓은 돌처럼 듬직하고, 투박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담화를 나누듯,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동심시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동심의 세상에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심을 잃어가는 어른들도 있다. 동심의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면 동심시가 훨씬 수용의 폭이 넓지 않은가.
그는 ‘이온겸의 문학 기행’에서 외롭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따뜻하게 위로하고 응원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아이들은 사랑 받아야 할 주체니까 부모님은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아이들은 감사하는 생활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게 평화로운 세상이란다.
『산성마을 아이들』은 산성마을 뿐만 아니라 메마르고 거칠어지는 이 세상에 쌓아올리고 싶은 또 하나의 동심의 산성이다. 동심의 산성을 쌓아올려 동심의 세상을 만들고 싶은 그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어쩌면 문학은 사회적 치료(social therapy)나 힐링의 동력일 수 있으니까. 그의 문학과 문단 활동이 아동문단 안에서도 인정받고, 환영 받는 계기가 있으리라 믿는다.
첫댓글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고 이렇게 평을 해준다면!
정재분 선생님의 동시를 다시 음미해 봅니다.
박일 선생님의 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