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추상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944) Vs 차가운 추상 몬드리안 몬드리안 Piet Piet Mondrian (1872~1944)】
뜨거운 추상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2~1944.12)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의 화가. 모스크바 출생,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현대 추상 미술을 창시한 한 사람이다. 지극히 자아의 현상과 개성을 강조한 현대 미술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20세기 초 예술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구상에서 추상 운동을 이끈 이론가이자 예술가.
처음에는 법률과 경제학을 배워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학자의 길을 걸어 나갈 상황이었다. 대학에서 재임을 제의받은 상태였던 칸딘스키는 1895년 인상파 전을 보게 되고 그의 운명은 바뀐다. 서른 살의 칸딘스키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뒤로 한 채 통째로 예술에 사로 잡히게 된 것이다.
모네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이듬 해인 1896년 뮌헨으로 옮겨 화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미술 학교부터 들어가 기초부터 공부하여 훗날 미술 교수가 된다. 그리고 그는 현대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콤포지션 no.7
1908년 칸딘스키는 작품이 안 풀려 붓을 내던지고 산책을 나갔다. 맑은 정신으로 다시 작업실에 들어서는데 기막힌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형태는 잘 모르겠지만 순수한 색채만으로 구성된 황홀한 수채화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실수로 옆으로 돌려 놓은 자신의 작품이 아닌가. 추상화의 세계는 그렇게 탄생했다. 콤포지션 no. 7은 그의 대표작이자 그의 첫번째 추상화이다.
콤포지션은 원래 그림을 그릴 때 화면에 담을 것의 배치를 잡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의 회화 제작에서는 한정된 2차원에 공간 조형하는 것으로 눈으로 보는 대상의 관계에서 통일과 변화, 생략과 강조라고 하는 시각적으로 느끼는 것에 의하며 일어나는 종합적인 감동을 조형 사고(思考)에 의하여 회화적으로 질서를 잡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의 뜻은 구성으로까지 확대하여 생각한다. 2차원에서 3차원적인 양(量)의 문제로서 역학적인 조립 ·균형 ·대비 ·조화 등을 이용하여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흰색에 대하여
칸딘스키는 몬드리안과 같은 추상 표현주의에 속하는 화가이지만 그림 안의 표현에 있어 몬드리안의 정형화도 어느 정도 있는 듯 하면서도 자유로움이 더해져 있다. 추상 미술이라 함은 정해 놓은 대상이 없고 어떠한 생각이나 내용에 관한 주관적인 표현이다. 그의 그림은 자유로운 선과 형채, 색으로 감정과 직관에 근거하여 표현되어 있다.
원속의 원
뜨거운 추상은 우발적인 특성이 강한 추상화이다. 작가 자신의 내면의 감흥이나 감동을 비구상적인 형태와 색채로 표현하여 주정적이고 뜨거운 느낌을 표현한다. 비정형의 추상이라고도 하며, 주관성이 강하고, (작가의) 감정과 동작에 의한 강하고 열정적인 표현이 특징.
두 개의 환경
칸딘스키 하면 생각나는 것은 점, 선, 면이다. 이는 추상의 기본이 되는 구성요소이다. 그는 현대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서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이탈한 그림을 보여 준다. 선명한 색채로써 다이내믹한 추상 표현으로 시작하여 점차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으로 구형된다.
검정 그물
칸딘스키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추상 즉 대상이 없는 그림을 그렸다. 추상회화는 자연의 대상을 떠나 순수한 조형 요소인 선, 면, 색채 등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비대상 예술이다. 표현주의의 강한 표현, 야수주의의 색채 해방, 입체주의에서 나타난 사물의 파편화, 절대주의의 순수 지적인 화면 등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조형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차거운 추상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년,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화가. 아머르즈포르트 출생.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화의 선구자로 1894년 암스테르담 미술 학교를 졸업했다. 자연주의 화풍에서 시작하여 추상으로 바뀌었다. 태어날 때부터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에 젖어 있었으며, 이런 분위기에서의 성장이 몬드리안 예술을 결정지은 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미술 교사 출신의 화가로 고독과 청빈에 만족하며, 종교적인 엄격한 경지를 지녔었다. 초기에는 큐비즘으로 전향하여 대상의 추상화를 지향함으로 비구상적 경향의 1920년 신(新)조형주의를 창시하여 순수 추상을 지향하는 유력한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하학적 추상의 원류를 이루어 냈다.
Composition with Red, Yellow and Blue
1921, Oil on canvas, 39 x 35 cm
몬드리안은 가장 단순한 요소인 직선과 원색으로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했고, 우주의 객관적인 법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료하고 절도있는 회화를 열망하였다. 수평, 수직, 3 원색, 3 비색이란 기본적 조형 요소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욱 복잡하고 더욱 경쾌한 리듬과 구조의 풍부함을 드러낸 것이 었다.엄격하고 무거운 구성과 절제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린 아이 같은 천진한 감성과 생애 즐거움을 느낄수 있다.
Lozenge Composition with Red, Black,Blue,and Yellow
1925, Oil on canvas, 77 x 77 cm, Private collection
몬드리안은 정형화되고 계획되어진 공간에의 분할을 통해서 작품을 하였기 때문에 무척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회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화면상의 공간 디자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단순하고 깔끔하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차가운 추상이라 일컬어진다.
콤포지션 no. 2
눈에 익은 디자인이 아닌가? 그의 회화는 의상과 조형에 많이 응용되고 있다.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의 표현보다는 기하학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몬드리안의 비례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수직, 수평선과 적·황·청·흑·백·회색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콤포지션 no. 2는 신조형주의 이론을 통해 완전한 추상 회화에 이른 1920년대 몬드리안의 대표작으로 이제 그의 화면에는 보편적인 조형 요소인 수평과 수직선만이 남았으며, 빨강, 노랑, 파랑의 삼 원색만 남았다.
모든 것을 대립되는 두 요소로 설명하는 몬드리안은 이 대립의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조화를 회화의 기본 법칙으로 삼았다. 남성적인 원리가 수직선이기 때문에 남성은 이러한 요소를 숲의 상승하는 나무들에서 인식할 것이다. 그는 그의 보충을 바다의 수평선에서 본다.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Broadway Boogie Woogie)
1942~1943, 유화, 127x 127cm 뉴욕 근대 미술관
몬드리안 말기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몬드리안은 1938년에 파리를 떠나 런던에 잠시 체류하다 1940년 뉴욕에 도착했다. 이미 예순 여덟 살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그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반듯하 게 직각으로 구획된 거리와 마천루가 이루는 도시 경관은 그가 꿈꾸던 신조형주의 도시였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이 샘솟는 삶의 기쁨과 자유로운 감각을 느꼈다.
음악과 무용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붙인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는 뉴욕 생활의 즐거움으로 놀랍도록 생동적이고 율동적으로 변모한 그의 그림 세계를 보여 준다. 종전의 검은 색 선 대신에 주조를 이루는 노란 색 선이 빨강, 파랑, 회색과 엇갈려 작은 단위로 나뉘어졌다. 다양한 수직과 수평선이 어울리며 이 그림에 리듬감을 주고 있다.
몬드리안은 이 그림을 통해 그가 몰두해왔던 단일 평면과 결별하고 보다 움직임이 강조된 음악성 있는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 그림과 유사한 양식의 <빅토리 부기 우기>를 제작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