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 지체 모두를 축복하면서 글을 남깁니다.
한동안 부모님 고향 다녀가라고 하셨는데, 못 찾아뵙다가 이번에 자식 낳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처음으로 내려갔습니다.
손수 운전하면서 가기까지 도로공부좀 하면서 몇달을 준비했지요..(게그)
집안에 4대조모 되시는 박연화할머니 묘지이전예배가 있어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바리바리 자식 오면 주시려고 음식 준비해놓고, 마중나오셨습니다. 마을어귀 차소리 듣고 달려나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들뜬 마음으로 월현리에 도착하고 보니 밤이 다 되었습니다. 다행히 차가 밀리지 않아서 토요일 오후 즐겁게 내려갔습니다. 아들 삭이도 잘 협조해 주어 내내 잠을 잤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다녀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내려갔는데, 도로도 한산해서 고향의 봄을 느끼며, 산에 핀 진달래 구경하고, 밭에 핀 고야나무와 복사꽃을 보면서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소 여물 해주시고, 어머니 저녁식사 만찬으로 준비해 놓으셔서 너무 고향의 밤이 따뜻했습니다. 오랜만에 장작불 지핀 구들장에서 한잠 자고 나니 상쾌합니다.
할머니 산소자리로 새로운 도로가 난다고 해서 부득불 옮겨야 합니다.
처음으로 집례해보는 묘지이전예배였습니다. 바쁜데 마을분들 모두 자기 일처럼 오셔서 일을 해주십니다. 묘지 봉분까지 마치고 가족이 모여 함께 찬양을 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인천에서 함께 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나눴습니다. 마을일이라 미리 준비해둔 쇠고기를 대접하려고 마을회관에 상을 차렸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앞치마 두르고 자기 일처럼 함께 합니다.
부지런히 아침부터 묘판을 내고, 논을 갈고, 거름을 내펴고, 감자를 심고, 우리 집안일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풋풋한 시골 인심에 감사했습니다. 어느덧 자라 자식을 둔 사람이 되고 보니 동네 어르신들도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 대접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참 들에 핀 꽃들이 아름다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 사역을 한 지난 십년의 세월동안 주일을 집에서 보내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아들된 사람으로서 직분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어렵사리 전도되어 고향에 있는 작은 교회를 섬기는 부모님도 아들이 못나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안식의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주일저녁 돌아오려고 하다가 하루 더 있다가 오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고향교회 사모님이 손수 운전해서 찾아주셨습니다. 어린자식을 놓고 기도해주시는데, 우리 어머니 사모님 목사님 고생하신다며 바리바리 챙겨드렸습니다. 고향에서 교회를 시작하신지 15년정도 되었습니다. 집사님으로 오셨다가 신학공부하면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늘 고마운 분입니다. 마을어귀에 언제가부터 켜 있는 십자가탑은 그 의미가 색다릅니다. 교회가 많은 대도시의 네온사인보다 어두운 마을에 밝히는 십자가는 더 크게 보입니다.
외양간에 뛰고 송아지, 아침을 알리는 닭울음소리에 놀라 새벽시간을 눈을 떴습니다. 어머니 아침부터 자식 좋아한다며 손칼국수 만드셨습니다. 아버지 겨우내 보관했던 감자 무우를 꺼내 짐을 꾸리십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부모님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사랑도 다 깨닫지 못하고 사는 철부지가 바로 나였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닮은 부모님 사랑을 생각하면 참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위대합니다. 사랑으로 빚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해서 태중에 있다가 부모님 사랑을 평생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너무 위대해 보입니다. 거기에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의미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