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겨레신문 광고란에 <영원한 재야 장기표 선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회장>을 알리는 부고가 실렸습니다. 고문에 이창복, 이우재, 원학스님, 장례위원장에 이부영, 김정남, 김부겸, 집행위원장에 김문수, 문국주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장례위원을 살펴보니 강기갑, 박재동, 서경석, 손학규, 유인테, 유홍준, 윤상현, 윤여준, 이수호, 최열, 함세웅 등의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장기표씨는 전태일 열사의 '대학생친구'를 자처하면서 재야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80년대 후반 모든 재야 운동단체를 망라하여 전민련을 결성할 때도 이부영, 김근태와 더불어 재야 3인방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이후 현실정치에서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든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이부영씨나 김근태씨는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했지만, 장기표씨는 독불장관같은 행태로 끊임없이 소규모 정당을 만들어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한번도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2002년에 민주당 후보로 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역시 당선되지 못했고 낙선 후에 얼마 후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맙니다. 어느 한 정당에 오래 있지 못하고, 모든 권력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했는지 모두까기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극우적 행태를 보이고 전광훈 목사하고도 어울리고 미래통합당으로도 총선에 출마했지만 역시 낙선합니다. 노동운동의 대부라고 할만한 사람이 반노동정당인 <국민의 힘>계통의 정당에서 출마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전광훈 목사와 뜻을 같이하여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입니다.
그러나 장기표씨의 장례식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사회장으로 치르고 장기표씨의 행태를 비판했던 분들까지 장례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은 세상과 불화한 사람까지도 화해시키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 장기표씨의 헌신은 인정하더라도 변절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의 후반 행적은 그를 추모하지 못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