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박형권
중랑천에 꽃 피었다는데
꽃구경이나 갈까
대문 앞이 허전하여 치어다보고 내려다보고
어디가 비어 있나 샅샅이 뒤지고서야
아, 자전거가 보이지 않는다
도둑맞았구나
아내의 장바구니를 실어나르고
딸의 심부름을 실어나르고
내 새벽 둔치 길을 실어나른 식구 같은 자전거가 사라지고 없다
아내도 나오고
주인집에서도 나오고
이층 열 식구가 다 나오고
한골목 사람들 모두 나와서 추리하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떠오르지 않고
내 속에 잠겨 있던 의심만 떠올랐다
이 골목의 새벽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 없이 분리수거 할머니!
옆집 목련꽃이 속 보여주는 것마저 의심하며 고물상으로 달렸다
가다가 멈칫!
ㅡ 아빠, 어디 가세요?
학교 갔다 오는 딸처럼
<우리 슈퍼> 좌판 앞에서 자전거가 나를 부른다
ㅡ 새벽에 담배 사고 세워놓고 가더니 이제 찾으러 오는 거야?
목련꽃 보기 부끄러워 돌아올 수 없었는데
자전거가 나를 살살 달래가며 집 앞까지 끌어다놓았다
내가 나를 훔쳐갔다
나한테 용서받는 것이 제일 어렵다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 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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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자전거 도둑*은 겉은 소소한 해프닝처럼 풀리지만, 그 내면엔 자기 의심, 자기 혐오, 자기 용서까지 삶의 복잡한 감정선이 촘촘히 직조되어 있습니다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일상의 사물을 중심으로 내면의 죄책감과 회복을 시적으로 풀어냅니다.
감정이 폭발하지 않고,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특히 마지막 구절은 치유와 용서의 의미를 깊게 남깁니다.
우리는 자신한테 너무 관대합니다.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변명합니다.
기실 자기한테 '용서 받는 게 제일 어렵'지요.
이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