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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바이블 01 대단한 작가 적그리스도님
옮긴이 : 천리아허상탁
내 컴에 안티바이블이 저장된 것을 발견했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56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내용을 복사하여 1페이지다 저장(나모웹에디터) 시킨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자료 정리차 열리지 않은 안티바이블 자료를 3일간에 걸쳐 76장으로 분리해 내는데 성공했다.
다행히 작가 적그리스도님이 [비상업적 용도에 한해서 인터넷 사이트등에 자유롭게 게재(揭載)하실 수 있다]는
당부에 따라 첨삭없이 그대로 옮기는 중이다.
언제 내 컴에 옮긴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수년 전 쫒겨난 #안티기독교 반기련 사이트에서 옮긴 것이라
짐작되는데 적그리스도님 대단하신 분이란걸 느꼈다.
저런 글을 쓰려면 몇 번이나 읽어야 가능할까.
얼마나 진실한 혼이기에 가능할까.
얼마나 많은 욕을 얻어 먹었을까.
여하튼 대단하신 분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낼 대작 앞에 숙연해졌다.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그렇잖아도 #창세기와 신명기 등을 접하면서 도대체 이 따위가 정신세계를 주름잡고 있다는게 한심스러웠는데
#적그리스도님의 안티바이블을 옮기면서 대충 접한 바 대단한 예지력과 판단력을 겸비하신 분이란걸 느끼며
천리아의 생각과 상통하는 바 있어 최후 종교 천리교의 블로그에 옮긴다.
#최후 종교 천리교와 거대 종교 기독교의 신 가운데 한 분은 거짓이 명백하다.
같은 피조물을 각각 다른 방법으로 창조했다면 하나는 명백한 거짓이다.
6,200여 년 전, #지구에서 우주를 지금 모습대로 창조했다는 기독교 창세기와 9억 9만 9,999년 전,
#진흙바다에서 미꾸라지를 인간 씨앗으로 삼아 환생과 진화를 주재하여 오늘날의 세계로 숙성시켜 완숙을
서두르시는 최후 종교 천리교의 창조 중 하나는 명백한 거짓임을 전제하에 전560페이지 75목록의 글을 심도 깊게
숙독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대체 창조주 없이 기독교가 무너지면 정신세계는 대 혼돈이다.
여기 #절대자로써 월일 창조주가 오야사마의 몸을 빌려 창조지점에 현현하여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밝히셨음은
지고의 가치요 사실임을 부언하는 바이다.
적그리스도님께 묻겠다.
본문 가운데
#여호와하나님이라표기된부분이많은데여호와야훼를하나님으로변경표절한것은십계명1조위반이분명하지 않은가.
다른 부분을 떠나 #하나님이라부르는기독인들은전부야훼이외의신을섬긴죄로지옥행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안티바이블을옮기면서대략살펴본바적그리스도님께존경심이베어난다.
인생을 잘못 살아온 탓인지는 몰라도 존경이란 존칭을 써 본 기억이 없다.
왜곡된 진리를 바로 잡기 위해 노고하신 바는 역사가 기록하리라 믿는다. 천리아도 절대자를 올곧게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다. 허지만 적그리스도님에는 못 미친다는 걸 알고 앞으로 남은 여분의 인생을 참을 위해
바치려 노력할 결심이다.
존경하는 적그리스도님
그간 노고가 매우 컸습니다.
선생께서 노고하신 답은 머잖아 반드시 나타나리라 확신합니다.
움막거지 출신의 천리아가 적그리스도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생애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부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월일로 오신 오야사마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행복하세요 자손대대로~!!
안티기독교 안티바이블 안티예수를 비롯한 카톨릭 개신교 기독교 그리스도교 천주교 종교협회 정부 언론
기자협회 등 셰계 어느 단체이든 최후종교 천리교의 천리아허상탁과의 교리토론을 제안하는 바이다.
장소와 시간은 언제 어디든지 좋으며 목사 과학자 교수 등 누구라도 좋다.
단체가 아니라면 개인일지라도 괜찮겠다.
055 294 0670 tenrio@korea.com
옮긴이 #천리아허상탁
비교종교 창조비교 기독교 天理敎
피조물을 지으신 분을 창조주라 부른다. 창조를 가르치는 종교는 딱 두 개다.
그 하나는 기독교 즉 그리...
tenrio.blog.me
안티바이블
2006年版 적그리스도 作
유의사항
• 안티바이블의 내용은 필자의 허락없이 출판 및 각종 상업적 용도로 사용 하실수 없습니다.
다만, 비상업적 용도에 한해서 인터넷 사이트등에 자유롭게 게재(揭載) 하실수 있습니다.
• 안티바이블의 내용은 필자의 허락없이 임의로 내용추가나 내용삭제등을 할수 없습니다.
필자는 기독교에 대해 이 책에 옮긴 것보다 훨씬 많은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판단 되는것만 골라서 안티바이블에 기록 했습니다.
본인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 할수는 있지만, 나름대로 오랜기간에 걸쳐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자료를 엮었습니다. 자료를 엮을때 기독교인의 반박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무분별한 첨삭이 가해 진다면 안티바이블이 불구가 될수도 있습니다.
목차
서론/ 나는 왜 성경을 우롱하는가? 7
제1장/ 근본주의 교리에 대한 고찰 15
▶ 참을수 없는 #예수천국불신지옥의 가벼움 15
▶ 믿음이 우선인가? 사랑이 우선인가? 19
▶ #기독교는불가지론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20
▶ 죄를 포맷(Format) 하기를 반복하는 기독교인 22
제2장/ 지옥에서 올라온 여호와 29
▶ 여호와 산신령의 어원과 기원 31
▶ 복수와 저주의 신 여호와 35
▶ #샤머니즘의여호와 신앙 46
▶ #여호와는유일신이 아니었다 52
제3장/ 엽기적인 성경 63
▶ 여호와가 내려준 사악한 율법 63
▶ 여성인권 유린하는 성경 70
▶ #성경속에서의근친상간 78
▶ 삼손에게 씌인 여호와 귀신 82
▶ 성기껍질을 전리품으로 챙긴 다윗 86
▶ #마누라를상납한아브라함 92
▶ 모세는 폭군인가? 94
▶ 기독교인이 모르는 두번째 십계명 96
▶ 에로틱 경전 아가서 98
▶ 쓰레기 더미(율법)속에서 발견한 왕거니(십일조) 100
제4장/ 허구의 구약사 107
▶ 청동기 시대에 태어난 최초의 인류 아담 107
▶ 유대민족의 기원 111
▶ 엑소더스는 허구였다 115
▶ #성경의출애굽 경로는 허구이다 118
▶ #모세의만나와메추라기 기적의 허구성 120
▶ 가나안 정복설 123
▶ 같은 사건에 대해서 일치하지 않는 성경 129
▶ 솔로몬 왕국은 허구였다 132
제5장/ 주변국의 문화에 영향 받은 구약 135
▶ #구약의천지창조와바빌론의신화 비교 136
▶ 홍수신화의 원조 140
▶ 비슷한 신화가 오히려 성경 신화의 실존을 증명해 주는가? 142
▶ 모세 탄생 신화의 원조 148
▶ 구약의 율법과 함무라비 법전 151
▶ 지혜문학서에 영향받은 잠언 153
▶ 가나안의 신 케루빔 157
▶ 조로아스터교에서 받은 영향 159
▶ 기타 구약 신화의 이해 166
제6장/ 성경의 비과학 172
▶ 천지창조의 비과학 173
▶ 카인을 협박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179
▶ 노아의 방주의 허구성 181
▶ 성경속에서의 우주관 204
▶ 귀신들림 210
▶ 기타 비과학적인 점들 219
제7장/ 허구속의 예수 222
▶ 혼돈의 유대땅 223
▶ 시대상황과 무관한 복음서 227
▶ 복음서안에서 엇갈리는 예수의 행적 236
▶ 억지로 끼워맞춘 예수신화 242
▶ 요세푸스 증언과 빌라도 보고서 256
▶ 신화를 벗겨낸 예수의 정체? 268
▶ 잃어버린 원시복음? 286
제8장/ 예수신화 292
▶ 유대사회에 뿌리내린 이방사상 296
▶ 조로아스터교에서 예언된 메시아 300
▶ 예수보다 150년 앞선 에세네파의 메시아 305
▶ 초대교회의 강력한 라이벌, 미트라교! 309
▶ 물고기좌의 시대 317
▶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의 기원 322
▶ 태양신의 기호(symbol), 십자가 333
▶ 예수 그리스도 酒님 338
▶ 영지주의를 내포한 신약성경 342
▶ 예수 바라바 355
▶ 마리아 여신! 360
▶ 환상속의 예수 367
제9장/ 삼위일체설의 허구성 379
▶ 삼위일체의 배경 379
▶ 성부와 성자는 동등하지 않다 388
▶ 성령과 다른 위격은 동등하지 않다 393
▶ 기독교계의 옹색한 변명 395
제10장/ 기독교 형성사 402
▶ 디아스포라 403
▶ 초대 교회의 분열 405
▶ 베드로와 바울의 교권 다툼 411
▶ 콘스탄티누스는 미트라의 숭배자였다 417
▶ 종교회의 419
▶ 십자군에 의해 벌어진 동방교회의 비극 427
제11장/ 묵시문학의 정체 431
▶ 묵시문학의 태동 431
▶ 후대에 조작된 구약의 예언 434
▶ 이사야서의 저자는 3명 이상이다 438
▶ 요한계시록에 영향을 준 다니엘서의 숫자 440
▶ 다니엘서에는 예수가 예언되지 않았다 445
▶ 계명성과 뱀 449
▶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의 저자는 다른 사람이다 457
▶ 요한계시록 분석 459
▶ 묵시문학은 아무것도 예언하지 못했다 474
제12장/ 성경의 문서적 고찰 479
▶ 같은 사건을 두고 엇갈리는 오경의 내용 480
▶ 오경을 구성하고 있는 4갈래의 전승 482
▶ 서기관들의 오류 485
▶ 본문비평에 쓰이는 구약의 사본들 487
▶ 구약이 유대교의 경전으로 공인받기 까지 494
▶ 구약은 성경에서 제거 되어야 한다? 498
▶ 신약성경의 등장 505
▶ 본문비평에 쓰이는 신약의 사본 508
▶ 킹제임스 성경 이외에는 사탄이 변개한 성경? 513
맺음말/ 기독교는 성경의 오류를 안고 자폭할 것인가? 517
부록 / 성배는 없다 522
● 성배 미스테리 523
● 성배의 계승자는 없다! 534
● 그리고 또 우리를 혼란 스럽게 하는것들 549
● 영지주의자들이 남긴 코드 557
서론 / 나는 왜 성경을 우롱하는가?
한국의 개신교는 카톨릭의 교황제도를 비난한다.
그러나 필자가 단언하건데 교황은 저 머나먼 땅 이탈리아의 바티칸에만 살아 숨쉬고 있는게
아니다. 바로 대한민국 이 땅에서도 수많은 교황들이 서로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황들도 십자군을 선동하여 끊임없이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을 선동한다.
한국의 교황들도 면죄부를 팔아서 천국장사를 한다.
한국의 교황들도 성모 마리아상과 성화(=기복신앙과 미신행위)로 우민(愚民)들을 현혹한다.
한국의 교황들도 창조과학회를 조직하고 지원하여 갈릴레이의 후계자들을 어떻게 하든 종교
재판소로 끌고오고 싶어한다.
한국의 교황들은 최고급 양복에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여신도와 유부녀를 능욕한다.
그리고 한국의 교황들은 마치 민법 몇조 몇항처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성경구절을 요리조리
끄집어 내어 쉴세없이 외친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목사는 교인들에게 절대 복종, 절대순종을 강요하는데 문제는 복종해야 할 대상이 애매모호하
다는 점이다. 예수도 여호와도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에 충성해야 할 대상이 사실상 목사와
교회밖에 없다. 이러한 충성심을 믿바탕으로 한국의 목사들은 스스로 교황이 되었다.
진보 기독교인들이 물러가라고 소리쳐도 교황은 성경구절로 맞받아 친다! 한가정, 아니 수많
은 가정이 파탄 나도 #교황은성경구절을 끄집어 내며 절대로 물러가지 않는다! 여자가 목사를
하겠다고 하니 이번에도 교황은 성경구절로 맞받아 친다! 교황은 계속해서 성경구절을 요리조
리 끄집어 내어 #십자군전쟁과마녀사냥을 선동하고 다닌다. 교황은 자신의 입맞에 따라 성경
구절을 요리조리 끄집어 내어 수많은 종류의 면죄부를 만들었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자들을 공격하기 위해....목사들은 성경구절을 능수능란하게 끄집어 내며 교인들을 능욕
하고 있다.
성경이란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다.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자고 성경을 찾아보
면 그런 내용이 있으며, 이교도들을 싹쓸이 죽여 버리자고 성경을 찾아보면 그런내용이 있으
며, 귀신들림에 의해 병이 걸린다는 미신(베뢰아 귀신론)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을 찾아보면 그
런 내용이 있다.
성경이 진리라고 성직자들은 귀가 아프게 말한다. 그러나 진리는 이렇게 구호형이 아니어도
진리이다.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더 크게 외치듯 성직자들도 외친다. 오직 성경만이 진리라고
말이다.
수차례의 개정을 통해 수세기에 걸쳐 왜곡과 첨가와 누락과 변형이 가해져 오늘에 이른 성경
이 우주를 창조한 자의 말씀이고 진리인가? 성경을 누가 만들었는가? 성경이 만들어진 역사를
보라. 그리고 성경에 속했다가 버려진 외경들을 찾아 비교해 보라. 가장 오래된 사본들과 오늘
날의 성경을 비교해보라.
성경에 원본은 없다.
사본(寫本)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천 종류를 넘는 사본들은 역시 모사를 거듭한 모사본(模寫本)인데다가 내용
또한 똑같은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쥐어진 성경은 신학자들이 수많은 사본들을 비교하고
검토해서 만든 것이다.
어떤 사본을 토대로 번역을 했느냐에 따라서 성경의 내용이 약간 틀리기도하는데, 일부 과격
한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보는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탄이 변개한 것이라고 주장
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약성경을 보라! 당신은 결코 구원이 아니라 율법으로 저주를 퍼붓는 중동지방의 한
종족의 신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약속의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방인
들에게 추잡하고 저질스러운 저주를 퍼붓는 #고대이스라엘의추잡한잡신일 뿐이다.
또한 성경속의 신화는 철저히 주변국들의 신화를 모방한 것들뿐이다. 천지창조, 노아의 방주,
바벨탑, 아브라함, 모세의 출생, 욥기, 잠언, 등등등 모두다 바빌론의 유수때 #유대인들이수메
르신화와 주변국들의 신화를 모방했을 뿐이다.
성경속에서 바라보는 윤리는 어떠한가? 근친상간과, 여성비하, 장애인비하, 이방인들에 대한
저주등 온갖 추잡한 것들로 얼룩져 있다.
성경속의 사건들은 전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가? 아니다! 바빌론 유수이전에 존재했던
#다윗과솔로몬왕국을 포함해서 그 이전의 사실은 모두 신화요 허구이다. 오히려 역사는 성경
속의 사실이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 역시 그와 너무도 비슷한 행적을 보이는, 또 다른
메시아들이 로마제국시대에 예수보다 먼저 등장했었다.
성경은 과학적인가? 아니다. 성경은 철저히 고대 관념적이다.
지구를 만들고 난 후에, 태양과 달, 별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고대인의 관점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낡은 책일
뿐이다. #갈릴레이를종교재판에서 무릎 꿇게 만든 것도 바로 성경이었다. 그리고도 성경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세뇌당한 #성경의창세기를과학으로증명해보이겠다고창조과학
회까지 조직했다. 성경자체가 비과학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성경에 대해서 신학적
지식이 전무한 광신자들의 추태라고 할수 있겠다. 목사들은 이 사람들에게 신학교에서 배운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기고 지원을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
을 멀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성경의 문자속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분명히 오류가 있다. 여러분이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고 성경의 문자속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성경구절을 끄집어내는 성직자들의 비합리적이고 몰상식한 짓에 언
제까지고 질질 끌려 다닐수 밖에 없는 #가련한영적노예로 살아갈수 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서구인들이 버린 중세기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의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야기시키는 배타성
은 목사들이 솔직하게 신학교에서 배운 진실을 신자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데에 있다. 따라서
자신의 종교가 완벽하고, 성경이 무오하다고 철썩같이 세뇌당한 기독교인들에게 다른종교는
전부 우상숭배이자 미신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법이 무서운지도 모르고, 단군상을 파괴하고, 불상을 때려 부수고, 절에 불을 지르고, 지하철
에서 고성방가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끊임없이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
물리적인 배타행위 뿐만이 아니라 마귀, 사단, 사탄, 이단, 가라지등의 아름다운(?) 용어들을 사용해서 끊임없이
타종교와 사상을 짓밟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여기저
기 칼을 휘둘러 대는 것일까? 기독교는 어쩌다가 이다지도 악착같은 전투자세로 이웃종교를
맞아야만 하게 되었는가?
그런 기독교인들에게 대의명분으로 주어지는 것은 다름아닌 성경이다. 이방신의 우상을 불살
라 버리고, 낫으로 찍어버리고, 제단을 파괴하라고 성경에 나와있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의
배타성은 바로 성경과 기독교의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속에서의 이방인들에 대한 저주는 도를 벗어난다. 여호와는 이방인들의 갓난 아기까지 죽
이고 임산부의 배까지 갈라 씨를 말려 버리라고 명령하며, 이방인 남자들은 칼날로 쳐죽이고,
이방인 여자들은 강간하고, 이방인들에게 평화를 약속하고 쳐들어가서 노예로 삼으라는 구절
까지 나온다.
구약속의 여호와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다. 여호와의 이
름으로 비기독교인들을 잔혹하게 죽인다 하더라도 성경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단군에 대해서 그의 역사적 실체를 부정하는 교수들 역시 기독교인들이다. 그러나, 이미 서구
에서는 예수 자체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학설이 힘을 얻고 있는 마당이다. 구약의 역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단군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정작 서구에서는 예수가 신화적 허구의 인물이라는
설이 힘을 얻어간다는 것은 어찌 모르는가?
성경을 맹신하고 오류라고는 전혀 없는 신의 영감을 받아 씌여진 책이라고 철썩같이 믿도록
쇄뇌 당한 한국의 개신교도들은 성경속의 배타적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광신도화 되어 버렸
다. 즉, 성경이 개신교인들의 배타적 교리를 형성하고 있는 근원적인 뿌리인 셈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이성경을단순한종교경전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류라고는 전혀 없는 무오함의 책
이라는 착각속에 빠져있는한 그들의 배타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의심하는 정신, 그것은 인간으로써,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써 당연히 거쳐가야 할 과정이다.
그 과정을 무시하고 억제시킨 결과는 우매한 광신자를 만들뿐이며, 민주주의의 다원성도 인정
하지 않는 꽉막힌 배타적 인간만을 양산할 뿐이다. 더우기 과학마져도 부정하면서 인간이 걸
어가야할 발전을 퇴보시킨다.
의문을 갖는 것은 본능적인 인간의 본성이지만 기독교에서는 그 본성을 억압한다. 사단이니
마귀니 시험에 든다느니 죄악시 한다. 어째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지적 호기심을 원천
봉쇄하는 것인가? 왜 기독교의 신은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본적이 있
는가?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무엇 때문에 시선을 돌려 넓은 세상을 보려하지 않고 그 좁은
성경과 인색한 여호와라는 울타리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것인가?
오히려 어떤 종교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물음을 찾으라고도 한다. 기독교의 신은 무지몽매한
인간들만 좋아하는것은 아닌가? 기독교의 출발부터 오류에서 비롯된 때문은 아닌가? 기독교
는 결코 보이고 싶지 많은 비밀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기독교 내에서 믿음과 의심
은 정녕 병립할 수 없는 것인가?
특히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무조건적인 믿음의 강요와, 믿지 않는 자에 대한 무시와 비난, 의
심과 회의를 원천 봉쇄함으로서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의 폐해는
필연적으로 무지한 기독교와, 허약한 신앙과, 배타적 신앙을 낳게 된다.
회유와 협박, 불안과 공포, 물질적 축복의 갈구 등을 통해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들은(거의 대
다수이지만), 진리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자신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기 쉽다.
불안한 사람은 평화로우면 그만이고, 몸이 아픈 사람은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 그만이고, 빈궁
한 자신의 신에게 부를 가져다 달라고 기도를 드리며 위안을 얻으면서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
태로 거기에서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안주하고 만족하는 순간, 치열한 과정을 통해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의심이 해소된 것이 아
니라, 의심 자체가 불필요한 상태에 머물게 되어버린다. 이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의심하지 않는 신앙, 의심 없는 믿음! 언뜻 강고한 신앙인의 자세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
것은 믿음이 아니다. 복제품일 따름이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 보아도 도대체 의심 없
이 믿음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맹신이 아니지 않는가!
한참 지적인 활동이 왕성할 청소년들에게 반복적인 찬양을 시키면서, 사고하고 의심할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교회교육이다. 사회를 개혁하고 이웃을 섬기는 복잡하고 불편
한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회의해야 할 성인들에게, 단순하기 짝이
없는 교회 포스터 쪼가리 따위로 "그대는 구원받았다!"며 마취시키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기본
패턴인것이다.
#신학대학의많은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 교회의 많은 신자들도 조금만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
라면 처음 기독교를 접하고 당연히 회의를 갖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
기독교는 지난 2천년 동안 회의하는 지성과 자의식을 잠재웠다.
그래서 의구심, 회의, 지적 호기심을 죄악시 하기위해 "성령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이
믿는 신의전지 전능이 부족해 결국 #마귀나사탄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거의 쇄뇌의 기술이라고 밖에는
볼수없다.
반복적인 행위와 반복적인 억압, 동류의식 그리고 죄의식의 주입해서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신의 뜻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 버려라"라는 주장을
흔히 한다. 정녕 믿음이 그런것인가?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을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것
인가? 그것이 확신인가? 그것이 신앙인가? 믿음으로 얻는 진리, 그것이 무슨 구구단인가?
그렇다면, 무당이 섬기는 신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버리라는 것과 무엇
이 다른가? 과연 치열하고 처절한 의심의 터널에서 헤메보지 않고서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진
리 따위가 있겠는가? 있다 한들, 혹시 광신자의 싸구려 진리가 아니겠는가?
종교와 학문을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실 분도 계시겠지만, 철저하게 믿음의 복종만 강요
하는 한국 기독교는 비난받아야만 한다. 기독교에 뭐 대단한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사기만 치
지 말라는 거다.
목사들 자신 역시 신학교에서 평신도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딴판인 신학을 배웠다. 기독교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신학따위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
교에서 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기독교라는 종교
를 보기 위함이다. 만약 목사의 조건으로 믿음이 우선이라면 광신자를 목사로 세우는 것이 낫
다. 그러나, 그런 광신자의 관점으로는 신자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낼수가 없다.
그런데,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제대로 된 신학을 배우고서는, 주일날 강단에 서서는 신도들에
게 엉뚱한 설교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목사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신학을 배우고
서도 신자들에게 맹신과 광신을 요구하고 있다.
제발 거짓을 가르키지 말자. 믿기지 않아도 믿으면 알 수 있다고 사기치면서 사람 바보 만들지
말라. 그리고 의심하는 자에게 질문을 허락하라! 손 붙잡고 시험에 들었다는 둥, 기도하자는
둥, 의심을 가지게 된 사람을 자신과 똑같은 바보로 끌어내리지 마라.
기독교인 되기 쉽다고 한다. 일단 믿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무조건 믿는 자세, 즉 맹신하는 믿음은 어린이들의 태도에 불과 할뿐이다. 하기야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최고로 평가한다. 이러니 말이 통하는가?
어쨌든, 그 믿음, 혹은 믿는다는 착각, 혹은 진실에 대한 외면 속에서 스스로 도취 되어가고,
몰상식이 집단 합리화 되며, 끊임없이 동어반복을 되풀이 한다.
신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든 적이 없다. 기독교인들이 의문점에 대해 몸과 영혼을 모두 내던져
부딪히면서 치열하게 삶의 난제들에 대한 숨은 해답을 찾아가는, 그런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거듭나길 기대한다. 필자는 그러한 점에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재조명해 보도록 자료를
올린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조금의 의구심이라도 생긴다면 필자는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그러나 성경의 모순을 이야기 하고자 하면 읽기전부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도에서 내팽개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관념은 그 벽이 두터워
깨뜨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관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꽁꽁 얽어매어 버리기
때문에 꼼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관념을 깨뜨리고 나면 우물속에서만 살던 개구리가 지상으로 뛰어 나오듯이 지금까지 살아온 틈
바구니에서 빠져나와새로운 세상을 만끽할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지혜로운 세계이며 무지에서 해방되어
인간 본연의 권위를 되찾는 세계이다. 관념을 헐고 타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누리도록 하라.
만약 지금까지 지녀온 관념을 소중하게 여기어 관념을 깨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
람이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독파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 관념을 사랑할수 있도록 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파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내 팽개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필
시 패배자 이거나 낙오자일 뿐이지 결코 승리자라고는 말할수 없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이성
앞에 무릎을 꿇은 맹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흔히 감성(느낌 또는 영감)으로 읽어야 한다고 기독교인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리
는 만인이 공유할수 있어야만 진리일수 있는 것이다. 성경이 진리이기 위해서는 성경은 더욱
더 감성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을 감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
은 이미 진리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는 철학과 사색을 통해 2천년간이나 기반을 닦은 종교라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기독교 치하에서 정상적인 비판이 용인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 부터
인가? 긴 탄압의 터널을 지난 기독교 역사는 서구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만 판을 칠뿐이다.
물론, 성경에는 고린도 전서13장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같이 훌륭한 구절도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의 한쪽편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구절도 함께 공존한다. 성경에는 훌륭한
말씀과 함께, 한쪽 구석에는 배타성과 인종차별, 성차별등과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함께 공존
한다. 목사들은 그중에서 그럴듯한 구절들만을 끄집어내서 설교를 할뿐이다. 성경에는 분명
문제점이 있고 그 문제점이 기독교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배타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성경을 파헤치지 않는한 그들의 광신행위는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광신자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성경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려주지 않으면 않된다.
교회에서는 아직까지도 모세오경이 모세에 의해 씌여졌다고 가르쳐주는 마당이니, 우리가 그들의 눈
을 뜨게 해주어야만 한다.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함께 손잡고 공존
할수 있는 여유, 오류를 개선할 용기, 진실을 구별할 줄 아는 지식과, 진실 아님을 고발할 배짱
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부터 언급할 사실들은 기독교인들을 시험하는 악마의 속삭임도 아니다. 객관적인 시각에
서 성경을 보라. 객관적인 시각에서 여러분의 신을 보라. 그리고 기독교와 성경이 형성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냉담히 보라. 여러분의 마음속에 의심이 생겼다면, 그것은 한명의 진정한 인간
으로 가기위한 위대한 첫걸음이다.
성직자들은 성경으로 교인들을 우롱한다. 자신의 노예로 삼기위해.....
그러나 이제부터 필자는 성경을 우롱할것이다. 여러분들을 성경의 문자속에서 해방시키기 위
해서....여러분은 성경의 문자에서 자유로워져라!
2001년 4월25일. 첫번째판 배포
2006년 4월27일. 다섯번째 개정증보판 배포[출처] 안티바이블 그 -1, 대단한 작가 적그리스도님|작성자
천리아허상탁
==<빙혼>========================
처음에는 오타나 띄어쓰기를 수정하였으나
옮긴이의 말대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두었다.
읽는 분들이 알아서 판단하기를 바란다.
지난 주 빙혼은 모 교회에 새로운 신도로서 등록을 하였다.
원해서 등록을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쓰라고 해서 작성하여 주었더니 새 신도로 등록이 되었다.
빙혼 앞뒤로 수많은 교인들에 둘러쌓여 있는 상태에서 이런 것을 쓸 수 없다고 하기에는
빙혼을 초청한 지인의 얼굴에 차마 못할 짓이기에 그냥 빙혼이 등록을 하고 만 것이다.
빙혼은 쉰이 넘어서자 이미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산다.
인간에게 신의 굴레를 씌워 놓고 가축처럼 이끌어 가는 사악한 성직자들도 싫고
그런 성직자 밑에서 직분을 얻어 또 다른 사람을 이끌어 미치게 하는 만드는 종교가 싫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빙혼은 고대 고조선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이다.
유대인에게서도 버림받은 종교를, 인도에서도 버림받은 종교를 믿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한반도에도 고유한 전통들도 무진장 많은데 굳이 외국 종교를 따르고 싶지도 않다.
빙혼은 그저 조용하게 살아가고 싶은 뿐이다.
루소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벗하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원시인이 되기는 싫다.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빙혼서생
첫댓글 오래전에 모아 놓았던 글인데 성경을 읽는 것보다 차라리 이 글을 읽는 것이 몇 천만배 재미가 있고 기독으 알 수가 있다.
지금은 빙혼이 안티 기독을 넘어서 무관심 기독이 되었기에 덤덤한 마음으로 모아 놓은 글을 올릴 예정이다.
75(?)개 정도의 글이 있는데 적그리스도님의 해박한 성경 지식에 놀라고 또 놀라울 따름이다.
기독인들도 이런 글을 읽고 올바른 기독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협된 기독인들에게 좋은 종교 지침서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