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부엉이
헤다야트의 1937년 작품이다.
'나는 일생 동안 내가 살아온 이 세상에 단 한 순간도 익숙해진 적이 없었다. 이 세상은 --- 정육업자의 가게 앞을 떠나지 않고 양고기 한 점을 던져줄 때까지 줄기차게 꼬리를 흔들어 대는 그 굶주린 개처럼, 권력자들에게 달라붙어 굽실대며 충성하는 무리에게나 적당한 곳이다. 다음 생에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두려울 지경이다. --- 나는 이 구역질 나는 세상과 인연이 없었다. --- 이런 세상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미련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다니, 신은 허풍쟁이, 사기꾼이란 말인가?'
헤다야트는 1903년 이란의 존경받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서 프랑스계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1925년 벨기에에서 공학을 공부했으나 예술에만 관심을 쏟음. 릴케의 '죽음의 찬미'에 경도돼 프랑스 마른 강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구조됐다. 1930년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이란으로 귀국했으며,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일하며 단편집 [생매장]을 출간한다.
눈먼부엉이는 고국 이란에 실망해 인도로 여행을 하던 중에 완성한 초현실주의 소설이다. 1940년 이란으로 돌아 왔으나 암울해지는 고국의 현실은 헤다야트로 하여금 견딜수 없는 고통이었다. 헤다야트는 알코올과 약물에 빠져지내게 되고 의사친구의 도움으로 1950년 파리로 옮기게 된다. 1951년 가스를 틀어놓고 유서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부엉이는 통상 시각이 좋지 않고 청각이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시각이 좋지 않은 부엉이가 눈까지 멀었다면 그 부엉이는 어떻겠는가? 매우 상황이 곤란하거나 안좋은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부엉이, 작가는 스스로를 그렇게 설정하고 있을 지 모른다. 세상은 헤다야트에게 고통이고 암흑이고 죽음이다.
예술가, 작가가 가진 상상과 꿈을 제약하는 제도와 권력은 그 자체로 악귀다. 이란에서 헤다야트의 작가적 예술성을 높여내기에는 너무도 큰 장막이 드리우고 있다. 지금도 금서라고 하니, 그 이유가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국가권력이 가지는 해악이 얼마나 굴절되어서 세상을 유린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침에 눈이 떠질 때면 아, 아직도 내가 살아 있구나. 정말 지겨운데, 왜 눈이 또 떠질까? 달라질 것 없는 세상이 지겹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은 절망이다. 그래도 착함은 있어서 자살이나 이런 건 생각하지 못한다. 다만, 아침에 눈 뜨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괴롭다. 왜 이렇게 오래살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아찔하게 흔든다. 무거운 몸을 질질 끌어서 씻고나면 그래도 어쩌랴 하는 한심에 빠진다. 기왕에 살아지는 목숨이니 재미나게 살아야지 하고 위안을 던진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간다. 무거운 세상과 몸뚱이를 제법 그럴싸하게 부비부비 흔들어 댄다. 어중간하고 어정쩡한 모습이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진 모양은 적당한 위세를 세우는걸 잊지 않는다. 아, 시발 또 눈을 떴구나! 하면서......
아, 어떻게 하면 나도 헤다야트처럼 이런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까?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면 아스라해진다. 나는 창녀이고, 곱사등이 노인이고, 정육업자이고 죽어가는 것만큼은 분명한 존재이다. 그 존재 속에 사랑의 갈구는 영원성이면서 토막낸 시체를 묻어내는 절망과 한계이기도 하다. '금파리 두 마리가 내 주변을 윙윙대며 날아다녔고, 하얀 구더기들이 내 몸에 우글거리며 달라붙어 있었다.' 욕망의 탑을 쌓아대는 세상의 인두껍에게 저주와 자유가 있기를......
사다크 헤다야트
- 1903년 이란 출생, 1951년 자살함.
- 단편집 생매장, 세 방울의 피, 떠돌이 개 등. 희곡 사산가의 어린 딸. 장편 하지 아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