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석화(石花)돌에 핀 꽃
굴은 부르는 이름이 많다. 굴을 굴조개, 석굴, 석화 등으로 부르니, 사람이나 생물에 별명이 많다는 것은 다 유명한 탓이리라. 굴의여러 이름 중에서 무척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석화’일 듯. 석화란 돌 석(石)자에 꽃 화(花)자라 직역하면 ‘돌꽃’이다. 바닷가 바윗돌에 무슨 놈의 꽃이 핀단 말인가.
석화(石花), 바윗돌에 꽃이 핀다고?
굴 따는 아낙네. 빠른 손길로 바위에 붙은 굴을 까서 속살만 담는다. 그렇게 제 짝을 잃은 굴 껍데기가 하얗게 바위에 붙어있다.
굴은 껍데기가 둘인 연체동물의 이매패(二枚貝, bivalvia)다. ‘이매’는 두 장, ‘패’는 조개, 즉 껍데기(valve)가 두 장(bi)인 조개란 뜻이며, 그것들의 발(足)이 도끼를 닮았다 하여 부족류(斧足類)라 부르기도 한다. 어쨌거나 두 장의 조갑지 중 하나는 암석에 딱 달라붙으니 그것은 왼쪽껍데기이고, 여닫이 하는 위의 것이 우각(右殼)이다. 허 참, 조개껍데기도 왼쪽 오른쪽이 있다? 조간대에 사는 굴은 심한 온도 차와 건조함을 이겨내기 위해 썰물에는 껍데기를 꽉 닫는다. 굴 철에 바닷가에 가면 바위에 붙은 굴을 따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굴 따는 아낙들은 심심풀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그 잰 손놀림에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다. 보통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리 못한다. 끝이 고부랑한 쇠갈고리(조새)로 두 껍데기를 맞닿게 이어주는 인대(靭帶)부위를 탁 친 다음 위쪽 껍데기를 휙 들어내고 안의 뽀얀 살을 쿡 찍어 그릇에 담는다. 연거푸 숱하게 반복해도 일사천리로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해낸다. 바싹 통달했다. 말 그대로 달인(達人)이다! 이렇게 달인의 손길에 그만 제 짝을 잃고 바위에 홀로 달랑 남은 납작한 굴 껍데기, 그 색이 무척 새하얗다. 멀리서 보면 뽀얀 껍데기 자국들이 거무스레한 너럭바위에 두루 다닥다닥 널려 있으니 그것이 ‘돌꽃’, ‘석화’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렇게 돌이나 너럭바위에 붙어사는 자연산 굴을 보통 ‘어리굴’이라 하고 그것으로 젓을 담으니 그게 필자도 좋아하는 어리굴젓이다. 밥 도둑 놈, 말만 들어도 군침이 한 입 돈다! 여기서 ‘어리’란 말은 ‘어리다’ ‘작다’는 뜻으로 ‘어리연꽃’, ‘어리여치’, ‘어리박각시’ 등이 있을뿐더러 ‘쇠’(기러기), ‘왜’(우렁이), ‘갈’(대) 등도 작다는 의미다. 작은 고추가 맵다!?
바다를 깨끗하게 정화하는 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석화에는 주로 먹는 ‘참굴(Crassostrea gigas)’을 위시하여 비슷한 것이 좋이 3속(屬), 10종(種)에 달한다. 사는 곳은 해안가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조간대(潮間帶)에서부터 바다 밑 20m 근방에까지 꽤 다양하다. 굴의 겉껍질은 다른 조개들처럼 매끈하지 못하고 예리하고 꺼칠꺼칠한 비늘 모양의 결이 서 있으며, 그러면서도 몇 년생인가를 알려주는 성장맥(成長脈)도 나 있다. 굴의 천적으로는 게·불가사리·갯우렁이·피뿔고둥·바닷새 등과 그리고 사람이다. 헌데 사람은 고맙게도 여러 방법으로 그들을 키워주니 굴 씨가 마를 위험이 없다. 우리가 키우는 곡식, 과일들도 그런 점에 후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굴을 포함하는 조개(이매패)의 아가미는 숨쉬기와 먹이 얻기라는 두 가지 몫을 담당한다. 굴의 아가미는 다른 이매패들이 다 그렇듯이 가스교환이라는 호흡(呼吸)에, 플랑크톤이나 조류(藻類), 유기물을 걸러 먹는 여과섭식(濾過攝食, filter feeding)을 한다. 한 마리의 굴이 1시간에 무려 5ℓ의 바닷물을 걸러내어 바다의 부영양화(富營養化)를 예방한다고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는 격이다. 연체동물은 모두다 치설(齒舌)로 먹이섭취를 하는데, 그 중에서 이들 부족류만 그것이 없고 대신 아가미로 이렇게 먹이를 얻는다.
바다의 인삼, 강장 식품 굴
탐스러운 굴. 맛도 좋지만 좋은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다.
서양 사람들은 굴을 ‘바다의 우유’라 하며 한때는 굴을 강장제로 여겼다. 실은 생굴 속살의 희뿌연 우유색깔이 감각적이라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만드는 데 쓰이는 특별한 아미노산과 아연(zinc)이 넘친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바다의 인삼’인 셈이다! 굴에는 보통음식에 적게 들어 있는 무기염류성분인 아연, 셀레늄(selenium)·철분(iron)·칼슘(calcium) 말고도 비타민 A와 비타민 D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생으로 먹는 것 말고도 굴 소스(oyster sauce), 굴 무침, 굴 밥, 굴 부침개, 굴 국, 굴 국밥, 굴 찜, 굴 깍두기, 굴 김치, 굴 장아찌, 굴 전 등으로 요리해 먹는다. 덧붙여서, 굴은 껍데기를 꽉 다문 것이 싱싱한 것이다. 그런데 굴을 언제나 날로 먹을 수 없으니, 영어나 불어로 달력이름(예로, January)에 ‘r'자가 든 달에 먹으면 안전하다고 여겨왔으나 철칙으로 여기지 말 것이다. 곧, ‘r'자가 없는 5~8월(May, June, July, and August)에는 굴이 독성을 가지는 산란기일뿐더러 바닷물에 여러 종류의 비브리오균(Vibrio spp.)과 살모넬라(Salmonella enterica), 대장균(Escherichia coli)들이 득실거려, 생 걸 먹으면 큰 탈 난다.
요새 와서는 굴도 키워 먹는다. 굴 양식(養殖)은, 죽은 굴 껍데기를 올망졸망 줄에 꿰매어 물밑에다 뒤룽뒤룽 드리워놓아 키우는 남해안의 ‘수하식(垂下式)’과 널따란 서해안 갯벌에다 넓적한 돌을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놓는 ‘투석식(投石式)’, 또 근래 프랑스에서 배워온 그물보자기에 새끼 굴(종패, 種貝)을 넣고 널평상(平床) 같은 데 올려놓아 키우는(씨알이 매우 굵다고 함) ‘수평망식(水平網式)’이 있다. 늘 물속에 드리워 기르는 드림식(수하식) 보다는 조간대의 개펄에서 나는 자연 굴이나 던짐이(투석식), 망에 넣어 키운 것이 더 맛 좋다고 하니, 여름엔 찌는 무더위와 작열하는 땡볕에 자주 노출되고 겨울엔 땡땡 칼 추위에 찬바람을 맞아 그렇다. 극한 상황을 겪는 생물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몸에 여러 영양분을 그득 쌓아놓으니 육질(肉質)이 더없이 좋다.수컷이 되었다 암컷이 되었다, 성전환하는 굴
진주조개와 굴은 가까운 친척으로, 굴에도 진주가 생긴다.
굴은 상품화되려면 2~3년 걸리지만, 1년이면 거의 성숙한다. 참굴 등 Crassostrea속(屬)의 것들은 하나같이 웅성선숙(雄性先熟)으로 첫해는 모두 수놈으로 정액을 분비하다가, 2~3년이면 예외 없이 죄다 암놈으로 성전환(性轉換)하여 난자를 분비한다. 성비가 뒤죽박죽 바뀐다는 말인데, 굴과 달리 암컷이 수컷보다 먼저 자라는 자성선숙(雌性先熟)은 산호초의 물고기 등에서 더러 보인다. 그리고 굴은 보통 5~6월경에 산란하고 담륜자(擔輪子,trochop hora), 피면자(被面子,veliger)의 유생시기를 거친 다음 어린 종패(spat)가 되어서 바위나 돌, 다른 굴 껍데기에 붙는다. 굴의 암수를 겉 보고는 구별할 수 없으니, 굴을 잡아서 생식소부위를 메스(mes)로 잘라 체액을 슬라이드 글라스에 문질러 보아 우유같이 멀겋게 퍼지는 것은 정자(sperm)고, 눈으로 겨우 느껴지는 작은 알갱이가 드러나는 것이 난자(ovum)다.
굴 속에서 진주가?
어쩌다가 기생충이나 이물(異物)이 굴이나 진주조개 무리에 빨려 들어가 패각과 외투막(外套膜, 껍데기에 붙어서 조갯살을 싸는 막) 사이에 끼어들면 외투막에서 진주 성분을 분비하여 그것을 에워싸니, 여러 해 동안 진주 물질이 쌓이고 쌓여서 자연산 진주(natural pearl)가 된다. 이것을 모방하여, 껍데기가 두꺼운 민물조개 껍데기를 세로 가로 잘라, 둥글게 갈아 만든 작은 핵(核)을 일부러 진주조개(pearly shell)의 껍데기와 외투막 사이에 삽입하여 진주를 만드니 이것이 인공진주(artificial pearl)다. 제아무리 진주가 귀하다 해 봤자 고작 탄산칼슘(CaCO3) 덩어리인 것을. 그렇다. 사람들이 진정 값진 것을 값진 줄 모른다. 공기·물·사랑 말이다.
출처:(생물산책, 권오길)
2024-01-26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