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이란 얼마 전에 가까이 했던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또 얼마 후에는 내가 다닌 고향 황해도 신천의 “후따바 쇼각꼬”(우리 말로
“二葉 小學校”)의 동창생으로부터 “야 형보야 너 소식 들었니? 거 왜 맨날 코피가 터지면서 싸움만 하던 쪼꼬만 놈 우리 반에 있었지? 갸래
죽었데” 하는 말을 들으므로 내 머리 속에서 또 하나의 기억을 지워버리며 마침내엔 외톨이가 되어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늙음인가 싶고,
이렇게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성당 가는 길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낙엽들을 보듯 쓸쓸한 마음이 된다.
나는
둔촌동 본당으로 이사온 지 18년 됐는데, 큰 아들이 주공 4단지에 살기에 늙었으니 큰 아들 곁에 가야겠다고 이사 온건데, 지금 생각하면 이게
솔직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누구는 자식과의 거리가 그래서 끓는 음식을 담은 냄비가 식지 않을 만치 가까운 거리에는
살지 말라고 한 말을 떠올릴 때도 있는데, 여하튼 먼저 본당에 살 때 같은 중랑구 중화동아파트에 사는 한 부부가 영세를 하면서 우리 부부가
대부모를 섰는데 이들 대자 대녀들과 참 형제처럼 다정하게 몇 년을 지내다가 이리로 이사를 온 것이다. 물론 이사 온 후에도 우리의 사이는 자주
연락을 하고 가끔 만남도 갖고 지내오므로 우리 부부는 정말 좋은 대자대녀를 두었다고 행복해 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전에 나는 중랑경찰서 옆에서 보신탕집을 하는 이를 전교해서 영세를 시킨 일이 있는데, 그때 만해도 보신탕을 좋아해서 가끔
그 집에 가다보니 친해져서 교회에 인도를 하게 됐는데, 물론 나는 보신탕을 지금은 잘 안 먹는다. 아니 못 먹는다는 것이 옳겠다. 생각하면
늙는다는 것은 몸이 조금씩 망가지는 것으로 늙어가면서 팔 다리에 힘이 빠져 어디 가는 것도 귀찮고, 허리 무릎 어깨가 아프고, 눈은
침침해져서 성당에서 뒤에 앉으면 본당신부님 얼굴이 도깨비처럼 보이기도 하고, 귀는 난청이 와서 본당신부님의 주일강론도 잘 못 알아듣게 되고,
이도 시원치 못하니 씹는 것이 귀찮아 음식도 맛이 없어지는 것이 늙음인 것을.. 아이고 내가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닌데, 아니고 말고,
사실은 내가 인도한 이분이 영세할 때 나보고 대부 서달라는 것을 사목위원도 하고 레지오 단장도 하는 한 교우가 자기를 대부 서게 해달라고 해서
그를 대부시키고 참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삼년인가 지나서 그 집엘 가서 음식을 먹고 나오는데 나를 쫓아 나오더니 장사를 그만두고 며칠 후
이사를 간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유인즉 대부가 급하다고 해서 적지 않은 돈을 빌려주었는데 일 년이 넘어도 안 갚아 가개를 정리하고 이사
간다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대부 서게 한 나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아 이십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성당에는 나가는지 마음이 아프고 대부대자 관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고 누구나 대부대자, 대모대녀 간에는 정말이지
올바르고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보게 되며 절대로 우리 부부와 중화동 대자대녀 간은 지금의 좋은 관계를 끝까지 오래오래 잘 이어가게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도 하였다.
그런데 꼭
6년 전에 중화동 대자로부터 아내의 대녀 에밀리아가 갑 상선 암 수술을 받는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다시 한 달 후에 병문안을 갔더니 대자는
없고, 대녀로부터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을 듣게 되는데 “대부님 난 괜찮아요 나보다 대자 아타나시오가 큰 일 났어요 아타나시오가 페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수술도 못한데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입을 꽉 다물고 눈을 꼭 감고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아니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대자가 암 말기이니 얼마 못살고 죽는다는 거 아냐,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내겐 많은 대자가 있다.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에서 얻은 대자들과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동해시 묵호성당에서 얻은 대자들은 60년 50년 된 대자들이라 내겐 가족이나
마찬가지이고 그 후 서울에 올라와 몇 군데 본당에서 얻은 대자도 많지만 관계가 그냥 그렇구 그렇지만, 아타나시오 대자는 정말 날 형처럼 잘
따르고 신앙생활도 정말 잘 하는 좋은 대자였는데 그래서 나도 그를 무척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얼마안가 내 기억에서 그도 지워질 것을 생각하니
아무리 죽음은 뜻밖에 찾아온다고 하며, 예수님은 죽음이 누구에게나 도둑처럼 예고없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하셨지만, 이렇게 늙음과 죽음에서
아무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생이 무상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둔촌동본당으로 이사와 얼마 안 되어, 꼭 13년 전에 어느 날 밤중에 갑자기 아내를 덮친 뇌경색으로 언어장애가 오고 거동이 불편해진 아내를
지금까지 돌보는 가운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죽음은 내게 여전히 풀수없는 신비이며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로마군인들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고 십자가에 양손과 두 발에 대못으로 못밖혀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받고 죽으셨지만 , 부처님은 제자들과
새들과 짐승들에 둘러싸여 아주 조용히 눈을 감고 인생을 마감했다고 하는데 , 치매라도 걸려서 죽으면 모를까 그 대신 자식들에겐 큰 고통을
주어야 해서 이런 죽음도 원하는 바 아니지만, 과연 부처님과 같은 죽음이 내게도 올지는 글쎄(?)이다. 그래서 나는 꼴사납게도 악을 쓰다,
버둥거리다, 죽으면 교우들 보기에 민망스러워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걱정될 때가 많다.
나는
사랑하는 대자 아타나시오의 말기 암 선고에, 그가 극심한 고통속에 오래 앓다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사실 나는 벌써 삼십 여 년도 전에 중화동의 김마리아 할머니가 매일 나와 같이 새벽미사를 하는 아주 착한 분이었는데, 뜻밖에 폐암에 걸리고
뇌에 까지 암이 전이가 되어 너무나 큰 고통 속에 하느님을 원망하며 집의 십자고상과 성모상을 모두 부셔버리고 기도서도 불태워 버리고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보고 신자들은 마귀가 들렸다고 하는 이도 있었는데, 나는 오히려 저 할머니의 죽음에 순교의 거룩한 모습을 보았고,
하느님께서는 할머니의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해주시고 천국으로 데려가셨으리라 확신했고, 과연 입관할 때 할머니의 모습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너무나 평화스럽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난폭했던 모습은 다 어디 가고 너무나 고왔던 것을 기억한다. 난 지난 여름 무더위 탓인지 아내가
당장 죽을 것처럼 고통을 받아서 아산병원 응급실을 몇 번 찾았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개처럼 끌려다니며 불필요한 검사까지 받게하여 지치게 만들어,
그렇지 않아도 병자는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조금만 아파도 보통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워 한는데, 내 아내의 경우를 보니까 그렇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검사를 거부하고 데리고 나온 일이 있는데, 말기 폐암 환자로서 내 대자가 죽음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받게될 고통을 생각하니까 대자가
너무나 가여웠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은 대자의 문제지만 죽을 때가 다 된 나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의 아내의 문제이기도 하여 무서웠다.
나의 대자는
말기 암 판정 일 년 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미국의
여의사로서 “죽음의 순간“(<인간의 죽음>으로 번역됨)이란 책으로 유명한 ”엘리자벳 퀴불러-로스“는 체구가 작은 할머니로서 죽음을
연구하는 학자인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말기 암 환자는 부정, 분노. 타협,우울,체념이라고 하는 5단계를 걸쳐 죽는다고 했는데 요약하면 첫째,
”분노“를 가지므로 왜 나만 이런 병을 얻어야 하냐는 생각으로 원망하고 분노하다가 , 다음 단계에서 ”타협“으로 하느님 내가 내 재산을 전부라도
바치겠으니 살려 주세요~ 등 하느님께 협상의 기도를 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체념“(순응)으로 죽음을 받아드리게 된다고 했는데, 결국 사람은
어떤 이는 부처님처럼 꼴깍하고 쉽게 죽고, 예수님처럼 어떤 이는 좀 고통으로 힘들게 죽는 차이는 있지만, 여하튼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체념이건 순응으로든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가족의 행복을 바라면서“ 기꺼이 하느님께 자기를 온전히 마끼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품으로
들어간다고 믿고 희망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믿고 희망하며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대자의 죽음을 일 년 간 이틀에 한 번씩 꼭 방문하여 선종을 도왔다.
마지막 가는 날, 아침에 대녀로부터 “대부님 아타나시오가 좀
이상해요”하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더니 숨소리가 거칠어 손을 잡아 주니, 열도 세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대자님의 모든 고통도 이젠 끝났고 편히
쉬게 되었기 때문인지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선종이었다.
나는 다시
지난 11월4일에 아내의 대녀 에밀리아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갔더니, 이미 곡기를 끊었고 겨우겨우 목숨만 살아있었다. 아내 때문에
거의 일 년을 못 와 봤더니 역시 암이 전신에 퍼졌단다. 나는 에밀리아 대녀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사랑하는 내 아내의 대녀님. 천국은 하느님이
계시고 성모님도 계시고 천사들과 성인 성녀들도 계시는 천상 낙원이죠 , 그리고 사랑하는 아타나시오도 있으니 고통 받지 말고 빨리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 하세요, 그러면 대부 대모도 곧 따라갈게요” 하고 돌아왔는데 그 역시 11월11일에 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장례미사까지만 보고 산에는 못 갔다.
“요셉
성인이시여, 이 세상 살다가 육신 떠날 때 예수 마리아 요셉성인의 영접을 받는 영혼되게 해 주시고, 5일간의 준비기간 주시고 받을 성사 다
받고 ,시체의 추리함 나타내지 않고 청명한 날씨 주시어서 여러 사람 불편주지 않게 해주시고, 시간 맞춰주시어서 장례미사 받게 해 주소서.
아~멘.
끝으로 이 기도를 주신 전희태 암브로시오 형제님~ 감사합니다. 연령성월을 보내면서...
신성아파트 김형보 로렌조.
첫댓글 늘 주님안에서 주님과 함께하시는 로렌조 형제님의 신앙생활 안에서 인생의 영욕과 무상함이 묻어 납니다.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님이 우리 곁에
늘 함께 하시기에 의지하며 때론 철부지 같은 생각으로 원망도... 막무가네 띵깡도 부려 보나 봅니다.
†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로렌조형제님과 릿다 자매님에게 강복하시어 노환의 아픔과 고통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더욱 보람된 여생으로 주님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힘으로 이끌어 주소서...아~멘
† 주님 ~이 세상에서 불러가신 아타나시오 형제님의 영혼을 기억하여 주시고 천상 낙원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