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9장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이것은 시편의 주제이기도 하고,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주제이기도 하고
사도 바울의 선교 주제(복음 ‘유앙겔리온’:
좋은 소식보다는 행복한 소식이라는 의미가 더 강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제를 사도 요한이 그대로 가져옵니다.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 후,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누구일까요?
박해의 시대, 환란에 시대, 혼돈의 시대에
과연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일단은 공중의 권세를 등에 입고
이 땅에서 권세부리는 자들은 아닙니다.
왜요?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음행하고 사치하는 사람들 역시
행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로 인해 흘린 억울한 눈물들을
하나님이 친히 닦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18장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혼돈의 시대에 과연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이것을 우리 심비(마음 비석)에 그리고
우리 장정교회 머릿돌에 새겨 넣으라는 것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를 입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이들이 아니라
음행하고 사치하는 이들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의 옷 곧 옳은 행실의 옷을 입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소망을
가지고 사는 복된 사람들
그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주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입니다.
바로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어로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잊어진
이 단어를 사도 요한이 다시 소환합니다.
실제로 신약성서에서 할렐루야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에게만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