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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풍(破風)
박 영 준
부교(浮橋)에 발을 올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포탄이 날아와 강물 위에서 터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이켜 모래사장으로 뛰어갔다. 모랫바닥에 엎드려 두 번째 포탄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란 생각을 했다. 포탄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 왔기 때문이었다.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엎드린 채 손으로 모랫바닥을 팠다. 열 손가락으로 몸 전체가 들어갈 구멍을 팔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린 다음 포탄이 떨어질 그 사이의 시간에 나는 손을 쇠꼬챙이처럼 혹사했다.
얼마큼 모래가 움푹 패었을 때 나는 머리를 그 속에 처박았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포탄이 몸에 떨어지지만 않으면 살 것 같아서였다. 파편이나 파풍으로는 죽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순간순간 머리를 반쯤 들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살펴보기도 했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의식이 동료들의 생사를 목격하려는 충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백여 명의 부대였다. 그러니 그들 전부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내 시야에 들어온 동료들이 전부 나 같은 자세로 모랫바닥에 엎드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어떤 사람이 죽었고 어떤 사람이 살아 있는지는 판별되지 않았다. 벌렁 자빠져 팔다리를 내뻗고 있는 사람은 죽은 시체 비슷했다. 하반신은 보이는데 상반신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죽은 시체인지 산 사람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살아야 하는 것은 나다. 나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머리를 들지 않고 모랫바닥에 붙인 채 눈을 가렸다. 무슨 놈의 포탄이 그렇게도 많이 떨어지는지 확실히 집중 사격이었다. 나는 내가 엎드린 곳이 나의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이라도 앞으로 기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움직이려 하면 우선 머리를 사면(沙面) 위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파편이라도 맞아 죽을 확률이 커진다.
그 무서운 폭음이 몸을 흔들었디·. 파풍이 모래를 몰아다가 머리에 뒤집어씌운다.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다. 그것을 확인해 볼 여유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경과했는지도 모른다. 몇 세기가 지나간 오랜 세월 속에 내가 엎드려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순간과 순간 속에 엎드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루한 줄도 몰랐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가고 적들의 포탄이 떨어지면 자연 폭격이 중지될 것 같았던 것이다. 태엽 감은 시계 꼭지를 잡아 빼고 시침과 분침을 마구 돌려서라도 시간이 달아나기만 바랐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의식도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바로 내 머리 위에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뒤부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팔과 다리가 어디 붙어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시체가 되어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고만 생각되었다. 죽은 육체를 버리고 나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불쌍한 육체여! 안되기는 안되었다만 너는 혼자 모래 속에 누워 있거라.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멀리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적들이 지금 포격을 가하고 있지만 패주하고 있는 중이다. 무슨 포탄이 많아서 이렇게도 오래 포격을 계속하는 것일까? 포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섭지는 않았다. 포탄 터지는 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렸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내게 공포의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사지가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체가 된 나의 육체를 내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육체 속으로 다시 되돌아왔다는 말인가? 잠이 왔다. 그냥 자버리고 싶었다. 나는 잤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느낌도, 아무런 생각도 없었으니까. 느낌이나 생각이 없이 얼마를 지냈는지 모른다. 많은 시간이 갔는지 한순간이 지난 것뿐인지 시간에 대한 관념도 통 없었다. 죽음이란 이런 것일까?
그러나 나는 죽었다는 생각마저 가지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냥 무(無)였다. 그것이 진짜 죽음의 현상이었을지 모른다. 누가 나를 안아 일으켰다. 의식을 잃었다고 생각한 뒤로부터 얼마나 지난 때의 일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쨌든 누군가의 일으킴으로 나는 모랫바닥에 일어나 앉았고 또 그러한 나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떴다. 늘 보던 백색 얼굴의 영국군이었다. 그러나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의 윤곽은 보이는데 선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
았던 것이다. 그 사병이 나의 상반신을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그 흔드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음 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서 헤맨다고나 할까?
“자, 무우 좀 마셔.”
영국 병사가 수통 꼭지를 입에 대는 것 같았다. 나는 흘러 들어오는 국물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을 마셨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영국 병사가 내 턱을 흔들며,
“좀 정신이 들어?”
하고 물었다.
“응.”
나는 정신이 든다고 대답했다. 정말 정신이 드는 것 같았던 것이다. 눈을 크게 뜬 나에게 영국 병사의 이름이 조라는 기억도 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나 살아 있는 거냐?”
하고 그에게 물었다.
“살아 있구말구.”
그의 대답하는 말이 영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지만 그가 하는 말이 영어라는 것을 처음 느꼈던 것이다.
“그래? 그럼 날 좀 일으켜 줘.”
그는 내 겨드랑 밑에 어깨를 집어넣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는데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를 조심스레 밀어 낸 뒤 혼자 서 보았다. 혼자서도 넉넉히 설 수 있었다. 나는 팔과 다리를 하나씩 움직여 보았다. 모두가 내 말을 들어 주었다. 제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어디 좀 걸어 봐.”
그런데 조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 오는 소리처럼 희미했다. 아주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들렸던 것이다. 희미하나마 들리기는 했는데 나는,
“뭐라고?”
그의 목소리를 한번 다시 들으려 했다.
“어디 좀 걸어 봐.”
조는 먼저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걸어 봤다. 쉽게 걸어졌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왜 희미하게 들리는 것일까?
“몇 명이나 살았어?”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보기 위해 물었다.
“꽤 많이 살았어.”
역시 그 목소리는 희미했다. 꽤 많이 살았다는 말에 나는 문득 테디를 생각했다.
“테디두 살아 있나?”
“건 모르겠어.”
건 모르겠다는 대답이 꼭 그가 죽었다는 말과 같이 들렸다.
“고마워. 나는 테디를 찾아봐야겠어.”
나는 조에게 감사를 한 뒤 혼자서 모래사장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와 가장 친했던 테디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한 오십 미터 거리나 될까? 시체들이 쓰러져 있는 사장의 면적은 그리 넓지가 못했다. 너무나 급격한 포격에서 멀리들 도망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오십 미터 거리 안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이 조의 말을 회상케 했다. 꽤 많이 살았다고 하던 그 말.
꽤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했지만 죽은 사람도 꽤 많구나. 아니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쓰러져 있는 시체가 백 명을 훨씬 넘을 것 같았던 것이다. 백 명이라야 절반인데 저것들이 백 명만 되겠는가?
나는 시체 하나하나를 점검하듯 살피기 시작했다. 머리가 달아난 시체가 먼저 눈에 띄었다. 어떤 그림에서도 본 일이 없는 인간의 형태였다. 아랫도리는 있는데 머리만이 없다. 나는 그 시체에 이르러 눈을 찌푸렸지만 오랫동안 그 앞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머리 없는 시체나마 그것이 테디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시체는 사지와 머리가 구비해 있었지만 피투성이였다. 시체 옆에 벌겋게 괸 피가 보였다. 피에 젖은 모래가 반죽됐다가 말라 버린 흙처럼 응고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시체들이 육체의 형태를 그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부분부분이 분산되어 있었다.
소총을 가지고 적과 대치하여 전투를 한 전쟁 마당이라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진 않을 것이다. 처참의 극이었다. 사람이 죽을 때 자기 형태도 보존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보다 더 처참한 일이 또 있겠는가?
나는 그 비참의 극 속에서도 테디의 시체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되는 테디. 그는 나이가 어려서 남들보다 더한 고독을 느끼고 있었다. 낯선 땅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그는 전선(戰線)에서만 살았다. 무척 고향이 그리웠겠지. 그래서인지 유별나게 나를 따랐다. 이국인인 나를 그렇게까지 따른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유를 몰라도 서로 친근하게 지내면 그뿐이었으니까.
‘테디, 너는 정말 죽었는가?’
나는 그가 반드시 죽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가 죽었다고 판정을 내렸는지 나 자신을 의심했다. 살아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으려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테디가 죽기를 원했던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시체들 속에서 그를 찾으려 한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테디!”
나는 목청이 찢어지도록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테디!”
몇 번이나 그 이름을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다. 테디는커녕 테디의 행방을 알려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몇십 명이 둘러서 있는 데까지 가서 테디를 못 봤느냐고 물었지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문득 테디가 속해 있던 소대의 소대장 얼굴을 보고 그에게로 달려가서 테디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명부에 안 올랐어…….”
딱히 죽었다는 말은 안 했다. 그러나 그것이 죽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역시 테디는 죽었구나. 그 어린 테디가 죽다니…….
나는 또 시체들을 더듬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를 더듬었는지 모른다. 나는 모래사장에서 테디가 신고 다니던 낯익은 구두 한 짝을 발견했다. 확실히 테디의 조그마한 구두였다. 나는 그 구두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구두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있을까? 구두 속에 돌을 그득 집어넣은 것 같은 무게였다. 나는 발이 들어 있는 구두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종아리 하반부에서 잘려진 발이 구두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구두끈이 매어져 있는 채의 군화였다.
그런데 구두 한 짝은 있는데 나머지 한 짝은 어디 있을까? 나는 구두 밑창을 거꾸로 든 채 나머지 한 짝을 찾아 헤맸다. 근처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왼쪽으로 오 미터쯤 갔을 때 머리 하나가 있었다. 얼굴을 분간해 낼 수 없으리만큼 찢어지고 뭉그러진 얼굴이었다. 머리털이 테디의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한 짝의 구두를 그 머리 옆에 놓고 나머지 부분의 육체를 찾기 시작했다. 십 분쯤 뒤 가슴의 일부분이라 생각되는 고깃덩이를 찾았다. 그 옆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윗저고리의 일부도 있었다. 육고간의 뻘건 고깃덩이. 그런 것을 가지고 테디의 육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분산되어 있는 육체를 한데 모아라도 놔줘야 한다는 나의 염원이었다. 그 염원이 그런 식의 파편들을 모아 테디의 형상을 재생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짝의 구두는 끝내 찾지 못했다. 한 짝의 구두밖에 없는 것을 가지고 테디의 육체라고 실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의 육신의 대부분을 한곳에 모아 놓았다는 마음에 나는 그 육신 앞에 꿇어앉았다.
나는 이 순간에 눈물을 홀리려고 했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언제 울려고 눈물을 아끼는 것일까? 세상에 이보다 더 처참하고 슬픈 죽음이 없으련만 어째서 나는 이 시체 앞에서 눈물을 홀리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일부러 울려고 했다. 그런데도 가슴속은 축축해 오지가 않았다.
테디말고도 죽은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까? 처참의 극을 이룬 가지가지의 시체들이 눈앞에 즐비해 있었다. 여느 때 그런 시체 하나만을 볼 경우 누구나 놀라 기절할 것이다. 기절할 만한 시체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나는 테디의 조각난 시체를 보고도 울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 자신이 눈물을 홀리지 못할 만큼 감정을 상실하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파동이란 수면 위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 밑바닥은 언제나 팽창되어 있을 뿐 움직일 수가 없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의 고비에서 겨우 살아난 내가 어찌 남의 죽음에 움직일 만한 감정의 여유가 있겠는가?
나는 끝내 눈물 한 방울도 홀리지 못했다. 테디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죽음 그 자체는 고사하고 테디와 나와의 영원한 이별을 위해서라도 한 방울의 눈물쯤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집합 명령이 내렸다. 부대를 정비하여 예정했던 곳으로 진군하려 함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때까지 포진하고 있던 204고지로 후퇴하려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곳을 떠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테디를 묻어 주지도 못하고 떠나야 한다. 밤낮 자기 나라 자랑을 하며 얼굴에서 옷음을 떨구지 않던 이국 소년. 전쟁이 끝나기 전이라도 군대 복무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가면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메리라는 처녀와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겠다던 꿈 많던 소년.
“미스터 송, 우리 죽을 때까지 편지를 교환합시다. 아름다운 한국을 잊어버리고 싶지가 않군요.”
한국을 좋아했고 나를 형님처럼 따르던 소년. 그 소년이 고향에도 못 가고 죽었다. 죽어도 시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죽었다. 그런데 내가 그의 시체마저 묻어 주지를 못하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나뒹굴고 있는 병사의 배낭에서 삽자루를 잡아 빼어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나는 정규 군인이 아니다. 사령관의 통역관으로 부대생활을 할 뿐이다. 조금 명령에 불복했다고 해서 처벌할 사람이 없다.
모래에 무덤을 파기란 죽먹기보다도 쉬웠다. 삽시간에 구명을 파고 테디의 시체를 순서대로 누였다. 맨 마지막으로 구두가 신겨져 있는 그 하나밖에 없는 발을 옮겨다 놓을 때 나는 그 발을 가슴에 안아 주었다。 체온이 있을 리 없는 구두였다.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는 구두였으나 언젠가 그를 얼싸안았을 때에 느끼던 감정이 되살아나게 하는 구두였다.
동쪽 하늘이 훤해지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숨어 있던 바위 틈에서 몸을 일으켰다. 적병들이 후퇴하고 전투는 완전히 끝나고 있었다. 아군의 집합 명령이 있은 지도 오륙 분이 지난 뒤였다. 내 동작이 느린 까닭은 내가 숨어 있었다는 죄의식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 숨어 있었던 것이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비굴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나는 전투요원이 아니었다. 전투요원으로 훈련을 받은 일이 없이 외국인 부대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인이었다. 여단(旅團)사령부의 통역관으로 통역만이 나의 의무였다. 그러니까 애당초 이날 밤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도 무방한 나였다.
사령관의 출동 명령이 내리고 장병들의 비상소집이 있을 때 나는 모른 척하고 누워 있어도 무방했다. 왜 출동하지 않느냐고 야단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장교들과 같은 무장을 하고 출동했다. 그것은 적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다. 이십여 일 동안 적들은 매일 밤 아군 벙커로 와서 비어 있는 벙커를 파괴하고 불을 지르고 갔던 것이다. 아군에서는 그러한 적들을 알면서도 적과 대전을 피해왔었다. 그것은 밤으로만 기습해 오기 때문이었다. 캄캄한 야간전투가 불리하다고 생각되었는지 벙커가 파괴된다고 해도 그 손해가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것은 확실히 모른다. 어쨌든 밤마다 벙커를 부수고는 능선 바로 너머에 있다는 아군 막사까지는 진격해 오지 않는 적들이었다. 아군에 인명피해를 끼치지 않으니 벙커 습격쯤 문제로 삼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아군이 능선 너머 벙커로 가면 적이 왔다 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낮에 보수해 논 벙커를 모조리 부수었을 뿐 아니라 어떤 곳에는 그 더러운 대변을 싸놓기도 했었다.
낙동강을 사이로 하고 십여 리 간격을 두고 있는 적들이었다. 배를 타고 매일 밤 넘어오는 극성스런 적들이 증오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아군은 한 번도 적진을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방위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 부대만이 아니었다.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전부가 대구 근처까지 후퇴한 뒤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적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 적만이 아군을 신경이나마 괴롭힌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렬 때 사령관으로부터 야간전투의 명령이 내렸던 것이다.
나는 전투요원이 아니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을 위해 멀리서 와서 싸우는 유엔군인데 비전투요원이라고 해서 한국인인 내가 모른 척 잠만 자코 있을 수 있겠는가?
완전무장을 하고 부대를 따라 능선을 넘어 벙커로 갔다. 물론 적들이 내습할 시간 전이었다. 모두들 자기 위치를 잡고 적의 내습을 기다리며 캄캄한 밤공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어떤 벙커로 들어갔다. 그러나 어떤 소대 어떤 분대가 들어 있는 벙커인지 알지 못했다.
어둡기 때문에 알 수도 없었지만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통역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자기 분대원이 아니라고 해서 내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벙커에서 나는 내 가슴속에 있는 수류탄을 만져 보았다. 한 손에 들고 있는 권총을 만져 보았다. 또 허리에 찬 대검도 만져 보았다. 전시에 필요할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적들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도 아군이 벙커를 방임하고 뒷산 막사에들 있는 줄 아는치 공격을 않고 진군해 오기만 했다. 나는 그들이 오늘 몰살당하리라 생각했다. 비어 있는 벙커로만 생각하고 올라오다가 도리어 이쪽 기습을 받게 되었으니 꼼짝 못할 것이 사실이다.
적들의 발소리가 어떤 지점에까지 왔을 때 아군의 사격 명령이 내렸다. 나는 수류탄을 뽑아 던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총성이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총성이 조금 뜸해졌다. 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육박전으로 싸움의 양상이 변했던 것이다. 칼로 찌르고 주먹으로 갈기고 하는 육박전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적과 아군이 뭉쳐서 적과 아군을 분간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벙커에서 뛰어나와 산 위로 기어올랐다. 그리고는 어떤 바위 틈새에 습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취해진 행동이었다. 전면밖에 보이지 않는 바위 틈새에서 나는 권총과 대검을 빼들었다. 적군이 접근해 오기만 하면 공격할 태세였다.
얼마 동안 계속된 육박전인지 몰랐다. 초긴장상태에서는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잊는 모양이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짧은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육박전이 끝났다. 적들이 후퇴했는지 조용해졌다. 동쪽 하늘이 희뿌여지기 시작했다.
아군의 집합 명령이 내렸다. 그런데도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위에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다가 아군 장병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대원 전원이 막사로 돌아간 뒤 혼자서 몰래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싸우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것처럼 가장하려고 할 셈이었다.
그런데,
“송!”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미스터 송!”
이번에는 미스터까지 붙여서 불렀다.
그래도 대답을 안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또,
“송!”
애절하게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테디였다. 테디라는 것을 알자 나는 나도 모르게 뛰쳐나왔다.
“아! 송.”
나를 보자 테디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도 그를 끌어안았다.
“살아 있었군!”
테디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너두 살았구나.”
나는 나를 반겨 주는 그를 안고 울었다. 부끄럽다는 생각도 없었다. 정과 정의 부딪침이었다.
그때 안았던 테디의 몸을 지금 그의 구두에서 느끼는 것이다.
나는 그 구두를 안고 그거나마 두 쪽 다 찾았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한 쪽밖에 없는 발을 그대로 묻다니…… 이때 비로소 눈물이 나오려 했다. 나올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 왔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삽으로 모래를 파 시체를 묻었다. 그리고는 시체가 들어 있는 무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나는 옛날 영화 ‘보제스트’를 생각했다. 형인가 아우의 시체를 사막에 묻고 그 무덤에 경례하던 주인공.
모래 무덤은 하루도 못 가 무너질 것이다. 외국 땅에 와서 죽었으나 무덤마저 차지하지 못하고 말았다.
집합 장소로 갔다. 죽은 사람이 삼십 명이라고 했다. 나는 놀랐다. 최소한도 백 명은 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보다 사망자 수가 적다는 데 약간 안심을 하고 부대 행렬을 따랐다.
우선 강을 건너자는 것이었다. 강을 건너가 먼저 도착한 부대에게 시체 처리를 부탁하자는 말에 모두 불평 없이 그 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이곳은 경상북도 고령(高靈) 근처 낙동강 하류다. 유엔군의 인천 상륙으로 내륙지방인 이곳까지 침공해 왔던 인민군들이 후퇴하기 시작한 얼마 뒤였다. 인민군의 후퇴가 이미 끝난 것이라고 안 우리 부대는 미군 공병대의 지원으로 여기 탱크가 지나갈 수 있는 고무배의 가교를 만들고 부대를 삼 진으로 나누어 그 중 이 진이 이미 도강을 하고 성주(星州)로 진군하고 있었다. 사령관을 포함한 사령부 본대가 최후의 도강을 하다가 채 후퇴하지 않은 적 패잔병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가교를 지나며 참모들의 입을 통해 패잔병들이 그야말로 최후의 발악을 하고 도망쳤으리라는 말을 들었다. 가교를 통해 우군이 진군할 것을 알고 계획적으로 야포를 가교로 향해 겨냥해 놓았다가 일제 사격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서울서 피난을 못 한 채 살고 있는 가족들을 영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족들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몇 해를 두고 궁금해할 것이고, 가족들은 혼자서 피난길을 떠난 내가 한강도 건너지 못하고 죽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할 때까지 우리 가족은 피난을 못 했다. 인민군이 칩입해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혼자서나마 피난을 떠났다. 집이 원효로라 마포 근처에서 배 한 척에 매달렸다.
노인인 뱃사공은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나를 실은 배를 움직여 노를 젓기 시작했다. 한강 복판쯤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마포 쪽에서 총성이 들려 왔다. 나를 향해 쏘는 인민군의 총소리였다. 노인은 침착하게 배를 그냥 저었다. 나는 정신없이 엎드렸다가 배가 한강 건너편에 닿았을 때 쏜살같이 뛰어내려 모래사장에 엎드렸다. 총성이 끝났을 때야 정신을 차리고 영등포 쪽으로 달렸다. 영등포로 달려가며 나는 가족도 모르게 죽을 뻔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죽었다고 하면 강 하나의 사이를 두고도 가족들은 내 시체를 절대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내는 내 죽음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과부가 될 것이며 자식들은 영원한 고아가 될 것이다. 나는 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아내를 과부로 만들지 않고 자식들을 고아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부산까지 내려가 영국 부대의 통역관으로 취직을 했다. 취직을 한 뒤의 생각이지만 외국 부대에 근무하면 죽는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다. 전투요원이 아닌만큼 총알에 맞을 우려가 없다. 어떤 근거에서인지 외국인 부대가 국군 부대보다는 안전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랬던 것이 한강 모래사장에서보다도 더 위험한 고비를 겪었다. 겪기는 겪었지만 죽지 않고 살았다. 이제는 별반 전투가 없겠지. 그러면 가족들을 틀림없이 만나게 된다. 석 달 동안 생사도 모르던 가족들을 만날 때, 아! 그때의 감격은 어떠할까?
가교를 다 건넜을 때 모든 군인들이 돌아서서 많은 전우가 죽은 모래사장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마지막 이별을 서운해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리로 몸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테디여, 안녕.”
테디의 그 형편없는 시체가 눈앞에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 얼굴인지 아닌지도 분명치 않은 머리를 주워다 붙여 놓은 시체. 다리 하나가 없는 시체.
테디에게 영원한 작별의 인사를 하자 갑자기 한쪽 귀가 뜨끔함을 느꼈다. 귀가 멍멍하고 그 귀로는 모든 소리가 정확하게 들려 오지 않는다는 것도 느껴졌다. 간헐적으로 귓속이 뜨끔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두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아직 죽음의 영역에서 아주 벗어난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선견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점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테디의 시체가 눈앞에 아물거려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밥을 조금도 남김 없이 다 먹어 버렸다. 먹고 난 뒤 나는 나를 의심했다. 한 시간 조금 전에 죽음을 실감했다. 형편없이 된 시체들 앞에서 울지도 못하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랬던 내가 한 시간이 지난 뒤 살겠다고 밥을 한 그릇 전부를 다 먹다니. 나뿐이 아니었다. 모든 군인 전부가 나와 같았다. 죽지 않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날로 우리 부대는 성주까지 갔다. 성주는 후퇴하는 인민군들 손에 의해 집 한 채 찾아볼 수 없는 잿더미였다. 그래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삼십여 명의 생명이 그렇게도 무참히 죽은 것을 본 눈이 아니었던가?
천막을 치고 부산하게 지내고 있을 때였다. 정보과에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일까 해서 가보았더니 거기 인민군 패잔병 두 명이 포박당한 채 있었다.
우리가 가교를 건너려 할 때 포격한 패잔병의 일당으로 먼저 강을 건넌 부대원들에게 붙잡혔다는 것이었다. 붙잠힌 그 패잔병들에게 영국 장교가 통역을 해달라고 했다.
“너희들은 제네바 협정에 의해 포로로 대우를 받는다. 제네바 협정에 의하면 포로는 전쟁중 보호를 받다가 전쟁이 끝날 때 자기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어 있다.
나는 할 수 없이 통역을 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믿기 어려운 일이다.
포로들이 정말이냐는 듯 영국 장교를 쳐다봤다. 그때 영국 장교는 자기의 말이 곧 법률이라는 듯, 그리고 자기는 거짓말 안 하는 영국신사라는 듯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패잔병 옆에 있는 영국 병사에게 그들을 빨리 후송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두 병사 중 한 사람이,
“포로수용소까지 보낼 필요가 뭐 있습니까?”
하고 반항하는 태도로 말했다.
“너는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영국인은 영국 법률에 따라야 하는 거다.”
장교는 어디까지나 엄격한 태도였다. 그때 나도 한마디 하고 싶었다. 비록 포로라고 하나 바로 몇 시간 전 우군 삼십여 명을 참혹하게 죽인 놈이다. 전우의 시체도 제대로 찾을 수 없이 비참한 죽음을 안겨 준 놈들인데 그런 놈들을 살려서 그들 고향에까지 보내려고 하다니…… 그러나 나는 정규 군인이 아니다. 외국 부대에 소속되어 있는 통역관에 지나지 않는다. 발언권이 있을 수 없다. 우리 땅에서 싸우고 있으나 발언권이 없는 족속.
나는 몇 달 전 고령서의 일을 생각했다. 내가 소속해 있는 영국 여단이 고령지구 전투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삼십 리 북방까지 적군이 침입해 온 사실을 안 사령부에서는 예하 국군 부대장과 고령 경찰서장과의 회의를 열고 작전 명령을 내렸다. 그때 사령관인 영국 준장이 고령 경찰서장에게 전방 수색을 명령했다. 한국인인 경찰서장은 나이 사십이 훨씬 넘어 보였다. 그 서장이 자기는 전투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투 훈련도 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관 전부가 자기와 같다면서 수색전이 불가능함을 역설했다. 그런데도 사령관은 우겼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총살한다고 권총까지 빼들었다. 권총 빼드는 것을 본 경찰서장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야말로 허리가 빠진 것이었다. 뼈 없는 사람처럼 스르르 쓰러져서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옆구리에 손을 넣고 잡아일으켰으나 혼자 서 있지를 못했다. 나는 참으로 딱했다. 얼마나 겁이 났으면 허리가 빠졌을까? 전투 훈련도 없는 사람보고 가장 위험한 수색전에 나가라는 명령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령관이 계속해서 나가겠느냐, 나가지 못하겠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그대로 통역할 수밖에 없었다. 통역을 하면서도 나는 서장이 나를 원망하지나 않을까 생각했다.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을 하는 나, 그리고 자기 의사를 사령관에게 능히 전달할 수 있는 내가 사령관의 말만을 통역하면서 그의 의사는 대변하지 못한다. 아니 동족인 나의 의사를 한마디도 첨부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저희가 수색전에 나갔다가 죽는 때는 나를 원망할 것이 아닐까?
그래도 나는 끝까지 사령관에게 서장을 대변하는 말 한마디도 못했다.
그날 밤 경찰관들을 인솔하고 나갔던 서장이 전사했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가 죽은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죽인 듯한 마음에 통역관처럼 못 해먹을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전투중 서장의 전사로 적의 위치를 파악게 했고 그것으로 아군 작전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참히 죽은 경찰서장이었다.
나는 경찰서장의 출전 때 내 의사를 한마디도 표현 못 한 것처럼 지금 적 패잔병을 포로수용소로 보낸다는 것도 한마디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할 권리가 있다면,
“전우를 죽인 놈들이다. 이놈들을 백 미터 전방에서 발견했다면 용서 없이 쏘아 죽였을 것이 아닐까? 백 미터 전방에 있는 적과 눈앞에 있는 적이 뷔기 다르나?”
라고 말했을 것이다.
백기를 든 줄 알고 전부가 도망쳐 간 적 부대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악랄하게 우군을 죽인 적이 악질적이 아닌'P 거기에 무슨 인정이 필요한가 말이다.
나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같은 민족을 살려 달랄 수는 없지만 죽여 달라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럴 경우에만은 나를 오해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영국 병사들이 패잔병을 끌고 떠나려 할 때였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저놈들이 너의 민족을 얼마나 많이 죽였느냐? 그런데 무엇 때문에 살려 주는 것이냐?”
하고 말했다. 그때 영국 장교가 조소어린 얼굴로,
“우린 우리 민족을 죽인 적인데도 살려 주려 하는데 같은 민족인 너는 왜 죽여야 한다고 그러는 거냐?”
하고 말했다. 나는,
“같은 민족이지만 적은 죽여야 하지 않느냐?”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 뒤에 있을 영국 장교의 조소가 무서워 입을 닫아 버렸다. 말을 못 하면서도 장교가 미웠다. 나는 죽은 테디의 시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끝내 하나를 찾지 못해 하나밖에 없는 다리를 그대로 묻어 버린 테디의 시체.
나의 증오에 찬 얼굴을 바라보던 장교가 침을 탁 뱉어 버리고 돌아섰다. 나를 무척 아니꼽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장교가 떠나간 뒤 패잔병들을 끌고 걷기 시작하던 병사 한 명이 내게로 와서,
“막 쏴 죽이려는데 저자가 와서 죽이지 못하게 하구 끌구 오지 않아…….”
영어로 투덜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해야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승리자인 것처럼 나를 힐끗 쳐다보는 패잔병들을 내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성냥을 찾았다. 있음직한 바지 주머니에 성냥이 없었다. 성냥 대신 무엇인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이 손에 잡혔다. 나는 내가 모르는 내 주머니 속의 그것을 끄집어냈다. 종잇장들이었다. 무슨 종잇장들을 주머니 속에 넣었을까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종이들을 펴보았다. 영어로 쓴 편지였다. 나는 내가 영어로 편지 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지장들 사이에는 미국 지폐가 들어 있었다. 세어 보니 이백 달러나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이런 돈을 내 주머니 속에 넣어 주었을까?
나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있는 테디의 이름까지 읽었다. 그때에야 테디의 것들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테디의 시체를 묻기 직전 그의 주머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낸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어째서 이때까지 그것을 잊고 있을까? 그새 피운 담배가 몇 대가 되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성냥을 찾으며 호주머니를 뒤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 편지와 돈의 감각을 몰랐던 것일까?
그새 모아 논 돈을 보내려고 그의 어머니에게 써놓은 편지를 읽은 나는 내가 테디의 혼육 가운데 일부분을 내 몸에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테디의 육체의 일부분 같기도 했고 영혼의 일부분 같기도 했다. 그 테디의 일부분이,
‘너는 내 원수를 살려 줬구나.’
하고 나를 힐책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냐. 너의 동족이 살려 준 거야.’
그래도 테디는,
‘이냐, 네가 살러 준 거야.’
하고 거듭 말했다. 나는 테디와 싸울 수가 없었다. 죽은 테디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렇다, 내가 살렸다.’
이렇게 대답했을 때 갑자기 귀의 통증을 느꼈다. 나는 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테디 편지를 잊고 있었던 것처럼 귀의 통증도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간헐적으로 아파 오는 통증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통증이 일어나는 귀에서는 윙윙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선 의무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무실의 천막도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으나 의무장교에게 선 채로나마 귀를 좀 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의무장교는 확대경을 끼고 귓속을 들여다보았다. 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는,
“고막이 터졌다.”
고 명확히 말했다.
“터지다니?”
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물었다. 의무장교는,
“찢어졌어.”
하고 같은 뜻의 말을 했다.
나는 몰랐다. 고막이 찢어지다니. 그럼 나는 병신이 됐다는 말이 아닌가?
“치료할 수는 없나?”
“치료한대도 찢어진 것을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러면 병신이란 말인가?”
“한 귀가 안 들려도 한 귀로 들을 수 있다.”
“그러니 병신 아니냐?”
“현재 내 말을 다 알아듣지 않는가? 조금 불편은 하겠지.”
그러고 난 뒤 그는 내 귀에다 머큐로크름을 칠한 솜을 틀어박았다. 나는 강변에서 적의 포격을 받을 때 파풍으로 고막이 찢어진 것을 알았다. 나를 병신으로 만든 적들이다. 그런데 그 적을 살려 줬다는 생각이 나를 비통하게 했다.
인도주의? 나는 영국 장교를 인도주의자라고 불러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웅주의’라고 스스로 대답했다. 내내 후퇴작전만 하다가 처음으로 진격을 하고 있을 때 어찌 인도주의가 허용될 것인가? 아무것도 아닌 영웅주의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사참모를 찾아갔다. 그에게 테디의 편지와 돈을 주었다. 그리고는,
“테디는 영웅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은 영응일 수 없으니까. 남의 시체를 밟고 걸을 수 있는 사람만이 영웅이다.”
나는 필요치 않은 말 한마디를 했다. 인사참모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어디서 나왔느냐?”
그 출처를 물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왜 이때까지 가지고 있었느냐?”
로 들렸다.
“시체를 묻을 때 주머니에서 꺼냈던 것이다. 그새 잊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내 몸에 붙어 있는 톄디의 혼육 일부가 멀리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테디의 목소리가 더 똑똑하게 들려왔다.
‘송, 위스키보다 막걸리가 영국과 한국을 연결시켜 주는 것 같구나.’
언젠가 고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하던 말이었다. 산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똑똑하게 틀리는 것 같았다. 만약 포탄의 파풍으로 내 한 귀가 듣지 못하게 된 것을 안다면 테디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전쟁이 너의 한 귀를 앗아 갔구나…….’
하고 슬퍼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나라 전쟁이니 싸우는 것이 당연할지두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거지?”
말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던 테디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그는 죽었고 나는 겨우 귀병신이 된 채 살아 있다.
살아 있는 내가 부끄러울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같은 민족끼리인 나는 살았는데 왜 싸우는지 모르고 싸우던 테디는 죽었다.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삼 일 뒤였다. 천막을 치고 내무생활이 질서를 잡기 시작하고 있을 때 다시 출동 명령이 내렸다. 적들이 후퇴일로에 있으니까 그들을 추격해 북상할 것은 사실이었다. 다시 천막을 뜯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전번 패잔병을 포로수용소로 보낸 장교에게 불려갔다. 어떤 허술한 농부 한 명을 앉히고 통역을 하라는 것이었다. 통역을 하는 동안 장교는 농부를 간첩이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농부는 자기가 간첩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가족들이 피난 가서 삼십 리 밖 가맛골에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민군이 도망을 쳤기 때문에 농로를 보러 왔었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영국 장교는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이라고 하면서 말만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농민의 통역이 아니라 내 의사로 장교에게 말했다.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진짜 농민이 틀림없다. 그리고 적들이 후퇴한 지 얼마도 안 된 지금 간첩이 무엇 때문에 나오겠는가?”
그때 농민도,
“인민군이 무서워 피난을 갔던 사람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벼를 베어 볼까 해서 왔던 것입니다.”
하고 가슴을 찢어서라도 속을 보이고 싶어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장교가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바쁘다. 너 하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하고는 총살 명령을 내렸다. 나는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간첩도 아닌 불쌍한 농민을 간첩으로 몬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 그리고 적들은 포로수용소에 보내면서 이 사람은 어째 총살이냐?”
나는 반항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때 영국 장교는,
“좌우간 시간이 없다. 전투중에까지 일일이 준법을 따질 필요두 없구. 명령이니까 명령대로 해. 집행관은 바로 너다.”
하면서 내 권총을 뺏어 점검을 했다. 총탄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빨리 가서 총살을 하라. 장소는 아무 데두 좋다.”
하고 명령했다. 총살을 하면 했지 하필이면 집행관이 나란 말인가? 나는 못 하겠다고 반항하려 했다. 그러나 패잔병을 포로수용소로 보낼 때 내게 던지던 그 조소가 머리에 떠올라 묵묵히 있었다. 그때 장교가 영국 병사 한 명에게 수행하라고 명령했다.
병사는 명령대로 농민을 끌고 앞장을 섰다. 나도 할 수 없이 그들 뒤를 따랐다. 뒷산 으슥한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영국 병사가 농민을 세워 놓고,
“예가 어떠냐?”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앞뒤를 살폈다. 부대에서 약 이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 나무에 가려 앞뒤가 보이지 않는 지점이었다. 나는 권총을 빼들었다. 그때 농부가,
“당신은 한국 사람이지요? 나를 정말 죽이렵니까.”
울부짖었다. 나는 들은 척도 않고 권총을 영국 병사 가슴에 내밀었다. 두 손을 들게 하고 어깨에 걸려 있는 소총을 내리었다. 그리고는,
“잔말 말고 돌아가라. 도중에 큰 소리를 내면 너를 죽일 테니까 그리 알어.”
하고 병사의 몸을 밀었다.
병사가 두 손을 든 채 슬슬금 걷기 시작할 때 나는 농부에게,
“빨리 달아납시다.”
하고 앞을 서서 산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농부는 살려 주었는데도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도망 가다가 붙잡히면 영락없이 죽을 테니까 겁이 날 것도 사실이다.
“부대는 곧 출동합니다. 우리를 잡으러 올 경황이 없습니다.”
나는 농부를 안심시켰다.
백 미터쯤 올랐을 때 나는 소총을 한 방 허공을 향해 쏘았다. 왜 쏘았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는 그 소총을 아무 데나 내버렸다. 얼마를 다시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내 상상대로였다. 간첩 아닌 간첩 때문에 작전을 지연시킬 그들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삼중당,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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