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 음악의 기초를 구축한 헨델은 1685년 어느 독일 지방의 마을에서 태어났다.
헨델의 집안은 음악가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던 집안이었고, 아버지가 영주에게 소속된 의사였기 때문에 생활은 윤택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의사나 변호사로 키우는 것이 희망이었기에 어린 헨델이 음악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헨델은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풍부해서 헨델이 어릴 적에 몰래 한밤중에 다락방에 숨겨 놓은 클라비코드(피아노의 전신)를 치러 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8세의 헨델은 작곡가가 되고 싶어서 함부르크로 떠났다. 함부르크에서 헨델은 <알미라>라고 하는 오페라를 작곡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떠났고, 거기서도 오페라를 작곡하는 한편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의 연주가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도 성공하여 유명한 작곡가들과 친분 관계를 넓혀갔다.
그는 일생 동안 46곡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였고 연주가이면서 한편으론 극장을 경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이나 파산했고, 세 번이나 살해를 당할 뻔했다. 또한 결투를 한 적도 있다. 즉, 그는 자신의 음악성을 펼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졌고, 모든 것과 싸웠던 것이다. 그는 일생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쟁을 했는데, 이는 헨델의 생활력과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헨델이 5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오페라 작곡을 그만두고 종교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죽기 전까지 20년간은 계속해서 종교 곡을 작곡했다. 헨델은 약 20여 곡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도 <메시아>는 불멸의 명작으로 꼽는다.
헨델은 바흐와 마찬가지로 66세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작곡도 불가능했고 죽기 전까지 줄곧 암흑 속에서 생활하다가 1759년 74세의 나이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일생 동안 독신이었기 때문에 유족은 없었다. 그는 독일인이지만 영국에서는 지금까지도 영국의 음악가로 존경받고 있다.
Aria from the Opera ' Rinaldo'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이 곡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2막에서 여주인공 알미레나에 의해 불려지는 아리아입니다.
이 곡은 영화 'Farinelli' OST에 삽입 되어 나와서 많이 알려져서 더욱 유명하죠.
가슴 절절한 가사의 의미나 뜻은 몰라도 전해지는 이 노래.....
천상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죠~
특히그 당시 여자가 무대에 오를 수가 없어서, 남자가 여자의 목소리로 불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네요.
중세 암흑시대의 기독교는 종교뿐 아니라 정치, 사회, 예술의 모든 분야를 지배했고 종교의 부패와 잘못된 성경 해석은 많은 비정서적인 사례를 남겼다.
그중의 하나가 여자들이 교회에서 큰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금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교회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밖에서도 여자들은 제한을 받았다.
16세기에 로마교황청의 시스틴채플에서 카스트라토(Castrato)·남성거세가수 주로 소프라노)들이 활약했다는 기록이 있고, 카스트라토의 전성기 때인 18세기에는 이탈리아에만도 1년에 4천여 어린 소년들이 거세되었다.
당시 정상급 카스트라토의 인기와 영화는 요즘 영화배우나 오페라 가수들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들은 소년 시절의 맑은 고음의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여성들과는 달리 힘이 넘치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젊은 사람들의 우상이 됐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 목소리는마치 외계에서 온듯한 신비감을 주었다.
음성이 좋은 어린 아들을 둔 가난한 부모는 아들을 카스트라토를 만들어 부귀를 누리려 했다.
작곡가 조셉 하이든도 음성이 좋아 카스스라토가 될뻔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거세를 면했다.
헨델은 그가 작곡한 46개 오페라중에서 적어도 16개를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었다.
모짜르트도 카스트라토에게 성악이론을 배웠고 또한 「이도메네오」등 여러 오페라에 카스트라토역을 작곡했다.
원래 오페라 작곡가였던 헨델이 오페라를 그만두고 오라토리오작곡을 주로 하게 된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파리넬리 때문이었다.
교회도 카스트라토의 고용을 제한해서 19세기 말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많은 카스트라토의 이름들이 역사에 남아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가수가 몇년전 우리나라에 수입된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1705∼1782·예명 파리넬리)다.
영화에서는 18세기 중반 '파리넬리'라고 불리던 나폴리 출신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시(Carlo Broschi)와 리카르도 브로시(Riccardo Broschi)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리카르도 브로시(1698-1756)와 니콜라 포포라(1686-1768), 요한 아돌프 하세(Johann-Adolf Hasse), 헨델(George Friedrich Haendel:1685-1759) 등의 작품이 연주되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특이한 점은 현재 이처럼 3옥타브 반이 넘는 카운터 테너의 음역을 소화할 수 있는 가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의 남자 카운터 테너인 '데릭 리 라긴'과 폴란드의 여성 소프라노 '에바 마라스 고드레프스카'의 노래를 따로 부른 후 이를 기술적으로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좀더 강화하여 믹스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편곡은 바로크 음악의 전문가 크리스토퍼 루세가 담당했다.
헨델의오페라 <리날도> 중에서 아리아 "울게하소서"
오페라 <리날도>는 런던에서 발표한 헨델의 첫 오페라이다.1711년 런던에서 초연되었다.
그 중 이 곡은 십자군 의 영웅인 리날도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운 "사라센 왕' '아르간테'와 그의 여인 '아르미다'는 마술책으로 리날도의 약혼녀'알미레나'를 정원에서 납치한다. 이후 '아르미다'의 마술궁전에서 '아르간테'는 '알미레나'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데 이때'알미레나'가 외면하면서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가' 울게 하소서'이다.
대체적으로 '울게 하소서'로 번역되어 불리어지는데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극중의 내용으로 봐서는 '울게 내버려두오'가 더 적절할 것 같다.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Il duol infranga queste ritorte di' miei martiri
이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sol per pieta, di'miei martiri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sol per pieta.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첫댓글 익숙한 아리아네요. 잘 들었습니다.~
동남파님~
들을 때마다 감동이쥬~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