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인들이 만든 걸작 하드웨어 : 갤리선
한 세대 가까이 한국인들에게 ‘최고의 고전 명화’로 자리 잡은 대작 <벤허> 때문인지 갤리선 하면 노잡이 노예가 비인간적인 혹사를 당하는 배라는 어두운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갤리’라는 단어를 아는 대부분의 세계인들도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런‘선입견’도 상당 부분은 사실이지만, 갤리선이 항상 이렇게만 운영되었다면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2500년 이상 지중해를 주름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 ‘노예 노잡이 배’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갤리선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갤리선이라고 아무 것도 없는데 페니키아 인들이 갑자기 발명 했던 것은 아니었다. 바구니에 가까운 보트나 통나무배, 카누 같은 원시적인 ‘배’들을 제외하면 인류 최초의 선박으로 인정받는 존재는 바로 그 유명한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옆에 있던 석실에서 발굴되었다. 물론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있었지만 그 곳에서 발견된 많은 나무조각들을 모으니 길이 22미터, 폭 2.8미터의 날렵한 배가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이 배는 이집트인들 답게 실용성 보다는 종교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죽으면 태양신 라와 하나가 되고, 파라오의 혼은 배를 타고 천공을 항행하는 것으로 믿어 졌기 때문에 이런 배를 만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파라오 생전에 쓰인 배와 같은 배라고 밖에 볼 수 없었고, 재질도 페니키아 삼나무로 확인되었다. 태양의 배는 지금은 피라미드 옆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돛대는 달려있지 않고 노만 양쪽으로 다섯 개씩 달려있다. 날렵한 외모가 갤리선의 선조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어서 기원전 1500년 경, 하트솁수트 여왕 시기에 길이 25미터, 폭이 6-7미터에 달하며 돛대와 26개의 노를 갖춘 대형 선박이 지금의 소말리아로 추정되는 푼트 지방으로 원정을 떠났다는 기록과 부조가 발견되었다. 어쩌면 이 배들은 이집트인이 아니라 비블로스를 비롯한 가나안 인들이 파라오의 명령으로 만들어 졌을지도 모르지만 자세한 경위야 알 길이 없다.
다시 기원전 1200년 경. 람세스 3세가 앞서 이야기한 ‘바다의 민족’을 상대로 한 전쟁을 기록한 부조에도 돛대와 다수의 노를 갖춘 ‘군함’들이 등장한다. 결국 이 배들이 갤리선의 원형이 된 셈이다.
백향목이라는 최고의 선박용 자재를 가진 페니키아 인들은 타고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그들은 풍력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돛과 보다 많은 노를 단 배를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선체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사람으로 치면 척추에 해당되는 용골과 갈비뼈에 해당하는 빔과 프레임으로 선체의 뼈대를 만들어 원양항해에 적합한 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일부 선박은 조개 등 배를 손상시키는 해양생물이 달라붙지 않도록 배 바닥에 얇은 납판을 부착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거의 2천 년 후 대형 범선이 등장하면서 다시 등장하는 기술이었다. 좌현과 우현에 각각 25개의 노가 달려 있었다.